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성경을 읽다 보면 수많은 음식과 식사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이 나그네들을 위해 준비한 송아지 고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최후의 만찬에서 나누신 떡과 포도주까지...
이런 장면들은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서 깊은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성경시대 사람들에게 음식은 생존의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공동체와의 유대, 거룩함과 정결함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이었습니다.
성경시대의 음식문화와 식사 예절을 이해하면 성경 말씀을 더욱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의 식사 시간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가족과 교제하는 거룩한 시간으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1. 성경시대의 주요 음식들
곡물 - 생명의 기초
성경시대에 가장 중요한 음식은 곡물이었습니다. 특히 보리와 밀이 주식이었고, 이를 가루로 만들어 떡을 구워 먹었습니다.
보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이었습니다.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에서도 보리떡이 등장하는데, 이는 소년이 가난한 집안 출신임을 보여줍니다.
밀은 보리보다 귀한 곡물이었습니다. 밀가루로 만든 흰 떡은 특별한 날이나 손님을 대접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떡은 밀로 만든 것을 의미했습니다.
곡물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나타내는 상징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주기도문의 기도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과일과 채소 - 약속의 땅의 풍성함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불렸지만, 실제로는 포도, 무화과, 석류, 대추야자 등이 풍성한 땅이었습니다.
포도는 가장 중요한 과일 중 하나였습니다. 생으로 먹기도 하고, 건포도로 만들기도 하며, 포도주의 원료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신 말씀은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비유였습니다.
무화과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과일로, 생으로 먹거나 말려서 보관했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서 쉬는 것은 평화와 안식을 상징했습니다.
올리브는 기름을 짜서 등불용이나 요리용으로 사용했고, 열매 자체도 중요한 음식이었습니다. 올리브 기름은 제사에도 사용되어 거룩함을 상징했습니다.
채소류로는 오이, 마늘, 양파, 부추 등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이집트의 오이와 마늘을 그리워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육류와 어류 - 특별한 날의 음식
일반적으로 고기는 일상적인 음식이 아니라 특별한 날이나 손님을 대접할 때 먹는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양고기는 가장 흔한 육류였습니다. 유목 생활을 했던 족장시대부터 양은 중요한 재산이었고, 제사에도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불리신 것도 이런 배경입니다.
소고기는 매우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대접할 때, 탕자가 돌아왔을 때 살진 송아지를 잡은 것은 최고의 환대를 표현한 것입니다.
물고기는 갈릴리 호수 근처에 살았던 사람들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많은 이들이 어부였고, 예수님께서도 물고기를 자주 드셨습니다.
율법에는 먹을 수 있는 동물과 없는 동물을 구분하는 정결 규정이 있었습니다. 돼지, 토끼, 새우, 조개 등은 부정한 동물로 분류되어 먹지 않았습니다.
2. 성경시대의 식사 문화
하루 두 끼의 식사
성경시대 사람들은 보통 하루에 두 번 식사를 했습니다. 아침에는 간단히 떡과 물, 또는 포도주로 요기하고, 저녁에 하루의 주요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 식사 개념은 있었지만 매우 간단했습니다. 들에서 일하는 농부들은 보리떡과 건포도, 치즈 등을 가져가서 먹었습니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떡을 초에 찍어 먹었다는 기록도 이런 점심 식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녁 식사는 가족이 모두 모여서 함께 하는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때 하루의 일을 나누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며,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수했습니다.
손님 대접의 문화
고대 근동 지역에서 손님 대접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거룩한 의무로 여겨졌습니다.
아브라함이 헤브론의 상수리나무 아래서 세 명의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한 것은 당시 문화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발을 씻겨주고, 나무 아래에서 쉬게 하며, 송아지 고기와 버터와 우유를 대접했습니다.
손님이 오면 집주인은 자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내어놓았습니다. 비록 가난해도 최선을 다해 대접하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사렙다 과부가 엘리야를 위해 마지막 밀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준 것도 이런 정신의 표현입니다.
