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13(토) ◈ 고전 8:1-13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운다.
고전 8:1 우상에게 바친 고기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지식이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고전 8: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마땅히 알아야 할 방식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고전 8:3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알아주십니다.
고전 8:4 그런데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일을 두고 말하면, 우리가 알기로는, 세상에 우상이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신이 없습니다.
고전 8:5 이른바 신이라는 것들이 하늘에든 땅에든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고전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만물은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한 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습니다.
고전 8:7 그러나 누구에게나 다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 우상을 섬기던 관습에 젖어 있어서, 그들이 먹는 고기가 우상의 것인 줄로 여기면서 먹습니다. 그들의 양심이 약하므로 더럽혀지는 것입니다.
고전 8:8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는 것은 음식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손해볼 것도 없고, 먹는다고 해서 이로울 것도 없습니다.
고전 8:9 그러나 여러분에게 있는 이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고전 8:10 지식이 있는 당신이 우상의 신당에 앉아서 먹고 있는 것을 어떤 사람이 보면, 그가 약한 사람일지라도, 그 양심에 용기가 생겨서,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고전 8:11 그러면 그 약한 사람은 당신의 지식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약한 신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고전 8:12 이렇게 여러분이 형제자매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고전 8:13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그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
◈ 은혜가 왕노릇하는 복음
1. 고린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님이 그들의 지혜와 의와 구원이 되신다.
1) 십자가만을 알기로 작정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로 성도들의 문제를 다룬다.
2) 우리는 주님과 한 영이며, 예수님은 우리의 지혜가 되시고, 주님은 우리의 몸을 위하신다.
3) 각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다르다. 각각 부르심을 받은 처지대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2. 바울은 성도들의 몸이 고달프지 않고, 염려 없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권면한다.
1) 무엇보다 성도들이 품위 있게 살면서, 한마음으로 주님만을 섬기는 선택을 하라고 한다.
2) 바울은 성도들이 더 행복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견을 제시한다.
3. 8장은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에 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1) 교회 안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기에 8장에 이어 10장에서 대답한다.
2) 고대도시에서는 팔려고 내놓은 고기 대부분이 이방 종교의식을 거친 것이었다.
고전 8:1 우상에게 바친 고기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지식이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3)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말씀은 이 문제를 푸는 열쇠다.
4) '사랑 없는 지식'은 내 우월감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을 판단함으로 교만하게 된다.
5) 복음에 대한 지식파 성도들은 연약한 자들의 무지를 무시하고 깎아내렸다.
4. 지식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게 하며, 어떻게 행하여야 할 줄을 알게 함으로 필요하다.
1) 그러나 죄는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나무 열매”를 먹음으로 시작되었고 그 지식은 “하나님 노릇”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 지식은 유용하지만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고 우월감을 가지게 함으로 교만하게 한다.
5.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래서 사랑은 덕을 세운다.
1) 덕을 세우다(오이코도메오): 집을 세운다는 뜻으로 ‘교회를 세운다’의 은유적 표현이다.
2) 영적인 지식으로 교만해지면 교회를 무너뜨리고, 사랑으로 행하면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간다.
3) 옳고 그름에 대한 지식, 믿음의 행동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 할례나 무할례는 하나님과 관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는 쓸모가 없다.
4)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은혜의 복음에서 나오는 생각과 행동만이 중요하다.
6. 바울은 지식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사랑으로 사용되는 지식이어야 한다.
고전 8: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마땅히 알아야 할 방식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1) 사랑 없는 지식은 아직도 마땅히 알아야 할 방식대로 알지 못하는 일종의 무지다.
7. 바울은 먼저 바른 지식에 관하여 다시 한번 정리해 준다.
고전 8:4 그런데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일을 두고 말하면, 우리가 알기로는, 세상에 우상이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신이 없습니다.
고전 8:5 이른바 신이라는 것들이 하늘에든 땅에든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고전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만물은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한 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습니다.
8. 성도 중에는 우상의 제물에 대한 이런 지식이 없는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있었다.
