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10(수) ◈ 고전 6:12-20 몸은 주를 위하여, 주는 몸을 위하여
고전 6:12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에도 제재를 받지 않겠습니다.
고전 6:13 "음식은 배를 위한 것이고, 배는 음식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몸은 음행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주님은 몸을 위하여 계십니다.
고전 6:14 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셨으니, 그의 권능으로 우리도 살리실 것입니다.
고전 6:15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고전 6:16 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고전 6:17 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
고전 6:18 음행을 피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자기 몸 밖에 있는 것이지만, 음행을 하는 자는 자기 몸에다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고전 6:19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고전 6:20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 은혜가 왕노릇하는 복음
1. 분쟁하고 있는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님이 그들의 지혜와 의와 구원이 되신다. 또한 이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성령님이 거하신다.
1) 십자가만을 알기로 작정하고 성령의 도움을 구할 때 예수님이 그들의 지혜가 되어 교회와 개인적인 문제들을 하나님의 지혜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
2. 성도들은 분쟁하면서 서로 우월감을 느끼는 가운데 음행의 문제를 통한히 여기지 않고, 치리하지 않아 교회에 죄의 누룩이 퍼지고 있었다.
1) 성도간의 소송을 교회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여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피차 고소했다.
2) 서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부터가 벌써 실패를 뜻한다. 차라리 불의를 당해 주고 속아 주지 못하느냐고 반문한다.
3) 바울은 심각하게 경고한 후에 그들이 성령 안에서 완전히 씻겨졌고, 완전히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은혜의 복음을 선포해 준다.
3. 바울은 복음이 준 자유는 방종을 위한 것이 아님을 가르친다.
고전 6:12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에도 제재를 받지 않겠습니다.
1) 당시 헬라세계에서는 몸을 더러운 것으로 간주하였고 어떤 영적 지식에 도달하면 부정한 물질세계에서 해방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몸을 방탕하게 사용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2) 이로 인해 교회에는 금욕주의와 방종주의가 있었다.
3) 바울은 모든 것이 허용될지라도 ‘다 유익한 것(공동체를 함께 세우고 살리는 것)’이 아니며 내게 모든 자유가 있을지라도 정욕과 죄의 권세 아래에 종노릇하지는 않음을 분명히 한다.
4) 복음의 자유는 죄에게 종노릇하며 공동체를 상하게 하라고 주어진 은혜가 아니다.
4. “몸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다”는 말은 고린도인들이 성적 충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했던 말이다.
1) 구약의 음식 규례가 그리스도에 의해 폐기되었듯이(마 15:17) 몸에 대한 제한도 해제되었다고 주장했다. 배고프면 밥을 먹듯 성적 욕구가 생기면 창녀의 집(음행)으로 가는 것은 생리적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2) 바울은 ‘몸’은 결코 ‘음란’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고, ‘주님’을 위하여 있다고 한다.
고전 6:13 "음식은 배를 위한 것이고, 배는 음식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몸은 음행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주님은 몸을 위하여 계십니다.
5. 우리의 몸은 주님을 위해 있고, 주님은 몸을 위하여 계신다.
1)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은 우리로 하여금 나음을 입게 하려 함이다. 우리의 몸을 위하여 채찍에 맞으신 것이다.
2) 주님은 우리의 ‘몸’을 소유하시고 돌보시다가, 부활의 몸으로 영화롭게 하신다.
3) 포도나무 가지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와 지혜를 공급받듯이, 우리의 이 몸도 그리스도라는 포도나무에 접붙여진 거룩한 지체라는 것이다.
4) 주님이 우리의 몸을 책임지시고(돌보시고) 우리는 몸으로 주님의 통치를 드러내는(순종) 상호 귀속의 관계다.
6. 주님이 우리의 영과 혼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위하여 계신다.
1)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라는 고백은 나의 영에 거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다.
2) 예수님이 나의 지혜라는 고백은 예수님의 지혜가 나의 혼에 나타난다는 고백이다.
3) 예수님이 몸을 위하여 계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몸의 주인이며, 몸을 돌보신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몸을 부활의 몸이 되게 하실 것이다.
7. 바울은 성도의 “몸”을 콕 집어서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선포한다.
고전 6:15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 머리는 지체를 위하고 지체는 몸을 위한다.
- 머리는 손이 다치면 치유하고, 손이 기능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공급함으로 손을 위한다. 손은 머리가 다치려고 하면 손으로 막고, 머리에 두통이 생기면 주물러 주며 머리를 위한다.
2) 그리스도와 몸은 막연하게 서로 위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와 지체처럼 구체적으로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돌보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8. 16절과 17절은 대조를 이룬다.
