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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개관

성령의 은사들 (The Gifts of the Spirit)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23|조회수32 목록 댓글 0

 

성령의 은사들 (The Gifts of the Spirit)

 

  1. 은사의 일반적 본질                                               

                                                                   

   성령의 은사들과 (the gifts of the Spirit) 성령의 은사 (the gift of Spir

 it) 는 구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역자주: gift라는 단수형과 gifts라는 복수형

 에 주의 하라). 전자는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성령에 부여된 초자연적 능력을

 말하고 후자는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에게 주신 것을 가리킨다(행2:33).

  바울은 세 가지 면에서 성령의 은사들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즉 첫째로 성령의

 은사는 "카리스마타" (charismata)인데 이는 성령이 주신 여러 가지 은사들을

 가르킨다 (고전12:4,7). 둘째로 성령의 역사는 "다이코나이"(deakonai)인데 이

 는 한분이신 주님을 섬기기 위ㅎ아여  주어진 여러가지 봉사(직임)을 가리킨다.

 셋째로 성령의 은사는 "에네르게마타"(energemata)인데 이는 모든 사람들 가운

 데서 역사하시는 한 분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성령의 여러 면을 가리켜 "성령의 나타나심"(the manifestation)이라

 고 하는데 이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다.                         

 

  그러면 성령의 은사의 주요한 목적은 무엇인가? 성령의 은사란 신자들을 가르

 치고 새로운 개종자를 얻음으로써 하나님의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목적을 성

 취시키는데 필요한 영적 가능성(능력)을 말한다 (엡4:7-13) 바울은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초자연적 인식 능력을 부여하는 성령의 은사들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

 씀과 지식의 말씀과 영들 분별함 등이다.

  2. 초자연적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부여된 성령의 은사들은 믿음과 병고침과 능

 력 행함 등이다.

  3. 초자연적으로 말하게 하는 능력을 주는 성령의 은사들은 예언과 방언과 방

 언 통역 등이다.

  이와 같은 성령의 은사들을 가리켜 "성령의 나타나심"이라고 한다.이 성령의

 은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주어지는 것이다. (즉 교회의 유익

 을 위하여 성령의 은사들은 주어진다)우리들이 여기서 성령의 "나타나심"을 성

 경적으로 정의를 내릴 것 같으면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

 다.

 

  2. 은사의 종류

 

  (a) 지혜의 말씀

  이 지혜의 말씀은 지혜를 언어를 통하여 발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어떤

 종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일가? 어떤 종류의 지혜를 가리키는가는 알아 보기 위

 하여 우리들은 신약 성경에서 사용된 지혜라는 말의 용법을 살펴 보는 것이 좋

 을 것이다. 이 지혜라는 말을 꿈의 해석과 슬기로운 충고를 하는 일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행7:10). 또한 지혜는 신비스러운 숫자와 환상의 의미를 발견

 하는데 나타난 지성을 가리킬 수도 있다. (계13:18,17:9) 일을 잘 처리하는 기

 술을 가리켜 지혜라고 할 수도 있다 (행6:3). 교회 밖에 있는 외인들을 잘 대하

 는 신중성을 지혜라고 할 수도 있다. (골4:5) .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는데 사용된 분별력과 기술을 가리켜 지혜라고 할 수도 있

 다 (골1:28) 경건하고 바른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행위를 가리켜 지혜라

 고 할 수도 있다 (약1:5,3:13,17).그리스도를 성공적으로 옹호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리켜 지혜라고 할 수도 있다 (눅21:15).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

 의 의무를 깨닫게 되면 그 하나님의 진리를 전할 능력과 성경을 해석하는 능력

 을 얻게 된다 (마13:54,막6:2,행6:10).

 세례 요한과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구원의 계획을 가르친 교훈을 지혜라고 할 수

 있다. (마11:19) 바울의 글에서 지혜라는 말의 뜻을 찾아 보면 전에는 숨겨져

 있던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지식을 말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구원

 을 인간에게 주신다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고전1:30,골2:3). 그러므로 지혜

 의 모든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감취어 있었다 (골2:3).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권고 속에도 잘 나타나 있다 (롬11:33)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혜의 말씀이란 지혜를 발표하여 나타낼 수 있는 초

 자연적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b) 지식의 말씀

 

  지식의 말씀이란 사실에 대하여 초자연적으로 영감된 언어를 말한다. 신약에

 기록되어 있는 "지식"이라는 말의 용법을잘 연구해 보면 지식이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지식이란 말은  다음과 같은 지식

 을 말한다. 즉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대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다 (고후2:14).

