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각 사물이 다른 사물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위치에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불행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뒤집힌 데 그 원인이 있다.
회복의 길, 하나님을 첫 번째 자리로
관계를 설정하려면 다른 모든 것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고정된 중심점이 있어야 한다.
그 중심점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이름을 알리실 때 '스스로 있는 자'(I AM)라고 말씀하셨다(출 3:14).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분이다(말 3:6).
뱃사람이 바다에서 태양 고도를 재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듯,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위치에 있을 때, 우리는 그때만 옳다.
하나님을 수정하고 그분을 우리의 모습과 더 가깝게 만들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모든 것 배후에, 모든 것 위에, 모든 것에 앞서서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다.
순서상 첫 번째시고, 지위와 신분이 비할 데 없이 높으시다.
자존하시는 하나님이 만물에 존재를 부여하셨고, 만물은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 (계 4:11).
그런데 타락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돈, 하나님과 개인적 야심, 하나님과 인간적 사랑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 보라.
그들은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떠받들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결코 첫 번째가 아니다.
가장 높은 자리가 하나님의 자리임을 우리 마음이 인정하고,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시게 하겠다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 기 전까지는 그 무엇으로도 질서가 회복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모든 것 위로 높이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우리는 세상의 행렬에서 빠져나온다.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된다.
우리 안에 새로운 마음과 힘이 형성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구별됨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진 데서 나타나는 결과일 것이다.
"하나님, 높임을 받으소서.”라는 고백(시 57:5)은 엄청난 은혜의 보화가 있는 방의 문을 여는 작은 열쇠다.
이는 우리 영혼 안에 있는 생명의 핵심이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의 생활과 입술이 함께 끊임없이 "하나님, 높임을 받으소서.”라고 말하는 데 이르러야 한다.
그러면 온갖 문제가 일시에 풀릴 것이다.
그는 의지를 발휘해 삶의 경로를 정했고, 자동 조종 장치의 인도를 받듯 그 경로를 유지할 것이다.
역풍을 만나 한동안 경로를 이탈한다 해도 영혼의 은밀한 경향에 이끌리듯 다시 제 길을 찾을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사이에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관계의 형태는, 그분이 온전히 다스리시고 우리는 전적으로 순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추구하려면 전 인격을 그분의 위격에 맞추려는 수고가 있어야 한다.
이는 우리를 다스리는 합당한 자리로 하나님을 드높이고, 창조주-피조물의 관계에 합당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며 순복하는 자리로 우리의 전 존재를 기꺼이 내려놓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원하신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넘길 때, 우리는 창조주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의 명예로운 제자리를 발견하게 된다.
인간에게 가장 심각한, 근본적인 불명예의 출처는 하나님의 자리를 부자연스럽게 찬탈한 일이다.
우리의 명예는, 훔친 왕좌를 주인께 되돌려 드릴 때 회복된다.
하나님을 모든 것 위로 높일 때 인간의 명예도 드높아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죽기까지 순복해 하나님을 온전히 높이셨다(요 7:18; 빌 2:5~11).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과 거침없이 동행하신다.
그리고 그에게 스스로 계신 하나님답게 행하신다.
이로써 가장 만족스럽고 기쁘고 행복한 삶이 이루어진다.
글 : A. W. 토저
A. W. 토저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목회자다.
타락한 세상에 하나님 사랑을 강력히 선포해 '이 시대의 선지자'로 불렸다.
「하나님을 추구 하다」, 「온전한 믿음을 추구함」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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