[신앙과 시 62편] 〈변호(辯護)〉- 판단의 소음 속에서 침묵을 깨운 한 질문
- 이현용 목사 (바이블 아카데미 원장, 임불교회 담임, 『리멤버』 저자)
기자명거창기독신문 (webmaster@gcc20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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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辯護)〉
그들은
잡으러 갔다가
아무도 잡지 못하고 돌아왔다.
손은 비어 있었으나
귀는 이미 붙잡혀 있었다.
말씀이
사람을 붙잡을 때
권력은 더 이상
명령이 되지 못한다.
“그처럼 말한 이는 없었습니다”
그 말은 변명이 아니라
고백이었다.
한쪽에서는
율법이
칼처럼 들려 있었다.
아는 자들의 언어는
점점 높아졌고
모르는 자들은
점점 낮아졌다.
그들은 판단했고
판단 속에서
사람을 잃었다.
율법은
사람을 살리라고 주어졌으나
사람 없는 율법은
저주가 되었다.
그때
한 사람이
말을 꺼냈다.
믿음이 충분해서도
용기가 완전해서도 아니었다.
다만
듣지 않고 판단하는 것이
불의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를 변호하지 않았다
다만
법이 법이기를
양심이 침묵하지 않기를
요청했을 뿐이다.
그 한 문장이
소란을 멈추게 했다.
말씀 앞에
멈춰 선 사람들
판단 위에
서 있는 사람들
침묵을 깨고
질문한 사람
그 셋 사이 어딘가에
오늘의 내가 서 있다.
나는
잡으러 가는가
판단하려 드는가
아니면
조용히라도
진리를 편드는가
말씀은
언제나
큰소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열린 귀 하나
멈출 줄 아는 발걸음 하나
그리고
침묵을 넘어서는
작은 질문 하나를 찾으신다.
그 자리가
우리를 부르시는 자리다.
— 요한복음 7:45~52절에 근거하여 · 石花 —
〈변호〉는 예수를 둘러싼 공개적 대립의 한복판에서, 침묵을 깨운 ‘작은 질문’의 신학을 다룬 작품이다.
이 시에서 ‘변호’는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법이 법답게 기능하도록 요청한 양심의 최소 단위를 가리킨다.
시의 출발점은 역설이다. “잡으러 갔다가 아무도 잡지 못하고 돌아왔다.” 권력의 손은 비어 있으나, 귀는 이미 사로잡혀 있다. 이는 말씀이 폭력보다 먼저 인간을 붙든다는 요한복음의 핵심 진술을 시적으로 번안한 대목이다. 여기서 체포 실패는 작전의 실패가 아니라 권력의 한계다. 말씀이 사람을 붙잡을 때, 명령은 효력을 잃는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율법은 ‘칼’이 된다. 율법 자체가 악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제거된 율법이기 때문이다. “사람 없는 율법은 저주가 되었다”는 선언은, 오늘의 종교적 판단과 제도 비판으로 확장된다. 시인은 ‘아는 자들의 언어는 높아지고, 모르는 자들은 낮아졌다’고 말한다. 지식은 우월이 되고, 판단은 배제가 되며, 그 과정에서 사람은 사라진다.
전환점은 니고데모의 등장이다. 그는 영웅이 아니다.
충분히 믿는 자도, 완전히 용감한 자도 아니다. 다만 듣지 않고 판단하는 것이 불의임을 아는 사람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를 변호하지 않는다. 그는 법의 절차와 양심의 자리를 요청한다. 이 최소한의 요청이 소란을 멈춘다. 진리는 종종 큰 외침이 아니라 멈춤을 요구하는 질문으로 드러난다.
시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독자를 세 위치 중 하나에 세운다. 잡으러 가는 자, 판단하려는 자, 혹은 조용히라도 질문하는 자. 이 삼분법은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라 영적 자기 점검이다. 말씀은 큰소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열린 귀, 멈출 줄 아는 발걸음, 침묵을 넘어서는 작은 질문—이 세 가지가 진리를 편드는 최소 조건임을 시는 말한다.
❝ 진리는 변호사를 먼저 찾지 않는다. 다만, 멈춰 서서 묻는 한 사람을 기다린다. ❞
석화(石花) 이현용 목사
바이블 아카데미 원장 · 임불교회 담임 · 『리멤버』 저자
국립부산공업대학교 졸업(B.Eng)
대전신학대학교(B.Th) 및 대학원(M.Div)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수료
예장통합 목사고시 전문 강사(19년)
프리칭 성경 연구 및 설교세미나(RPS) 대표
전 대전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저서
《목사고시 종합문제집 리멤버》
《진주노회 고시 종합문제집》
《프리칭 포커스》
못골 문학상 수상
바이블아카데미 — 말씀과 비전으로 ‘시작 없는 시작’을 준비하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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