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네파는 누구일까?
신약시대 예수님 공생애 기간과 가장 비슷한 시기를 기록한 역사서인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는 유대인의 3대 종파가 나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그리고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은 에세네파가 요세푸스가 언급한 유대인 3대 학파입니다. 마카비 전쟁 이후 제사장들의 변질과 타락이 유대교 분열을 가져왔고 결국 3대 학파로 나뉘게 되었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독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뇌물을 주고받으며 제사장 주요 직분을 거래하였고, 이러한 거래는 정치 세력과의 결탁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제사장 세력들과 기득권 세력들의 부패와 구별되어 살기 위해 모세 오경의 신앙으로 돌아가고자 노력했던 바리새파가 생기게 되었고, 타락한 세상과 거리를 두어 광야로 나가 경건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금욕하며 성경을 연구했던 에세네파도 생기게 된 것입니다.
에세네파 뜻
광야의 동굴처럼 세상과 구별된 장소에 살며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성경을 깊게 탐구하던 이들을 히브리어로 경건한 자들이란 의미인 ‘하시딤’이라 불렀습니다. ‘하시딤’의 헬라어 표기가 ‘에세노이’이며, 이 단어에서 ‘에세네파’란 학파의 명칭이 유래되었습니다. 에세네파는 율법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고 구약시대 선지자들로부터 이어진 예언과 말씀을 연구하며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힘을 썼습니다. 에세네파는 이 세상의 종말을 믿었고 종말이 오기 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이 있을 것임을 믿었습니다. 에세네파는 선지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예언의 글들과 대대로 이어진 성경을 깊게 연구하며 많은 주석서와 해설서를 남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세례 요한과 에세네파
많은 성경 학자들은 에세네파의 교리와 세례 요한의 설교가 비슷한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세상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자로서 광야에서 경건하게 금욕하며 살았던 것도 에세네파와 비슷하며, 반드시 이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과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진정한 회개가 필요하다는 신념 역시 에세네파 교리와 비슷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절과 2절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이후 요단강을 건너는 행위가 죽음에서 건짐을 받은 세례라고 언급된 것처럼, 세례 요한으로 인해 몸을 요단강에 담갔다가 나오게 되는 물의 세례를 받은 백성들은 이전 삶을 회개하고 단절하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굴복하여 새로운 삶을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역시 에세네파의 교리와 상당 부분 일치합니다. 이런 이유들로 많은 성경 학자들은 세례 요한이 에세네파가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쿰란의 한 목동이 에세네파의 성경을 발견하다
사실 에세네파가 세상에 크게 주목받게 된 계기는 이스라엘 쿰란 지역의 한 목동이 동굴 속에서 우연하게 양피지 두루마리와 항아리들을 발견하게 된 이후입니다. 이 유적은 쿰란 공동체로 불렸던 에세네파의 유적이었고, 이 곳에서 사해 사본이라고 불리는 성경 두루마리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발견 이전에 에세네파는 요세푸스와 몇몇 역사학자들이 기록한 역사서에서만 존재했던 학파였고 실제 유적이나 자료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에세네파가 사용했던 사해 사본의 발견과 공동체의 흔적은 세계 역사학자들과 성경학자들의 큰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적 발굴 이후 오랜 연구 결과, 쿰란 공동체는 사해 주변에 살며 공동체 생활을 했던 에세네파 중 하나였으며, 금욕주의 생활을 하였고 재산을 서로 공유했으며, 예배와 성경 공부 그리고 양육을 중요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쿰란 공동체는 성전 중심의 제사를 드리지 않았고 자신들의 제사장소에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제사와 예배를 드렸고 자손들과 제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에 가장 큰 가치를 두었다고 합니다.
상당한 양의 사해 사본이 1946년 발견되었다. 에세네파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해사본은 히브리어 성서의 필사본을 포함하며, 기원전 300년부터 손닿지 않고 보존되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 문서로 인해 에세네파는 유명해졌다.
에세네파는 제 2 신전 시기에 유대지역의 중요한 종파로, 바리사이파와 사두개파와 더불어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번영했다. 대부분의 학자는 에세네파가 사독 계열의 제사장으로부터 분리되었다고 주장한다. 에세네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많은 이론이 있지만, <율법을 준수하는 자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에세네파는 신약성서에서 언급되지 않으나 기독교와 공통점을 공유한다.
