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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은 사랑이다

작성자천사마음|작성시간21.04.26|조회수13 목록 댓글 0

2021.04.26.월

❤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

■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신명기 28:2-3,15-16) ■


아들아.

신명기의 언약은
고대 근동의 언약 체계를 따른다고 했지?
당시의 언약에선
언약종(從)이 언약을 잘 지키면
언약주(主)는 축복을 내렸다.
반대로 언약종이 언약을 어기면
가차없이 무자비한 저주를 내렸고...

그게 언약 축복이요 언약 저주였으니
복을 받으려면
언약을 철저히 지켜야 했고
언약주에게 순종을 해야만 했다.
언약 저주가 철저하게 불순종에 대한
보응이요 형벌인 것처럼
언약 복은 순종에 대한
보상이요 상급이었던 것이다.

그게 당시에 행해지던 언약이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언약 복과 저주도
그렇게 이해를 하기가 쉬웠다.
엉뚱하게 오해를 하곤 했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떻더냐?
혹시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더냐?
전에 아빠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신명기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그런 생각을
아주 단/호/하/게 반대하신단다!!!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의 축복은
순종에 대한 보상이나 상급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
신명기의 확고부동한 신학인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이스라엘이 순종을 하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상으로 주시더냐?
아니지? 그래...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들의 순종이나 신실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하나님은 그 땅을 선물로 주셨다.
사랑하시니 선물을 주신 것이다.
순종하기도 전에 이미 선물로.....

그러니,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의 복은
결코 순종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보상이 아니라 은혜인 것이다.
언약의 축복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무 조건이 없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다.

생각해 보아라.
너에 대한 아빠의 사랑이 조건적이겠느냐?
네가 아빠를 믿고 <순종하면>
하늘 문을 열어
네게 언약의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내리고,
네가 만일 아빠 말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면>
아빠가 네게 언약의 저주를 퍼붓겠느냐?

그럴 리가 있겠느냐?
너에 대한 아빠의 사랑은
정말로 아무런 조건이 없다.
허물 많은 세상의 아버지도 그럴진데
하물며 하늘 우리 아버지야 어떠 하시겠느냐?

아들아.
절대로 잊지 말고 마음에 새기거라.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로 아무런 조건이 없으시다.
반드시 우릴 구원하고야 말겠노라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도 꼭 마찬가지다.

사랑하시니 언약하시고,
언약하시니 언약하신 그대로 이루시잖니?
하나님의 사랑(헤세드)이 언약을 하게 하시고
언약을 하셨으니 언약하신 그대로
사랑(헤세드)을 베푸신다.
언약은 곧 아무런 조건없는 사랑인 것이다.

그러니, 우릴 향한 하나님의 언약, 곧
'내가 너를 반드시 구원하겠다'는 언약은
너무나도 당연히
아무 조건도 없는 '무조건적 언약'이다.
조건이 달린 쌍방 계약이 아닌
완전히 '일방적인 선언'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우리에게
어떻게든 복을 베푸시고 싶으신 것이다.

아들아.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니?
하나님의 이 마음을 오해하면 큰 일이 난다.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되
복을 받으려고 그리고 저주를 피하려고
지키게 되기 때문이다.
오해 속에 있던 예전의 아빠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언약과 그 마음을 오해한 아빠는
만일 순종하면 언약 복을 받지만
순종치 않으면 저주를 피할 길이 없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니, 아빠가 신실하게 살려고
얼마나 애를 썼었겠느냐?
정말로 그랬다.
두렵고 무서운 저주를 피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순종을 하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렇게 순종하려 애를 쓰면 쓸수록
언약 복이 오기는 커녕
마음에 두려움과 공포만 커져 가더구나.
저주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과 공포 말이다.
갈라디아서의 이 말씀이 머리에 맴도니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려 하면서도
이찌 두렵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10)

그러니 얼굴에 웃음기가 쫙 빠지더구나.
예배를 드려도
찬양을 불러도
심지어는 웃으면서도
정말로는 웃을 수가 없었다.
웃음기 없는 마음을
'경건과 신실함'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는
예배당 문을 열심히 출입했을 뿐이었다.

그런 아빠를 보시고
하나님이 얼마나 슬프셨겠느냐?
하나님이 얼마나 애가 타고 아프셨겠느냐?

아들아.
이 새벽
말씀의 숲에서
다시 마음에 새기자꾸나.
언약은 사랑이다!!!
조건이 아니라 끝없는 사랑이다!!!

진실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2021.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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