공동식사의 의미
성경시대에 함께 식사하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임을 인정하고, 서로를 신뢰하며, 평화로운 관계임을 나타내는 상징이었습니다.
"떡을 함께 나누다"는 표현은 친밀한 교제를 의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을 때 바리새인들이 비판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그들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였습니다.
반대로 같은 상에서 식사하면서도 배신하는 것은 더욱 큰 죄로 여겨졌습니다. "내 떡을 먹는 자가 발꿈치를 들어 나를 쳤다"는 시편 41편의 말씀이 가룟 유다에게 적용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3. 식사 예절과 관습
식사 자세와 배치
구약시대에는 주로 땅에 앉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돗자리나 양털을 깔고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가장이 음식을 나누어주고, 나이 순서나 지위에 따라 앉는 자리가 정해졌습니다.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로마 문화의 영향으로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서 식사하는 관습이 퍼졌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요한이 예수님의 품에 의지했다는 표현도 이런 식사 자세에서 나온 것입니다.
상석과 하석의 구분이 있어서, 귀한 손님이나 연장자는 상석에 앉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고 교훈하신 것도 이런 배경입니다.
식사 전후의 의례
식사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었습니다. 이는 위생상의 이유도 있었지만, 종교적 정결을 위한 의례이기도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다고 비판한 것도 이런 관습 때문입니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가장이나 가장 연장자가 대표로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땅에서 양식을 내시는 주를 찬송하나이다"와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에도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신명기 8:10의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아름다운 땅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는 말씀이 이런 관습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식기와 조리 도구
성경시대의 식기는 주로 토기나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부유한 집에서는 은이나 금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소박한 그릇들이었습니다.
개인용 그릇보다는 큰 그릇에서 함께 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떡을 찢어서 국물이나 소스에 찍어 먹거나, 손으로 직접 음식을 집어 먹었습니다.
조리는 주로 화덕이나 화로에서 했습니다. 떡은 돌판 위에서 구웠고, 고기는 꼬챙이에 꿰어 구웠습니다. 끓이는 요리는 큰 솥을 사용했습니다.
4. 종교적 절기와 특별한 식사
유월절과 어린양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절기 중 하나로, 이집트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날에는 반드시 어린양을 잡아 구워 먹었고, 무교병과 쓴 나물을 함께 먹었습니다.
어린양은 흠이 없는 일 년 된 수컷이어야 했고, 뼈를 꺾지 않고 온전히 구워 먹어야 했습니다. 남은 것은 아침까지 두지 않고 태워 없애야 했습니다.
이 모든 규정들은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예표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뼈가 꺾이지 않으신 것도 이런 연관성을 보여줍니다.
오순절과 첫 열매
오순절(칠칠절)은 보리 추수가 끝나고 밀 추수를 시작하는 시기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때는 첫 열매로 만든 떡 두 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 절기는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수확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또한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는 사회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초막절과 기쁨의 잔치
초막절(장막절)은 가을 추수를 마친 후에 지키는 절기로, 일주일 동안 초막에서 거주하며 기쁨으로 축하했습니다. 이 기간에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풍성한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이 절기는 광야 생활을 기념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가난한 자들과 외국인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5. 예수님 시대의 식사 문화
예수님의 식사 사역
예수님의 공생애는 식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주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세리 레위(마태)의 집에서 가진 잔치,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의 식사, 삭개오의 집에서의 식사,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리아 집에서의 식사 등이 모두 의미 있는 사건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사람들이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라고 비판받으실 정도로 자주 사람들과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기적과 음식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이 음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칠병이어의 기적,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기적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기적들은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해 주시는 차원을 넘어서, 예수님께서 생명의 근원이시며 영원한 만족을 주실 수 있는 분임을 보여주는 표징이었습니다.
특히 오병이어 기적 후에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런 의미를 분명히 해주셨습니다.
최후의 만찬과 성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하신 최후의 만찬은 기독교 성찬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유월절 식사 중에 떡과 포도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시며, 앞으로 이를 행하여 당신을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로써 식사는 단순한 육체적 양식을 넘어서 영적 양식을 나누는 거룩한 의례가 되었습니다.
