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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개관

칼빈주의 국가관(國家觀)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19|조회수17 목록 댓글 0

 

칼빈주의 국가관(國家觀)

세계사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교차의 흐름이라 한다. 그것은 정신사적으로, 정치사적으로 그러하다. 정치의 원형, 종교와 정치의 통일체를 우리는 멀리 헤브라이즘의 원류인 이스라엘의 신정정치에서 발견한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원형이 인간의 수중에 주어졌을 때 어째서 이렇게도 속히 와해와 실패의 비극에 그치고 말았던가? 다음으로 정치 고유의 문제성은 헬레니즘의 원천인 그리스의 도시국가에 소급한다. 플라톤의 국가론은 정치의 원리를 어떻게 논하였는가를 또 아리스토 텔레스의 친애(親愛)는 어떤 의미로, 범위는 덕(德)이며, 국가 내지 정치의 원리일 수 있는가?
민주주의적 건설은 어떠한 기초론을 요구하는가? 기독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발언해서는 안되는가? 그리스도의 요구는 사회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 방향으로 인도한다. 자유라는, 신학 이외에 가장 아름다운 이 말은 칼빈이 그의 기독교 강요중에 강조하고 그 잘못된 해석과 그릇된 적용을 깊이 경계 하였다.

▲ 국가의 기원

1) 칼빈주의에서는 국가의 기원을 아담의 범죄로부터 찾는다. 즉 인간이 죄악 상태로 빠지게 되므로 질서를 파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국가를 세우시고 정부와 관헌을 인정하시어 타락한 인간을 통치하신다는 것이 성경에 근거한 칼빈주의 국가관이다. 하나님께서 국가를 두신 것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으로서 인간의 죄를 제재하여 사회가 공적 질서를 유지하므로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도성인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교 사명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그런데 칼빈주의자들은 성경을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한 유일의 법칙으로 믿는다. 뿐만 아니라 칼빈주의자들은 국가 정치에 있어서도 성경을 표준으로 생각한다. 칼빈주의자가 성경을 유일한 표준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연과 역사를 무시하는 태고에서가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불완전하므로 진리의 표준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두는 것뿐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칼빈주의자들에게는 최후 최고의 판결을 주는 책이며 특수한 의미에서 칼빈주의자들은 정치학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 국가의 목적

1) 인간 사회에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국가의 제도를 세우고 그 국가에 권한을 주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두가지 국가를 세운 목적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인간의 삶과 사회의 행복을 기할 수 있다는 것과, 둘째는 복음으로 상실한 인간성을 회복하여 사회를 복음화하는 종교적인 목적이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국가의 권위는 선하고 거룩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기초는 직접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국가는 하나님께서 국가를 세운 목적을 상실한 잘못된 국가, 혹은 정부라 할 것이다. 아울러 그 기초는 범죄 한 인간편에 있는 것이다.

2) 칼빈은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와 천국을 동일시 하는 것을 경고했고 또 국가와 천국이 서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경고했다. 다시말해 세상 정부의 통치는 그리스도의 영적 통치와는 구분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점에서든지 양자가 서로 충돌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국가는 그 사회적 임무에 있어서 모든 사람의 공익을 위새 최선을 다하는 기구일 뿐이다.


▲ 정치의 원리

1) 정치를 수행하는 자는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 힘과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인류의 정치사는 집권자의 권력남용과 인간의 억압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정치 행사이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윤리적인 것으로서 정의에 합당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 군력은 개인과 단체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국가의 목적이며 규준이다. 한편 교회는 정치와의 관계에서 그것이 하나님 뜻에 어긋날 때 비판할 능력을 행사하는 예언자적 사명과 주체성을 확립해야 된다. 아무리 정종분리가 원칙이라 해도 교회는 정치적 폭력과 불의 등에 대해서는 강력히 비난해야 된다. 교회는 이 시대의 빛과 소금이기 때문이다.

2)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의 서문을 유명한 불란서 국왕 프란시그 1세의 헌사로 시작하였는데 그중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그러나 폐하여! 여사(如斯)한 변명에서 폐하의 이러한 상념을 돌리시지 않음이 의무이실 것입니다. 특히 신의 영광이 어찌하여 차세(此世)에 있어서 손상되지 않고 있는가? 또한 신적 진리가 어찌하여 존엄을 보전할 수 있는가? 또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어찌하여 우리들 사이에 확정이 계속할 수 있는가? 이러한 중대성이 있는 문제야말로 폐하의 주의와 인식에 값있는 것이며 폐하의 왕위에 상응한 것입니다.
폐하가 진정한 왕자인 것은 폐하의 왕국 통치에 폐하 자신을 신의 사자로서 인정하는데 달려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의 영광이 정치의 목적이 되지 않는 곳에 바른 통치가 없고 오히려 그것을 찬탈이라고 부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하로서의 겸손과 그러면서 신언(神言)의 봉사자로서 위엄에 찬 이 헌사야말로 칼빈신학 일단의 지도명제(指導命題)이며 그의 정치론의 안목(眼目)이었다.

3) 그의 <기독교 강요>의 최종장인 제4권 제20장의「정치론」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제1부「정치 일반에 관하여」의 논의에서 그리스도의 영의 왕국과 국가 정치와는 아주 현격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상호간에 관련될 수 있는 것을 논술한다.(Ⅰ-Ⅲ).
제2부「정치의 경외할 제 부문에 대하여」의 상론에서
① 「상사론(上司論)」상사의 기능이 어떻게 하여 합법적인 직(職)이며 또한 신에 의하여 시인되는 것인가? 그 의무의 성질 그 권한에 대하여 논술한다 (Ⅳ-Ⅷ).
②「법에 대하여」 어떠한 법에 의하여 기독교적 정치는 규율되는가? (XIV- XVI)
③ 「인민은 법으로부터 어떤 이익을 받을 수 있는가?」또는 「인민이 상사(上司)에 대하여 어떤 복종을 해야 할 것인가?」 (XVII-XXXII)를 논술한다.

