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23(월) ◈ 요 7:25-36 아는 체 말고, 겸손히 ‘나 있는 곳’에 거하라.
요 7:25 예루살렘 사람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바로 이 사람이 아닙니까?
요 7:26 보십시오. 그가 드러내 놓고 말하는데도, 사람들이 그에게 아무 말도 못합니다. 지도자들은 정말로 이 사람을 그리스도로 알고 있는 것입니까?
요 7:27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에서 오셨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요 7: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요 7:29 나는 그분을 안다.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요 7:30 사람들이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아무도 그에게 손을 대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 7:31 무리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그들이 말하였다. "그리스도가 오신다고 해도, 이분이 하신 것보다 더 많은 표징을 행하시겠는가?"
요 7:32 무리가 예수를 두고 이런 말로 수군거리는 것을, 바리새파 사람들이 들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잡으려고 성전 경비병들을 보냈다.
요 7:3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잠시 동안 너희와 함께 있다가, 나를 보내신 분께로 간다.
요 7:34 그러면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내가 있는 곳에 너희가 올 수도 없을 것이다."
요 7:35 유대 사람들이 서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로 가려고 하기에, 자기를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가? 그리스 사람들 가운데 흩어져 사는 유대 사람들에게로 가서, 그리스 사람들을 가르칠 셈인가?
요 7:36 또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내가 있는 곳에 너희가 올 수도 없을 것이다' 한 말은 무슨 뜻인가?"
◈ 은혜의 왕 노릇
1. 하나님의 자녀는 영으로 예배함으로 솟아나는 샘물이 되고, 주 달리신 십자가를 믿음으로 생명의 빵을 먹게 된다.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는 주 안에 있고, 주도 그 사람 안에 있다. 그는 주님 때문에 산다.
2) 생명을 주는 것은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다.
3)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살벌한 분위기에도 예수님은 성전에 올라가 성경을 가르치신다.
2. 성경 전문가이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자신의 영광을 구함”으로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진리에 저항한다.
1) 예수님은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라고 하였다.
2)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은생명을 얻고, 생명을 전하게 된다.
3. 예수님과 유대인의 저항을 구경하던 자들이 나선다.
1) 그들은 당국자들이 무슨 생각으로 예수님이 공중 앞에서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놔두는지를 문제 삼는다.
2) 그들은 예수님의 출신지를 안다고 하면서, 그리스도는 출신지를 알 수 없는 인물이라는 풍문을 들먹인다.
요 7:27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실 때는, 어디에서 오셨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3) 소위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뭐라고 하더라”는 풍문으로 진리를 아는 척하면서 진리를 판단하는 자들이다.
4. 예수님은 이렇게 어리석은 자들에게 아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가르쳐 주신다.
1) ‘가르쳤다’는 표현을 봐서는 28~29절보다는 훨씬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을 것이다.
요 7: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요 7:29 나는 그분을 안다.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육신적으로 알고, 내가 나사렛에서 온 것도 안다”고 긍정해 준다.
3) 그러나 그들은 “진리로는 예수님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려준다. 예수님은 참되신 분에게서 왔다.
5.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왔지만 동시에 하늘(하늘 아버지)에서 온 분이다.
1) 우리가 알아야 할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님이시다.
2) 예수님은 “나는 보냄받은 자”라는 정체성을 강조해서 말씀하신다.
3) “스스로 계신 여호와”이신 예수님조차 “보냄받은 자”란 정체성으로 행하신다.
4) 사람의 말과 행동은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서 나오게 된다.
6. 방관자들은 예수님이 “참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말을 듣고는 잡아서 박해하려고 한다.
1) 예수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사람들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일어난다.
요 7:30 사람들이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아무도 그에게 손을 대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를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처럼 보시고 사랑하신다.”
3)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도, 사람들이 원하는 때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진다.
4) 이 진리를 안다면 예수님처럼 “트집 잡고 나를 잡아 박해하려는” 자들이 있어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할 수 있다.