성경 시대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서론
성경에는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떡과 물고기, 포도주, 무화과, 꿀 같은 음식은 물론이고 잔치와 금식, 식사 장면도 자주 나온다. 하지만 현대인의 기준으로 성경을 읽다 보면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음식을 먹고 생활했는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식생활은 지금처럼 다양하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지역 환경과 계절에 맞춰 생산되는 식재료를 중심으로 생활했다. 냉장 기술도 없었기 때문에 음식을 저장하는 방식 역시 지금과 큰 차이가 있었다.
성경 속 음식 문화를 이해하면 단순히 먹거리 이상의 의미도 보이기 시작한다. 음식은 당시 사람들의 노동과 계절, 공동체 문화와 깊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성경 시대 사람들이 주로 먹었던 음식과 식사 문화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본론
가장 기본이었던 음식은 빵이었다
성경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음식은 빵이었다. 오늘날의 쌀처럼 거의 모든 식사의 중심 역할을 했다.
당시 빵은 밀이나 보리를 갈아 만든 가루로 반죽해 구웠다. 특히 보리는 비교적 재배가 쉬워 일반 서민들이 많이 먹는 곡물이었다. 반면 밀은 조금 더 귀하게 여겨졌다.
성경에서 “일용할 양식”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빵 문화와 관련이 깊다. 빵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기본 식량이었다.
가정에서는 직접 곡식을 빻아 반죽을 만들고 화덕이나 뜨거운 돌판 위에서 빵을 구웠다. 오늘날처럼 부드럽고 다양한 형태의 빵이라기보다는 납작하고 단단한 형태가 많았다.
또한 누룩 없는 빵은 유월절과 연결되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이스라엘 백성이 급히 이집트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반죽이 발효될 시간을 기다리지 못했다는 배경이 담겨 있다.
물고기와 과일도 중요한 먹거리였다
갈릴리 지역처럼 호수가 가까운 곳에서는 물고기가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다.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어부가 많았다는 점에서도 당시 어업이 중요한 생업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고기는 바로 먹기도 했지만 소금에 절여 보관하기도 했다. 냉장 시설이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소금은 음식 보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일도 식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포도, 무화과, 석류, 올리브, 대추야자 등이 대표적이었다. 특히 포도는 포도주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고, 올리브는 기름 생산에 필수적인 작물이었다.
무화과는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과일 중 하나다. 말려서 저장하기 쉬웠기 때문에 여행이나 장기 보관용 식량으로도 사용되었다.
또한 꿀 역시 귀한 식재료로 여겨졌다. 성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도 풍요로움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식사는 공동체 문화와 연결되어 있었다
성경 시대의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문화였다.
당시 사람들은 지금처럼 개인 접시를 사용하기보다 큰 그릇에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뿐 아니라 손님과 함께 식사하는 문화도 중요하게 여겨졌다.
특히 손님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일은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졌다. 낯선 사람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예의이자 책임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세리나 다양한 사람들과 식사하셨다는 장면도 단순한 식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당시 식사는 관계와 소속감을 상징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결혼식이나 절기 때 열리는 잔치는 매우 큰 행사였다. 평소에는 검소한 식생활을 했기 때문에 잔치 음식은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음식 저장 방식도 지금과 달랐다
냉장고가 없던 시대에는 음식을 오래 보관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필요했다.
대표적인 방법은 건조와 염장이었다. 생선이나 과일을 말리거나 소금에 절여 저장하는 방식이 흔했다. 곡물은 항아리나 저장 창고에 보관했다.
올리브유와 포도주 역시 중요한 저장 식품이었다. 특히 올리브유는 요리뿐 아니라 등불, 피부 관리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다.
또한 물이 귀한 지역에서는 깨끗한 물을 보관하는 일도 중요했다. 그래서 우물과 물 항아리는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경에서 우물가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단순히 물을 얻는 장소 이상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만남과 대화가 이루어지는 생활 공간 역할도 했던 것이다.
