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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묵상 나눔

고전 9:1-23 권리포기, 겸손만큼 상을 받는다.

작성자조 용 호|작성시간26.06.13|조회수55 목록 댓글 0

260614(주일) ◈ 고전 9:1-23 권리포기, 겸손만큼 상을 받는다.

고전 9:1 내가 자유인이 아닙니까?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뵙지 못하였습니까?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내가 일해서 얻은 열매가 아닙니까?

고전 9: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 몰라도, 여러분에게는 사도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나의 사도직을 보증하는 표입니다.

고전 9:3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변합니다.

고전 9:4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습니까?

고전 9:5 우리에게는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동생들이나 게바처럼, 믿는 자매인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고전 9:6 나와 바나바에게만은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고전 9:7 자기 비용으로 군에 복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따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양 떼를 치고 그 젖을 짜 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고전 9:8 내가 사람의 관례에만 의거하여 이런 말을 하는 줄 아십니까? 율법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고전 9:9 모세의 율법에 기록하기를 "타작 일을 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아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를 걱정하신 것입니까?

고전 9:10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를 위하여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밭을 가는 사람은 마땅히 희망을 가지고서 밭을 갈고, 타작을 하는 사람은 한 몫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 일을 합니다.

고전 9:11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것으로 씨를 뿌렸으면,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으로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

고전 9:12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다면, 하물며 우리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런 권리를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모든 것을 참습니다.

고전 9:13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고, 제단을 맡아보는 사람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고전 9:14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 살아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고전 9:15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행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나에게 그렇게 하여 달라고 이 말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아무도 나의 이 자랑거리를 헛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고전 9:17 내가 자진해서 이 일을 하면 삯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마지못해서 하면, 직무를 따라 한 것입니다.

고전 9:18 그리하면 내가 받을 삯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입니다.

고전 9:19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고전 9:20 유대 사람들에게는,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고전 9:21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고전 9:22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고전 9: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 은혜가 왕노릇하는 복음

1. 십자가만을 알기로 작정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로 교회와 성도들의 문제들을 다룬다.

1) 우리는 주님과 한 영이며, 예수님은 우리의 지혜가 되시고, 주님은 우리의 몸을 위하신다.

2) 각 사람은 비교하지 않고 부르심을 받은 처지대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3) 바울은 성도들이 염려 없이 한마음으로 주님만을 섬기며 더 행복한 선택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개인적인 권면을 한다.

 

2. 우상에게 바친 고기에 대한 문제를 푸는 열쇠는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것이다.

1) 복음적인 지식은 유익하지만, 사랑으로 사용될 때만 덕이 되고 교회를 세운다.

2) 복음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시험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먹는 것이나 행동을 절제할 필요가 있다.

3) 그들을 실족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심각한 일이다.

 

3. 안타깝게도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고 아비의 사랑으로 그들을 영적으로 낳은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1)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면 바울이 전한 복음과 복음적인 지혜의 권위가 약해진다.

2) 그래서 우상 제물에 대한 가르침을 잠시 중단하고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한다.

고전 9: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 몰라도, 여러분에게는 사도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나의 사도직을 보증하는 표입니다.

3)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이 사도임을 보증하는 표인데, 그 표들이 바울에게 사도가 맞느냐고 의심하는 비극이 일어난다.

4) 예수님도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자기 백성들에게 거절을 당했다.

 

4. 바울은 복음의 권위와 교회의 질서와 평안을 위하여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변한다고 한다.

고전 9:3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변합니다.

1) 비판하는 자들의 비판 근거는 바울이 사도적 권리인 재정 지원을 요청하지 않고 자비량으로 사역하는 이유는 “바울이 진짜 사도가 아니기에, 자격지심이 있어서 돈을 안 받은 것이다”라며 사도권을 흔들며 비판했다.

2) 바울은 이들의 비판에 대해 ‘나에게도 모든 사도적 권리가 있다’는 것을 엄밀하게 논증(1~14절)한 후, 재정 요청을 하지 않은 것은 복음을 위한 ‘자발적 포기’라고 말한다.

 

5. 4-14절은 사도로서 보장된 정당한 권리를 당시 교회의 관례, 사회적 관습, 구약성경, 보편적 종교 관행,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말한다.

고전 9:6 나와 바나바에게만은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고전 9:8 내가 사람의 관례에만 의거하여 이런 말을 하는 줄 아십니까? 율법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1) 바울은 재정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 아님을 확증한다.

고전 9:11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것으로 씨를 뿌렸으면,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으로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

2) 복음을 전하는 자, 영적인 것으로 씨를 뿌린 자가, 물질적인 것을 거두는 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이다.

 

6.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이런 권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고전 9:12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다면, 하물며 우리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런 권리를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모든 것을 참습니다.

1) 교회의 개척자인 바울이 정당한 권리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고단함을 온몸으로 견디며 참아낸 목적은 복음의 전진에 작은 장애물도 만들지 않기 위함이다.

2) 바울은 혹시나 믿음이 약한 자들,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 "바울도 종교 장사를 한다"며 복음을 전하는 순수한 마음을 의심할까 봐서 모든 권리를 쓰지 않았던 것이다.

