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에 세벌씩 타자기를 만든 공병우 박사가 정부의 두벌씩 타자기 정책 때문에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주장해서 필자와 논쟁한 일이 있었다. 94년 PC통신 천리안에서의 일이다. 30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이다. 그때 필자는 한창 '한국이 흥한다'는 주제로 조회수를 올리며 '일본을 배워야 산다'는 일빠들을 까던 중이었다.
한국이 망한다는 사람과의 충돌은 필연이다. 공병우 박사는 왜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했을까? 자판 하나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기는 원래 어렵다. 미인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참 좋은 기운을 타고 나셨네요.’ 하고 말을 걸어온다. ‘하긴 내가 우주적인 기운을 타고나기는 했지. 잘 아시네.'
가볍게 무시한다. 그런데 어색하지 않나? 누가 물어봤냐고? 남이야 좋은 기운을 타고났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갈길 가라고. 발언권 문제다. 어렵다. 외계인은 외계에 있다. 외계인이 없는게 아니다. 발언권이 없고 권력이 없다는 말이다. 성찰, 진정성 놀음도 본질은 같다. 터부는 사람을 위협하며 말을 붙이는 기술이다.
삼재가 들었다니 원귀가 붙었다니 하며 겁을 준다. '시커먼게 보여. 셋이나 붙었구만. 뒤통수에 딱 붙었어. 어깨가 무거울 것이여.' 성찰, 진정성, 유기농, 생태주의, LGBTQ, 페미 다 좋은데 사람을 해친다. 겁을 줘서 발언권을 얻는게 기독교 원죄설 변종이다. 진정성 있는 사람만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이 수법 먹힌다.
'조상 무덤을 잘못 써서 동티가 났구만. 집안의 장남이 죽을 것이야.' 터부는 겁을 줘서 사람을 굴복시킨다. 방법할매를 불러서 양밥을 올려야 하느냐고 물으며 복채를 낸다. 여러 주술적 언동들에는 비겁한 권력적 동기가 숨어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려니 어색하므로 신변잡기적인 지겨운 것들이 따라붙는다.
짜증내고, 투덜거리고, 빈정거리는 말로 타인에게 말을 붙일 수 있다. 공병우 박사는 급이 되니까 대한민국 망한다고 해도 먹히지만 듣보잡 주제에 대한민국 망한다고 떠들면 윤서인처럼 쳐맞는다. 인간들이 조롱과, 야유와, 감성팔이에 자학개그로 가는 이유다. 회의주의에 무신론, 허무주의에 부정적 사고로 간다.
농민이 하회탈 쓰고 탈춤 추면서 양반을 조롱하고 중놈을 조롱하는 식이다. 나는 불쌍한 약자니까 이래도 된다 하는 전제를 깔고 있다. 병신춤을 추면 동정표를 얻으므로 윤서인처럼 쳐맞지 않는다. 그런데 말이다. 풍자와, 야유와, 해학에 그친다면 비참하다. 주눅든 거다. 양반을 풍자할게 아니라 목을 뎅강 잘랐어야지.
이찍의 조롱과 야유는 패배자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이왕 죽을 바에 물귀신 작전으로 같이 죽겠다는 식의 위협이다. 그런데 우리가 왜 패배자의 말을 듣고 있어야 하지? 어쩌다가 그들에게 마이크가 넘어갔지? 누가 쟤들에게 발언권을 넘겼어? 그들 병맛들은 권력이 없다. 감성팔이, 신파, 비아냥은 패배자의 언어다.
소크라테스의 수법은 '도를 아십니까'와 유사하다. 아테네 광장에 소크라테스가 뜨면 다들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피했다. '이봐! 자네가 지혜가 있다며? 나와 토론을 한번 해보는게 어떻겠는가?' 곤란하다. 디오게네스는 자학개그 수법을 썼다. 괴상한 포즈로 항아리에 앉아있으면 사람들이 제 발로 와서 말을 걸어준다.