고전 6:16 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고전 6:17 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
1) 창녀와 합하는 자와 주님과 합하는 자가 있다.
- 합하다: 본드로 끈적하게 달라붙어 뗄 수 없는 결합을 뜻한다.
2) 성도가 음행의 중독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주님과 성령으로 본드처럼 들러붙은 한 영’이 되어야 한다.
3) 더 강력한 주님과의 영적 연합으로 육체의 부정한 결합을 밀어내어야 한다.
9. 주님과 내가 ‘한 영’이 되었다는 것은, 내 존재의 지휘본부(영혼)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으면 몸도 주님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성도가 음행을 피하고 영에게 순종할 수 있는 힘은 에고의 결단이 아니라, "나는 주님과 한 영으로 묶인 포도나무의 가지다! 주님의 거룩한 영이 지금 내 안에 있다!"라는 믿음에서 나온다.
2) 또한 우리의 몸이 주님께 순종할 때, 우리의 영이 주님과의 연합된 풍성함을 누린다.
3) 즉 영의 연합이 있기에 몸의 순종이 가능하고, 몸의 순종을 통해 영의 연합이 풍성하게 된다.
10. 음행을 피하라고 한 바울은 다른 일반적인 죄들과 달리, 음행은 하나님의 성령과 ‘한 영’으로 묶인 거룩한 지체인 ‘자기 몸 내부’를 더럽히는 죄임을 알려준다.
1) 그러면서 성도의 몸은 성전이고, 몸 내부에는 성령님이 계심을 강조한다.
고전 6:19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2) 몸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에, 자기 몸에다가 죄를 짓는 음행을 피하라고 한 것이다. 음행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에다 죄를 짓는 죄이기 때문이다.
11. 3장 16절의 공동체적 성전도 중요하지만 개인 성전도 중요하다.
1) 바울은 우리의 영이나 혼이 아니라, 몸을 성령의 성전이라고 한다.
2) 물론 세밀하게 말하면 우리의 영이 성령과 한 영이 되었다. 그러나 영이 거하는 곳이 몸이기에, 성령이 거하는 곳, 성령의 성전은 몸이다.
3) 그리고 성령은 우리의 종이 아니라, 우리가 모셔야 할 성령 하나님이시다.
12.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님을 말한다.
고전 6:20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1) 교회의 주인도 주님이시고, 내 몸과 삶의 주인도 주님이시다.
2) 우리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온전히 인정하고 경배할 때, 참된 안식과 자유가 있다.
3)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인 이유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값을 치르고 우리를 샀기 때문이다.
4) 우리가 죄인 되어 사단의 노예였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들이셨다. 하나님이 사들인 것에는 우리의 영혼만이 아니라 몸도 포함된다.
5) 바울은 결론적으로, 이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임재와 아름다움인 ‘영광을 드러내라’고 하면서 몸에 대한 복음적인 교훈을 마친다.
13. 바울은 성도의 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렇게 말했다.
1) 몸은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주님은 몸을 위하여 계신다(13절).
2) 성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다(15절).
3) 성도의 몸은 하나님이 주신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다(19절).
4)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피 값을 대가로 지불하고 사신 몸이기에 하나님의 것이다(19절).
5) 삼위하나님이 몸을 위하시며, 몸을 통해 일하신다. 그러므로 그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20절).
◈ 나의 묵상
예수님이 나의 의가 되심으로 인하여 죄인된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나에게 낙심하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그리스도처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며, 나로 인하여 즐거이 노래를 부르신다. 이 진리와 사랑을 실제로 알고, 사랑받는 자아상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다. 어려서부터 무의식에 쌓인 외로움, 인정받지 못함이라는 자아상이 쉽게 물러나지를 않는다. 그러나 너무나 분명한 십자가의 사랑, 십자가 복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알고, 감사하고, 찬양한다.
그에 비하면 예수님이 내 안에서 나의 지혜가 되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되심을 아는 것은 모호하다. 복음을 통하여 영(생명)이 드러남으로 인하여 영의 생각을 하는 것을 통하여 예수님이 나의 지혜가 됨이 드러난다. 그래도 현실의 문제에서 예수님이 나의 지혜됨이 드러나는 데는 성령님의 전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십자가와 그리스도만 알기로 작정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 나에게 평안을 주셨고, 또한 성령으로 평안을 주어, 예수님의 지혜가 드러나도록 도우신다.