 특별히 바울은 이 지식을 가리켜 하나님께 속한 일들을 아는 지식이라고 설명하

 였다. (고후10:5,롬11:33). 또 지식이란 지성과 이해를 의미한다.(엡3:19).

 기독교인의 믿음에 관한 지식을 뜻한다. (롬15:14,고전1:5). 기독교에 대한 보

 다 깊고 보다 완전하고 보다 폭이 넓은 지식을 말한다.(고전12:8,13:28,14:6,

 고후6:6,8:7,11:6). 기독교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높은 지식을 말하는 수도

 있다. 그런데 거짓 교사들은 이와 같은 것들을 자랑한다 (딤전6:20).

 올바른 생활 속에 나타난바와 같은 도덕적 지혜를 가리키는 수도 있는데 (벧후

 1:5) 이는 다른 사람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벧전3:7).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의무에 관한 지식을 말하는 수도 있다(롬2:20,골2:3).

  그러면 지혜와 지식은 어떻게 다른가? 어떤 학자의 말에 의하면 지식은 하나님

 의 진레에 대한 통찰력을 말하는 것이요.지혜란 기독교의 기본 원리에 입각하여

 기독 교인의 신앙 생활을 잘 영위케 하는데 도움이 되는 기술을 말한다.

 데이어의 렉시콘 (The yer's Lexicon)은 지식과 지혜를 한데 취급하고 있는데

 지식은 지식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고 지혜란 행위 속에 나타난 지식이라고 정의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c) 믿 음

 

  웨이모스 (Weymouty)씨는 그의 번역한 성경 가운데 여기에 믿음이라고 하는 말

 을  "특스한 믿음" (Special Faith) 이라고 번역하였다. 물론 그가 이렇게 번역

 한 것은 여기에 기록된 믿음과 구원의 믿음을 구별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이 구원의 믿음이란 이 것 없이는 도저히 하나님을 기브시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리킨다. (히11:6)

 구원의 믿음을  가리켜 선물(gift)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곳도 있다. (엡2:8).

 그러나 이 성령 구절 속에서 의미하는 "선물"이라는 말은 행위" (works)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사용되었음을 쉽게 알 수 이따. 그러나 고린도 전서 12:9절에 사

 용된 믿음이란 말은 성령의 특수한 은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믿음의 선물이란

 그러면 무엇일가? 도날드 지 (Donald Gee)씨는 이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

 하였다.

 

  " 때때로 옛날의 신학자들은 믿음의 본질을 가리켜 '기적의 믿음'(Faith of

 Miracles) 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믿음은 하나님을 종들이 어떤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 아주 강한 능력으로 임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믿음은 보통 하나님을

 믿는 일상적인 믿음으로부터 뛰어난 것으로 저들의 영혼 속에 하나님에 대한

 확실성을 주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게 한다. 아마 우리들이 주님께서

 마가복음11:22절에서 말씀하신 믿음의 본질도 이와 같은 것일것이다. "하나님

 을 믿으라" 예수께서 한 겨자씨 만큼의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말

 씀하실 때에 그 믿음이란 이와 같은 특수한 본질의 믿음을 가리킨 것일 것이다

 (마17:20).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조금 이라고 가지고 있을 것 같으면 그는 어

 떤 이적이든지 베풀수 있을 것이다!

 

  믿음의 은사의 역사에 대한 실례를 왕상 18:33-35 과 행 3:4에서 찾아 볼 수

 있다.

 

  (d) 병 고치는 은사

 

   병고치는 은사들 (복수형으로 사용된 것은 아마 여러 가지 병을 고치는 은사

 를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이란 기도를 통하여 병든 자에게 건강을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는 것을 뜻한다. 이 병고치는 은사는 표

 적의 은사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복음에 시선을 쏠리게 하는데 특별히

 가치가 있는 듯이 보인다 (행8:6,7,28:8-10). 이 병고치는 은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의 병이라도 다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물론 병고

 치는 은사를 행사하여 병자의 병을 고칠 경우에 우선 하나님께서 허락해야만

 하고 다음으로 병든 사람의 태도와 영적 상태를 고려에 넣지 않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게서도 사람들의 불신랑으로 말미암아 그의 신유의 능력을 베푸시

 는 일에 제한을 받았던 것을 볼 수 있다. (마13:58).

