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복음을 듣는 분들에게...)
* 본 자료는 이재철목사님이 새신자들을 위해 특별집회시 설교한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임을 밝힌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세상에 많은 가르침이 있는데, 왜 종교가 가장 큰 가르침, 최상의 가르침이겠는가?
종교를 영어로 Religion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라틴어로 레리게레(relegere)이다.
곧 접두어 re는 '다시'를 의미하고, legere는 '읽다·묶다'의 뜻이니 풀이하면 '다시 읽는다', '반복 음미한다', '다시 연결한다'는 의미이므로 신적인 것과의 교통을 뜻한다.
그리고 religion의 이러한 뜻은 3∼4세기의 기독론자인 렉탄티우스가 주장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곧 인생이 범죄함으로 생명의 본원이 되는 신에게서 떨어져 나와 죽게 되었는데 중보자가 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전능자이신 신에게 결합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종교의 본뜻은 단절됐던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것이다.
즉 단절되었던 인간과 신의 관계를 다시 연결해 주는 것이다.
단절되었던 삶과 생과 사를 연결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종교가 가르침 중에 최상의 가르침일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의 모든 가르침은 이 세상에서 사는 데 필요한 가르침이다.
그런데 종교만 하늘을 이어주고 하나님을 이어주고 인간을 영원에 접속시켜 주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 가르침보다 더 높은 가르침 더 최상의 가르침은 세상에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종교를 갖든지 내가 한 종교를 가졌다 내가 한 종교를 믿는다라고 하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내가 한 종교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 종교가 진리라고 표방하는 그 종교의 경전 내용을 믿는다는 것이다.
여러분들께서 만약에 나는 이재철 목사를 믿는다 라고 하신다면 여러분들께서 저의 뭘 믿으시는 것인가?
제가 지금부터 여러분들께 드리는 제 말을 믿으시는 것이다.
저를 믿는다라고 하시면서 속으로 제가 말할 때마다 아유 거짓말,사실 아니야. 그러면 저 믿는 거 아니다.
내가 어떤 한 인격체를 믿는다면 그의 말을 신뢰하는 것이고, 그의 말을 신뢰하기 때문에 내가 그 인격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신자는 어떤 사람인가 불경의 내용을 믿는 사람이다.
불교 신자라고 하면서 불당에 가서 불상을 향해서 기복만 하고 복만 빌고 불경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게 살고 불경의 내용이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면 그 사람은 미신을 가진 사람이지 불자일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종교를 2가지를 든다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불교와 기독교이다.
불교는 1500년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구조에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
그 불교가 진리로 표방하는 불경 내용은 크게 2개의 기둥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첫 번째 기둥은 무아 사상(無我思想)이다.
없을 무(無) 자에 나 아(我)자 나라는 존재는 원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한다는 착각으로부터 모든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무아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나의 모든 고뇌 나의 모든 고통을 내가 뛰어넘고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아사상이다.
두 번째 기둥이 윤회 사상(輪廻思想)이다.
마치 수레바퀴가 쉬지 않고 계속 돌아가듯이 인간의 생과 사가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간다는 것이다.
인간이 죽었는데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동시에 짐승으로 태어나든지 다시 사람이 되든지 아니면 곤충이 되든지 어떤 생명체로든지 계속 태어나서 또 죽고 또 다른 생명체로 나고 이 생과 사가 끝없이 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라고 하는 종교의 집은 이 무화사상과 윤회사상의 두 기둥 위에 불교가 세워졌다.
그래서 2500년 동안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1500년 동안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그 불경이 표방하는 무아사상과 윤회사상의 두 기둥을 가만히 한번 생각을 해보면 그 두 기둥 사이에는 논리적인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번 생각해 보라.
제일 중요한 첫 번째 기둥인 무아 사상은 나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것으로부터 인간의 모든 고뇌가 파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아가 진짜라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윤회할 내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윤회라는 것은 두 아이일 경우에는 윤회가 불가능하다.
내가 죽었는데 다음 생에서는 이 생에서 잘 못 살았기 때문에 새로 태어났다.
그랬다가 그 다음에 또 부처님의 자비심을 입어서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인간으로 살면서 공덕을 많이 쌓아서 죽었는데 그 다음에는 또 인간으로 태어났다.
