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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묵상 나눔

고전 11:17-34 서로 사랑은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작성자조 용 호|작성시간26.06.18|조회수65 목록 댓글 0

260618(목) ◈ 고전 11:17-34 서로 사랑은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11:17 다음에 지시하려는 일에 대해서는 나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모여서 하는 일이 유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11:18 첫째로, 여러분이 교회에 모일 때에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11:19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서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환히 드러나려면, 여러분 가운데 파당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11:20 그렇지만 여러분이 분열되어 있으니, 여러분이 한 자리에 모여서 먹어도, 그것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11:21 먹을 때에, 사람마다 제가끔 자기 저녁을 먼저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배가 고프고,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합니다.

11:22 여러분에게 먹고 마실 집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 없습니다.

11:23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서

11:24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11:25 식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11:26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11:28 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11:29 몸을 분별함이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11:30 이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는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많고, 죽은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11:31 우리가 스스로 살피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11:32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고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1:33 그러므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리십시오.

11:34 배가 고픈 사람은 집에서 먹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모이는 일로 심판받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 밖에 남은 문제들은 내가 가서 바로잡겠습니다.

 

◈ 은혜가 왕노릇하는 복음

1.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다.

1) 하나님은 연약한 고린도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보시며,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고, 견고하게 하신다.

2) 이 은혜 안에서 성도들의 분쟁, 음행, 먹는 것, 가정, 예배 질서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들을 다룬다.

 

2. 복음적인 판단의 기준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타인의 유익을 추구하여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다.

1) 고린도 교회에서 나타나는 문제의 공통점은 복음적 지식으로 자기의 유익만 구하고 사랑으로 행하지 않음으로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2) 복음을 위한 권리포기가 참된 복음적 자유이며, 그로 인하여 교회가 세워진다.

3)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라. 그리고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3. 바울은 예배시의 성만찬과 결합한 애찬(공동 식사)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다.

1) ‘성찬식의 남용과 사회적 계급에 의한 분열’은 매우 심각하게 다룬다.

2) 고린도 교회의 부자들은 성찬과 결합한 애찬(공동 식사) 모임에 일찍 와서 자기들이 가져온 고급 음식을 배불리 먹고 포도주에 취해 버린 반면,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리다 늦게 도착한 가난한 성도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야 했다.

3) 바울은 이 행위가 그리스도의 피로 산 교회를 파괴하는 심각한 죄악이며(17-22), 이 죄로 인하여 심판이 그들에게 임하고 있다고 엄숙하게 경고한다.

4) 당시의 공동식사는 성만찬과 함께 이루어졌기에 먹는 문제이면서 동시에 예배의 문제다.

 

4. 바울은 “이 일에 대해서는 너희를 칭찬할 수 없다”고 두 번이나 말한다(17, 22절)”

1) 강한 자와 약한 자, 부자와 가난한 자, 유력한 자와 비천한 자가 공존하는 교회에 어느 정도의 갈등은 그럴 수 있다.

2) 그러나 성자 하나님이 성육신하심으로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줌으로 모인 하나님의 가족이 함께 성만찬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 또한 우월감으로 인하여 분열된 마음으로 억지로 한 자리에 모여서 먹어도, 그것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니다.

11:20 그렇지만 여러분이 분열되어 있으니, 여러분이 한 자리에 모여서 먹어도, 그것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5. 가난한 성도들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업신 여긴 것이다.

11:21 먹을 때에, 사람마다 제가끔 자기 저녁을 먼저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배가 고프고,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합니다.

11:22 여러분에게 먹고 마실 집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 없습니다.

1) 너희가 그렇게 먹고 취하고 싶다면, 집에서 먹을 것이지, 굳이 예배당에 와서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 있느냐고 경고한다.

2) 연약한 형제를 사랑으로 대하지 않는 계급주의적 이기심은 감히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짓밟는 짓이며, 빈궁한 형제들의 마음에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안겨주는 죄악이다.