7. 31절에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 즉 표적을 믿는 자들이 등장한다.
요 7:31 무리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그들이 말하였다. "그리스도가 오신다고 해도, 이분이 하신 것보다 더 많은 표징을 행하시겠는가?"
1) 요한복음에서 많은 사람이 표적을 봄으로 믿기 시작한다.
2) 예수님은 그들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을 주시고, 표적을 보고 믿는 자들이 그 말씀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에 이르게 된다.
3)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대적하는 때에, 표적이라도 보고 믿는 자들도 귀하다.
4) 표적을 넘어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와서 우리를 품고, 우리와 함께 하나님 아버지 품에 거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음을 알아야 한다(29, 33절).
8.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보다 더 많은 표적을 행한다”고 말하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듣는다.
1)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공격할 때는 지켜보고 있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생겨 복음이 확산되려고 하자, 예수님을 잡으려고 성전 경호원들을 보낸다(32절).
2) 평소에 원수였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는데 한 뜻이 된다.
9. 30절에서 밝힌 대로 권력도 사람들의 의지도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예수님을 어찌할 수 없다.
요 7:3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잠시 동안 너희와 함께 있다가, 나를 보내신 분께로 간다.
10.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성전 경호원들에게도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알려주신다.
1) 자신을 박해하던, 비방하던, 명령에 따라 잡으러 오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신다.
2) 이미 심판으로 멸망 받아 마땅하지만, 아들은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이런 세상을 사랑하사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3) 우리가 죄인인 상태에서 우리를 사랑하사 아들을 내어주신 아버지의 뜻대로 복음을 전하신다.
11.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조금 더 있다가 아버지의 때에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신다.
1) 아버지가 보내신 목적대로 예수님은 믿는 자들을 품고(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시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시기에, 믿는 자들은 예수님이 있는 곳에 있게 된다.
2)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에 오지 못한다.
요 7:34 그러면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내가 있는 곳(나 있는 곳)에 너희가 올 수도 없을 것이다."
12.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은 자가 있어야 할 곳을 “나 있는 곳”이라고 한다.
1)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2)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예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 때 예수님은 우리를 영접하여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주안에, 주는 내 안에 거하게 된다.
3)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예수님이 있는 곳에 있게 된다. 즉 “나 있는 곳”에 있게 된다.
13. “나 있는 곳”은 창세 전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여 그에게 주신 영광을 보는 곳이다.
1)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수님은 “나 있는 곳”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신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3).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17:24).
2) 예수님이 우리를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있게 하신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들에게 주신 영광, 우리를 향한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보게 된다.
14. “나 있는 곳”은 죽어서 가는 천당을 넘어 현재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이며, 현재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곳이다.
1) 예수님은 창세 전부터 성육신, 공생애 사역을 하는 동안 항상 “나 있는 곳” 즉 아버지 품에 거하셨다.
2) 십자가와 부활 승천 후에 달라진 것은 믿는 자와 함께 “나 있는 곳”에 거하신다.
3) 영생은 ‘아들이 있는 곳’에 아들과 함께 있어 태초부터 계신 아버지를 아는 것이다(요일 2:13).
4) 우리가 ‘나 있는 곳, 그리스도 안에 있음’은 우리의 신앙 수준과 삶의 경건함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하신 일 때문이다. 전적인 은혜로 믿는 자는 항상 그리스도 안에 있다.
15. 영생에 무지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헬라 지역의 유대인들을 가르치러 가는가? 이 말이 무슨 말이냐?”라고 서로 말한다.
1)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알아듣지 못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는 체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2) 요한은 성경을 붙들고 사는 유대인들이 자신의 무지와 믿음 없음을 인정하고 아는 체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3) 요한복음은 심판하고 정죄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 믿고 생명을 얻게 하려고 쓴 것이다.
4) 하나님의 경고조차도 심판이 아니라 생명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다.