어떻게 그것이 무아일 수 있겠는가?
내가 무아라면 윤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맞다.
거꾸로 윤회가 진짜라면 나는 무아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아가 진짜면 윤회가 있을 수 없고 윤회가 진짜면 무아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불당에 나가는 대부분의 불교 신자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그 불교의 두 기둥 무화사상과 윤회사상 사이에 이 메울 수 없는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생각하지 않고 믿는다.
그러나 2층으로 올라가면 지도층들은 그 모순을 알지 않겠는가?
그래서 스님들 특히 학생들 학문이 높으신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 두 기둥 사이의 모순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을 금기로 삼고 있다.
질문하지 않고 믿는는 것이다.
기독교인 역시 두말할 필요도 없이 성경 말씀을 믿는 사람들이다.
성경 말씀이 하나님께서 우리 주신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 내용을 믿는 사람들이다.
기독교 신자라고 하면서 그 말씀을 제쳐놓고 예배당에 가서 내 욕구하는 대로 기도하고, 원하는 것만 내가 받으려고 한다.
그것은 무당에게 가서 굿하는 사람과 똑같다.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
우리 믿음의 대상인 성경도, 불교가 말하는 무아사상과 윤회사상의 두 기둥처럼 유사한 이야기를 똑같이 하고 있다.
성경도 인간을 가리켜서 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지는 존재 안개라고 표현한다.
여러분 안개가 멋지게 피어있는데, 안개의 실체가 있습니까?
해만 뜨면 없어진다.
성경은 또 인간을 연기라고 표현하는데 뭔가 실체가 있는 것 같은데, 순간적으로 없어진다.
성경은 또 인생을 입김이라고 말한다.
한겨울에 유리창을 향해서 입김을 후 뿜으면 입김이 쏠린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순식간에 없어진다.
그러니까 성경이 인간들아 너희들이 뭔지 아니? 너희들은 연기야, 안개야, 입김이야, 오늘 있다가 내일 시드는 들풀이야..
이것은 무아와 똑같다.
내가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런데 성경은 또 한편으로 우리에게 영원을 이야기한다.
영원한 생명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 속에 접속하고 그 생명을 누릴 수 있다고 선언한다.
이것이 얼마나 모순처럼 느껴지는가?
내가 후 불어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무아와 같은 입김이라면 내가 어떻게 영원을 누릴 수 있겠는가?
내가 영원한 존재가 될 수 있다면 내가 어떻게 안개일 수 있고 내가 입김일 수 있겠는가?
불교처럼 분명히 모순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모순처럼 보이는 두 기둥 사이에서 그 어떤 모순도 느끼지 않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성경에는 모순처럼 보이는 이 두 기둥을 연결하는 브리지(bridge 교량)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성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창세기 1장1절이다.
이것이 성경의 첫 머리 첫 구절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1: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첫 구절이 네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태초, 하나님, 천지, 창조, 이 네 단어는 우리의 이성과 지성으로는 도저히 100% 이해 불가능한 단어이다.
태초가 언제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여러분 과학자들은 고작 해야 80년, 90년 사는 인생인데 마치 살아본 것처럼 태초가 100억만 년 전 200억만년 전 이렇게 쉽게 얘기한다.
그런데도 오차가 100억만 년인데 그렇게 쉽게 얘기한다.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 하나님을 인간의 지성과 이성으로 하나님의 100% 알 수 있는가?
그럼 하나님 아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반려견 유행 시대가 되었다.
반려견 아이들이 참 주인 집 주인 침대에서 자면서 인간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한번 생각을 해보자.
반려견이 '아 우리 주인이 나를 인간처럼 대접해서 침대에서 재우네 나를 사랑하네 나한테 주는 한 끼의 이 캔 값이 웬만한 사람들이 밥 먹는 짜장면 값보다 더 비싸네. 그래서 나는 우리 주인을 완전히 알아'
여러분 가능한가?
개의 지능으로 그 주인인 인간을 100% 이해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만약에 개가 나는 내 주인을 100% 이해했다고 단정하는 순간부터 그 개는 더 이상 주인을 알 수 없다.
