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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개관

초대 교회사의 연대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20|조회수14 목록 댓글 0

 

교회사는 초대교회사와 중세교회사, 종교 개혁사, 근대 교회사, 등으로 구분할수 있다.

 

그런데 초대 교회사는 대체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시작으로하여 590년 그레고리1세가 교황으로 등장까지로 취급을 한다. 이 시기는 로마의 박해아래 기독교가 생존을 위한 필사적 투쟁을 감수한던 것을 찾을수 있다.

 

이때 속사도들과 변증가들은 기독교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오랜 밖해속에 콘스탄티누스황제는 313년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를 합법적인 종교로 공인하였다. 그후 기독교는 379-395년 데오도시우스 제위때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되어 신앙의 자유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로마교회는 590년까지 이단과 분파, 이교도들의 도전에 맞서 성경의 정경성과 기독교의 신조등 교리의 체계화를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삼위일체와 기독론같은 신학적인 논쟁으로 극한 대립으로인해 끝내 로마교회는 동서교회1)로 분리되고 말았다.

 

중세 교회사는 590년부터 그레고리1세의 등장 이후 종교 개혁이 일어났던 1517년까지를 중세 교회라고한다. 그레고리 1세가 제1대 황재로 취임하는 것을 시작으로 중세교회는 성직자에 의해 집행되는 세례(유아세례) 견진(입교문답) 고해성사, 매주일성찬, 임종자에게하는 종부성사 혼배성사, 신부에게하는 서품의식과 같은 7성례중심의구원론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시기에1054년 십자군 전쟁으로 인하여 교회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분열이 되었다.

 

중세 교회가 가장 영적인 교회가 되어야 했는데 중세 교회는 오히려 가장 타락하고 부패한 시대가되고 말았다.

근대교회는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에서부터 현대까지를 가리킨다. 그러나 근대교회는 내용상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근대 교회를 다시 종교개혁사와 근대교회사로 구분하여 취급하기도 한다.

 

대체로 종교 개혁시대는 루터와 칼빈 그리고 쯔빙글리와 같은 개혁자들이 활동했던 나라들을 중심으로해서 17세기이후 개신교의 청교도 운동과 경견주의 운동, 복음주의 운동을 중심으로 한다. 그리고 근대 교회사는 18세기이후 20세기 초까지로 말한다.

 

이때에는

성경 비평학이나 자유주의신학, 혹은 신정통주의 신학, 해방신학, 민중신학,등이 다양하게 발전되었다.

 

역사를 뒤돌아 보면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문제가 되어 왔던 것은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초기 로마 통치시대에는 국가가 교회를 완전히 지배하여 교회를 억압했었고 313년 기독교가 자유하였을때에는 교회를 이용하여 교회는 국가의 정책을 따라 이끌림을 받았고 마침내는 그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세교회의 약 1000년(590-1517년)동안에 교회는 국가적 지배를 벗어나 국가 위에 굴림하였으나 교회는 외형적으로 대부분 의식에 치우치게 되었고 교황은 국가 권력을 모두 장악했으나 극도로 부패하고 타락하게 되고 말았다.

교회가 국가를 장악했다면 국가를 믿음안에서 이끌고 가야 할텐데 오히려 그 권력을 이용하여 교황의 위치가 하나님의 위보다 더 높게 평가되어 교황의 지시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위에 있으니 타락하고 부패될 수밖에 되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때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은 교황청의 부패와 타락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95가지 조항을 내세워 1517 종교를 개혁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종교 개혁은  성공하였고 이로 인하여 개신교가 태동하여 1648년 뿌리를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1648년에서 1800년까지는 국가와 교회가 완전히 분리되는 기간이었다.

국가와 교회가 분리 되어야할 이유는 교회와 국가 분리되지 못한다면 교회와 국가는 늘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1776년 공포된 미국의 독립헌법과 1789년 프랑스 혁명에 잘 명시되어 있다. 1800년대 이후부터 국가와 교회는 서로 간섭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종교 생활에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의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게 되었고 그 영향은 세계나라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 초대교회사의 位置

 

기독교 초기 500년동안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고난과 박해를 잊지 않으시고 이 땅의 제국과 통치자들을 물리치시고 고난받던 이들에게 승리의 기쁨과 소망을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는 전 교회사의 기초요 모판이다.

 

초대교회 500년사는 말할 수 없는 고난과 박해속에서도 순교의 발자취를 발견할수 있다. 고난중에서도 인내하며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사도들의 신앙적 교훈은 초기 성도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고난중에도 승리하게될 그날을 기다리며 로마의 박해와 배교자들과 이단자들이 등장했던 대 혼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변증자자들을 등장시켜 교회의 일치를 위해 헌신을 결단하게 하였다.

 

그 결과 중세 교회의 타락을 막을수 있도록 종교 개혁자들을 세워 주셨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역사는 초대교회의 기초위에 서서 신학을 정립하게 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땅끝까지 복음이 증거되게 되었다.

 

2). 初代敎會史의 시대적 區分

 

초대교회사는

①. 정신사적으로는 예수님의 죽음이후 성 어거스틴의사후 A.D430까지이고

②. 정치적으로는 A.D476년 서 로마의 멸망까지이고

③. 종교적으로는 예수님의 죽음이후 A.D590년 그레고리 대제의 등장까지이며 교회의 역사가들은 초대교회사의 구분을 그레고리1세가 교황으로 등극한 A.D 590년까지를 초대교회사에 포함한다.

 

또한 이 시기를  다시 사도시대와,사도후시대, 그리고 니케아 공의시대로 구분하는데 먼저 사도시대는 27년 예수님의 죽음이후 그의 명령을 받은 제자들이 활동하던 A.D100년까지의 기간이며, 정치적으로는 헬라와 로마제국의 통치아래 있었다. 이시기에 신약교회가 태동했으며 교회의 제도와 예배가 형성되었다.

 

사도후 시대는 A.D 100년부터 A.D 313년 기독교가 공인되기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시기에는 교회가 로마의 박해를 받았으나 교부들과 변증가들을 통하여 사도적 전통과 기독교의 합리성을 옹호했이나 많은 이단들과 분파주의들 때문에 혼란을 가져 오기도 했지만 성경의 정경을 채택하고 신조를 체계화 했으며

교회의 정치와 예배 의식들을 규정하였다.

 

A.D 313년2)

니케야 공의회(The Cooncil of Nicaea)3) 시대는 A.D 313년부터 A.D590년까지 그레고리의 등극으로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4) 가되고 이때부터 신학적 체계를 위하여 니케야공의회(325) 에베소 공회의(431), 콘스탄틴노플 공의회(The Conucil of Constantnople 553), 칼케톤 공의회(The Council of Chalcadon 451)를 통하여 신학적 체계가 더욱 구체적으로 이루어 지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선교 운동의 확장과 수도원 운동, 그리고 동서방 교부들의 신학체계가 확립되어가기 시작하였고 예배와 예전,교회의 조직화와 로마 교황의 교권강화 발전등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한 시대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초대교회의 역사는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종식하고 중세 교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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