고전 8:7 그러나 누구에게나 다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 우상을 섬기던 관습에 젖어 있어서, 그들이 먹는 고기가 우상의 것인 줄로 여기면서 먹습니다. 그들의 양심이 약하므로 더럽혀지는 것입니다.
1) 어떤 성도들은 ‘지금까지도 우상을 숭배하던 과거의 오랜 습관과 의식’에 묶여 있었다.
2) 복음적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고기를 먹는 성도들은 ‘그들의 연약한 양심이 가책을 받아 오염되고 더러워지게(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짓밟힌다)’ 되었다.
9. 복음의 능력을 알면, 음식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안다.
1) 그러나 성도들은 서로 지체이며 서로의 짐을 져야 하기에, 이 자유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 "내 지식이 맞는데 왜 내가 저 믿음 없는 성도 때문에 고기를 못 먹어야 하느냐"며 형제가 시험에 들든 말든 자신의 권리를 관철시키는 자들이 있었다.
고전 8:10 지식이 있는 당신이 우상의 신당에 앉아서 먹고 있는 것을 어떤 사람이 보면, 그가 약한 사람일지라도, 그 양심에 용기가 생겨서,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고전 8:11 그러면 그 약한 사람은 당신의 지식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약한 신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10. 만일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지식이 있는 자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보게 되면, 약한 자가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면서 고기를 먹으면, 양심이 약한 형제는 영적으로 망하게 될 것이다(11절).
1) 그 잘난 지식 때문에 믿음이 연약한 형제가 영적으로 실족하여 멸망의 길로 걸어가며 영혼이 망가진다고 경고한다.
2)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술이 더 이해하기 쉽다. 복음의 지식이 확고하면 술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이 좋은 성도가 술을 즐기는 것을 보고, 믿음이 약한 성도가 술을 마시다가 중독되거나 나쁜 습관이 형성되면 영적으로 실족할 수 있다.
11. 바울은 교회의 교우들을 ‘그리스도께서 피 값을 지불하고 살려낸 보배로운 형제’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1) 복음의 눈으로 형제를 바라보면 지식으로 판단하지 않고, 사랑으로 그 형제에게 유익을 주는 마음이 생긴다.
12. 형제자매들을 시험에 들게 하고, 그들의 믿음을 약화시키고, 그들을 실족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심각한 일이다.
고전 8:12 이렇게 여러분이 형제자매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1)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것이 죄다(롬 14:23). 그런데 연약한 자들이 믿음으로 행하지 않도록 동기 부여를 했으니, 형제에게 죄를 짓는 것이고, 그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다.
2) 바울이 성도들을 박해하고 다닐 때, 주님은 바울에게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셨다.
13. 성도들을 박해하는 것은 주님을 박해하는 것이고, 형제에게 죄를 짓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다.
1) 왜냐하면 주님과 성도는 한 영이다. 주님은 우리 안에, 우리는 주 안에 있다.
2) 성도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였다.
3) 반대로 성도를 함부로 대하면 주님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고, 성도를 무시하면 주님을 무시하는 것이다.
14. 바울은 우상 제물로 인해 형제가 실족하게 되면, 결코 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13절).
1) 즉 바울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내 형제를 결코 실족하지 않게 지켜낼 것이라고 한다.
2) 육체에 속한 성도들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지식을 절제하며 사랑으로 행하여 덕을 세우겠다고 확정한다.
3) 바울은 영적 어린아이들을 판단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사랑으로 품는다.
-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위해서도 죽으셨고 그들은 ‘형제’이기 때문이다.
15. 내가 알게 된 지식, 진리는 교회를 세우는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
1) 지식도 은사도 “사랑”으로 나타나지 아니하면 교회에 해가 되며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나타내야 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 생명 얻기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 참으로 뼈 때리는 말이고, 나를 찌르는 말씀이다. 나는 옳고 그름이 너무 분명하고 판단이 빠른 단점이 있다. 어떤 것을 보면 즉각 판단이 되고, 옳음을 추구한다. 생명과 사망으로 보아야 하는데 옳고 틀림으로 본다. 사랑으로 행하여야 하는데 지식이 앞선다. 그래도 대학 때는 이렇게 판단과 옳고 그름이 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신학을 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교회와 역사와 문화를 알아갈수록 즉 지식이 많아질수록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교만이 강해졌다.