군주의 시대, 종교의 시대,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는 갔다. 끝물이다. 새로운 시대가 온다. 낡은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언어로 갈아타야 한다. 임금을 죽이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노예의 언어를 버려야 한다. 초능력, 외계인, 사차원, 음모론이라니 이게 무언가? 서양에는 과거제도가 없다. 면접 봐서 인재를 뽑는다.
궁정에는 광대, 재담꾼, 꼽추, 난장이, 기형아, 궁정화가, 어용시인이 필수요소로 있다. 딸라빚 내서 잘 차려입고 사륜마차 두대를 빌려서 어렵게 궁정에 찾아왔는데 광대, 재담꾼, 꼽추, 난장이, 기형아, 어용시인 따위가 뒷돈을 요구한다. 눈치가 있는 사람은 현찰을 찔러주고 그들에게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맡긴다.
샌님이 또 그런 뒷골목 문화에 어둡잖아. 눈치 없이 잘난척 하면 광대와 꼽추가 비웃는다. 재담꾼이 산통 깬다. 어용시인은 선비를 놀리는 즉흥시로 왕의 면전에서 박살낸다. 궁정 음악가는 득달같이 피아노 쳐서 분위기를 난장판 만든다. 또 한 놈 보냈네. 그렇다. 그 바닥에서는 못나야 살아남는다. 잘난 놈은 죽는다.
사차원, 초능력, 외계인, 마법사 같은 괴상한 이야기로 주목을 끌어야 한다. 공자가 멀리하라는 괴력난신 가까이 하기. 인간이 비루해진 원인이다. 인터넷 공간도 같다. 윤서인과 똥파리가 득세하는 이유다. 광대 목사, 재담꾼 동형, 꼽추 서인, 난장이 언주, 등신 민새가 활개치는 이유다. 인터넷이 궁정을 닮은 것이다.
베토벤은 집안이 궁정악사 집안이고 13살부터 궁정에서 일했지만 하이든과 모짜르트가 궁정악사로 살며 귀족들의 비위를 맞춰주고 밥벌이한 것과 달리 베토벤은 궁정악사 노릇을 거부하고 악보를 팔아 밥먹었다. 음악이라는게 원래 왕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라고 믿는 추악한 자들과 어찌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겠는가?
그때도 사람은 있었던 거다. 성찰, 진정성, 페미, PC, LGBTQ 타령 하는 애들도 궁정의 못난이 필수요소들과 본질에서 같다. 얄궂은 것으로 이목을 끌어보려고 한다. 그런 쪽으로 아주 담합이 잘 되어 있다. 궁정광대 캐릭터로는 베르디의 오페라로 알려진 '리골레토'가 있다. 빅토르 위고는 리골레토를 이렇게 말한다.
'그는 병든 몸을 가진 기형적인 불구였기에 궁정 광대로 있었으며 주군을 위해 어떤 사악한 일도 거절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비참함으로 인해 주변인들에게 적대감을 가진 인물이다.' 딱 보면 알잖아. 이찍이 그들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멀쩡한 타인에게 전염시키고 있다는 것을. 하긴 병은 자랑해야 치료된다고 하니까.
인간의 언어는 달라야 한다. 초인의 언어는 달라야 한다. 군자의 언어는 달라야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려면 자신의 내면에 에너지가 넘쳐야 한다. 남의 약점을 추궁하여 위협한다면 좋지 않다. 너한테 귀신이 붙었으므로 떼주겠다며 약점을 지적하면 곤란하고 나한테 소총이 있으니까 같이 가자고 꼬셔야 한다.
지역주의, 학벌놀음, 성차별, 소수자 차별, 외부자 차별이 다 무엇인가? 남의 약점잡기다. 자신을 패배자로 선언하고 비아냥, 조롱, 풍자, 야유를 즐기며 광대, 재담꾼, 꼽추, 난장이, 기형아, 어용시인, 궁정화가 못난이 필수요소로 끌어들인다. 이들의 언어를 잘 들어보면 '나만 병맛이냐? 너도 병맛이다.'로 요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