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당시 유대 땅에서는 여러 언어가 상황과 대상에 따라 동시에 사용되는 다중 언어 사회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일상생활에서 가장 널리 쓰인 핵심 언어는 바로 아람어(Aramaic)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언어 환경과, 유대인들이 본래의 모어인 히브리어 대신 아람어를 일상어로 사용하게 된 배경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예수님 당시 사용되었던 언어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은 종교, 정치, 문화적 배경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크게 4가지 언어가 통용되었습니다.
아람어 (Aramaic): 백성들의 일상어였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대화하고 군중에게 설교할 때 사용한 주된 언어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달리다굼", "마라나타" 등이 모두 아람어입니다.
히브리어 (Hebrew): 유대인의 전통 언어이지만, 당시에는 주로 성전과 회당에서 구약 성경을 낭독하거나 의식을 행할 때 쓰는 종교 및 학문 언어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가톨릭의 라틴어와 유사한 위상).
그리스어 (Greek / 코이네 헬라어):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 외교, 무역, 행정에서 쓰인 국제 공용어였습니다. 이방인들과 소통하거나 비즈니스를 할 때 사용되었으며, 신약성경이 이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라틴어 (Latin): 로마 제국의 공식 언어였으나, 주로 로마 총독부, 군대, 법적 문서 등 통치 목적으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2. 유대인들이 아람어를 사용하게 된 이유 (역사적 배경)
유대인들이 히브리어 대신 아람어를 삶의 중심 언어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거대한 제국의 지배 역사와 밀연한 관련이 있습니다.
① 바빌론 유배 (가장 결정적인 계기)
기원전 586년, 남유다가 바빌론 제국에 의해 멸망하면서 수많은 유대인이 바빌론으로 끌려가 약 70년간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중동 지역)의 외교와 무역 공용어가 바로 아람어였습니다. 유배지에 동화되면서 고향을 떠난 유대인 차세대들은 자연스럽게 모어인 히브리어 대신 당시의 '영어'와 같았던 아람어를 배우고 일상어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② 페르시아 제국의 공식 행정 언어 지정
바빌론을 무너뜨린 페르시아(바사) 제국은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아람어를 제국의 공식 행정 언어(Official Aramaic)로 채택했습니다. 기원전 538년 고레스 왕의령으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을 때, 그들은 이미 아람어가 더 익숙한 상태였습니다.
③ 히브리어의 점진적 퇴조와 '타르굼(Targum)'의 등장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백성들은 성경에 기록된 히브리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 에스라서를 보면, 율법학자 에스라가 히브리어 율법책을 읽어주면 레위인들이 백성들에게 그 뜻을 번역하여 설명해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과정에서 히브리어 성경을 아람어로 구전 번역 및 해설해 주던 전통인 '타르굼(Targum)'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종교 생활조차 아람어와 깊이 밀착되게 되었습니다.
요약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에게 **히브리어는 '신앙과 경전의 언어'**였고, **아람어는 '삶과 소통의 언어'**였습니다.
수백 년간 바빌론, 페르시아 등 거대 제국의 통치를 거치면서 아람어가 중동 지역의 지배적인 공용어가 되었고, 유대인들 역시 자연스럽게 이를 모어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아람어로 복음을 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언어 환경과 아람어가 고착화된 과정에 대해 역사적, 종교적, 사회적 관점을 더해 더욱 깊이 있게 풀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당시 유대 땅은 단순한 시골이 아니라, 세 대륙(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이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제국들의 격전지였기에 언어의 분업화가 매우 정교하게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1. 아람어(Aramaic)는 어떻게 '세계 공용어'가 되었는가?
많은 분이 "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람어를 썼을까?"를 궁금해하지만, 사실 당시 아람어는 지금의 '영어'와 같은 위상이었습니다.
아람 민족의 이동과 무역: 본래 시리아 지역에 살던 아람 민족은 뛰어난 무역상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중동 전역을 다니며 상업 활동을 하면서 아람어는 자연스럽게 무역 언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시리아( can 제국)의 채택: 기원전 8~7세기, 잔인한 정복자로 유명한 아시리아 제국이 중동을 패권 장악했을 때, 외교와 행정의 편의를 위해 아람어를 공식 문서 언어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페르시아의 '국제 표준어' 확정: 기원전 6세기에 등장한 페르시아 제국은 영토가 인도에서 이집트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그들이 내린 결론은 '모든 행정 문서는 아람어로 통일한다'였습니다. 이를 역사학에서는 '제국 아람어(Imperial Aramaic)'라고 부릅니다.
요약하자면: 유대인들이 바빌론과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는 동안, 아람어를 모르면 관공서 업무를 볼 수도, 세금을 낼 수도, 다른 나라 사람과 장사를 할 수도 없는 구조였습니다. 이 과정이 수백 년 지속되면서 히브리어는 밀려나고 아람어가 '모국어'가 된 것입니다.
2. 예수님 당시 '4대 언어'의 철저한 사회적 분업
예수님 시대(기원 1세기)의 유대 사회는 상대방의 신분과 장소에 따라 쓰는 언어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를 '다중언어 현상(Diglossia)'이라고 합니다.
3. 왜 히브리어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종교 언어로 남았는가?
유대인들에게 히브리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어(Lashon HaKodesh, 거룩한 언어)'였습니다. 나라를 잃었어도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성경을 필사하고 읽을 때는 반드시 히브리어를 고집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포로 귀환 이후(기원전 5세기경), 백성들이 히브리어를 읽어도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타르굼(Targum)의 제도화: 회당에서 랍비가 히브리어 성경을 한 구절 읽으면, 옆에 있던 통역관이 아람어로 구구절절 풀어서 설명해 주어야 했습니다. 이 아람어 구전 번역본을 '타르굼'이라고 합니다.
성경 속 증거 (네헤미야 8: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 이때 '뜻을 해석하여'라는 말이 바로 히브리어를 아람어로 통역해 주었다는 뜻입니다.
4. 예수님의 사역과 아람어의 중요성
예수님이 아람어를 사용하셨다는 점은 그분의 사역 방향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엘리트 지식인들(그리스어나 고전 히브리어에 능통한 자들)만을 위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갈릴리의 어부, 세리, 창녀, 가난한 농민들과 소통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고 늘 쓰던 '투박하지만 친숙한 갈릴리 사투리가 섞인 아람어'로 천국 복음을 비유로 설명하셨던 것입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신약성경을 당시 국제어인 '그리스어'로 기록하면서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 가장 강렬하고 생생한 순간만큼은 아람어 원음 그대로를 그리스 문자로 음차하여 남겨두었습니다.
"탈리타 쿰(Talitha koum)" -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마가복음 5:41)
"에파타(Ephphatha)" - "열려라." (마가복음 7:3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Eloi Eloi lema sabachthani)"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가복음 15:34)
"아바(Abba)" - 아람어로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아빠"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이렇게 부르며 기도하셨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이 아람어를 쓰게 된 것은 제국들의 압제라는 아픈 역사적 배경 때문이었지만, 예수님은 도리어 그 백성들의 가장 낮은 언어 속으로 들어오셔서 복음을 전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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