성경을 알면 알수록 사랑이 많아진다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교만해졌다. 나만이 아니다. 많은 목회자와 선교사, 장로들이 교만하다. 개혁주의 신학은 장점이 많은데, 안타깝게도 개혁주의를 추구하는 많은 목회자가 교만하다. 어떤 때는 더 알아야 바른 복음, 바른 목회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어떤 때는 잘 알지 못했던 청년 때와 전도사 때가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잘 알지 못했지만 순수했고, 비교하지 않았고, 주님이 무엇을 기뻐하실까만을 단순히 생각했다. 영적으로도 놀라운 일들을 더 많이 경험했다.
바울이 지식이 없는 것이 좋다고 하는 건 아님을 안다. 바울의 지식은 대단하다. 그러나 그 지식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가 지혜가 되어 나타나고 있다. 바울은 지식은 있는 것이 좋고, 더 가지면 더 좋지만, 사랑을 통해 표현되고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이 많을수록 겸손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연약함이 가장 좋은 약이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연약하게 하신 것이 은혜다. 광야를 통한 약함을 통하여 교만이 정점을 찍고 꺾인다. 더 많이 알지만, 청년 때처럼 사역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에서 다시 아마추어로 가려고 한다. 잘하는 것보다는 감사로 하는 것, 무조건 해내는 것 보다는 기쁨으로 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해도 마음이 무겁지 않고, 주님 손에 맡기기를 원한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는 가요가 있다. 지식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익어가길 기도한다. 선악 지식보다 생명과 사랑에 마음이 묶이기를 기도한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주신 분량만큼만 따라가길 원한다. 오만한 자리에서 판단했던 모든 일들을 회개한다. 그 판단으로 상처를 준 것을 회개한다. 판단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인정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십자가에서 확정된 사랑이 내 안에 있다. 주님은 항상 나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 판단보다 훨씬 큰 사랑으로 나를 품고 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고 기뻐하듯이, 나를 사랑하고 기뻐하며, 믿음이 약한 형제들, 지식이 없는 자매를 사랑으로 보길 원한다.
십자가 앞에서 옳고 그름은 설 때가 없다. 십자가에서 내 이름을 바꾸신 주님을 찬양한다. 나를 판단하심이 마땅함에도 나를 독생자, 그리스도처럼 대하시고 사랑하시는 그 은혜를 찬양한다. 주님이 보는 눈으로 형제와 자매를 보길 원한다. 내 안에서 그렇게 행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성도들로 교회를 세워가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 교제의 기도
주님, 아는 것으로 인한 교만과 판단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불일듯이 일어나는 판단과 정죄, 더 나아가 분노가 많았습니다. 지식이 사랑으로 표현되도록 성령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비판적 사고를 넘지 않도록, 비판과 판단이 되지 않도록, 분노와 미움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지식이 없는 사람을 답답하게 여긴 것을 용서하여 주시고, 제 마음에 화평과 평안과 사랑이 가득하게 하여 주십시오. 한 개인이던, 교회던, 단체던 교만함으로 판단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을 주시고, 바울처럼 사랑 안에서, 은혜의 복음으로, 겸손하게 훈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옳음을 주장하는 저의 에고를 불쌍히 여기시고 치유하시고 겸손하게 하여 주십시오. 옳음을 주장함으로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시고 싸매어 주십시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도 어린아이처럼 순전하도록, 겸손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마추어처럼 즐거움으로 사역하도록, 순전함으로 말씀을 가르치도록, 주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하는 믿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리모델링 공사와 헌금을 순적하게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과 마음을 주님 안에서 돌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말에 성도들의 가정과 마음을 붙드시고, 주 안에서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주일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유누라 선교사의 안식년을 축복합니다. 선교 보고와 주일 말씀에 함께하여 주십시오. 유누라 선교사를 사랑으로 동역하고, 더 중보하고, 더 후원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함으로 그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