  병자는 병고치는 은사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절대적으로 의존할 것은 아

 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신자들과 특별히 교회의 장로들은 병자를 위하여 기도할

 자력이 있는 것이다.(막16:18,약5:14).

 

  (e) 능 력 행 함.

  

  이 능력 행함의 요지는 능력 (Power)에 있다. (요14:12,행1:8 참조) 에베소에

 서 행하여진 특별한 기적은 은사가 나타낸 좋은 실례가 될 것이다.

 

  (f) 예 언

 

  "일반적으로 말하면 예언이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말씀을 뜻한다. 성경의 예

 언은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화상과 꿈을 통하여

 받은 멧세지를 전했던 것이다. 또는 예언이란 순간적인 자극을 받아 표현된 황

 홀하고  영감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형태의 예언의 실

 례를 성경에서 다 찾아 볼 수 잇다. 영감된 황홀한 예언은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높이는 형식을 취할 수도 있고 또는 성도들에게 권고와 영감적 위안과 격려의

 힘을  줄 수도 있다."---J.R.F

 

  예언과 보통 설교와는 구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설교란 이미 계시된 말씀을 연

 구하여 만들어 내는데 반하여 예언은 즉흥적이요 영적인 영감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예언으로 설교나 교훈을 대치할 것이 아니라 영적 영감으로 설교나

 교훈을 보총해야 한다.

 

  이와 같은 예언의 은사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예언자"라고 한다. (행15:32,

 21:9,10,고전14:29 참조). 신약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의 은사의 목적은 고전

 14:3 속에 명시되어 있다. 즉 다시 말하면 예언자는 신자들을 권면하고 덕을

 세우고 안위하는 것이다.

  예언의 은사를 통하여 나타나는 영감은 성경의 영감과 동등한 지위에 둘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들은 예언의 멧세지를 분별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다.

 (고전14:29참조). 왜 예언의 멧세지를 시험해 보거나 또는 분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 한 가지 이유는 인간의 정신이 (렘23:16 겔13:23) 하나님의 예언의

 멧세지와 혼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살전 5:19-20 속에 예언의 은사에 대하여 취급되어 있다. 보수적인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언의 멧세지를 불신하는데 까지 이르러 (20절) 저들은 성령을 소멸

 할 위험 속에 처해 있었다(19절). 그러나 바울은 저들에게 모든 예언의 멧세지

 를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고 경고하였다. (21절) 그리고 불건전한 것은  모양

 이라도 버리라고 또한 경고해 주었다.(22절)

  예언이나 방언 통역은 일인칭으로 주어질 수 있는가? 가령 예를 들면 "내 백성

 너희들에게 말씀하시는 이는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왜 그러냐 하면 어떤 일정한 멧세지의 내용을 보고 사람들은 그 멧세지를 하나

 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는 점에 대하여 의심을 이르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

 제에 대한 대답을 우리들이 갖고 있는 영감에 대한 견해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예언의 말씀은 기계적인가?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

 처럼 화자를 그저 기계적으로 사용하시는가?

  또는 예언의 말씀은 다이나미컬 (dynamical)한 방법인가? 즉 하나님께서 인간

 의 영생을 초자연적으로 각성시켜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고전14:14 참조)

 그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이성의 능력을 초월한 용어로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

 하게 하는 것인가?

  만일 하나님께서 기계적 방법에 의하여 영감을 주셨다면 자연히 일인칭을 사용

 해야만 할 것이됴 다이나미컬한 방법을 사용하셨다면 멧세지는 삼인칭으로 주어

 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가령 예를 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으로

 그를 우러러 보고 힘을 얻게 하심이라" 등등. 체험이 풍부한 많은 전도자들은

 예언의 말씀과 방언 통역은 삼인칭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고 있다.

 (눅1:67-69,고전14:14,15참조).

 

  (g) 영들 분별함.