결론
성경 시대 사람들의 식생활은 오늘날처럼 풍족하거나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자연과 계절에 맞춰 살아가는 생활 방식이 잘 드러나 있었다.
빵과 물고기, 과일과 올리브 같은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노동과 문화, 공동체 생활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식사를 함께 나누는 문화는 성경 속 여러 장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된다.
성경 속 음식 이야기를 살펴보면 단순한 종교 기록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던 일상의 모습도 함께 보이기 시작한다.
FAQQ1. 성경 시대 사람들은 고기를 자주 먹었나요?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고기를 자주 먹기 어려웠다. 특별한 절기나 잔치 때 먹는 경우가 많았다.
Q2. 포도주는 왜 성경에 자주 등장하나요?
포도 재배가 활발했고, 물보다 보관이 쉬운 음료였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Q3. 당시 사람들은 음식을 어떻게 보관했나요?
주로 말리거나 소금에 절이는 방식으로 저장했으며, 곡물은 항아리나 창고에 보관했다.
성경 속 식(食) 문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세 가지 요소가 ‘의(衣), 식(食), 주(住)’이다. 의식주는 지리와 기후, 민족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 자료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우리의 의식주는 성경 속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식주와 큰 차이가 있다. 때문에 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상황을 올바로 알려면 시대와 공간의 다리를 건너 당시의 의식주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식’ (食) 은 모든 인간에게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욕구이다. 같은 나라라도 지방마다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다채롭게 펼쳐지는 문화이기도 하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식문화를 사용한 다양한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식’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세 가지 요소가 ‘의(衣), 식(食), 주(住)’이다. 의식주는 지리와 기후, 민족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 자료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우리의 의식주는 성경 속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식주와 큰 차이가 있다. 때문에 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상황을 올바로 알려면 시대와 공간의 다리를 건너 당시의 의식주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식’ (食) 은 모든 인간에게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욕구이다. 같은 나라라도 지방마다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다채롭게 펼쳐지는 문화이기도 하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식문화를 사용한 다양한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식’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누룩 넣은 빵, ‘유교병’은 왜 성전에서 금지됐나?
인류의 식문화는 ‘쌀 문화권’과 ‘밀 문화권’으로 나뉜다. 벼 농사는 관개시설로 물을 공급하고 피를 뽑는 등의 작업에 밀 농사에 비해 2배 이상의 노동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쌀 문화권의 문명은 가족주의, 공동체주의를 발전시켜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형성했다. 반면 밀 농사는 자연강우만으로 가능하며 소요되는 노동력이 적다. 지력을 크게 소비하므로 반드시 휴경이 필요하다. 따라서 밀 농사권의 문명은 개인주의와 대규모 밀을 사고 파는 상업 발전으로 이어졌다.
가나안과 메소포타미아 등이 있는 고대 근동 지역은 모두 밀 농사권에 해당한다. 우리가 읽는 개역 성경이 번역되던 당시, 선교사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빵을 주식으로 먹는다는 말이 이해가 안되는 것을 고려하여 ‘빵’을 ‘떡’으로 번역하였다. 이 번역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모든 ‘떡’이라는 단어는 빵에 해당한다.
곡물은 날것 상태로는 소화가 어렵고 몸에 많은 에너지를 주지 못한다. 그러나 곡물을 구우면 소화가 훨씬 쉬워지고 에너지 전달이 용이해지며, 더구나 누룩을 넣어 빵으로 발효시키면 훨씬 부드러워지며 맛도 더 좋아진다. 고대에는 포도주 찌꺼기나 물로 반죽해서 발효시킨 보리, 빵 반죽에서 일부를 떼어내 발효시킨 것을 누룩으로 사용하였다. 이 누룩을 사용한 빵을 ‘유교병’이라고 한다. 오늘날 ‘페타 빵’이라고 부르는 근동 지역의 쫄깃한 빵을 가리킨다. 누룩을 넣은 빵은 훨씬 맛있고 부드럽지만 쉽게 부패된다. 그래서 성전에서는 누룩을 넣은 빵은 엄격히 금지됐다(출 23:18, 34:25, 레 10:12), 긴급한 상황이나 음식 보관이 용이치 못한 경우에도 누룩 없는 빵을 먹었다(출 12:34, 신 16:3).