개에게 주인은 사랑의 대상이이요, 순종의 대상이요, 자기가 재롱을 떨어뜨려야 할 대상이다.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인데 그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100% 이해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그 하나님이 천지 인간만물을 창조하셨다.
어떻게 창조하셨는가에 대해 인간은 잘 모른다.
여러분 제가 만약에 화재로 인하여 화상을 입었다고 해보자.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불에 타 없어진 제 피부를 인조 피부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 못한다.
엉덩이든 허벅지든 제 어느 몸속의 부위 피부를 뜯어서 거기에 이식해야 한다.
왜 이 피부를 어떻게 만드는지 창조의 비밀을 인간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첫머리에 네 글자는 인간의 지성과 이성으로 모두 이게 불가능한 단어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증언하신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성으로 절대로 100%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 사랑의 대상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해야 될 대상이요, 하나님은 우리가 믿어야 될 대상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 그분이 천지만물과 나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분으로부터 온 것이다.
내가 어디서부터 왔는가 그 답이 너무나 명쾌하다.
내게 생을 명하신 그분으로부터 나는 나왔다.
세 번째는 그분이 나를 지으셨으므로 그분이 나를 책임지신다.
여러분 자동차 고급 자동차일수록 생산자가 자동차를 판매하고 나면 철저하게 애프터 서비스를 한다.
세상의 생산자도 자기가 만든 제품에 대해서 철저하게 책임을 지는데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인간에 대해서 책임을 지시지 않겠는가?
당연히 책임지시는 것이다.
그 다음 교훈은 그분이 내게 생을 명하신 분이시므로 내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두 말할 것도 없이 그분 품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마지막 교훈은 그분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분이 나에게 생을 명 하셨으므로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신 성경 말씀 하나님 말씀이 온통 인생사용설명서 혹은 인생해설서라는 것이다.
여러분 오늘날 고가의 전자제품 또 자동차 얼마나 고급으로 잘 만드는가?
여러분들이 고가의 제품을 구입했을수록 사용 설명서를 더 열심히 숙지하지 않겠는가?
사용설명서를 숙지하지 않으면 고가의 제품을 망가뜨린다.
왜 사용 설명서를 숙지는가?
그 사용 설명서는 그 제품을 만든 생산자의 설명서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부터 사용하는 제품에 대해서 그 생산자 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 사용 설명서대로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이 고가의 제품을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오래 가장 아끼고 사용하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 어떤 고가의 제품을 갖고 있든지 상관없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고가의 제품보다 여러분의 인생이 얼마나 더 가치 있는가?
자동차는 평생에 몇 번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인생은 일생이라고 그런다.
한일(一) 자 인간은 이생(二生)이 아니다.
인생은 석삼자 삼생(三生)이 역시 아니다.
한번 밖에 없다.
자동차처럼 교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한 번 밖에 없는 이 인생은 지금 1초 1초 내 수명이 단축되어 가고 있다.
세상 어떤 국가의 제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여러분의 인생이다.
그런데 인생 사용 설명서를 숙지하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자기 인생을 망가뜨린다.
최초의 인간이 그랬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간 아담을 만드셨다.
그리고 인생 사용 설명서를 말씀으로 주셨다.
에덴 동산에 살게 하시고 사용설명서를 말씀으로 주셨다.
교회 다니시지 않는 분들도 최초의 인간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금단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범했다는 이야기는 다 알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인생사용설명서를 묵살한 것이다.
그래서 인생이 망가졌다.
최초의 인간이 인생 사용설명서를 묵살한 결과 무엇이 있었는가?
첫째, 최초의 인간이 죄인이 되어버렸다.
인생 사용 설명서를 망가뜨리고 묵살한 결과로 인간으로 지원받은 인간이 죄인으로 망가져 버렸다.
두 번째로, 실락원(失樂園)했다.
에덴 동산을 상실했다.
에덴 동산은 원래 사람이 죽지 않는 곳이었다.
거기는 영원히 사는 곳이었다.
그런데 죄인으로 전락하고 낙원을 빼앗김과 동시에 인간은 죽음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누구도 피할 수 없이 죽게 된 것이다.
세 번째로, 첫 번째 인간이 죄인이 됨으로 말미암아 그 죄인으로부터 태어난 모든 모든 인간 후예가 본질적으로 죄인이 되고 말았다.