 

  우리들은 거짓된 영감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아 왔다. 즉 거짓된 영감이

 란 인간 정신과 미혹케 하는 영들의 작용을 말한다. 어떻게 인간이 참된 영감과

 거짓된 영감을 구별할 수 있을가? 영들 분멸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예언자가

 말하는 내용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분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은사를 받은 사람은 모든 외형상의 현상을 관찰할 수 있으며 또한 영

 감의 참다운 본질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영들 분별의 은사는 교리적 면에서와

 (요1서4:1-6) 실제적 면에서 (마7:15-23) 잘 검토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같

 은 은사의 역사에 대한 실례를 요1:47-50 요3:1-3,요2:25,왕하5:20-26,행5:3,

 8:23,16:16-18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성구들은 영들 분별의 은사

 를 갖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의 영적 특징을 분별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암

 시해 주고 있다. 영들 분별의 은사와 인간성에 대한 통찰력과는 구별되어야 한

 다. 특별히 영들 분별의 은사와 타인의 결점을 찾아 내려는 정신과는 엄격히 구

 별되어야 한다.

 

  (h) 방 언 ( 여러가자 방언들)

 

  " 방언의 은사는 결코 배워서 알 수 없는 언어로 초자연적으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방언 통역의 초자연적 은사를 받은 사람들만이 이 방언의 내용을 알

 수 있다. "방언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는 듯이 보인다. 즉 하나님께만 찬양하

 는 방언과 (고전14:2)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일정한 멧세지의 방언이 있다.

 (고전14:5).은사 (Gift) 로서의 방언과 표적 (Sign)으로서의 방언을 구별해야

 한다. 표적으로서 방언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요 (행2:4) 은사로서의 방언

 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 (고전12:30).

 

  (i) 방언 통역

 

  도날드 지 (Donald Gee) 씨는 방언 통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 방언 통역의 은사의 목적은  방언하는 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황홀하고 영감된 언어인 방언을 해석하는데 있다. 이와 같은 방언하는

 곳에 모인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일상적인 언어로 방언을 통역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은 방언의 내용을 알게되는 것이다."

 

  방언 통역의 은사는 순전히 영적 작용인 것이다. 방언이란 인간의 지성을 통

 하여 표현되는 언어라기보다 성령으로부터 유출되는 언어이다. 그런데 이와 같

 은 방언을  통역하도록 영감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 통역도 영감적이

 요 즉흥적이요 황홀한 것이다. 방언이란 결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임으로 방언 통역도 역시 인간의 지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방언과 방언 통역을 한데 합할 것 같으면 예언과 대등한 것이 된다는 점을 주

 시하라 (고전 14:5 참조) 그러면 왜 예언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가?  방언이란

 불신자들에게 하나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방언의 필요성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고전14:22).

  주:롬12:6-8 과 고전 12:28 속에 열거되어 있는 여러 가지 직책도 "카리스마타"

 (charismata)의 분류 속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은사의 영

 역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3. 은사의 규율

 

  나무나 집이나 사람을 벼락쳐서 파괴시키는 번갯불과 발전소에서 발전되어 각

 가정에 공급되어 잘 이용되고 있는 전기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작용하는

 면에 있어서 양자는 상이한 것이다.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바울은 교회가 유익

 하게 이용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의 자원을 나타내 보여 주었다. 그러나 14장에서

 그는 이 은사를 교회를 파괴하는데  이용되지 않고 도리어 교회에 더을 세우는

 데 이용할 수 있도록 이 은사의 능력을 자제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자제하는

 일에 있어서 교훈이 필요했던 것이다.  고린도 전서 14장을 자세히 읽어 볼 것

 같으면 성령의 나타나심에 대한 지식이 결핍됨으로써 어떤 모임은 수라장으로

 화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수라장으로 화했던 집회를 잘 제어할  필요

 가 있었던 것이다. 고린도 전서 14장에는 자제를 위한 다음과 같은 원리가 제시

 되어 있다.

 

  (a) 조화의 가치 (5절 - 19절)

 

  고린도 교인들은 방언의 은사를 행사하는데 있어서 균형을 잃고 있었다. 아마

 방언의 은사에 극적인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

 울은 저들에게 방언 통역과 예언의 필요성을 상기시켰던 것이다. 방언 통역을

 통하여 방언으로 말하고 있는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려 줄 필요성이 있었다.

