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의 명칭
출25:8-9
지난 시간에 우리는 성막의 기능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오늘은 성막의 명칭입니다. 성막의 명칭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령 여러분이 저를 부를 때는 목사이지만, 집에서는 가장이요, 남편이요, 아버지라고 불러지고, 제 부모님은 저를 아들이라 하고, 어릴 때 공부하던 아이들은 저를 친구라고 합니다. 이처럼 성막은 그 성막을 보는 방향에 따라 여러 가지가 됩니다.
1. 장막입니다.
출25: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여기 장막이란 ‘오텔’이라 하여 텐트의 의미입니다. 이 명칭이 성경에 약 130회 나옵니다. 이 명칭은 일반적인 건축 양식에 따라 부른 것입니다. 이 장막은 짐승의 가죽으로 지어져 있어 하나님 거하시기에는 심히 누추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기 거하겠으니 장막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귀한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장차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입니다. 우리 육신이 곧 장막입니다(고후5:1-4). 그러므로 성막의 명칭 하나까지도 다 의미가 있습니다. 나아가 또 장막이라 한 것은 우리의 몸을 성전 삼고 하나님께서 거하실 것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이 성막 자체가 바로 복음입니다.
2. 성막입니다.
출26:30 “너는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원어로 ‘미쉬칸’인데 거처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약 100회가 나옵니다. 거처인데 왜 성막으로 번역했는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모두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주님이 계시기에 거룩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피 값으로 사서도 거룩하지만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으로 거룩해 집니다. 그러므로 거룩하려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심령이 하나님의 거처되기에 충분한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넓은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넓은 마음은 내가 죽을 때 이루어집니다.
3. 회막입니다.
출29:43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회막이란 모이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12지파는 회막을 중심으로 모였고 회막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회개하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거기서 사람을 만나고 거기서 제사하고 재판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회막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회중 가운데 함께 하셨습니다.
이것은 두세 사람이라도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신 우리 주님을 예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생활을 중심해서 살아야 합니다. 모든 행사의 날짜를 정할 때도 교회생활을 생각하며 잡아야 합니다. 이번에 가까운 교회 목사님 소천하실 때도 3일장을 치면 주일입니다. 그러나 2일장은 토요일에는 화장이 안 되기 때문에 4일장을 하여 월요일에 장례식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회막은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라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4. 증거막입니다.
민1:53 “레위인은 증거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왜 증거막입니까? 그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과거에 하셨던 말씀도 잊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재판 할 때 증인들이 거기 하나님 앞에서 선서하며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듯 그 곳에서 하나님의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증거막입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천국의 비밀을 증거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증거막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가 떠나서는 안 되고, 좀더 좁혀서 우리 심령도 성령의 증거가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눈에 뭐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항상 믿어지고 항상 깨달아지고 항상 기억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증거입니다. 살후1:10에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했듯 믿어지는 것이 성령의 증거입니다. 여러분의 심령도 믿어지는 증거막이 되시기 바랍니다.
5. 성소라고 했습니다.
출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성소란 거룩한 성막이 있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호렙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 모세야 모세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셨습니다. 바로 성막이 그런 곳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짐승의 피 즉 장차 예수 피 공로가 아니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께서 계시는 집임을 믿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두려움과 떨림을 가지고 교만함과 세속의 신발을 다 벗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를 거룩하고 경건한 신앙으로 만들어줍니다.
6. 법막입니다.
대하24:6 “이스라엘의 회중이 법막을 위하여”
왜 성막을 법막이라고 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법 십계명 돌비가 법궤에 안치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법막 되신 예수 안에 성령의 법이 있을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안에 살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명칭이란 이름에서 끝나지 않고 거기에 귀한 복음이 담겨 있습니다.
7. 하나님의 집입니다.