1.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
요세푸스는 유대 역사가로 <유대전쟁사(기원후 75년)>, <유대고대사(기원후 94년)>, <요세푸스의 생애(기원후 97년)>를 저술했다. 요세푸스의 책에 따르면, 에세네파는 유대의 곳곳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필로는 에세네파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의 여러 지역에 무리를 지어 4천 명 이상 살았다고 전한다.)
요세푸스와 필로의 기록에 의하면, 에세네파는 공동 소유 생활을 했다. 대부분의 에세네파 집단은 독신주의를 지지했고, 3년간 예비 신자 기간이 끝난 후 결혼을 할 수 있었다. 3년의 예비신자가 끝난 후, 새로운 입교인은 하나님을 향한 경건, 인간을 향한 의로움, 순수한 생활의 유지, 죄악과 비도덕적 활동의 금지, 왜곡 없는 에세네파의 법 전파, 에세네파의 책을 보존한다는 맹세해야 했다. 그들은 지도자를 선발하고, 지도자의 명령에 복종했다. 감정을 자제하고, 평화의 통로로 봉사했으며, 강도에 대항할 때만 무기를 사용했다. 동물 희생을 금지하고, 맹서의 선언을 금지하고, 엄격하게 안식일을 준수하고, 아침마다 침례를 받고, 기도 후 함께 식사를 하고, 장로들의 책을 공부하고, 비밀을 지키고, 자신들의 신성한 책에 있는 천사의 이름을 깊이 마음에 두었다. 그들은 영혼불멸을 믿었다. 빗물을 저장하여 제의적 정화에 이용했으며, 회개가 세례의 선행 조건이었다. (제의적 정화는 당시 유대에서 일반적으로 실천되었다. 그 당시 회당 근처에서 제의를 위한 목욕탕이 많이 발견된다.)
2. 요셉 라이트푸드의 기록
요셉 라이트푸드에 따르면, 교부 에피파니우스(기원후 4세기)는 에세네파에 속한 나사렛 사람들과 오사니아 사람들을 기술한다.
나사렛 사람들은 모든 유대 계율을 지켰으나, 희생제를 드리지 않고 육식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육식이나 희생제를 불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선조들이 육식이나 희생제를 제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오사니아 사람들은 나사렛 사람들처럼 육식이나 희생제를 금지했다.
만약 쿰란 공동체가 에세네파와 동일하다면 그리고 쿰란 공동체가 사해문서의 저자라면, 사해문서에 따라 에세네파는 자신들을 유대인에게서 구분하였으며, 다른 유대인을 계약 파괴자라고 불렀다.
3. 예수와 에세네파의 연관성
학자들은 쿰란 문서에 나타나는 <의로운 선생>에 대해 특별하게 논쟁한다. 요나단(사독의 핏줄이 아닌 사제)은 거짓된 사람 또는 거짓 사제라고 불렸는데, 그가 한 대제사장에게서 사제직을 박탈했다. 에세네파는 그 대제사장을 <의로운 선생>이라고 부르는데, 그가 예수의 원형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둘은 모두 새 계약을 말하고, 유사한 복음을 설교하고, 구세주로 간주되었다. 둘은 모두 반대 당파에 의해 비난받고 사형 당했다. 예수가 에세네파의 일원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의 학자들은 예수가 최소한 에세네파에 의해 영향받았다고 느낀다.
1. 유대 종파의 분열
신약 시대 유대교에는 세 개의 주요 종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에세네파, 사두개파, 바리새파입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유대교들’이 아니라 유대교라는 공통분모에서 파생된 ‘종파들’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같은 기독교 안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순복음, 성결교 등이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들이 공유하는 것은 페르시아 시대 이후에 확립된 성전과 율법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교를 변호하면서, 유대인들에게도 그리스처럼 철학이 있었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그들 나름대로 독특한 3개의 철학 종파를 가지고 있었다. 즉 에세네파, 사두개파, 바리새파의 세 종파가 있었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8.1.2.)