내가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같이 나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는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본질적으로 죄인이 되었다.
왜 아담이 인생 사용 설명서를 묵살하고 죄인이 되는 순간에 사람인 아담의 DNA가 죄인의 DNA로 바뀌었는가?
그 아담으로부터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의 DNA를 타고난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이런 얘기다.
여러분, 술 공장을 생각해 보라.
술 공장에서는 한 제품만 만들지 않는다.
술공장에서는 여러 제품이 나온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면 도수가 높은 술이냐 도수가 얕은 술이냐 고가의 위스키냐 아니면 뭐 저가의 맥주냐 그 차이 밖에 없이 술 공장에서 나오는 모든 제품은 예외 없이 술이다.
아담이 인생 사용 설명서를 묵살하고 죄인이 되는 순간에 첫 번째 인간이 죄의 공장이 되어 버렸다.
그 죄의 공장에서 생산된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나서 차이가 있다면 좀 윤리적인 죄인과 조금 비윤리적인 죄인, 박사 학위를 가진 죄인과 학교 문턱에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죄인, 피부색이 검은 죄인과 피부색이 하얀 죄인, 도덕적인 죄인 비도덕적인 죄인 그 차이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기차 위에서 하루하루 생명이 소멸되어 가고 육체의 생명이 소멸되어 간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된다.
그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죄의 공장에서 나와서 죄인의 존재가 된 추악한 인간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생명권자 구원자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을 다르게 표현하면 화장품 공장으로 생각할 수 있다.
화장품 공장에서도 여러 제품이 나온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면 비싼 제품, 싼 제품, 얼굴에 바르는 제품, 몸에 바르는 로션, 남성용 화장품, 여성용 화장품, 손가락에 바르는 것 이 차이 밖에 없다.
화장품 공장에서 나오는 것은 술이 아니라 전부 화장품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라는 생명 공장 안으로만 들어가면 도덕적이었든지 비도덕적이었던지 학문을 깊게 연구했든지 학문이 없든지 보잘것이 없는 사람이든지 명성을 지닌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모두 새롭게 생을 명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에게 새로운 생을 명하시는 생명 공장일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 이유를 4가지로 설명해 준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예수님을 4가지 용어로 소개한다.
첫 번째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구원자이시다.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히브리 말로 구원자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 와서 인간의 죄를 지적한 사람이 없다.
어느 종교도 죄 의식이 희박하다.
죄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을 향해서 '네 죄 때문에 내가 죽어줄게' 말씀하신 분도 예수 한 분이시고, 말씀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인간이 받아야 될 죄의 값을 대신 받기 위해서 십자가의 제물이 되어 당신 자신을 죽음 앞에 내어놓으셨던 분도 예수 한 분밖에 없다.
여러분은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자님이나 부처님처럼 품위 있게 돌아가실 수 없었는가?
왜 십자가에서 벌거숭이가 되고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가셨는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러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분은 결코 고상하게 돌아가실 수가 없었다.
그분의 머리에 가시관이 씌워져서 머리에 붉은 선혈이 낭자하게 흐르고, 가슴과 등짝이 채찍을 맞아서 붉은 피가 흐르고, 손에 못이 박혀서 피가 흐르고, 발에 못이 박히고, 예수가 죽었는지 아주 아직도 살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로마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서 옆구리에서 마지막 물과 피 한 방울까지 다 흐르기까지
예수님께서 그렇게 처참하게 죽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우리가 머리로 지은 죄 우리가 가슴으로도 지은 죄 우리가 손으로 지은 죄 우리가 가서는 안 될 곳을 다니면서 두 발로 지은 죄 우리가 썩어 문드러질 우리 몸뚱아리로 지은 죄 그 모든 죄의 벌을 그분이 대신 받아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루어 주시는 구원자가 그 역할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시고 죽는 것으로 끝나버렸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우리의 죄값은 용서받을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우리 죽음의 문제가 해결 안된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로, 부활자라고 성경이 증언한다.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그렇게 돌아가셨던 예수님께서 사흘째 되는 날 죽음을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사흘째 되는 날 죽음을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 이천년 전이 언제인지 아는가?