삿18: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왜 성막이 하나님의 집입니까? 하나님과 관계된 집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곳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이곳에서 말씀하시고, 이 곳에서 말씀하시고, 이 곳에서 하나님께 제사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거하십니다. 성막 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집이예요. 그러므로 예수를 영접한 사람은 아버지를 모신 것입니다. 요일2:23에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물론 천국과 그 안의 모든 복까지 다 얻은 것입니다.
8. 여호와의 집입니다.
삼상1:7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앞에서는 하나님의 집이라 했는데 여기서는 여호와의 집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이 여호와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라는 명칭은 특별히 하나님의 행하심에 관계가 깊은 이름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는 전능의 하나님으로만 나타나셨지만 약속을 성취시키시기 위하여 모세에게는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집 역시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성도는 하나님께서는 도구 삼으사 귀한 구원 사역에 쓰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늘 그런 마음 자세를 가지고 대기하고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9. 세상에 속한 성소입니다.
히9: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본래 성소는 하늘 성소가 원형입니다. 그런데 지상의 성소는 모세가 구속의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서 그 형태를 본 떠서 만든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성소란 하늘의 성소를 간접적으로 암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성소로서 이 땅에 오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성소이시지만 그 공로로 우리 각인도 하나님을 모신 성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시지만 우리 안에 계십니다.
10.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행7: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이 하나님의 처소라는 명칭에는 다윗이 자기 처소를 건설했지만 성전은 짓지 못한 죄송함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삼하7:2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이것이 다윗의 양심이었습니다. 오늘날 예배당은 성전과 동일한 계념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이러한 양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 양심은 어디서 생겼나요?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그런 양심이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서 성막을 여러 명칭에 따라 말하고 있습니다. 장막 성막 회막 증거막 성소 법막 하나님의 집 여호와의 집 세상에 속한 성소 하나님의 처소가 그 명칭입니다. 우리 모두 이 명칭에 맞게 하나님 잘 경외하며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을 모신 집으로 부족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성막의 기능
출24:34-38
(요약)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성막의 기능이란 예수님의 은혜를 시사한다.
즉 성막은 죄인이 하나님과 만나는 곳이듯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난다.
또 성막은 하나님이 누구신 줄 계시하듯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드러내셨다.
또 성막으로 인도하셨듯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생명의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다.
또 성막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보여주듯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시오 주이시다.
그리고 성막은 복음의 가장 좋은 모형이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신앙을 다시 점검케 한다.
(설교)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성막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첫 시간이니까 성막의 기능을 살펴보겠습니다. 성막의 기능은 한 마디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앞으로도 게속하여 강조하는 말씀이 되겠지만 예수님을 빼놓고는 성막 설명은 되지 않습니다.
1. 성막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임을 보여줍니다.
출25:22에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시고 싶습니까? 성막이란 본래의 단어는 ‘미쉬칸’으로 거처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이 무엇을 상징하고 그 안에 어떻게 들어가는가를 알면 하나님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성막이 누구를 상징합니까?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12).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곧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 안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담 이후 죄인된 인생 중에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도 가죽옷을 입고 하나님을 만나고,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야곱도 돌제단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모세 이후 사람들은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은 모두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것을 시사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성도는 벌써 하나님을 만난바 된 사람입니다. 더 깊이 더 온전히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2. 성막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계시해 줍니다.
왜 이 시대에 성막을 공부해야 하느냐 질문할지 모르지만 성막이 모두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히10:20에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했듯 휘장도 예수님, 제사장도 예수님, 제물도 예수님, 제단도 예수님, 구약의 모든 것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3:39에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라” 했듯이 성경 전체가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또 요4:46에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니라” 하셨듯 모세 오경의 율법이 다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그 안의 성막은 당연히 예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 3장에서 구약의 가려진 수건을 벗고 예수를 보라고 역설했습니다.
아직도 가려진 수건 가지고 성경을 보면 안 됩니다. 아직도 안식교인들은 안식일이 예수 안의 참 안식을 가리키는 줄 모르고 안식일 지켜야 구원 받는다고 합니다. 성경을 들이 대면 꼭 그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의 신령한 해석을 해야 합니다. 아직도 안식일이 예수를 말씀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골2:16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막을 통해서 예수님을 배우게 됩니다.