요세푸스는 오랜 세월 유대 사회에 세 개의 종파가 있었다고 기록하지만, 사실 종파 자체가 페르시아 때부터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마카비 전쟁 무렵에 대제사장 직분이 변질되면서 분파들이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셀레우코스 왕국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왕위에 올라 헬레니즘의 거친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한 주전 175년까지 성전에서 제사를 담당하던 대제사장은 사독 계열에서 맡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신약 시대까지 대제사장은 뇌물을 주고받으면서 권력자가 임명하는 성직 매매의 대표적인 직분으로 전락했습니다. 대제사장이 명목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이었지만, 실제로는 권력자들과 돈을 섬기는 자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변질된 시대가 되자 ‘경건을 열망하는 자들’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하시딤’이라는 무리가 등장했습니다. 하시딤은 하나의 종파가 아니라, 타락한 현실에 반발해서 광야로 나간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대제사장이 공석이던 주전 159~152년에 유대 종교의 정통성을 갈망하며 광야로 나가서 머물렀던 무리가 있었고, 다시 돌아와 권력 주변에서 맴돌던 무리도 있었습니다. 주전 152년경 사독 계열의 하시딤은 하스몬 가문의 요나단을 변절한 대제사장이라고 여기면서 ‘의의 교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광야로 나가 ‘에세네파’를 이루었습니다. 반면 하스몬 가문에 남았던 제사장들과 주변의 엘리트들은 ‘사두개파’가 되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이 둘과는 다른 자리에 토대를 둡니다. ‘바리새’는 히브리어 ‘파루쉼’(구별)에서 나온 명칭인데, 불의함으로부터 정결하게 구별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 가운데 영향력이 큰 집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2. 에세네파의 등장
세 종파의 배경과 특징을 가장 풍부하게 설명해 주는 사료가 바로 요세푸스의 책들입니다. 유대인들은 그가 유대인으로 싸우다 로마군에 잡혀 귀화함으로써 변절한 역사가로 생각하며 그의 기록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48년 무렵 사해 사본이 발견되어 그의 기록과 대조해보니 대부분 내용이 일치해서 그 역사성이 증명되었고, 그 후 고고학계에서 요세푸스의 작품은 필수적인 자료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요세푸스는 세 종파 중 에세네파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세네파는 하시딤 그룹 중에서도 경건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광야로 나갔던 ‘남은 하시딤’이었습니다. 요세푸스의 저술과 당대 문헌들을 보면, 에세네파가 바랐던 회복의 중심에 하나님에 대한 경건과 이웃에 대한 정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시딤’은 히브리어로서 ‘경건한 자들’이라는 의미인데, 이 명칭의 헬라어는 ‘아사이노이’ 혹은 ‘에세노이’이고, 여기서 ‘에세네’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 사독 계열의 제사장들 중에서 ‘의의 교사’가 중심이 되어 광야로 나간 사람들을 에세네파라고 할 수 있고, 에세네파 중에서 쿰란 지역에 거주한 사람들이 이룬 공동체를 쿰란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아도 하시딤과 에세네파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9 왕(데메트리우스)은 이스라엘 민족의 배반자 알키모스를 대사제로 임명하여 바키데스와 함께 보내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복수하라고 명령하였다. 10 이렇게 하여 그들은 대군을 이끌고 출발하여 유다 땅에 도착하였다. 바키데스는 유다와 그 형제들에게 평화의 사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은 속임수였다. 11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적이 대군을 이끌고 오는 것을 보고 그들의 평화 제안을 믿지 않았다. 12 그러나 율법학자단은 알키모스와 바키데스에게 가서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13 이스라엘 쪽에서 처음으로 화평을 제의한 사람들은 하시딤이라고 하는 경건파 사람들이었다. 14 그들은, ‘아론의 후예 한 사람이 사제로 군대와 함께 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던 것이다.” (마카베오상 7:9-14, 공동번역)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죽은 뒤, 데메트리우스와 알렉산더 발라스(Alexander Balas)는 셀레우코스 왕권을 놓고 대립합니다. 이때 율법학자들의 한 그룹인 ‘율법학자단’은 데메트리우스와 결탁해서 알키모스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바로 이 율법학자단 사람들(13절: 하시딤)이 바리새파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반면 하스몬 가문의 요나단은 알렉산더 발라스와 공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전 159년 알키모스를 살해하여 대중적인 지지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이때 하스몬 왕가의 요나단 편에 섰던 제사장 그룹이 사두개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했던 그룹은 광야로 나가게 되는데, 이들이 에세네파가 되었습니다.