 

  (b) 덕 세움

 

  은사의 목적은 불신자를 개종케 하여 구원하며 신자들의 믿음을 격려하여 교회

 의 덕을 세우는데 있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한 것처럼 만일 외부 사람이 교회에

 들어와 통역없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들으면 방언하는 사람들을 미쳤다고 결

 론을 내렷을 것이다 (12,23)

 

  (c) 지 혜 (20절)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즉 다시 말하면 "너희들의 상식을 활용

 하하"는 뜻이다.

 

  (d) 자 제 (32절)

 

  어떤 고린도 교인들은 자제하라는데 반발할 수도 있었으리라. 우리들은  침묵

 을 지킬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들에게 임하면 우리들은 말해

 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항의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즉 다시 말하면 방

 언의 은사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자신의 방언을 자제하여 필요할 때면 하나님께

 만 방언으로 말할 수 있으리라는 뜻이다.

 

  (e)  질 서 (40절)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이 우주의 온갖 아름다움을 창조하

 신 위대한 설게자이신 성령께서 무질서한 일을 하라고 영감을 줄리가 없다.

 성령게서 능력으로 역사하실 때에 그 감화 감동하심을 받아 성령게서 복종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할  일은 삼갈 할 것이다.

  

  (f) 가르치기 쉬움

 

  36절과 37절을 볼 것 같으면 어떤 고린도 교인들은 저들의 지도자들의 비판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주1: 고린도 전서 14장을 볼 것 같으면 자제해야 할 은사의 능력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고린도 전서 14장은 성령의 나타남에 대한

 체험을 갖고 있지 못한 교회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영적 은

 사를  행사함에 있어서 궤도를 떠났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저들은 이탈할

 궤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바울이 현대 비평가들과 같이 행했더라면 그

 는 궤도로 돌아 가도록 현명하게 지도하는 대신에 영영 궤도로부터 떠나버리게

 하였을 것이다.

  2세기와 3세기경에 교회가 어떤 무절제한 방종에 대하여 반발심을 이르켰을 때

 에 저들은 극단적인 반대 방향으로 흘려 성령의 역사하실 여지를 허용치 않았다.

 이와 같이하여 교회의 열심은 식어지게 되었고 성령의 나타나심은 일반적으로

 중단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초대 교회의 역사를 볼 것 같으면 그때에 벌써 조

 직을 강화하고 확고한 신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이 교회의 조직과 신조를 강화하는 일은 이단을 막아내는데 필요했

 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직과 방해하는데 이르렀고 더 나가서는 기독교

 를 영적 생명이 약동하는 종교로부터 하나의 정통 비정통을 따지는 교권의 종교

 로 만들어 버렸다.

  리즈 (T.Ress)박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제1세기에는 성령은 그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널리 알려졌었다. 그러나 2세

 기 이후로 교회는 그의 통치력으로 교회의 통치력에 맞지않는 성령의 현상을 모

 두 악령(evil-Spirits)으로 규정지어 버렸다.

  오늘날 현대에 있어서도 성령의 교리와 역사를 알지 못하는 결과로 말미암아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성령을 무시해 버리는 경향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성령의 물줄기는  온갖 방해와 냉담과 형식주의를 뚫고 유유히 흘러 내

 려와 오늘날 다시 부흥의 능력으로 역사하고 계시다.

  주2: 우리들은 나타나심(manifestations)과 반작용(reac-tions)을 구별하지 않

 으면 안된다. 예를 들면 전구를 통하여 나타난 빛은 전기의 "나타남"이다.

 전기가 빛으로 나타나는 것은 전기의 본질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전류가 흐

 르는 전선에 감존되어 귀가 터질듯한 소리를 질렀다고 하면 그 소리는 결코 전

 기의 나타남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 그러냐 하면 전기가 소리로 나타나는 것은

 전기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전된 사람이 지른 소리를 전력에 대한 반작

 용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히 반작용이란 그 사람의 성겨과 기질의 조건에 의하

 여 결정되는 것이다. 교양이 높고 참을성이 있는 사람은 크게 소리는 지르지 않

 을 것이다. 이 법칙을 영적 능력에 적용하여 보자.

  고전 12:7-10 속에 기록되어 있는 은사의 역사는 성령의 나타나심이라고 불리

 워진다. 그러나 보통 성령의 나타나심이라고 불리워지는 많은 행위는 참으로 성

 령의 감동하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이와 같은 행동 중에 소리를 지르는

 것과 손을 드는 것과 그밖에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을 아는 지식에 어떤 실제적 가치가 있는가?

