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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묵상 나눔

고전 5:1-13 사랑의 징계, 겸손히 받기

작성자조 용 호|작성시간26.06.08|조회수74 목록 댓글 0

260608(월) ◈ 고전 5:1-13 사랑의 징계, 겸손히 받기

고전 5:1 여러분 가운데 음행이 있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일까지 있다고 하니, 그러한 음행은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고전 5:2 그런데도 여러분은 교만해져 있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그러한 현상을 통탄하고,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여러분 가운데서 제거했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고전 5:3 나로 말하면, 비록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습니다. 마치 여러분과 함께 있듯이,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이미 심판하였습니다.

고전 5:4 [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모여 있을 때에, 나의 영이 우리 주 예수의 권능과 더불어 여러분과 함께 있으니,

고전 5:5 여러분은 그러한 자를 당장 사탄에게 넘겨주어서, 그 육체는 망하게 하고 그의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해야 할 것입니다.

고전 5:6 여러분이 자랑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고전 5:7 여러분은 새 반죽이 되기 위해서,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십시오. 사실 여러분은 누룩이 들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습니다.

고전 5:8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악독이라는 누룩을 넣은 빵으로 절기를 지키지 말고, 성실과 진실을 누룩으로 삼아 누룩 없이 빚은 빵으로 지킵시다.

고전 5:9 내 편지에서, 음행하는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고 여러분에게 썼습니다.

고전 5:10 그 말은, 이 세상에 음행하는 사람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나, 약탈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전혀 사귀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은 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고전 5:11 그러나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사귀지 말라고 쓰는 것은, 신도라 하는 어떤 사람이 음행하는 사람이거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이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거나, 사람을 중상하는 사람이거나, 술 취하는 사람이거나, 약탈하는 사람이면, 그런 사람과는 함께 먹지도 말라는 말입니다.

고전 5: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심판해야 할 사람들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고전 5: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악한 사람을 여러분 가운데서 내쫓으십시오.

 

◈ 은혜가 왕노릇하는 복음

1. 분쟁하고 있는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님이 그들의 지혜와 의와 구원이 되신다.

1)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을 알기로 작정하면 성령께서 예수님이 나의 지혜와 의가 되게 하신다.

2) 분쟁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도 하나님의 성전이며 성령이 운행하고 계신다.

 

2. 고린도 성도들은 “하나님께 받은 것”을 받지 아니한 것처럼 자랑하였다.

1) 사도들은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진영의 끄트머리’에, 온 우주의 ‘구경거리’에 있었다.

2) 바울은 성도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들같이 훈계한다.

3) 바울은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면서, 디모데를 보내 자신의 생활방식을 되새겨 준다.

 

3. 고린도교회는 분파와 분쟁에 이어서 교회 안에서 음행의 문제가 있었다.

1) 자신들은 영적으로 부요하다고 자부하면서 왕 노릇하고 있는 그들은 분파와 함께 “이방인 중에도 없는” 음행이 있었다.

2) 정확히 말하면 바울은 음행한 교인보다는 음행의 문제를 방관한 고린도 성도들의 교만을 책망하고 있다.

고전 5:2 그런데도 여러분은 교만해져 있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그러한 현상을 통탄하고,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여러분 가운데서 제거했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4. 분쟁과 음행이 있는 교회, 그래서는 않되지만 그럴 수 있다.

1) 분쟁과 음행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태로 신앙생활하는 수준이면서도 “서로 더 영적이라는 우월감”으로 교만해져서 분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2) 고린도 교회는 오히려 교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방관하였다.

3) 그들은 이 일을 통한히 여기고(슬퍼하고) 음행을 저지른 사람을 내쫓았어야 했다.

 

5.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 즉 겸손한 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 준다.

1) 바울은 그런 일을 저지른 자를 이미 심판하고, 어떻게 치리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치리는 세상의 법정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범죄에 합당한 처벌을 하는 것이다.

고전 5:5 여러분은 그러한 자를 당장 사탄에게 넘겨주어서, 그 육체는 망하게 하고 그의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해야 할 것입니다.

2) 성도들은 그러한 자를 교회에서 내쫓아 사탄에게 내주어야 한다.

3) 사탄에게 넘겨주는 이유는 그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다.

 

6. 신자가 교회 모임에서 쫓겨나면 자연히 사탄이 권세를 행하는 영역에 속하게 된다.

1) 신자에게 있어 최악의 영적 고통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밖에 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1:5).