고기 요리
구약 시대에는 레위기에 기록된 정결법에 따라서 정한 것만을 먹을 수 있었다. 가장 흔히 먹는 육류는 메추라기나 닭 등의 조류였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를 먹고 싶다는 불평을 듣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추라기는 우리나라의 메추라기와 동일한 종으로, 본래 무리를 짓는 철새이다. 20cm 남짓의 작은 몸집으로 대륙 사이를 오가는 메추라기는 맞바람을 만나면 더 날지 못하고 땅에 빽빽하게 착륙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이 진을 친 광야로 수만 마리의 메추라기가 내려오는 장관이 떠오른다. 닭은 가축화가 쉽고 달걀을 제공해줄 뿐 아니라 고대 사회에서 새벽을 알리는 시계의 역할을 했기에 고기 이상의 가치를 가졌다.
조류 이외의 대표적 육류는 소, 양, 염소였다. 돼지는 굽은 있으나 새김질을 하지 못하는 부정한 짐승이라 먹지 않았다(신 14:8). 잡식성이라 버려진 것을 먹어치우는 개와 돼지는 지저분하고 혐오스러운 짐승으로 여겨졌다(마 7:6, 벧후 2:22, 참고-눅 15:15-16). 반면, 대부분의 이방인들은 음식물 찌꺼기를 처리하고 많은 단백질을 공급해주는 돼지를 귀히 여기고 우상에 제물로 바쳤다(사 65:4, 66:17).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돼지고기를 더욱 혐오하게 만들었고, 훗날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지성소에 돼지피를 뿌린 사건은 마카비 혁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결한 짐승인 소나 양, 염소는 고급 식재료로 여겨졌고, 그 중 송아지 고기는 최고로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사용되었다(창 18:8, 눅 15:23). 치즈나 버터 역시 일찍이 보급되었다(삼상 17:18, 삼하 17:29). 양과 염소 고기 중 양 꼬리는 최고의 부위로 여겨졌다. 이스라엘의 양은 꼬리가 매우 굵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책에서는 ‘가나안 지역의 양은 꼬리가 엄청나게 굵어 목자들이 작은 수레를 만들어 달아놓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기름진 양 꼬리는 당시 사람들에게 양의 힘과 능력이 모여있는 곳으로 생각되어 가장 귀한 부위로 여겼다(출 29:22, 레 3:9).
예수님의 제자들 대다수는 어부였지만 사실 생선은 이스라엘 민족에 친숙한 식재료가 아니었다. 굽고 소금과 레몬즙을 뿌려 빵과 함께 먹기는 했지만 주식은 아니었다(눅 24:42, 요 21:9-13).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에는, 생선을 잡자마자 염장이나 훈제, 혹은 젓갈을 만들어 유통했다. 생선을 주로 잡는 갈릴리 바다의 어부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했지만, 보존 처리된 생선의 상품성은 내륙지방으로 갈수록 급증하였다. 주후 1세기 로마의 역사가 플루타크는 ‘로마에서의 훈제 생선 한 수레는 양 백 마리의 가치와도 같다’라고 표현하였다.
과실
버릴 것이 없는 올리브
올리브는 그야말로 버릴 것이 없는 필수적인 식물(食物)이었다. 올리브 나무는 생명력이 매우 강해 적은 강우량에도 잘 자라며, 수명이 200~1,000년에 달하고, 수명이 다해도 그 나무 줄기에서 새로운 줄기를 내며 삶을 이어간다. 보통 올리브 밭 인근에는 대규모의 기름 짜는 틀을 만들어 온 마을이 공용으로 사용했다. 이 틀은 큰 바퀴 모양의 연자맷돌로, 수확한 올리브를 수 차례 으깨며 기름을 짜냈다.