우리나라 박혁거새가 알 까고 나왔단 나왔다고 하는 때이다.
아주 아주 옛날이다.
그런데 여러분 박혁거제가 알 까고 나왔다는 건 우리 한국 사람이면서도 안 믿는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그때 예수라는 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어떤 종교든지 그 종교를 창시한 분 혹은 그 종교가 교주로 떠받드는 분들은 반드시 무덤이 있다.
모든 종교는 자기 종교 교주의 무덤을 크게 만들면 크게 만들수록 자기 종교의 권위가 더 커지는 것처럼 왕릉보다 큰 무덤을 만든다.
부처님도 어떤가?
부처님은 나무에 시신을 올려서 다비식 불로 해서 태웠다.
그런데 그 시신에서 사리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때 부처님은 몸에서 나온 사리로 탑을 세우지 않는가?
그리고 부처님이 다비식하고 나온 진심사리로 탑을 만들면 그 탑이 신통력을 가졌다고 믿고 불도들은 그 탑에 가서 기도하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 얘기는 무엇인가?
석가모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예수님은 무덤이 없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면 그 예수님을 추종하던 무리들이 분명히 이스라엘 땅 어딘가에 왕릉보다 더 큰 무덤을 만들어 놓고 참배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덤이 없는 것은 무덤의 핵인 예수님의 시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충분 조건이 안 된다.
예수님을 못박아 죽였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자 예수님의 무덤을 지켰던 로마 군인들을 매수해서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말하지 말고 예수 제자들이 밤에 몰래 와서 예수 시체를 훔쳐서 숨겼다고 해라 거짓을 퍼뜨렸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 때에 거짓말을 한 것으로 스스로 사임을 했다.
찰스 콜슨Charles Colson 이라고 하는 미국 최고의 법률가가 닉슨 대통령의 법률 보좌관이었다.
찰스 콜슨을 비롯해서 미국 최고 엘리트 변호사들이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몰랐다는 것을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거짓으로 입을 맞췄다.
그런데 국회에서 임명한 특별검사가 신문을 시작하자 그들이 입을 짜 맞춘 그들의 증언은 단 며칠 내에 들통이 나고 말았다.
이들은 최후의 법률가들이었고 특별검사가 뭐라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지 다 각본을 짰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각각 개별적으로 신문을 받는데 며칠 만에 그들의 증언이 다 거짓이라는 사실 자체가 들통나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이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거짓은 절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 최상층부에서 권력과 부를 누리는 찰스 콜슨이 거짓 증언의 대가로 감옥에 갇힌다.
그가 감옥에 갇혀서 다시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예수부활을 외치던 사람들은 법률가 아니었다.
그들은 일자 무식꾼들이 대부분이었다.
만약에 예수가 부활하지도 않았는데 유대 유대교 지도자들이 거짓 소문을 퍼트린 것처럼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다가 숨겨놓고 우리가 부활했다고 거짓말하자라고 짰더라면 그 거짓 증언은 얼마 못 가서 들통나게 될 것이었다.
그건 거짓말이기 때문에 그 무식한 어부들이 어떻게 그 거짓을 완벽하게 지켜내겠는가?
그런데 그들은 불에 타 죽이면서도 예수가 부활했다고 외쳤다.
로마 원형 극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어 온몸이 뜯겨서 피투성이가 되어 죽으면서도 예수가 부활했다고 외치고 죽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진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에 그 예수님의 부활을 외치면서 불에 타 죽고 맹수의 밥이 되어 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찰스 콜슨이 그것을 감옥에서 깨달았다.
이 예수부활의 증언은 진짜였기 때문에 2천년 동안 이 증언이 그대로 믿어지고 지켜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형식적인 교인이었던 그가 감옥에서 다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그리스도인으로 출소해서 남은 여생은 그리스도의 사람을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전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불교의 무아사상과 윤회사상 사이에는 그 두 모순을 극복하게 해주는 교량이 없다고 그랬다.