4) 칼빈은 그의 사무엘서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백성들이여,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여러분 자신을 위해 일할 위정자들을 선택할 자유를 주셨다. 그러므로 영광스러운 직책에 악인이나 하나님의 대적자들을 세움으로 이 은혜를 빼앗기지 않도록 하라”고 말이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모든 정치적 권위의 근거가 하나님께 있지 않고 백성에게 있다고 믿고 있다. 이와같이 죄로 인하여 눈이 어두워진 인간은 진리의 본질과 정치적 영역에서 인간에게 위임된 권한의 한계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정치적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결코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 국가의 권한과 권위

1) 국가는 하나님이 세우신 기구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뜻안에서 그 제한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국민은 국가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법적인 권한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자신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인간의 정부를 세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하나님의 뜻을 국민을 위하여 실현해야 한다.

2) 하나님이 주신 주권에는 새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정치적 영역에서의 국가의 주권이다. 둘째 사회적 영역에서의 주권으로서 가족, 사업, 과학, 예술 등을 들 수 있다. 이 권위는 국가의 주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여 지배하는 권위이다. 셋째, 국가에 있어서는 정부의 허가에 의하여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신적 권리(jure divino)에 의한 것이다. 교회는 독자적인 조직과 역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비슷한 방법으로 교회는 거짓과 진리를 구별하는 독자적인 은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교회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 그리고 진리의 고백으로서의 자기의 신앙고백을 선언하는 것은 국가의 신앙고백을 선언하는 것은 국가의 특권이 아니라 교회의 특권인 것이다. 만약 국가가 교회를 지배하려고 하거나 반대로 교회가 국가를 지배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엄연히 영역침해이다. 그러나 크리스챤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한 모든 일에 있어서 위정자들에게 순복해야 한다.

3) 다음은 국가 통치자나 관헌의 권위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① 정부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권위에 존속된다.
② 정부의 권위는 하나님이 통치자나 관헌에게 양도해 버린 것이 아니라 저희는 오직 하나님의 일꾼으로 있을 뿐이다.
③ 정부의 권위는 맡은 일에만 제한된다.
국민생활의 모든 영역에 미치는 것은 아니다. 가정, 교회, 학교 등 각 단체는 각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역의 주권이 있으므로 국가의 권위가 침해할 수 없고 오직 각자의 가진 영역을 넘어서 타에게 해를 끼칠 때에 공적인 유익을 위해서 간섭을 할 따름이다.
④ 통치자나 관헌은 국민에 의하여 선택되었으므로 국민의 동의를 얻어 가면서 정치, 행정을 해야 한다. 즉 국민이 감독권을 가지고 있다.
⑤ 국민은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양심을 위하여 통치자나 관헌에게 적당한 존경과 복종을 해야한다.


▲ 국민의 자유

국민이 국가로부터 보장 받아야 할 특권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국민 개인이나 교회, 교육기관, 산업기관, 자선기관 등은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려는 자들로부터 국가의 안전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② 국민이 각자의 임무수행에 요구되는 자유 확보를 위하여 국가는 필요한 모든 조건과 관계를 촉진시켜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국민이 가진 각자의 특수 분야에 절대자가 아닌 만큼 간섭해서는 안된다.
③ 국가는 국민의 물질적 복리를 위해서 국민이 자기 힘으로 생계를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의무가 있다.
④ 국가는 국민의 정신적 자유를 추진시켜야 한다. 즉 사람의 영혼의 자유이다. 이것은 언론자유, 출판자유, 종교자유를 양심의 자유에 의해서 가지는 일이다.
이상의 국민의 특권과 자유는 칼빈주의자들이 꾸준히 파수해 온 것이다. 특히 양심의 자유는 국권으로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다.


▲ 교회와 국가

1) 역사상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는 네 가지 형태가 존재해 왔다.
첫째로 구약의 신정정치와 중세의 교황 지배와 같이 교회가 국가를 지배하는 형태, 둘째로 기독교 공인 후 로마에 있었던 국가교회주의와 같이 국가가 교회를 지배하는 형태, 셋째로 황제숭배를 거부함으로써 박해를 받았던 초대 기독교와 같이 교회와 국가가 배타되는 형태, 넷째로 현대와 같이 교회와 국가가 분리된 형태이다. 현대 국가에서는 대체로 정교분리를 원칙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상호불간섭이라기보다는 서로의 기능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허하게 자기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칼빈은 교회와 국가는 각각 하나님의 주권으로부터 자체의 권위를 받은 상호 의존적인 것으로 보았다.
국가는 루터의 말과 같이 세속적인 것이 아니고 교회와 국가는 분리하는 것도 아니다.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서 서로 협력해야만 한다. 국가가 정치나 민생 문제에 권위를 가진다면 교회는 영적 문제에 권위를 가진다. 특히 칼빈은 헌법에서「성직자의 특권」을 빼고 모든 정치 행동 문제에 있어서 교역자들이 관원에게 복종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관원들은 영적 문제에 있어서는 교회의 치리 하에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물론 칼빈은 기독교 시민들로 구성된 국가를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처한 입장과 다르다. 그러나 민족복음화를 부르짖는 우리들에게는 그것이 또한 이상적인 생각이다.

3) 대한민국은 헌법에서 “①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백히 규정함으로써 정교분리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종교의 자유는 크게 신앙고백의 자유, 종교행사의 자유 그리고 종교 결사(結社)의 자유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또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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