3. 성막은 예수 안에서 성령의 인도 받음을 보여줍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곳이었습니다. 출40:34-38에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 했습니다.
여러분 이 귀한 성령님이 어디에 계실까요? 롬8:1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의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어느 곳에나 계시지만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거기서 만나 주시고 거기서 인도해 주십니다. 성막이 성령으로 충만한 곳이듯이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성령으로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요1:16-17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으면 생명이 성령께서 다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앞서 가시며 인도하셔요. 그래서 사랑하려고 애쓰기 전에 사랑의 물결로 인도하시고 절재하려고 하기 전에 절재의 마음이 작동하고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이에요. 앞으로 될 일도 성령께서 앞서서 역사해 주셔서 미리 보여주시고 준비시키게 하십니다. 그래서 구약 성도들이 성막 생활을 잘해야 했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합니다.
4. 성막은 예수님을 중심한 신앙생활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성막 문에서 구원론을 봅니다. 번제단에서 죄론과 보혈론을 배웁니다. 등대에서 사명론을 배우고, 떡상에서 말씀과 축복론을 배우고, 분향단에서 기도론을 배우고, 법궤에서 부활론 천국론 계시론 삼위일체론을, 각종 기구에서 하나님 섬기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기타 다 열거할 수 없는 여러 진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 전체요, 성경 전체입니다. 그래서 성막 공부는 우리를 균형 잡힌 신앙생활로 인도해 줍니다. 식품에도 완전식품이 있듯이 성막만큼 모든 진리가 함축되어 있는 곳도 드뭅니다.
5. 성막은 예수 복음에 대한 가장 좋은 모형입니다.
성경에 모형론이 많이 있지요?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예수님 모형입니다. 또 홍해의 사건은 고전10장에 나오듯이 세례와 중생의 모형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범죄했을 때 구리뱀을 만들어 달았지요? 역시 십자가에 달리실 예수님에 대한 모형이었습니다. 라합의 붉은 줄도 예수님의 구원의 모형입니다. 혹은 도피성도 죄인의 도피처가 되시는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이 모형을 표상이라 혹은 예표라 이런 용어를 씁니다.
이처럼 성막은 그 구체적인 것 하나 하나가 예수님에 대한 모형입니다. 성막의 양이 예수님을 보여주는 모형입니다. 성막 안에서 제사함도 예수님이요, 성막 자체도 예수님에 대한 모형입니다. 그래서 성전의 주인은 예수요 성막의 주인도 예수요 그래서 성막을 보이는 복음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성찬식에서 떡과 잔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보이는 복음임과도 같습니다.
6. 성막은 예수님 앞에서 우리 신앙을 다시 점검하게 합니다.
고후13:5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성막 문에서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유일한 구주로 믿고 있는가를 점검합니다. 또 번제단에서 나의 죄는 무엇인가? 나의 죄를 예수님의 피로 속죄함 받은 것을 확실히 믿는가? 또 용서 받은 의인이라는 확신이 있는가를 점검받게 됩니다. 그리고 물두멍에서 나는 나이 마음을 얼마나 주의 말씀과 피로 씻어 성결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또 촛대 앞에서 나는 얼마나 빛된 생활과 사명에 얼마나 충실하고 있는가? 또 떡상 앞에서 말씀 양식을 얼마나 먹고 있으며 헌신하고 있는가? 또 분향단 앞에서 기도 생활을 얼마나 잘 하고 있는가? 등등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게 합니다.