3. 에세네파의 가르침
페르시아 시대 이후 유대 사회에 유대교가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이때가 주전 5세기입니다. 같은 시기에 그리스에서는 철학자들이 등장했고, 주전 4세기에 이르러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뛰어난 철학자들도 나타났습니다. 알렉산더가 열어젖힌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주전 2세기 지중해의 다른 장소에 있던 유대 사회에서는 에세네파, 사두개파, 바리새파 같은 종파들이 형성되었습니다.
특히 초기 에세네파의 중심이었던 ‘의의 교사’가 자기에게 스스로 붙인 명칭이 ‘하 야하드’였는데 이것은 ‘그 공동체(the community)’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가리켜 ‘바로 그 공동체’ 즉 참된 ‘이스라엘 공동체’라고 불렀습니다.
에세네파는 자신들 스스로 율법의 정통성을 지키며 모세의 시내 산 언약을 계승하는 참 이스라엘 공동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이 구약 시대 선지자들로부터 이어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믿었던 겁니다.
특히 그들은 미래에 반드시 종말이 있으며 그 직전에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참된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들로부터 나타난 것이 임박한 종말 사상이었습니다.
1) 묵시 사상
유대의 묵시 사상은 에세네파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들에게 근거가 된 것은 네 제국의 환상이 기록된 다니엘서입니다. 그들은 다니엘의 환상 속에 나오는 세 번째 제국인 그리스가 몰락하고, 네 번째 제국으로 로마가 등장하는 것을 눈여겨보았습니다.
사실 그들이 그 시대를 살면서 다니엘서에 기록된 대로 첫째 왕국인 바벨론이 무너지고, 그다음 페르시아가 있다가 그리스에게 정복당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 몰락하고 로마가 등장할 때 그것을 주목해서 보았습니다.
실제로 에세네파가 등장하던 시기는 알렉산더가 세운 헬라 제국이 그의 죽음 이후 그의 신하들에 의해 쪼개지고, 그와 동시에 당시 강력한 세력으로 급부상하던 로마에게 위협받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다니엘 예언의 성취가 금방 이루어질 것처럼 보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도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니엘 9장에 나오는 ‘70 이레’ 예언 때문입니다.
“24 하나님께서 너의 백성과 거룩한 도성에 일흔 이레의 기한을 정하셨다. 이 기간이 지나가야, 반역이 그치고, 죄가 끝나고, 속죄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영원한 의를 세우시고, 환상에서 보이신 것과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고, 가장 거룩한 곳에 기름을 부으며, 거룩하게 구별하실 것이다. 25 그러므로 너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예루살렘을 보수하고 재건하라는 말씀이 내린 때로부터 기름을 부어서 세운 왕이 오기까지는 일곱 이레가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예순두 이레 동안 예루살렘이 재건되어서, 거리와 성곽이 완성될 것이나, 이 기간은 괴로운 기간일 것이다.” (단 9:24-25, 새번역)
복잡하지만 간단히 설명하면, 당시 일부 유대인들은 스룹바벨에 의해 제2성전이 건립되고 느헤미야에 의해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된 이후 490년을 생각했습니다. ‘일흔 이레’라는 것을 70년×7년으로 계산해서 490년인 것입니다. 그렇게 490년이 지나면 종말과 심판이 있고,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연도를 계산해 보면 예수님 시대와 대략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실 때 다른 시대보다 사람들이 메시아를 굉장히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요세푸스는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다니엘의 예언을 알고 있었고, 그 시대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놀랍게도 결국 우리나라는 다니엘의 환상대로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이런 일들을 당하게 된다. 더욱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일들이 실제로 발생하기 훨씬 전에 다니엘이 이것을 예언하고 글로 남겼다는 점이다. 다니엘은 이 밖에도 우리나라가 로마 정부에 의해 폐허가 될 것이라는 점도 예언하였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0.11.7)
다니엘서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뒤에 어떤 예언이 따라오는지 압니다. 돌덩이가 네 번째 제국을 부서뜨리는 이야기입니다.
