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보수화가 아니라, 참정권 침해, 상식·비상식의 문제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분노는 캠퍼스 담장을 넘어 확산되었다.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려는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모여 시국선언으로 이어졌고, 성명을 모은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12일 오후 8시 기준으로 215개 대학(242개 캠퍼스)에서 395건의 성명이 게시되었다.
한국 중앙SUNDAY는 서울에 소재한 6개 대학의 총학생회 대표들을 만나
이번 사태에 대한 문제의식과 규탄의 목소리를 높인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참석자는 김하운 한국외국어대 서울캠퍼스 총학생회장(23), 신창훈 경희대 총학생회장(24),
이영우 서강대 총학생회장(22), 이재홍 성균관대 인문사회과학캠퍼스 총학생회장(23),
이지민 고려대 총학생회 중앙비상대책위원장(24), 이창민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26)이다.
――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약 1년 반 만에 대학가에 대자보가 붙고, 시국선언이 잇따랐다.
이영우 =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선거보다 훨씬 작은 단위이지만,
우리도 선거를 통해 학생들로부터 대리인으로서 임명을 받은 대표자로서,
현 사안을 심각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이창민 = 서울시립대 운영위원장을 겸직하는 서울시장 선거가 동시에 있었던 만큼,
또 용지 부족 사태의 대부분이 서울에서 발생한 것도 있어 대응에 나서게 되었다.
김하운 = 사태가 발생한 후, 학내에서는 총학생회의 입장을 묻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학생사회가 이 문제를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신호였다.
따라서 이 현안을 정쟁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하면서도,
선거 관리 문제와 참정권 침해에 대한 원칙적인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창훈 = 지난해 11월, 경희대 총학 선거에서 대리투표에 의한 부정선거 사건이 있었고,
무너진 학생자치의 신뢰를 회복하려고 올해 3월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이런 와중에 사태가 발생해, 건전한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재홍 = 특히 우리 세대가 공감하는 큰 사안이라고 생각해,
다른 대학과 공동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을 통해 이 세대가 가진 불만이나 어려움,
분노 등을 표출할 수 있도록 진행하게 되었다.
이지민 = 개인적인 게시물이 먼저 붙었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이지만, 부정이 발생했을 때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학생회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는 기회라고 생각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보았다.
―― 그동안 대학생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이창민 = 지난해 자주 본 말인데 ‘무기력 세대’라는 것이다.
최근의 20대, 30대를 가리키는 표현인 듯하다. 그러나 청년은 한 번도 무기력했던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성명 하나를 내더라도 의견을 모으는 등의 절차를 밟는데,
독립기관이라는 곳이 절차를 지키지 않는 데서 분노가 생겼다. 단지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다.
이영우 = 학생들은 투표라는 절차, 그리고 그 투표로 선출된 대표자라는 개념 자체에 무관심하지 않다.
20대, 30대가 정치 무관심층이라 하더라도,
나는 무관심이라기보다는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대학생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올림픽공원 집회도 20대, 30대가 주도했고, 이를 청년층의 보수화와 관련짓는 해석도 있다.
신창훈 = 국민주권의 핵심인 참정권이 침해되는 일이 발생했고,
이것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방만한 운영 때문에, 견제를 받지 않는 구조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한 확실한 진상 규명과 제도적 개혁이 이어져야 한다.
학생들의 건실하고 숭고한 메시지를 정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지민 = 현 정권이나 특정 정당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정부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작성했다.
그런데 윗세대가 대학생의 목소리를 이용하려는 모습,
특정 정치 세력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그런 부분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자, 대학에서도 더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10일, 서울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총학생회 학생들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 이번 사태에서 ‘공정성’은 중요한 기준인가.
이재홍 = 청년층이 강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청년층이 일반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서 벗어난 사안이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동등해야 할 ‘1인 1표’라는 권리를 얻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김하운 = 지금 한국 사회는 경쟁이 과열된 사회이고,
결과가 좋지 않아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장치는 결국 공정이 기반이 된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보기에 시스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어서,
정치에 큰 관심이 없던 대학생이라도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 20대, 30대와 기득권화된 40대, 50대의 세대 간 갈등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신창훈 = 40대, 50대는 어머니, 60대, 70대는 아버지, 80대, 90대는 할머니 세대다.
정치적 지향은 다를 수 있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기반이라고 생각하며,
그 기반 아래에서 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공론의 장은 없고, 확증편향의 공간만 있다.
진보 지지자, 진보 정치인, 보수 지지자, 보수 정치인의 거리 문제가 아니라,
진보 지지자와 보수 지지자의 거리가 가까워져서 의사소통을 하고,
시민이 정치인에게 압력을 가해 견제·비판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라고 생각한다.
김하운 = 지금은 논의가 어느 쪽이 이기고 지는 문제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은 완성된 답을 던지는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계속 질문하고 토론하면서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하는 주체라고 생각한다.
―― 지금까지의 정부와 정계의 사태 수습 과정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재홍 = 문제의 부분이 드러나는 상황이다.
이번의 여러 문제점을 확실히 해소하지 않으면 곪아서 언젠가 또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된다.
김하운 = 개혁의 방향이 정해졌을 때, 개혁을 얼마나 신속히 이루어낼 수 있는가는
우리가 얼마나 큰 목소리를 내느냐와 연결되어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청년 세대가 계속해서 책임 있는 개혁을 요구한다.
이창민 =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책임 있는 사람들이 물러나기도 했지만,
이것이 꼬리 자르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렇게 논의가 이어져 불씨가 꺼지지 않고 끝까지 개혁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신창훈 = 7일의 국무총리 간담회에서 이 현안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시민과 전문가를 모아 공론의 장을 열겠다는 약속이 있었으므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볼 것이다.
이영우 = 이번 사건은 청년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매우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느낄 사건이며,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
다만 견제를 받지 않는 기구라고 해서 무책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기 때문에,
제도적 개선이 이어진다면 사회가 조금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