성경의 50장이 성막론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성막에 대하여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이었고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성막에서 예수님을 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며, 예수님이 누군지 잘 가르쳐 주며,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 받는 진리를 가르쳐 주며, 성령의 인도 받는 삶과 신앙생활 전체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 모두 성막을 통해서 주님을 더 알고 잘 믿을 수 있도록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막의 다양한 명칭
1. 서론: 성막 명칭의 중요성
성막의 여러 명칭과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함
→ 성경을 읽다 보면 성막에 다양한 명칭이 등장하며, 그 이유와 차이를 아는 것이 필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성막건축을 명령함
→ "내가 그들 중에 그의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출애굽기25장 8절)
→ "너는 산에서 보인 양식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출애굽기26장 30절)
2. 성막의 첫 번째 명칭: 장막 (오헬)
장막(오헬)은 히브리어로 '텐트', '천막'을 의미함
- 성막의 겉모습이 텐트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임
- 성경에 130회 이상 등장하는 빈번한 명칭임
→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양식과 그 기구의 양식을 따라 지을지니라" (출애굽기25장 9절)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중심은 장막이었음
- 장막중심으로 생활할 때 만나, 반석의 물,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받았음
- 장막을 벗어난 삶은 불뱀과 전갈의 위협에 노출되었음
→ 성막중심으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셨음
장막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하심의 시작을 의미함
- 하나님은 이 장막안에 함께 거하시려 했음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장막을 치심으로 오셨음
-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거하시매'는 헬라어로 '스캐노'이며, 이는 ' 장막을 치다', '거주하다'는 의미임
- 구약의 장막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마음의 성전을 짓고 오실 것을 미리 보여준 모형이었음
-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 마음에 성막, 즉 장막이 세워진 것임
3. 성막의 두 번째 명칭: 성막 (미쉬칸)
성막(미쉬칸)은 '거처',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을 의미함
- 하나님이 백성들을 만나기 위해 특별히 임재하신 거룩한 공간을 뜻함
- 성경에 100회 정도 등장하는 명칭임
→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에" (출애굽기40장 34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충만하게 임함
-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영접한 자에게도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함
성도가 하나님의 성막이 됨을 강조함
- 고린도전서 3장 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구약 시대에는 장막과 성막에 하나님이 계셨으나, 신약 시대에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 안에 성전을 삼고 계심
성령의 인도하심과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제시함
- 복음으로 구원받은 감격이 충만할 때 성령의 이끌림을 받을 수 있음
- 내 인생의 중심이 내가 아닌 주님이 되어야 함
4. 성막의 세 번째 명칭: 회막 (오헬 모에드)
회막(오헬 모에드)은 '모이는 곳', '하나님과 백성들이 만나는 장소'를 의미함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기 위해 모였던 장소임
- 회막을 중심으로 12지파가 진을 치고 있었음
회막중심의 삶은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는 길임
- 회막을 떠나면 저주를 받았고, 회막중심으로 있으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셨음
모세는 회막에서 하나님 말씀을 받았음
- 출애굽기33장 9절: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하나님은 구름기둥 안에서 언제든지 말씀하셨음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심
- 디모데전서 2장 5절: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
- '중보'라는 단어는 오직 예수님께만 사용되어야 함
→ 교황, 신부, 수녀, 마리아, 목사, 일반인 등 그 누구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될 수 없음
→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는 우리가 예수님처럼 보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것임
→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할 때는 '간구'나 '대신 보고'와 같은 단어를 사용해야 함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 열림?