3) 고전 3장 17절에서 바울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 선포했다.

4) 그들은 약한 자를 무시함으로 교회 성전을 파괴하고 있기에 하나님께 자신을 멸하여 달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6. 바울은 주님이 성만찬을 제정하신 이유, 성만찬이 얼마나 영적 생명에 유익한지, 반대로 성찬을 더럽히면 얼마나 영적 생명에 해로운지를 알려준다.

1)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한 주의 만찬의 가르침은 주님께 받은 것이다.

2) 성육신하신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줌으로 새 언약을 맺으시고, 이것을 먹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다.

3) 성만찬은 주님의 몸과 피에 연합되는 영적 예배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주님과의 연합을 감사하며, 주님의 몸인 한 떡에 참여함으로 온 성도가 하나되는 만찬이어야 한다.

4) 모든 성도는 예수님이 피 값으로 산 예수님짜리들이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빈부, 신분, 남녀 차별이 없이 한 몸 안에 있는 지체의 관계여야 한다.

 

7. 성만찬은 복음을 전하는 설교처럼, 복음을 전파하고 그 복음으로 생명을 얻는 설교다.

11:26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1) 빈부 차이를 넘어서 주 안에서 하나 되어 핍절한 자가 하나도 없는 성만찬(공동식사를 포함하는 교제)은 서로 사랑하는 새 계명을 실천하며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다.

2) 사도행전 2장과 4장의 예루살렘 교회처럼 자기의 소유를 내놓으면서 서로 떡을 떼는 사랑의 교제로 인하여 핍절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이 자체가 복음의 선포가 되어 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찬을 받았고 하나님은 구원받는 자들을 날마다 더하여 주었다.

 

8. 사랑의 교제, 빈부 차이를 넘어 하나가 되는 서로 사랑의 실천은 ‘주님의 대속의 죽으심’을, 주님이 재림할 때까지 전하는 영혼 구원의 행위다.

1) 교회 안에서 사랑으로 행하는 것은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

2) 이는 온 세상에 주님의 대속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시각적 설교이자 복음 선포’다.

 

9.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부자들은 교회 안에서조차 약자를 무시함으로 "예수 믿는 것들도 세상과 똑같이 추악하구나"라며 복음의 장애물(9:12)을 놓고 있었다.

1)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가난한 자와 부자, 기질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밥상을 나누는 사랑은 복음을 전하는 삶이며, 교회를 세우는 섬김이다.

 

10. 사랑이 아니라 이기심과 교만으로 성만찬을 먹으면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즉 자기에게 임할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1) 형제를 무시하는 성만찬은 곧 그분의 주인이신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11. 자신이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만찬을 먹는지, 무시하고 먹는지를 살펴야 한다.

11:28 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11:29 몸을 분별함이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1) 자신이 형제를 멸시함으로 교회를 멸시하고 있는지 살핀 다음에 먹고 마셔야 한다.

2) '주의 몸'은 생명을 주는 주님의 몸이면서 동시에 ‘예수님의 피로 묶인 하나의 몸인 교회 공동체(10:17)’를 뜻한다.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이 바로 주님의 몸이다.

3) 그들을 분별하지 못하고 무시하면서 먹고 마시는 성만찬은 도리어 하나님의 무서운 유죄 판결을 마시는 꼴이 된다.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12. 바울은 교회 성전의 파괴 행위(차별과 분열)가 가져온 영적·물리적 비참함을 폭로한다.

11:30 이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는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많고, 죽은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1) 그들이 주의 몸(공동체)을 멸시한 결과, 영육 간에 힘을 잃고 ‘연약해진 자’와 신체적으로 ‘병든 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죽은 자들’도 적지 않다.

2) '사랑의 연합'이 깨지고 이기주의와 차별이 득세하는 교회는 영적 면역력이 붕괴된 '병든 조직'이 된다.

