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요구대로
옛날에는 여필종부라 하여, 여자는 결혼하면 남편을 따르는 것이 도리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남녀평등을 넘어 남필종처=남자가 아내를 따르는 것이 가정이 편안하고 일신이 안전한 사회가 되었다.
하물며 아내의 작은 바램이나 요구조차 무시한다면 어찌 이 시대의 대장부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아내의 사소한 바램과 요구사항을 무시하거나 귀찮아하곤 했다.
이번에도 아내가 집앞의 길가에 높게 자란 풀들을 베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난 그 얘길 듣자마자 달갑지 않은 표정과 목소리로 대꾸를 했다.
시골에 살면서 풀과 함께 사는 건 당연한 거지. 깨끗하게 살려면 아파트로 가.
아내는 그래도 애써 웃으며
그게 아니라 풀이 너무 자라서 좀 베어달라는 거지. 내가 자꾸 뭘 시키니까 싫지?
라고 반문했다.
나는 아내가 좀 눈이 어두워져서 그런 것 좀 안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직장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 후에야 내가 왜 그깟 일에 아내를 언짢게 했을까 후회되었다.
조금만 시간 내서 약간만 수고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고 보기도 좋을건데~
나는 어머니나 아내의 말에 곧바로 알았다고 대답하지 않고 싫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 습관적이었던 것 같다. 내 안에 반항유전자가 깊이 뿌리내려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거의 그 말대로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아내가 떠난 며칠 뒤 전정가위를 갈아 길가의 높이 자란 쑥대며 잡목들을 쳐주었다. 생각보다 짧은 시간 내에 과제를 마칠 수 있었다.
집앞 언덕이 훤해보이고 내 마음도 시원했다.
그날 저녁 아내와 통화하면서 내가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당신 섭섭하게 해서 미안하다, 집앞 길가에 풀 베어내는 거 시간 얼마 안 걸리고 깨끗하게 했다고 말해줬다.
남필종처를 잊지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