16.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아는 체’하느라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 가난한 마음을 잃어버리기 쉽다.
1) 감히 누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겠는가? 누가 그 은혜와 사랑을 다 안하고 자랑하겠는가?
2) 티끌과 먼지와 같은 우리를 사랑하사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신 은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게 하신 그 은혜를 찬양한다.
◈ 생명 얻기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은 성경 신학자들이요 실천신학 자들이지만 그리스도에 대하여 무지하고, “나 있는 곳”에 무지하다. 그들의 무지는 공감이 간다. 학식이 있다고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하늘 아버지 안에 있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거나 경험할 수는 없다. 나의 경험이기도 하다. 다만 그들이 아는 체하는 것이 안타깝고, 알지 못하기에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은 어리석다.
성령이 오시어 가르쳐 주셔야 “내가 주 안에 주가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성령님께 가르침을 받는 자는 어린아이처럼 겸손한 자, 아는체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자, 가난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먹는 자다. 학식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다. 유대인들은 학식과 실천은 강하지만 태도가 오만하다.
목사니까 안다고 말하고 싶고, 아는체 하려고 한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처럼 되지 않으려면 내가 무지한 것, 믿음 없음을 인정하고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 알기에 가난한 마음,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 겸손한 마음에서는 멀어진다. 신학박사여도 어린아이에게 겸손히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그 태도가 있는 자에게 하나님은 계시하신다. 그러면 ‘나 있는 곳’에 있음을 알고, 아버지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 아버지와의 사귐에 들어간다.
‘나 있는 곳’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나 있는 곳’에 거할 능력은 없다. 그러나 크신 하나님의 긍휼은 이미 나를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있게 하셨다. 내가 더 잘 믿고, 더 잘 살고, 더 영적이어야 ‘나 있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상태 그대로 예수님이 나를 받아주셨기 때문에, ‘나 있는 곳’에 있는 것이다. 나의 상태가 어떠하던 ‘그리스도 안에 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알지 못할 때에도 그리스도 안에 있다. 다만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알지 못하면, 그리스도 안에 가득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맛보지 못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는 생명과 평강을 누리지 못한다. 그런데 못 누려도 그리스도 안에 있고, 몰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다 이루어 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복음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은혜의 복음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다. 하나님은 나를 그리스도처럼 보시고 사랑하신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놀랍다. 그 은혜로 나의 거주지는 영원히 ‘나 있는 곳, 그리스도 안’이 되었다. 주 달리신 십자가를 통하여 나의 거주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주님의 일하심을 통하여 내가 받는 은혜를 확인한다. 눈을 들어 주를 본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부터 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과 평안을 맛보게 하실 분도 주님이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은혜를 찬양하고, 조금 더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 사귐의 기도
주님, 저의 상태와 삶, 그리고 저의 감정이 아니라, 믿음으로 내가 어디 있는지를 알고 인식하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여전히 죄인이지만 주님이 은혜로 받아들이사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믿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죄인, 그래서 의인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자랑할 것이 없고,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의인인 척, 아는 척, 되는 척하는 페르소나를 벗고, 벌거벗은 자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은혜의 보좌에서 아버지를 보게 하옵소서. 주 달리신 십자가로 인하여 당당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니다. 그 은혜를 힘입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구합니다. 주님의 때를 신뢰하는 마음을 주시고, 주님의 일하심을 보는 눈을 주옵소서. 사람은 감정적인 존재입니다. 믿음으로 주 안에 있음을 알되, 저의 감정도 만져주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사, 영의 생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판단을 중지하고, 영의 생각을 하도록, 영의 인도함을 받게 하여 주십시오. 원형셀로 섬기는 분들, 항존직들이 ‘나 있는 곳’에서 주를 섬기고, 삶의 자리에서 주님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아픈 분들, 자녀로 인해 주님을 바라보는 분들, 가족 구원을 위해 애타는 성도들, 마음이 상하여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이들을 긍휼과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도와주십시오. 하늘과 땅의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