3) 하나님은 자기 성전(3:16)을 보호하시기 위해, 그들의 삶에 질병과 죽음이라는 심판을 통해, 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하신다.

 

13.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형제를 무시함으로 교회 성전을 파괴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피면 심판(판단)을 받지 않을 것이다(31절).

11:31 우리가 스스로 살피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11:32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고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 주님께 매를 맞고 징계를 당하는 진짜 이유는, 심판 날에 세상이 받을 영원한 정죄(유죄판결)의 대열에 휩쓸려 파멸 당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간섭이다.

2)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세우실 것(고전1:8)”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징계를 통해 나타난다.

3) 심판으로 인한 약함과 병듦은 구원의 취소가 아니라, 우리를 영원한 상속자(6:9)로 보존하시기 위해 자식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의 간섭'이다.

 

14. 바울은 서로 배려하고 섬기는 예배와 모임을 가질 것을 권면한다.

11:33 그러므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리십시오.

11:34 배가 고픈 사람은 집에서 먹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모이는 일로 심판받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 밖에 남은 문제들은 내가 가서 바로잡겠습니다.

 

15. 초대교회의 성만찬은 오늘날 셀모임, 주님의 말씀을 서로 나누는 모임과 가장 유사하다.

1) 셀모임에서는 말씀을 나눌 때 서로의 상황과 삶, 시간과 여건을 배려하는지, 아니면 자기 자랑하기에 바쁘고, 자신의 부유하고 안정된 삶에 취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2) 실제로 간식을 나누고 음식을 사서 먹을 때,가난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3) 바울처럼 남의 유익을 구한다면 하나님에게 상을 받는 모임이 되고, 자신의 유익만을 구한다면 심판을 자초하는 모임이다.

 

16.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복, 생명과 평안을 주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고, 예배하고, 서로 교제하며 사랑하게 하셨다.

1) 그런데 도리어 상처를 주고 복음의 걸림돌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안타까운 일이 현실에서는 있다.

2) 행 2, 4장에는 성도들이 서로 사랑함으로 가난한 사람이 없이 모두 행복하자, 이 행위 자체가 복음 선포가 되어 구원받는 자들이 날마다 더하여졌다.

 

◈ 나의 묵상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시기를 경험한 사람들은 사도행전 2장과 4장의 예루살렘 교회 사람들일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공동체를 경험한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행복보다도 행복한 일이다. 하늘에서나 가능한 일을 이 땅에서 경험했으니 얼마나 행복했을까? 현실적인 경제 환경은 가난한데 가난하지 않고, 삶은 힘든데 힘들지 않는 삶이 주 안에서는 가능하다. 바울처럼 권리를 포기하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모든 사람처럼 된다면,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되어 교제하고, 가난한 자에게는 가난한 자처럼 되어 교제하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서로가 남의 유익을 구하면 결국 내가 가장 행복한 교회 성전이 세워진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나의 기질과 성향, 나의 언어습관과 행동 습관으로 교회모임에 참여하고 섬기려고 한다. 많은 경우에는 내가 이기적인 줄도 모르고, 우월감으로 대하는 지도 모르기에 상대방이 상처를 받는지조차 모른다. 부자들이 어찌 가난한 사람의 배고픔을 알며, 가난한 사람들의 부끄러움을 알겠는가? 겸손한 마음이 없으면 어떻게 섬기고 사랑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주님의 마음이 아니면 자신이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과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핍절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교회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예수님의 신부된 교회이기에 나의 소망이며 꿈이다. 그런 교회가 세워진다면 예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만 해도 좋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서 몸된 교회, 지체인 성도, 주님을 머리로 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는 교회가 세워지길 기도한다. 하나님이 서로 사랑하는 성도들과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기뻐하고 축복하는 지를 새삼 보게 된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신다. 고멜에게도 필요를 채우시며 긍휼로 돌보아 주신다. 탕자도 사랑으로 달려가 안아주시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주신다. 그러나 형제를 무시함으로 교회 성전을 깨뜨림으로 자기의 심판을 먹고 마시는 자에게는 병과 죽음을 주어 교회를 보호하신다. 이는 리더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일이다. 이순신도 병영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탈영한 군사들을 사형시켰다.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심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지도자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판을 통하여 교만한 자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으니 주님은 마땅히 그들을 심판하여 교회를 보존하고 교만한 자의 영혼을 구원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를 무시하는 죄가 얼마나 심각하면 긍휼의 하나님이 병을 주고 죽이는 심판을 집행하는지를 생각하면 섬뜩하다. 수많은 죄를 용서하고 도리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형제를 무시하는 죄에 대해서는 심판을 집행하신다. 세상의 법으로 보면 큰 죄가 아니라 잘난체 하는 것에 불과한데 말이다.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 죄이고 큰 죄인지를 다시 보게 된다. 교만으로 행하면 심판이 있다. 반대로 사랑으로 행하면 생명이 있다. 별것 아닌 교만이 심판을 자초한다면, 별것 아닌 사랑이 생명을 낳는다. 대단한 사랑이 아니어도 된다. 서로 기다려 주고, 배려해 주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함께해 주는 사랑이면 하나님의 복이 있다. 서로 사랑을 대단하게 행하지 않아도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나처럼 된 사랑의 섬김이다. 감히 인간이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도 주님의 섬김과 낮아짐 때문이다. 그 섬김의 식탁에 참여한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모든 교회가 이런 식탁의 교제로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를 기도한다.