예수님의 지체가 되는 몸은 가장 모른다. 물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주셨고, 성령님이 병든 몸을 치유하시고, 몸을 통해 운행하신다는 것은 안다. 몸과 성령님과의 부분적인 관계는 알지만, 영이신 하나님과 물질로 이루어진 몸 전체와의 관계는 모르겠다. 몸은 영과 속성이 너무 다르다. 더구나 하나님의 영과는 너무 이질적이다. 자고 일어나는 것, 먹고 마시는 것, 피곤함과 연약함에 다가 질병이 더해지면서 이 몸을 하나님의 지체와 성령의 성전으로 보는 시각은 더 없어진 것 같다. 몸을 일으키고, 몸으로 해야 할 일을 하고, 몸을 통해 그리스도의 일을 하지만, “주님은 몸을 위하여 계시다”는 말씀을 알지 못한다. 잘 하지 못하는 PT를 몸으로 받으면서,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으면서 몸을 위하여 계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다.
그래서 더 알고 싶고, 성령님의 가르침과 도움을 구한다. 일반은총으로 창조한 몸의 신비는 놀랍다. 그러나 주님의 피값으로 나를 사셨기 때문에 특별은총으로 나의 몸을 위하시는 그 은총과 사랑은 특별하다. 몸의 주인이신 주님, 몸을 위하시는 주님, 그리스도의 지체된 몸, 성령의 성전인 몸을 알아, 몸을 통하여 주님과 연합하는 영광에 이르기를 원한다. 그리고 주님의 돌보심으로 인하여 몸의 약함과 몸으로 인한 마음의 약함이 생명으로 가득 차기를 원한다.
몸이 주를 위하여 있다는 말씀을 잊고 살았다. 주님은 신실하게 몸을 위하고 계시는데, 나는 몸으로 주를 위하지 못했다. 주님이 몸을 위하신다는 말씀을 믿음으로 자고, 일어나며, 커피관장을 하고, 먹고 마시며, 헬스를 하고 치료를 받기 원한다. 그 때마다 성령께서 몸을 위하시는 주님을 보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몸을 가르쳐 주시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이 나의 몸을 가치있게 보신다는 것이 감사하다. 약하고 병들어도 나의 몸을 존귀하게 여기시고, 나의 몸을 위하시고, 성령의 성전으로 지켜 주신다.
오늘 말씀도 음행하는 자에게 하신 말씀이다. 음행을 하니까 그리스도의 지체가 아니고 성령의 성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그리스도의 지체이고 성령의 성전이니 음행을 피하라고 하신다. 주님은 여전히 음행하는 몸을 위하고 있으니 그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고 하신다. 책망과 심판이 있으나, 언제나 방점과 결론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돌보심이다. 그러기에 감사와 사랑을 드린다. 그 인자와 신실하심은 영원하다. 이 몸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찬양한다. 이 몸을 지체로 두고 계신 그리스도를 찬양한다. 묵상 글을 쓰는 이 몸을 위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 몸을 통하여 영광 받으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찬양한다.
◈ 교제의 기도
주님을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저를 알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은혜를 온전히 알지 못하여, 영은 메마르고, 마음은 불안하고, 몸은 병들었습니다. 창조의 하나님과 구속의 하나님을 알아 저의 영이 깨어 주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십자가 사랑과 성령이 주시는 평안을 온전히 누리게 하시고, 주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게 하신 몸,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몸, 저의 몸을 위하시는 주님을 믿고 감사하며, 강건함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자연치유와 병원 치료 그리고 성령님의 치유로 이 몸을 강건하게 하시고, 이 몸이 주를 위하도록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시오. 몸을 성전 삼으신 성령님, 이 성전이 성령의 전이 되도록 생명과 평안이 가득하게 하여 주십시오. 모든 혈관과 신경과 근육과 오장육부가 창조의 질서대로 회복되어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이 피값으로 사셨으니, 이 몸을 온전하게 하여 주십시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유하사 강건하게 하시고, 영으로부터 피부에 이르기까지 세포 하나 하나가 주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이 몸으로 묵상도 하고, 복음도 전하고, 일터에서 주와 동행하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몸이 연약하여 교제하고 섬기고 일하는 것이 어려운 성도들을 치유하시고, 그 몸을 위하여 주십시오. 몸의 문제로 마음이 힘든 이들도 많습니다. 그 몸을 치유하여 평안을 얻게 하여 주십시오. 몸으로 곤하지 않고, 도리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몸으로 일터와 가정과 학교에 거합니다. 삼위 하나님, 그 몸으로 주의 영광을 나타내 주십시오. 사역자들과 원형셀, 항존직, 섬김이들의 몸과 마음을 강건하게 하여 주십시오. 교회 리모델링 공사가 평안과 지혜로 순적히 이루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