“34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단 2:34-35)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고는 박사들과 술객들을 다 불러서 꿈을 해석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꿈을 알려주시면 해석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것들을 다 죽여 버려라!’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아니, 무슨 꿈인지를 알려주어야 해석하지, 꿈을 알려주지도 않고 화만 냅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자기도 꿈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뭔가 대단한 꿈을 꾸었는데 기억이 안 나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다니엘이 와서 해석해준 내용이 바로 이 내용입니다.
그때 ‘손대지 아니한 돌’(개역한글: 뜨인 돌)이 날아와서 넷째 왕국을 부서뜨립니다. 그리고 그 돌이 태산을 이루어 온 세상에 가득하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 된 교회가 전 세계에 가득할 것이라는 사실을 다니엘이 이미 예언했습니다.
요세푸스가 <유대 고대사>를 기록하던 주후 90년대는 로마가 엄청나게 강력했던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였습니다. 유대 사회는 이미 주후 70년 로마에 대항하다가 멸망 당했기 때문에, 굳이 로마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충 이렇게 얼버무립니다.
“다니엘은 돌의 의미를 왕에게 설명해 주었으나 나는 과거와 현재의 일만 기술하는 것이 임무일 뿐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필요가 없으므로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0.10.4)
이런 시기였기에 에세네파는 금방 닥쳐올 종말을 믿었고, 구약의 율법 연구에 힘쓰면서 많은 주석서와 해설서를 남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이 땅을 지배하게 창조하셨고, 두 영을 규정하여 그에게 나누어 주셨으니, 그분께서 예정된 날에 심판하러 오실 때까지 그 안에서 거닐게 된다. 이것은 진리의 영과 악마의 영을 두고 하는 말이다. 빛의 샘에는 진리의 근원이 있으나 어둠의 샘으로부터는 악마의 근원이 유래한다.” (1QS 3:18-19)
1QS는 쿰란 공동체의 문서로서 ‘공동체 규율서’에 해당합니다. 이 기록을 보면, 에세네파는 세상에 종말이 올 때까지 이 세상은 빛과 어둠의 투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빛과 어둠의 투쟁은 페르시아 종교의 기본 전제입니다. 에세네파 사람들은 자기들만 종말의 심판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에세네파에 가입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온전한 삶을 살며, 천사들과 함께 하늘 예배에 참여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2) 예정론
요세푸스는 유대 종파 중에서 에세네파를 가장 모범적인 종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을 철저히 믿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에세네파가 바리새파나 사두개파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예정론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예정과 섭리를 믿지 않았고, 바리새인들은 혼합된 형태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에세네파 사람들은 최후의 승리가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믿었습니다. 비록 이 세상은 빛과 어두움, 선과 악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어둠과 악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소망과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은 지금 광야에서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저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떵떵거리며 부와 권력을 가지고 안락하게 살고 있지만, 저들은 악이고 자기들은 선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결국 저 악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견디며 살 수 있었습니다.
에세네파의 이러한 예정론은 다른 유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이들의 영혼 불멸, 내세, 섭리, 예정에 대한 이해는 유대교 신앙의 기준이 되었습니다(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6.11.8). 에세네파는 광야에 머물렀지만, 그들의 신앙은 유대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3) 예배
에세네파는 변절한 대제사장으로 인하여 악의 세력이 절정에 달한 시대에 자기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대제사장이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인물이 될 수 있느냐고 하며 타락했다고 했습니다. 사독 계열도 아닌 사람이 대제사장이 되는 것을 보니 악의 세력이 최고조에 달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불법적인 대제사장에 의해 더럽혀졌다고 믿었기에, 예루살렘 성전 제사에 참여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공동체를 성전으로 이해했습니다. ‘저 예루살렘 성전이 진짜 성전이 아니라 우리가 진짜 성전이다.’라고 했습니다. 공동체 내에서는 동물의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았으며, 그 대신 입술의 제물인 기도와 찬양에 전념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공동체에서 예배드릴 때, 영적인 존재인 천사들과 함께한다고 믿었습니다. 놀랍게도 이러한 에세네파의 성전 개념은 신약 성경에서 말하는 성전의 의미와 비슷합니다.
