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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개관

아리우스(Arius)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20|조회수20 목록 댓글 0

 

1. 아리우스의 생애(Arius 250?∼336?)

 

리비아에서 출생했다. 안티오키아에서 신학을 배우고 젊었을 때 메리티오스의 교회 분열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파문당했으나, 후에 용서를 받고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사제가 되었다.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장로로 있을 때 스승 루키아노스의 설을 이어 받아 그리스도의 피조성(被造性)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321년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주교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알렉산드리아 교회 회의에서 또 파문 당하고 친구인 니코메디아의 주교 에우세비오스에게로 피신하였다. 그 곳에서도 다시 자기 주장을 펴다가 325년 5월에 열린 니케아 공의회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똑같은 신성을 지녔다는 신조에 서명하기를 거절하는 아리우스를 이단자로 선언하였다. 논쟁에 패하고 정식 추방 당하고 일리리쿰으로 유배되었다. 소아시아에 있는 동료들과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의 딸 콘스탄티아의 영향력 있는 지지로 인해 아리우스는 추방 상태에서 돌아올 수 있었고, 타협신조에 동의한 뒤 교회로 다시 입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화해를 하기 바로 직전 콘스탄티노플 거리를 걷다가 쓰러져 죽었다.

 

(고대 북유럽 기독교 유례 전설 : 아리우스는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못하고 도리어 이단으로 몰려 로마에서 추방당하자 북유럽으로 가길 결심한다. 당시 북유럽에는 한참 이동 중에 있었던 게르만족이 득세하고 있었다. 아리우스는 게르만족에게 자신만의 기독교를 전하기 시작했다. 게르만족에게는 독특한 거짓말 탐지기 역할을 했던 전통이 있었는데, 바로 뜨겁게 달군 쇠를 그 사람의 손에 쥐게 하고 붕대로 감아 1주일 후 풀어보는 것이었다. 붕대를 풀었을 때 손이 말짱하면 진실이고 손이 화상을 입어 있으면 거짓이라는 것이다. 아리우슨 결국 이 절차를 거치게 되었고, 1주일 후 붕대를 풀어본 그의 손은 말짱했고 게르만 족들은 그 이후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신봉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리우스가 주장한 예수는 단순한 인간에 불과하다라는 이론은 지금도 이단이라 불리는 많은 종교들 사이에 퍼져있는 무서운 교리이다. 대표적으로 여호와 증인들이 그렇다고 한다.)

 

2. 아리우스의 사상(Arianism 아리우스 주의)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교 성직자로서, 그의 가르침 때문에 아리우스주의라고 알려진 신학사상이 생겼는데, 아리우스주의란 그리스도가 피조 되고 유한한 본성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사상으로 초기 교회의 정통교리에 도전하는 주요이단으로 비난을 받았다. 알렉산드리아 지역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금욕적· 도덕적 지도자인 아리우스는 신플라톤주의를 집대성하여 가르침으로써 많은 추종자를 얻었다. 신플라톤주의는 신성의 절대적 단일성만이 최고의 완전성을 의미한다고 강조했고, “신약성서”에 대해서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 하면서도 합리주의적인 해석을 하려고 했다.

 

4세기 초 알렉산드리아 사제 아리우스가 처음 주장한 그리스도교 이단설이다. 그는 그리스도가 실제로는 신이 아니라 피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내세운 기본 전제는 스스로 존재하며 불변하는 하나님의 유일성이다. 반면에 성자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신성은 유일한 것이어서 나누거나 전가할 수 없으며 신성은 불변하기 때문에 복음서에 나타난 성자는 하나님일 수 없다고 했다. 게다가 성자는 유한하고 존재 질서가 다르기 때문에 성부에 관한 직접적인 지식을 가질 수 없다고 했다.

 

아리우스주의를 반박한 사람들, 특히 주교 아타나시우스에 따르면 아리우스의 가르침은 성자를 반신으로 전락시켰고 성자에 대한 예배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다신론을 다시 도입했으며, 참된 하나님인 성자만이 사람과 하나님을 화해시킬 수 있다는 그리스도교의 구속 개념을 훼손했다고 논박했다.