3) 자신의 정당한 권리보다 복음과 영혼 사랑을 위하여 권리를 포기했는데, 교만한 자들은 이것을 빌미로 바울의 사도권을 비판하였다. 인간의 악과 무지는 이렇게 도를 넘는다.

 

7. 바울은 구약만이 아니라 주님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일로 생활을 하라고 지시하였다고 말한다.

고전 9:14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 살아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1) 바울은 주님이 제정하신 재정원칙까지 포기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였다.

 

8.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왜 이런 권리를 하나도 쓰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재차 밝힌다.

고전 9:15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행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나에게 그렇게 하여 달라고 이 말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아무도 나의 이 자랑거리를 헛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1)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재정지원을 해달라고 할 권리가 있었지만,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이제라도 돈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2) 바울에게는 “복음을 위해 권리를 포기한 것이 자랑”이었다. 이 자랑을 결코 헛되게 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는 복음의 순전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죽는 편을 선택하겠다고 한다.

3) 주님을 위한 헌신을 남에게 자랑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교만이지만, 주를 사랑하고 주를 위해 권리를 포기한 것을 “자기 자신에게 자랑하는 것”은 복음적이며, 복음의 자아상으로 살아가게 하며, 주께 영광이 된다.

6: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4) 복음을 위한 권리포기가 자랑거리인 이유는 복음이 너무나 가치 있고 눈부시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9. 복음을 위한 권리포기는 자랑거리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랑할 것이 아니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1) 복음을 전하여 부흥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복음 전파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다.

2) 어쩔 수 없이(아난케): ‘숙명’이라는 뜻이다. 바울에게 복음 전파는 숙명이다.

 

10. 복음 전파는 청지기적 직무이므로 당연한 것이다.

고전 9:17 내가 자진해서 이 일을 하면 삯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마지못해서 하면, 직무를 따라 한 것입니다.

고전 9:18 그리하면 내가 받을 삯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입니다.

1) 바울이 자기 마음대로 기획하여 복음을 전했다면 상을 받겠지만,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주님이 맡긴 직무에 의해 한 것이므로 복음전파는 상이 될 수 없다.

2) 바울은 당연한 것을 하는 사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상을 받는 사도가 되기를 원하였다.

3) 바울이 받을 상은 바로 “권리포기”다.

4) 그는 ‘값없이’ 즉 재정 지원을 받지 않고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복음과 교회를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울이 주님께 받을 상(삯)이다.

 

11. 바울이 권리를 포기한 이유는 세 가지다.

1) 혹시라도 모를 복음 전파의 장애물을 제거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2)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한 이것에 대해 하나님이 주실 상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3) 마지막으로 한 영혼이라도 더 얻으려고 권리를 사용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

고전 9:19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12. 바울은 사도이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재정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복음으로 인한 완벽한 ‘자유인’이다.

1) 그러나 바울은 모든 사람의 밑바닥 ‘노예’가 되기를 작정하였다.

2) 유일한 동기와 목적은 ‘더 많은 사람을 복음 안으로 데려와 구원하기’ 위해서다.

3) 고린도인들은 내 권리와 지식을 과시하며 남 위에 군림하려 소송하고 싸웠는데 그들의 마음이 노예 상태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나는 오직 그리스도의 소유(3:23)"라는 복음적 자아상으로 자유자였기에, 자신을 낮추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

 

13.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즉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같이 되었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같이 되었고, 율법 없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었고,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다.

고전 9:22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14. 바울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마지막 이유는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고전 9: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1) 그는 구원의 은혜를 구경하는 관객이 아니라, 권리포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위해 함께 뒹구는 ‘복음의 파트너(동참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2) 동참하고자 함이라(싱코이노노스): 코이노니아(친교·연합)의 동사형 명사다.

3) 바울은 권리를 포기함으로 성육신하여 복음이 되신 주님의 동역자가 되고자 했고, 복음을 전하신 주님과의 친교에 동참하고자 했다.

 

15. 복음 전파가 자랑이 되고, 권리포기가 우월감과 자기 의가 된다면 비극이다.

1) 그러나 권리포기를 통해 종이 되는 겸손을 낳고, 주님의 동역자와 교제에 들어간다면, 이보다 더 큰 복, 이보다 더 큰 상은 없다.

2) 바울의 권리포기는 주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한 십자가를 친히 경험하며 살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이 복종한 아들을 높이신 것 같이, 아들은 권리를 포기한 바울에게 주님과 함께하는 상(삯)을 주셨다.

 

16.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믿고 복음으로 사는 “나를 본받으라”고 하였다.

1) 권리포기는 의무는 아니다. 그러나 권리를 포기한다면 고린도 교회의 분쟁과 다툼 등 많은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되고, 하늘의 복이 교회 안에 충만하게 된다.

2) 권리포기 하는 성도를 외면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존중히 여겨 주어야 한다.