“범죄의 죄와 불순종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번제의 살코기나 희생 제의의 기름보다 나은 이 땅을 위한 열망을 위해, 규정에 따라 입술로 드리는 제사는 정의의 향내와 같으며, 온전한 삶은 흡족하고 자유로운 선물과 같다.” (1QS 9:4-5)
에세네파의 예배 형태를 통해서 눈에 보이는 건물인 성전과 제의를 거부하고, 신앙을 영적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저들은 지금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떠들지만, 저것은 진짜 제사가 아니다. 이미 타락한 자들이 어떻게 진짜 제사를 드릴 수 있겠는가? 진짜 예배는 여기 있다. 입술로 드리는 기도와 찬양, 그리고 삶에서 정의를 행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예배와 상당히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4) 공동체
요세푸스는 유대교의 표준이 하나님을 향한 경건과 이웃을 향한 정의라고 생각했습니다(<유대 고대사>, 16.2.3). 이것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해줍니다. 에세네파 공동체는 스스로를 ‘바로 그 이스라엘 공동체’라고 생각했고, 이들은 신약 시대 교회의 모습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에세네파는 입교를 원하는 기간 동안 성실성을 입증받으면 공동체에 들어올 수 있고, 정화의 세례 의식에 참여할 수 있다. 새로운 회원은 공동 식사에 참여하기 전에 먼저 중대한 맹세를 해야만 한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또 인간에 대한 정의를 준행한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2.8.7)
이런 요세푸스의 기록 내용은 놀랍게도 쿰란 공동체의 ‘공동체 규율서’에도 똑같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온 마음과 온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고, 그분이 보시기에 선한 것과 바른 행실을 행한다. 그분이 모세와 그의 모든 종, 예언자들에게 명하셨듯이. 또한 그분이 선택하신 모든 것을 사랑할 것이며, 그분이 버리신 모든 것을 미워할 것이고, 모든 사악한 것을 멀리하나, 모든 선한 사업에는 매달릴 것이며, 신실함과 정의와 공의를 그 땅에서 행한다.” (1QS 1:1-5)
이것이 에세네파가 추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서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마카비 시대에 형성된 바로 그 공동체 에세네파가 등장하고 나서 시간이 흘러 신약 시대가 되었고, 한 사람이 광야에서 세례를 베풀며 회개를 강조하고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시대의 종교인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하면서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 즉 참된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외쳤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1~3절)
이런 배경을 알고 ‘그 때에’ 세례 요한이 나타났다는 것을 보면 더 이해가 됩니다. 세례 요한은 에세네파에 의해 양육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서 그는 에세네파에 의해 키워졌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 역시 제사장 집안입니다. 그의 아벚디 사가랴가 제사장이었으니 요한도 제사장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인데, 타락한 사두개파와 거리를 두고 에세네파에 들어간 것입니다.
에세네파는 타락하고 변질된 대제사장이 이끄는 예루살렘 성전이나 제도화된 종교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참된 예배라고 믿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어떻게 사랑합니까? 이웃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그들은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공동체가 바로 성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세네파에 들어오기 위해서 신앙을 고백해야 했고, 죄를 정결하게 하는 세례 의식을 가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경건과 사람들을 향한 정의를 행하겠다는 고백을 하면서 입회 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러한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은 함께 공동체가 되어서 식탁 교재를 나누었습니다. 다시 말해, 함께 만찬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이런 특징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습니까? 너무나 놀랄 정도로 이들은 교회 공동체와 닮았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라는 것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것처럼 120명이 모여서 기도하다가 성령이 오셔서 성령을 받고 변화되어 그때부터 교회 공동체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이 겉으로 보면 맞지만, 실제로는 이런 역사가 일어난 위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정신으로 제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셨고, 제자들은 성령을 받은 후 진정한 공동체인 교회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이처럼 구약 시대로부터 이어진 공동체를 광야에서 예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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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은 굉장히 혼란스럽고 온갖 복잡한 가치관들이 뒤섞여서 혼탁합니다. 그 와중에 힘을 가진 자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권력과 돈을 갖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물론 우리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겠지만, 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지금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움직이시는 손길을 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지금 세상은 복잡하게 돌아가더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분명히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우리가 모른다고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으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이 왜 이런 사람을 그냥 두시는가? 왜 이런 상황을 그냥 두시는가?’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움직이고 계십니다. 그것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저와 여러분을 통해, 이 땅의 교회를 통해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직접 할 수 있으시지만, 우리와 같이 연약한 사람들을 들어 쓰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만을 각자의 주인과 교회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선한 도구로 쓰임 받는 우리 인생이 되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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