  (1)  이와 같은 지식을 갖게 됨으로써 성령의 역사를 인식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령에 역사에 대하여 비판하는 비평가들은 어떤 사람의 행동이

 품위가 없기 때문에 그는 성령의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그릇된 결론을 내

 림으로써 성령의 이와 같은 특성을 무시해 보리기 쉬운 것이다.

 이와 같은 비평가들은 전기에 감전된 사람의 흉한 모양을 보고 "전기의 작용이

 란 저런 것이 아닌데"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과 같은 것이다. 성령의 직접적인

 충격은 연약한 인간의 육체에 너무나 큰 자극을 주기 때문에 조용하고 침착하게

 행등을 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령의 특성을 알 수 있는 지식

 을  갖게 되면 자연히 성령의 역사에 반응을 이르켜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

 릴 수 있ㄷ록 격려할 수 있는 것이다. 신앙의 연조가 옅은 사람의 무절제를 비

 평하는 일은 마치 지금 걸음마를 겨우 배우고 있는 어린애가 넘어졌다고 비평하

 는 일과 꼭 같이 부당한 노릇이다.

 그러나 고린도 전서 14장에 의하여 판단해 볼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

 성들이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지성적이고 교회에 덕을 세우며 자제하는 모양으

 로 반응을 보여 주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

 기를 구하라" (고전14:12).

 

   4. 은사의 받아드림

 

  하나님께서는 은사를 주시는 일을 주관하신다. 그는 어떤 종류의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 주어야할지를 결정하는 결정권을 갖고 계신다. 그는 인간의 간섭을 받

 지 않고 또 인간이 간청하지 않드래도 임으로 은사를 주실주 있다. 그러나 일반

 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협력하여 그의 역사를 나타내신다. 또한 이 일을

 위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성령의 은사를 받고저 하는 사람들이 구

 비해야 할 필요 조건들은 어떤 것일가?

 

  (a)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

 

  우리들은 성령은 은사를 받기 위하여 우리들의 욕구를 채울려는 태도를 취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우리들은 어떤 특

 수한 은사를 받기를 원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다른

 은사를 주실 수도 있는 것이다.

 

  (b) 거룩한 포부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전14:1,12:31).  인간의 포부란 때때로 해로운 그릇

 된 방향으로 향하기 쉽다. 그러나 이 인간의 포부를 하나님을 섬기는 방향으로

 전환시켜 선용할 수 있는 것이다.

 

  (c) 강한 욕망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는 강한 욕망을 갖게 되면 항상 기도에 힘쓰게 되고 하나

 님께 복종하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된다.(왕상3:5-10,왕하2:9,10).

 

  (d) 믿 음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하여 우리들은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어떤 사람은 질

 문하였다.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우선 하

 나님의 일을 착수하고 필요하시다면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실 것을 믿는 일이 올

 바른 태도이다. 그러므로 주일 학교 교사를 교사의 직책을 완수하는데 필요한

 온갖 은사를 하나님께서부터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와 같은 마찬가지로 목사와 부흥 전도자와 평신도들도 자기의 맡은 바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은사를 받을 수 잇다고 믿어야 한다. 어떤 지위를 얻기 위한

 좋은 방도는 그 일을 위하여 준비하는 일이다. 성령의 은사를 받는 좋은 방도는

 팔장을 끼고 앉아서 하늘에서 성령의 은사가 뚝 떨어질 것을 기다리는 일이 아

 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이다.

 

  (e) 순 종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영감의 불을 소멸시킬 수 있다.(살전5:19). 그러

 므로 우리들 속에 있는 성령의 은사에 불을 늘 잘 붙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딤후1:6,딤전4:14).

 

 

  5. 은사의 시험

 

  우리들 자신의 영혼 속에서 참다운 예언이니 나을 수 있는 것과 같이 또한 마

 귀의 영감도 가능하다는 것을 성경은 인정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시험을 통해

 서 참다운 영감과 거짓된 영감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a).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에 그는 고린도 교회에서 보낸 편지를 받았는데 이 편

 지 가운데 몇 가지 질문이 들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가지를 "성령의 은사에 관

 한" 것이었다. 고전 12:3을 볼 것 같으면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그럴듯한 이유

 가 암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린도 교인들이 가졌던 어떤 집회시에 예

 언의 은사가 역사하고 있을 때에 "예수는 저주할 자"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방인의 점쟁이이나 이방 종교의 신봉자가 그 자리에 참석했다가 기독 교

 인들에게 권능이 임하여 저들이 "예수는 우리의 주"라고 신앙 고백을  하는 것

 을 듣고 이방 교도들은 마귀의 지배하에서 기독 교도글을 대적하기 위하여 "예

 수는 저주할 자"라는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중국이나 기타 다른 나라에서 선교

 한 선교사들의 선교기록을 볼 것 같으면 이와 같은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는 점

 을 알 수 있다.