- 히브리서 10장 20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 예배말씀을 통해 예수님 이름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을 실제로 만날 수 있음
5. 성막의 네 번째 명칭: 증거막
증거막은 언약의 두 돌판(십계명)이 보관된 곳이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곳을 의미함
민수기 9장 15절: "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곧 증거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곧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있었으니"
- 성막이 완성될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나타났음
- 이는 내 안에서 성막이 완성되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됨을 의미함
증거막에서 현재와 과거의 하나님 말씀을 증거했음
- 과거에 주신 복음의 말씀을 계속 반복해서 듣게 하셨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진리를 세상에 증거하셨음
- 요한복음 8장 37절: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예수님의 소리를 듣는다고 하심
→ 창세전에 진리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때가 되면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심
→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에 관한 말씀이 생생하게 들림
현대 신앙인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증거하는 통로가 되어야 함
6. 성막의 다섯 번째 명칭: 법막
법막은 언약의 증거판인 율법이 담긴 법궤가 있는 곳을 의미함
- 하나님의 거룩과 언약을 나타내는 곳임
- 출애굽기25장 16절: "증거판을 궤에 둘지며"
예수님은 피로 세운 새 언약을 세우셨고, 율법아래 있던 자들을 은혜안으로 인도하셨음
- 누가복음 22장 20절: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 구약의 율법은 옛 언약이었으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새 언약을 체결하셨음
우리는 율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음
- 로마서 6장 14절: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나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음이니라"
- 율법주의의 위험성
→ 복음으로 구원받고 다시 십계명이나 옛 계명( 율법)으로 돌아가면 안 됨
→ 율법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음
속죄소에 피를 뿌려 죄가 용서받는 원리
- 율법이 있는 지성소 안에 법궤가 있지만,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림으로써 죄가 덮어지고 용서됨
- 이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고 죄를 용서받게 하는 방법이었음
행위 중심의 신앙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새 언약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삶을 적용함
- 자신이 율법아래 있는지, 새 언약아래 있는지, 행위 아래 있는지, 은혜아래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음
-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지만, 은혜로 구원받는다면 확신을 가질 수 있음
7. 성막의 여섯 번째 명칭: 성소 (미크다쉬)
성소(미크다쉬)는 ' 거룩한 것', '봉헌한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을 섬기던 거룩한 공간이었음
- 등잔대, 떡상, 분향단이 있는 곳임
- 하나님께 구별된 것을 ' 거룩'이라고 부름
- 성도, 성부, 심지어 성도가 앉아 있는 의자도 하나님께 구별되면 거룩한 것이 됨
율법적 행위가 아닌 예수님 때문에 거룩해짐을 강조함
-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하고, 그분의 사명을 받들면 거룩하다고 함
진설병을 매주 새롭게 갈아야 하는 규례는 하나님 말씀의 지속적인 공급의 중요성을 의미함
- 출애굽기40장 24절: " 성소를 향하여 진설과 등잔대를 두고"
- 성경 66권처럼 다양한 말씀을 통해 성도들을 양육해야 함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음을 강조함
- 히브리서 10장 19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 염소의 피나 자신의 행위, 노력, 능력, 회개가 아닌 예수의 피로 가능해진 것임
날마다 거룩한 삶을 추구하고 삶의 예배를 드리는 것을 적용함
8. 성막의 일곱 번째 명칭: 하나님의 집 (베이트 여호와)
하나님의 집(베이트 여호와)은 '여호와의 집'이라는 뜻으로, 예배 중심의 장소를 의미함
- 시편 122편 1절: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 예배드리러 하나님 집에 가는 것을 기뻐해야 함
백성들은 그곳에서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교제를 나누었음
- 이사야서 2장 3절: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칠 것이라"
- 하나님의 집에 가면 말씀으로 가르치심을 받을 수 있음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임
- 디모데전서 3장 15절: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게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교회를 사랑하고 세우며 공동체안에서 말씀과 교제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함
9. 성막의 여덟 번째 명칭: 하나님의 초소 (마온)
하나님의 초소(마온)는 '거처', '거주'를 의미하며, 영원히 거하실 곳을 나타냄
→ 신명기 26장 15절: "원컨대 주의 거룩한 초소 하늘에서 감찰하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광야 시절의 장막은 임시적 거처였으나, 영원히 거하실 초소의 모형이었음
- 구약의 성막은 신약의 실체인 교회의 모형임
→ 히브리서 10장 1절-2절은 구약이 아닌 신약이 '진짜'임을 반복하여 강조함
하나님의 장막은 성도 안에 함께하시는 성령으로 시작되며, 종말에는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됨
→ 요한계시록 21장 3절: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시리라"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준비하고 주님 다시 오실 날을 사모하며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을 적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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