2) 하나님은 그가 악인이며,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는 죄인임을 증명시킴으로써 그에게 다시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3) 자신이 죄인임을 통한히 여기는 자만이 회개하여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4) 교회에서 내쫓는 치리, 징계의 목적은 그 사람을 미워하여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함으로 징계하여 그의 영이 주의 날에 구원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5) 그가 회개하고 돌이키면 언제라도 다시 교회 모임 가운데로 들어오게 한다(눅 15장).

 

7. 성도의 어떤 범죄가 너무 지나칠 때 교회에서 내쫓는 이유는 두 가지다.

1) 첫째는 그의 영이 주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며(4-6절), 다른 하나는 교회의 거룩성을 위해서이다(6-8절). 즉 교회에 죄의 누룩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2) 이를 위해 바울은 교회가 주 예수의 이름과 능력으로 치리를 분명히 할 것을 명한다.

3) 고린도 교회나 오늘날 한국교회나 치리가 없다. 치리하는 교회를 사랑이 없는 교회라고 생각하는 오류가 심각하다.

4) 바울은 치리하지 않는 교회를 교만한 교회, 교만한 성도들이라고 책망한다.

5) 바울은 이런 자들을 내쫓아 치리함이 마땅하다고 치리할 것을 명한다.

 

8. 치리를 통하여 범죄한 자의 “누룩이 다른 성도들에게 퍼지는 것을 막으라”고 한다.

고전 5:6 여러분이 자랑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1) 치리하지 않음으로 누룩이 퍼지고 있는 교회로 인해 성도들은 한탄하고 안타까워해야 하는데, 도리어 그들은 치리하지 않는 것을 아량이 넓고 사랑이 많은 교회라고 자랑하였다.

2) 바울은 묻는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런 방치 상태를 자랑하는 것은 좋지 않다.

 

9. 교회의 신분은 새 반죽이다. 즉 하나님의 성전이며,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이다.

1) 그러므로 묵은 누룩(악)을 제거하는 것이 마땅하다.

2) 왜냐하면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기 때문이다.

3) 바울은 구약의 유월절을 통해 신약시대의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가 되라고 한다.

- 구약의 유월절에는 누룩 없는 무교병을 7일간 먹는 무교절을 지켰다.

4) 신약시대의 유월절은 의식이 아니라 날마다 영적 누룩을 멀리하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양식으로 먹는 생명의 삶을 말한다.

 

10. 9-13절은 고린도전서 이전에 쓴 편지를 잘못 이해한 점을 바로 잡는다.

1) 분실된 편지로 알려진 이전의 편지에서 바울은 음행하는 자와 사귀지 말라고 하였다.

2) 이것은 교회 안에서 음행한 자와 사귀지 말라는 말인데, 고린도 교인들은 세상의 음행한 자와 사귀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3) 만약 세상의 음행한 자나 탐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나 우상 숭배자와 사귀지 않게 되면 아예 세상으로 나가지 말고 은둔생활을 해야 한다.

4) 바울의 말은 그것이 아니고 교회 안에서 음행한 자와 사귀지 말라는 뜻이다. 음행한 자들을 합리화시켜 주지 말라는 것이다. 누룩이 퍼지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었다.

 

11.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의 심판주는 하나님이시다(12절).

1) 하지만 교회 안에서 범죄한 자는 교회가 치리하고 심판할 것이다(3절).

2) 이것은 범죄자 자신의 “영”이 구원받게 하려 함이고, 교회 안에 누룩이 퍼지는 것을 막아,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려 함이다.

 

12. 지금의 한국 교회는 교회 안의 치리 즉 처벌이 없는 시대이다.

1) 성경과 교회 법으로 교회 안에 치리가 있는 것은 교회에 악의 누룩이 퍼지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범죄자의 영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2) 그러나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치리의 말씀이 거북하다. 어떻게 죄를 지었다고 내쫓고 사귀지도 말라는 것인가? 야박해 보이고 매몰차 보인다.

- 사귀지 말라는 것은 상종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공적으로 인정해 주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과 세리와 함께 식사를 했다.

3) 이는 우리의 판단기준이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은 말씀이 아니라, 세상의 판단을 따르기 때문이다.

 

13. 치리가 무정하고 매정한 교회처럼 여겨지게 한 현시대에, 교회의 순전함을 지키기는 어렵다.

1) 물론 치리를 하면서 범죄자를 멸시하고 미워하여 행하는 것도 사랑과 긍휼의 치리가 아닌 우월감으로 심판하는 오만한 자리에 앉는 것이다.

2) 치리는 하나님의 징계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신다.