 

이 논쟁은 니케아 공의회(325년)가 아리우스와 그의 교리를 정죄하고, 정톤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키기 위한 신조를 공포함으로써 끝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325년부터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337년까지 니케아 공의회 이후 축출되었던 아리우스주의 지도자들이 음모를 꾸며 과거에 일했던 교회와 교구로 돌아와 그들의 적들을 쫒아내려고 했는데 그들 가운데 일부는 성공했다.

 

337~350년 정통 그리스도교도들에게 호의적이던 콘스탄스는 서로마 황제가 되었고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 호의적인 콘스탄티우스 2세는 동로마 황제가 되었다. 안티오크에서 열린 공의회(341년)는 ‘호모우시온’을 삭제한 신앙 진술을 공포했다. 342년 사르디카(지금의 소피아)에서 또다른 공의회가 열렸지만 소득이 없었다. 350년 콘스탄티우스가 제국의 유일한 군주가 되자 그의 지배 하에 니케아파(정통 그리스도교)는 박해를 받았다. 그때 극단적인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성자는 성부와 같지 않다(homoios)고 선언했고, 이 ‘아노모이오스’주의자들은 357년 시르미움에서 자기들의 견해를 승인 받는데 성공했지만 성자가 성부와 비슷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온건론자들을 자극했다. 

 

콘스탄티우스는 처음에는 이 '호모이우시오스'주의자들을 지지했으나 곧 입장을 바꾸어 성자가 성부와 '같다'(homoios)고 주장한 아카키우스가 이끄는 '호모이오스'주의자들을 지지했다. 360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그들의 입장을 승인하여 기존의 모든 신조를 배척했고, '우시아'(ousia:본질 또는 물질)라는 용어를 거부했으며, 성자는 '그를 낳은 성부와 같다'고 하는 신앙 진술을 공포했다. 콘스탄티우스가 죽은(361) 후 서로마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정통 그리스도교는 그 입장을 강화했다.

 

동로마(아리우스파) 황제 발렌스(364~378 재위)가 정통파 그리스도교도들을 박해했지만 카이사리아의 바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의 가르침이 널리 퍼진 뒤에 동로마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호모이우시오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니케아파와 근본적으로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라티아누스(367~383 재위)와 테오도시우스 1세(379~395 재위) 같은 황제들이 정통파 견해를 옹호하자 아리우스주의는 무너지고 말았다.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제2차 공의회에서는 아리우스주의를 금지했고 니케아 신조를 승인했다.

 

이로써 제국 안에서 이단설은 뿌리뽑혔지만, 아리우스주의는 7세기말까지 일부 게르만 부족들 사이에서 계속 존속했다. 오늘날에도 일부 유니테리언파가 그리스도를 단순한 인간으로 전락시키기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또한 그가 성부와 동일한 신성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아리우스주의자들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그리스도론도 아리우스주의의 한 형태이다. 그들은 아리우스를 '여호와의 증인' 운동을 시작한 찰스 타즈 러셀의 선구자로 여긴다.

 

3. 평가 및 느낀점

 

아리우스주의는 알렉산드리아 제자였던 아리우스의 기독론을 말한다. 이 이론은 325년 제 1차 니케아 회의에서, 381년 제 1차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정죄되었다. 이 견해와 이어지는 논의들은 반 세기 이상 전 로마 제국을 흔들었으며, 더욱 나쁜 것은 교회를 분열시켰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리우스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에 이단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성경의 가르침은 삼위일체를 주장하고 있다(마 28:19, 고후 13:13). 이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인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신성 주장 - 마 8:29, 빌 2:6, 딛 2:13, 인성 주장 - 요 11:33, 행 7:56, 롬 5:15, 고전 15:21, 딤전 2:5 등).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아리우스의 주장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안타까운 것은 아리우스주의가 여호와의 증인의 모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거짓 예언, 반성경적 도서의 발간, 그리고 진리에 대한 왜곡을 서슴지 않는 이단이다. 그들의 가르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며 비성경적이다. 성경을 조금도 해석을 잘못하여도 아니 조금도 자기 생각에 치우치게 되면 이런 엄청난 일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이런 이단들에 대해 현혹되지 않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똑바로 정신차리고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할 것이다.

 

4. 참고문헌

 

- 『초대교회사』 유스토 L. 곤잘레스 저, 서영일 역, 은성출판사

- 『교회사』 차종순 저, 한국 장로교 출판사

- 인터넷 네이버. “아리우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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