이스라엘에서는 일반적으로 네 차례 거듭하여 올리브 기름을 짜냈다. 가장 가벼운 돌을 올려 처음 짜낸 기름은 최상급의 기름으로 성전 금촛대를 밝히거나 왕과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을 때 사용하였다. 이 기름은 맑고 순수하여 등잔에 불을 밝혀도 그을음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처음 짜낸 찌꺼기에 더 무거운 돌을 올려서 두 번째로 짜내는 기름은 식용으로 사용하였으며, 세 번째로 짜내는 기름은 가정의 등잔을 밝히거나 화장품, 약품의 용도로 사용했다(참고-전 9:8, 마 25:8, 막 6:13). 마지막으로 가장 무거운 무게추로 짜낸 기름은 비누를 만들었다. 그리고 남은 찌꺼기는 가축의 사료나 땔감으로 사용하여 최후의 한 방울까지 버리지 않고 사용하였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감람산의 ‘겟세마네’(Γεθσημανεί) 동산도 ‘기름 짜는 틀’을 의미하는 아람어 ‘가트 셰마네’(גַּת שְׁמָנֵי)에서 유래하였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이나 피와 땀을 쏟으시는 세 번의 기도를 하셨고, 마치 다 짜낸 올리브 찌꺼기처럼 탈진하신 몸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며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무화과
무화과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과실로 이스라엘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추위에 약해 우기 동안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다가, 건기가 시작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여러 차례에 걸쳐 열매를 맺는다. 첫 번째 맺힌 무화과와 그 뒤에 열리는 무화과는 그 맛이 완전히 다르고 이름조차 다르다. 첫 번째 맺히는 무화과는 ‘파게’(פַגֶה)라고 하며, 두 번째 이후로 맺히는 무화과는 ‘테에나’(תְּאֵנָה)라고 한다.
처음 열리는 ‘파게’는 퍽퍽하고 맛이 없을뿐더러, 일일이 따주지 않으면 훨씬 달고 맛있는 ‘테에나’가 잘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무화과 나무 주인은 ‘파게’는 행인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마음껏 따갈 수 있도록 허용해준다. ‘파게’는 유월절 경에 열리는데, 이때는 다른 여름 과실들이 맺히기 전이라 먹을거리가 가장 부족한 보릿고개였다. 그래서 ‘파게’는 맛이 없기는 하지만, 긴 겨울을 견딘 빈민들에게 가장 사모할만한 열매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사야 28:4, 미가 7:1. 호세아 9:1에서는 ‘파게’를 간절히 사모할만한 대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무화과에 대한 이해는 예수님의 무화과나무 저주사건(마 21:18-19, 막 11:12-14)을 해석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파게’와 ‘테에나’를 모두 ‘무화과’라고 번역해버리면, 예수님께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아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를 무자비하게 저주하신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여기 예수님께서 찾으셨던 무화과는 ‘파게’이며, 당시는 ‘테에나’의 때가 아니었다. 잎은 무성하지만 처음 열리는 무화과 ‘파게’조차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는 뿌리로부터 마르는 저주를 받고 말았다(마 21:20-22, 막 11:20-21).
꿀처럼 단 대추야자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꿀’이 모두 벌꿀인 것은 아니다. 히브리어로 ‘꿀’은 ‘데바쉬’(דְּבַשׁ)인데 삼손이 찢어버린 사자의 몸에서 찾은 꿀(삿 14:8-9), 요나단이 지팡이로 찍어 먹었던 꿀(삼상 14:27) 등 아주 적은 경우만 벌꿀이다. 나머지 ‘데바쉬’는 종려나무 열매인 대추야자 과즙을 의미한다. 대추야자 과즙은 당도가 꿀만큼이나 높으며, 열매 밖으로까지 흘러 넘친다. 게다가 종려나무는 생명력이 아주 강해 약간의 강우량만 있어도 이스라엘 곳곳에서 자라났다. 그래서 종려나무는 승리와 번영, 평화를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졌으며, 종려나무의 히브리어 ‘타마르’는 오늘날도 이스라엘 전역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자 이름이다(참고-창 38:6, 삼하 13:1, 14:27).