무아사상이 진짜면 윤회사상은 불가능하고, 윤회사상이 진짜라면 무아가 아니라 나는 구체적인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성경도 인간은 안개 다 무아우와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도 성경은 영원한 생명을 약속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예수 그리스도가 교량을 했기 때문에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안개와 같은 인간이 김처럼 오늘 있다가 내일 사라져 가는 그 인간이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에게로 갈 수 있는 다리가 되도록 그분이 인간의 죄값을 대신 치르시고 사흘째 되는 날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완전한 생명의 브릿지, 생명공장이 되어주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성경은 세 번째로, 예수님을 참 인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구원자라고 해서 저 구름 위에 있는 천상의 존재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참 인간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 이 땅에 오셨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질문한다.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지? 말도 안돼'
여러분 성경 제일 첫머리 창세기 1장 1절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런데 이 네 단어는 우리 이해 밖에 있는 단어라 하지 않았는가?그래서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이라고 그러지 않았는가?
여러분 생각을 해보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라면 하나님이 처녀에게서 아이를 낳게 하실 수 있지 않겠는가?
창세기 1장1절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믿지 못할 것이 없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통해서 오신 참인간이셨다.
그 예수님은 태어날 때 쉴 방이 없어서 말구유에 누이셨다.
구유를 침대로 삼았다는 것이다.
구유라고 하는 것은 짐승의 밥그릇이다.
여러분 성화를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 갓 태어난 아기 예수를 그 구유 짐승 밥통에 이렇게 누이는 장면을 아주 광채가 빛나는 그림으로 정말 거룩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실제로 짐승의 밥통이 그렇게 거룩한 게 아니지 않는가?
짐승의 밥통은 이 세상에 가장 더러운 것 중에 하나이다.
여러분이 아무리 가난해도 여러분의 자식을 낳아서 누울 아기를 뉘일 데가 없다고 짐승의 밥통에 뉘이겠는가?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더러운 냄새가 나는 짐승의 바통을 침대 삶고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바닥 인생으로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바닦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도 알고 헤아리신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갈 때 얼마나 그럴 때가 많은가?
내가 세상에서 지금 제일 불쌍해 세상에서 누가 내 마음 알까 내 처지를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여러분을 이해하는 분이 계신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짐승의 밥통에서 태어나셨다.
세상에서 가장 계속 밑바닥 인생에서부터 시작하셨기에 그분이 이해하지 못하고 그분이 품지 못할 사람이 없다.
네 번째로, 성경은 참 인간으로 오신 그분이 참 하나님이셨다고 증언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또 질문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또 하나님일 수 있지?'
이것 역시도 질문이 안 된다.
여러분 개 새끼는 뭡니까? 개예요.
사람 자식은 뭡니까? 사람 자식은 사람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으니까 하나님이신 것이다.
여러분 인간 중에 하나님보다 더 높은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로마 황제라고 한들 하나님보다 더 높을 수 있겠는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셨다.
로마 황제보다 더 높은 분이셨다.
그래서 짐승 밥통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가장 비천한 사람의 마음도 헤아리고 보듬어 주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의 고독도 알고 품어주시는 분이시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만의 하나님이라고 착각한다.
전혀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약한 사람만의 하나님이라고 착각한다.
그것 역시 전혀 아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님 그늘에는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국회의원인 유태인 의원, 사내드린 의원인 니고데모도 있었고
아리마 아리마대 지방에 갑부 거부 재벌 요셉도 있었다.
로마 장교 백 부장도 있었다.
높은 사람들도 있었고 낮은 사람도 있었다.
여러분 돈이 많은 사람은 높은 데 있는 사람은 높은 데 있기 때문에 선을 행하고도 의를 행하고도 욕받는 일이 많다.
세상 사람들은 다 욕하고 모함한다.
주님은 그들의 심정을 아신다.
그래서 저 짐승 밥통에서 태어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기에 그 범위가 끝에서 끝이다.
그분이 품지 못할 분이 없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누구든지 다 와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해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이 구원자, 부활자, 참 인간,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분의 연기와 안개와 입김과 같은 우리를 증언하신 하나님으로 레리게레(relegere)의 다시 연결해 주시는 생명 공장이 되신다.
그래서 그 생명공장 안에만 들어가면 내가 비윤리적인 인간이었어도, 내가 베드로처럼 갈릴리의 어부 노릇을 하면서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분의 생명을 입어 새로운 생을 명 받게 되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시지 않는 분들도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 이름은 들었을 것이다.