 

14. 성경에는 하나님의 치리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1) 즉 이스라엘의 악이 도에 지나쳐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하실 때에, 하나님도 바벨론에 함께 가셨고, 그들을 긍휼로 돌보아 주셨고, 결국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2)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사랑의 치리를 선포하고, 치리 받아 포로로 잡혀가는 백성들을 보며 울면서, 하나님의 인자와 신실함이 아침마다 새롭다고 하였다.

3) 매일 눈물을 흘리면서도 예레미야는 이 징계가 하나님의 인자와 신실하심임을 알았다.

 

◈ 생명 얻기

고린도 교회는 오늘날의 교회와 너무 닮아서 마음이 아프고 찔린다. 치리....

치리는 해야하지만 동시에 치리를 할만한 영성과 인격적 성숙이 있는지가 고민이다. 사랑 없는 치리는 매몰찬 것이 맞다. 범죄한 자, 공동체의 누룩을 사랑으로 징계할 목회자와 장로는 흔치가 않다. 또한 사랑으로 징계한다고 해도 치리를 받아들이는 성도가 얼마나 될까? 오늘날의 성도들은 교회에서 사랑은 원하지만, 거룩성과 치리는 원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다른 교회로 옮길 것이다.

 

치리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징계가 얼마나 어려운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인지를 보게 된다. 사랑으로 치리하는 것은 아픈 일이고 슬픈 일이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신다고 할 때, 징계받는 나만 생각했지,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아픔을 생각하지 않았다. 치리 받는 범죄자는 대부분 사랑으로 치리하는 자의 아픔과 어려움에 관심이 없으니 말이다. 교회의 치리가 현실화 되지 못한다면, 최소한 하나님의 치리는 겸손히 받고,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이 인자와 신실함으로 징계하는 것이라면 내 영을 구원하고, 다시 의를 기초로 세우기 위한 징계이니 눈물을 흘리나 감사한 일이다.

 

무엇보다 고린도 교회의 ‘교만’이 뼈아프다. 분쟁하면 않되는데 분쟁하는 현실은 있고, 음행하면 않되는데 음행하는 현실은 있다. 그러면 통탄히 여겨야 하는데 도리어 교만하다고 한다. 나의 상태이고 한국교회의 상태이다. 이 모양 이꼴일 수는 있다. 사람은 얼마나 연약하고 악한가? 그러나 고린도 교회와 같은 한국교회는 고린도 교회처럼 동일하게 교만하다. 분파가 많고, 서로 더 영적이라고 자랑하며, 교만하다. 그리고 우리가 교만한지를 모른다. 개인적으로도 나의 상태를 모르고, 지역교회로도 자신의 상태를 모르고, 한국교회적으로도 자신의 상태를 모른다.

 

그래서 긍휼을 구한다. 적은 누룩이 퍼지만 퍼지고 있음을 알고 통한히 여기며 겸손하기를 기도한다. 예레미야처럼 징계를 받아들이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와 신실하심을 바라보기 원한다. 예레미야의 눈물은 심판받는 백성을 위함도 있지만,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위한 눈물이기도 한 것 같다. 나를 징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는 자녀들을 징계하셔야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을 감사드린다. 징계는 고단하나 주의 은혜는 크다.

 

◈ 교제의 기도

주님, 징계를 받는 저의 어려움만 생각했지, 징계하시는 주님의 힘겨움을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랑으로 징계하는 것도 알고, 사랑으로 징계받는 것도 알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징계를 사랑으로 받아들임으로, 치리가 있는 교회가 되기에 이르게 하여 주십시오. 무엇보다 분쟁과 음행, 치리를 하지 못하는 연약함을 인정하고 통한히 여기고 겸손하게 하여 주십시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 그가 나보다 옳다는 마음을 주십시오. 옳고 그름보다 영의 생각인 생명과 평안으로 제 생각을 가득 채워 주십시오. 머리 되신 주님께서 이 교회를 주관하시고 머리에 의해 컨트롤 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에도 누룩은 제거되고,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서 주님과 더불어 교제하게 하여 주십시오. 힘으로 능으로 할 수 없으나 성령으로 주 얼굴 향하여 나아갑니다. 받아주시고, 주 품 안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저의 지혜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출생부터 오늘까지 기르시는 은혜를 감사합니다. 박힌못, 유누라 선교사님과 동행하여 주시고, 하늘 성희의 찬양예배에도 은혜로 임하여 주십시오. 종일토록 주를 묵상하게 하여 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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