단순한 술 이상, 포도주
고대 이스라엘에서 포도주는 매우 특별한 음료였다. 이스라엘 지역에서 포도는 주로 태양력 8월경에 수확을 시작하는데, 건기의 막바지로 가장 덥고 건조한 시기이다. 오랜 건기 동안 저장해둔 물이 바닥난 상황이며, 새벽이 아니고는 맺힌 이슬조차 석회가 스며들어 함부로 마실 수 없게 된다. 이때 포도의 수확과 함께 포도주 틀에서 밟아서 만드는 포도주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해갈의 기쁨이었다(참고-삿 9:13, 전 10:19).
요리 과정과 식사
목재가 풍부한 우리나라와 달리 고대 근동에는 목재가 매우 귀했다. 따라서 목재만으로 불을 때기 쉽지 않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로 말린 짐승의 변이나, 올리브를 짜고 남은 찌꺼기 등에 불을 피웠다(참고-겔 4:12-15). 불을 피우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상시 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화덕을 공용으로 사용했으며, 각 집에서는 마당에서 불을 피우고 냄비를 올려 요리했다.
맷돌은 조리에 필수적이었다. 마을에는 한 개 이상의 연자 맷돌을 설치해서 대량의 밀을 갈 때 공용으로 사용하였고, 집집마다 손으로 돌리는 맷돌을 구비하였다. 연자 맷돌은 나귀나 소의 힘으로 돌려서 한 시간에 약 8~10kg의 밀을 갈 수 있었고, 가정용 맷돌은 그 1/10 정도를 갈 수 있었다. 1인당 하루 필요한 밀의 양을 약 500g 정도로 볼 때, 10명 가족이 있는 집에서는 적어도 8시간 이상 맷돌을 갈아야 했다. 그러니 맷돌 소리는 식사를 준비하며 간간이 들리는 것이 아니라,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들리는 소리였다. 그래서 성경에서 ‘맷돌 소리가 끊어진다’는 것은 완전한 패망을 상징한다(렘 25:10, 계 18:22).
식사 자세는 우리 생각과 완전히 다르다. 고대 근동에서는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ㄷ’자 모양의 ‘트리클린니움’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 오른손으로 밥을 먹는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에, 주로 왼손을 베개에 기대고 우측을 위로 하여 비스듬히 엎드렸다. 따라서 상석에 엎드린 사람을 기준으로 등쪽에 위치한 사람이 가장 말석이 되며, 상석 바로 우편에 있는 사람은 상석에 엎드린 사람 품에 기대는 자세가 된다. 요한복음 13:23, 25이나 21:20의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다’라는 표현을 볼 때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요한이 바로 이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요한 건너편에서 머리짓으로 신호를 보냈던 베드로의 자세는 요한의 바로 맞은편 자리임을 알 수 있으며(요 13:24), 예수님께서 빵을 찍어 건내주실 수 있는 근거리에 가룟 유다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요 13:26-30). 이러한 배경을 알고 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실제 식사 장면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근동에서 일과의 대부분은 음식 재료를 수확하고, 조리하며, 저장하는 데 사용하였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말씀하신 것은 당시 상황에서는 아주 파격적인 말씀이었다(마 6:25, 31, 눅 12:22, 29). 연평균 강우량이 턱없이 부족하고 건기의 작열하는 태양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걸맞은 음식을 준비하시고 부족함이 없는 삶을 예비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는 결코 육의 양식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다. 영의 양식 또한 마찬가지다. 보이는 가나안 땅에서도 온전한 양식을 준비해주신 하나님께서 구속사의 모든 진행 과정 가운데에도 영육간에 우리를 배불리 먹이실 뿐 아니라, 마침내 구속사를 완성하시는 순간에 사망을 멸하시고 원수의 앞에서 오래 저장했던 포도주와 기름진 것으로 잔치를 베풀어주시는 신령한 역사가 있을 것이다(시 23:5, 사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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