그 사도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은 자기 율법적 신념에 사로잡혀서 자기 신념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박해하고 잡아서 잡아서 투옥 시키는 것을 천직으로 삼던 사람이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생을 명 받았다.
그래서 그가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통해서 이렇게 고백한다.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나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어도다.'
내 몸은 똑같은 몸인데 지금 이전까지의 내 몸이 내 욕망의 도구로 내 생명을 갈아먹는 어이없는 도구였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새로운 생을 명받은 생명의 도구, 진리의 도구, 의회 병기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어떻게 예수님 안에서 그것이 가능할까?
방금 말씀드렸듯이 참구원자, 부활자, 참 인간, 참 하나님이시기에 그분 안에서만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제 말씀처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바로 바울이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영원하신 생명의 레알 리갈에 되었을 때, 그가 새로운 피조물의 인생을 살았을 때, 그 한 사람의 인생으로 인해서 로마제국의 역사가 새로워졌고 인류의 역사가 새로워졌다.
그가 태어난 날과 죽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연도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인생 역시 태어난 날과 죽은 날 사이에 짧은 하이픈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영원하신 생명 안에서 세계의 역사를 새롭게 하는 영원한 생명의 힘으로 오늘 이 시간도 남아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주님이 1984년 8월 2일 새벽 2시에 제게(이재철 목사님) 새로운 생을 명해 주셨다.
바로 그 전날 밤까지 저는 술독에 빠져 살았다.
제 이성으로는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내 아내에게 정말 좋은 남편으로 살아야 되는데... 매일매일 그와 같은 삶을 거부했다.
그러나 제 육체는 제 이성을 쫓지 않았다.
제 육체는 오후만 되면 제 본능을 쫓았다.
허구한 날 술로 제 젊음을 탕진했다.
그런데 그분이 그 84년 8월 2일 새벽 2시에 제게 새로운 생을 명해주시므로 제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그 때 제가 우리 나이로 36살이었다.
그 이후로 제가 지금 35년을 더 살았다.
제 인생을 되돌아보건대 1984년 8월 2일 새벽 2시 그 이전 36년 입김처럼 사라졌다.
제 몸이 지금 건강이 좋지 않게 하는 모든 후유증은 그 이전에 막 살았던 결과이다.
그 36년은 한순간 한 찰나로 다 없어졌다.
그 이후에 35년은 하염없이 길었다.
여러분 인생은 짧지 않다.
내 욕망대로 살려면 인생은 순식간에 끝난다.
그러나 새 생명을 명받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 영원한 생명의 레리갈레(다시 연결) 해서 살면 인생은 한없이 길어진다.
여러분들이 할 일이 한없이 많다.
여러분의 한 사람으로 인해서 한 시대의 역사, 한 부분은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다.
오늘 바로 그 분이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불러내시고 여러분에게 새로운 생을 병해 주시기 위함이다.
그 분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기 바란다.
그 분 안에서 여러분이 새로운 피조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고갱Paul Gauguin이 했던 질문을 여러분들은 당당하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내게 생을 명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에게 새생명을 명하시면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내 코끝에서 호흡이 멈추는 순간에 공동묘지를 뛰어넘어 내게 생을 명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리라
그 새로운 삶이 지금부터 시작되었다.
함께 기도했으면 한다.
'다메색 도상의 바울을 불러내시듯이 주님께서 창세 전부터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주님의 자녀들을 불러내시기 위해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시고 예배드리게 해주시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불러내어 주시는 것 감사합니다. 주님 모든 사람들이 겸손하게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해주시기를 권고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을 명 받게 해주시고 사지백체가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들의 이성과 몸이 따로 놀던 인생에서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이성이 지향하는 바 바른 삶을 쫓아 살게 해 주시고 그들의 삶이 생명의 통로가 되게 주시므로 그들이 이 땅에 있음으로 인하여 이 땅의 어둠이 밝아지게 하시고 이 땅에 누군가의 인생이 새로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새로운 생을 명 받으므로 자신들의 인생만 새로워질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정이 행복의 요람이 되게 해주시고 그들의 일터가 생명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새 생명의 새로운 행진이 오늘 이 시간부터 시작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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