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시 64편] "Between Words and Mercy" 말과 자비 사이에서, 정죄를 멈추게 하는 침묵- 정의의 언어가 멈춘 자리에서 시작된 구원의 침묵
- 이현용 목사 (바이블 아카데미 원장, 임불교회 담임, 『리멤버』 저자)
기자명거창기독신문 (webmaster@gcc20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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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Words and Mercy〉
그들은 말을 던졌고
그 말은 돌이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말하느냐는
진실보다 먼저 사람을 묶는다.
정의의 문장으로 포장된 말은
순식간에 올무가 되어
말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를 걸어 잠근다.
질문은 이미 답을 품고 있었고
그 답은
예수를 향한 시험이었다.
그러나 그는
말로 맞서지 않았다.
손가락을 굽혀
땅을 썼다.
율법이 새겨졌던 돌이 아니라
바람에 지워질 흙 위에.
그는 죄의 목록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고발자의 이름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정죄의 언어를 선택하는지를
천천히, 침묵으로
번역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이
돌을 쥔 손들이
하나둘 풀린다.
그때 비로소
말씀이 말을 얻는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죄가 없다는 선언이 아니라
죄보다 큰 사랑의 방향이다.
법을 무너뜨린 십자가이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러나
인간은 다시 죄를 범할 수밖에 있음을
그분은 이미 알고 계셨다.
욕망은 기억보다 빠르고
의지는 은혜보다 느리다.
이 말씀은
정죄의 명령이 아니라
은혜의 초대이다.
완전해지라는 요구가 아니라
은혜 밖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요청이다.
구원은
죄 없는 인간을 만드는 사건이 아니라
죄를 안고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길이다.
오늘도
흙 위에 쓰인 그 글자는
바람에 지워졌지만
그 침묵의 선언은
여전히 우리를 살게 한다.
정죄의 언어가 아니라
구원의 말로.
— 요한복음 8:2~11절에 근거하여
〈Between Words and Mercy〉는 말이 얼마나 쉽게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정면으로 드러내는 시이다.
이 작품에서 ‘말’은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가두고 관계를 단절시키는 정죄의 구조로 등장한다. 고발자들의 질문은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결론을 가진 채 던져진 함정이며, 정의의 언어를 빌려 한 인간을 희생시키려는 종교적 폭력의 전형이다.
시인은 예수의 침묵에 주목한다. 예수는 논쟁의 언어로 맞서지 않고, 손가락으로 땅에 쓴다. 이는 율법이 새겨졌던 돌판과 의도적으로 대비되는 장면이다. 돌은 남고, 흙은 사라진다. 예수는 지워질 것을 선택하심으로써, 인간이 붙잡고 있는 ‘영원한 정죄’를 상대화한다. 그분의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정죄의 언어를 무력화시키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무죄 판결이 아니다. 이는 죄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죄보다 큰 관계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방향 선언이다. 이어지는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 역시 윤리적 완전함을 요구하는 율법의 재등장이 아니라, 은혜 안에 머물라는 초대이다. 시는 인간의 연약함을 직시한다. 인간은 다시 넘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에 구원은 ‘완성된 인간’을 만드는 사건이 아니라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사건임을 강조한다.
이 시는 오늘의 교회와 신앙인에게 묻는다. 우리는 돌을 쥐고 있는가, 아니면 흙 위에 쓰인 말씀을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는 옳은 말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살리는 말을 선택하고 있는가. 정죄의 언어가 넘치는 시대 속에서, 이 시는 침묵과 자비가 어떻게 사람을 살리는지를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증언한다.
“구원은 죄 없는 인간을 만드는 사건이 아니라
죄를 품고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길이다.”
이 문장은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신학적 중심이다.
석화(石花) 이현용 목사
국립부산공업대학교 졸업(B.Eng)
대전신학대학교(B.Th) 및 대학원(M.Div)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수료
예장통합 목사고시 전문 강사(19년)
프리칭 성경 연구 및 설교 세미나(RPS) 대표
전 대전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임불교회 담임목사
저서: 《목사고시 종합문제집 리멤버》, 《진주노회 고시 종합문제집》, 《프리칭 포커스》
못골 문학상 수상
바이블아카데미 — 말씀과 비전으로 ‘시작 없는 시작’을 준비하는 자들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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