 

◈ 생명 얻기

대학생 때 다리놓는 사람들에서 제자학교를 하면서도 제자도를 “권리포기와 대가지불”로 배운 것은 감사한 일이다. 주님이 나를 제자로 불렀음을 받아들인 후, 권리를 포기하고 대가를 지불하고자 하였다. 생활을 위한 사례비를 받을 권리를 포기하고 개척교회 전도사로 갔었고, 신대원을 졸업하면서 전임으로 가지 않고 청년들을 섬기기로 자원하였다. 시간에 매이지 않고 사역을 했고, 집을 항상 오픈하여서 청년들이 와서 밥을 먹고, 때로는 자고, 때로는 같이 살았다. 더 안정된 것과 더 좋은 조건을 선택하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셨던 주님을 찬양한다.

 

그러나 바울처럼 복음의 겸손 가운데 권리를 포기하고 댓가를 지불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죄의 세력에 속고 말았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삶이 변화되고,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고 상 받을 것도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청년부가 활성화되고 삶이 변화 되어져 가는 것을 ‘자랑거리’로 여겼고, 상 받을 일을 한 것처럼 자만해져 갔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 안에서 나에게 복음 전파와 권리포기를 자랑하지 않고, 남에게 자랑하고,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우월감이 생겨났다. 이런 자랑과 우월감이라는 교만을 가장 큰 죄로 여기고, 주의 긍휼을 구해야 했으나, 교만을 작은 일로 여기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교만은 영적인 암으로 생명의 풍성함을 갉아 먹는다.

 

바울 수준의 권리포기를 한 적도 없으면서 권리포기가 겸손이 되어 모든 사람의 종이 되려고 하기 보다는 점점 주관자가 되려고 하였다. 종의 마음으로 리더가 되어야 하는데, 리더 직분을 수행하면서 마음도 리더가 되고 높아져 갔다. 복음 전파는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는 바울의 사명, 소명, 숙명 의식이 놀랍다. “부득불 할 일”을 하고 자랑하고 대접받는 일이 많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건강이 나빠지고 열정이 식어지면서 권리포기라는 모토는 사라지고, 권리를 챙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성경적으로, 주님의 말씀에 부합한 권리이다. 그러나 주님께 받을 상도 없고,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종의 섬김은 아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권리를 포기한다면 내 의와 자기주장만 강해질 뿐이다.

 

부득불 할 일이라도 나 같은 자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시고 세워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 가까이 데리고 갈 수 있음이 은혜이고 복이다. 하나님께 상을 받을 것이 없을지라도 이 은혜의 부르심을 감사한다. 그리고 바울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생명을 드러냄으로 인하여, 다시 권리포기와 대가지불의 길을 즐거이 걷기를 원한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주님의 동역자가 되고, 주님과의 친교자가 되길 원한다. 바울 안에 감추어진 보배를 사모한다. 이 질그릇에 보배를 가졌다. 그 보배의 가치를 온전히 드러내기 위하여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기를 원한다.

 

주님이 나의 영과 마음과 몸을 위하신 그 은혜로 인하여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내 영혼의 주인 되신 주님, 출생부터 오늘까지 기르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사랑으로 권리를 포기하고, 기쁨으로 대가를 지불하게 될 그 날을 소망한다. 주의 뜻대로 구하면 주님이 들으신다. 나의 포도나무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다.

 

◈ 교제의 기도

주님, 권리를 포기하고 대가를 지불했던 많은 사역자들이 겸손이 아니라, 보상과 인정을 원하여 교만하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죄의 세력에 속아 교만의 길을 걸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적인 권리포기는 도리어 겸손하게 되며, 종이 되어 섬기며, 주님의 동역자와 친교자가 된다고 합니다. 복음을 위한 권리포기로 인하여 복음은 힘있게 증거되고, 저는 주님의 동역자가 되는 생명의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성령 하나님 죄의 세력에 속지 않도록, 탐심이라는 우상숭배에 매이지 않도록 생명이 밝히 드러나게 하여 주십시오. 영의 생각을 하지 못하면 대가지불과 권리포기는 자기 의와 자기 주장이 됩니다. 선한 것에 집착하여 우상이 됩니다. 선악지식과 우월감이 되어 판단하는 자가 됩니다. 성령 충만과 십자가의 겸손에 연합되게 하여 주십시오. 권리를 이용할지라도 겸손하게 하시고, 연약함을 인정하게 하시고,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권리를 이용하게 하여 주십시오. 주의 은혜가 왕 노릇하여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 데에까지 이르기를 원합니다. 더 많이 수고하고도 주님의 은혜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도록 은혜로 통치하여 주십시오. 주일예배 가운데 임재하시고, 기름부어 주십시오. 타국에서 수고하고, 타국민과 함께 생활하면서 섬긴 유누라 선교사의 영혼이 바울과 같게 하여 주십시오. 지침과 자기 의가 아니라 복음의 동역자와 교제자가 되어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안식년동안 은혜의 통치로 인도하사 많은 것을 배우고, 새로워져서, 사랑과 감사로 선교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십시오. 박힌못 선교사님과 TNF 사역을 축복합니다. 다음세대가 중동과 열방을 섬기는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모든 성도들이 주 안에서 권리를 포기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감사와 사랑으로 봉사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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