 

또한 한심한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임이 너무도 분명하다. 그러기에 내가 부족하고, 교회의 연약함이 있어도 우리 교회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성령님이 운행하시며, 통치하심을 믿음으로 보길 원한다. 또한 각 성도들은 주님을 나타내는 생명의 통로이며, 그리스도의 지체요 하나님의 성전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와 그리스도의 지체를 만난다. 감사와 사랑으로 만나길 기도하고, 사랑으로 축복하길 원한다. 주님과 함께 더불어 교제하는 은혜가 있을 것을 기대한다.

 

◈ 교제의 기도

주님, 예루살렘 교회는 사람의 노력을 넘어 복음의 능력과 성령 충만함의 열매였습니다. 저에게, 그리고 저희 교회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인 복음이 성령의 능력으로 선포되고, 성령님이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는 부흥이 있게 하여 주십시오. 각자의 행복을 찾아 노력하지만 하늘의 행복은 복음안에서 서로 사랑함으로 실현됩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권리를 포기하고 남의 유익을 구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맛보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맛보게 하여 주십시오. 이 땅에서도 얼마든지 천국을 맛보게 하시기 위하여 하늘에 속한 교회 공동체를 이 땅에 두셨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처럼 분열하고 무시하고 상처를 줄 수 있는 연약함이 있음도 사실입니다. 머리 되신 주님, 몸을 온전하게 하시고, 각 지체를 생명의 복음으로 붙드사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 안에서 천국을 맛보게 하여 주십시오. 서로 사랑함으로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며 구원받는 자가 날마다 더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며, 열방을 축복하고 유업으로 구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생명이 가득한 나라에서 은혜의 왕의 통치를 받는 생명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사, 하늘에 속한 교회로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게 하여 주십시오. 사랑의 교제를 위하여 섬기는 사역자, 항존직, 셀장, 교사들을 성령 충만하게 하사, 항상 사랑과 감사로 섬기며 주님의 은혜가 왕 노릇하게 하여 주십시오. 교회에서 상처입은 영혼들을 치유하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만져 주옵소서. 상처로 인하여 가나안 성도가 된 이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그들도 몸된 교회의 영광을 맛보도록 사랑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사랑의 교제에 함께 참여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은혜로 돌보아 주십시오. 온 몸이 머리로부터 생명의 공급을 받아 각 지체가 분량대로 역사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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