  바울은 당황하고 실망 낙담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두 가지 영감 즉 하나님의 영

 감과 마귀의 영감기 있다는 점과 그 두가지의 영감의 서로 다른 점에 대하여 설

 명해 주었다. 그는 저들의 우상의 전에서 목도하고 체험한 마귀의 충동과 입신

 의 경지에 대하여 상기시겼으며 이와 같은 마귀의 영감을 우상 숭배로 사람을

 유인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고전10:20).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은 사람들을 격려하여 예수 그리스도게서 저들의 주가 되

 신다는  것을 고백케 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

 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계19:10,마16:16,17,

 요1서4:1,2 참조)

  물론 이 말씀은 인간이 앵무새와 같이 입으로만 예수를 저의 주로 시이하는 일

 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곧 이 말씀은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결코 마음 속으로부터의 확신에서 예수의 신성을 시인할 수는 없다는 의미한다

 (롬10:9 참고)

 

  (b) 실제적 시험

 

  어떤 의미에 있어서 고린도 교인들은 영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

 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고전12:1,14:12). 그러나 저들이

 한편 성령의 능력의 은사는 갖고 기뻐하면서도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은사는

 갖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저들에게는 당파심이 강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부도덕을 용납했던 것이다. 또 형제들이 서로 어

 떤 불미스러운 일을 법에 호소하여 해결지으려 했던 것이다. 어떤 자들은 주의

 몸을 분별치 못하고 성만찬에 참석하여 과음한 나머지 취하게까지 되었던 것이

 다.

  사도 바울은 저들의 얼마 전에 이방 종교 사상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으나 아직

 저들의 주위에는 많은 유혹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저들은 너무 가혹하게 판

 단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인격과 올바른 생활이 저들의 지상의 목

 표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사실을 저들에게 알려줘야  하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

 꼈던 것이다. "너희는 큰 은사를 사모하라." 고 바울이 저들에게 말하고 나서

 다음과 같은 말을 첨가하였다.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흐에게 보이리라."

 이와 같이 권구하고 나서 그는 고린도 전서 13장으로 넘어가 기독 교인의 인격

 의 최고의 특징인 경건한 사랑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서로 다른 것들을 구별하는데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방언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런데 방언을 반대하는 사람의 태도는 비성서적이

 다 (고전14:39). 최고의 은사인 사랑을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보다 좋다고 주

 장한다. 저들이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이다. 성령의 열매란 중생할 

 인간의 마음 속에 이식된 그리스도의 생명이 차차 자라나서 열매를 맺도록 발전

 하는 것을 뜻하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란 성령의 충만한 신자에게는 어느 때이든지 갑자기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요

 성령의 은사란 힘을 주시는 그의 능력을 말한다. 그렇다고 기독 교인의 인격의

 최고의 특징인 사랑을 주장하는 일이 잘못이라는 말은 아니다. 좀 납득하기 어

 려울지  모르겠으나 도덕적으로 성결의  면에 있어서 결함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성령의 은사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체험적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1)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곧 그의 인격이 완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능

 력을 받는 일과 기독 교인의 은혜의 성숙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중생과 성령 세례는 모두 하나님은 은혜의 선물이다. 곧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

 이다.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도 아직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의 인격을 성

 화시킬 필요성과 저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전시킬 필요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2) 성령의 은사를 행사한다고 반드시 성화의 능력을 소유하였다고는 할 수 없

 다. 발람도 예언의 은사를 체험하였다. 그러나 그는 마음 속으로는 돈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배신코저 했던 것이다.

  (3) 바울은 사랑없이도 성령의 은사를 소유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 주

 었다.

  사랑없이 성령의 은사를 함부로 행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중대한 결과

 과 중대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첫째, 그는 그의 인격을 잘 알고 있

 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장애물이 될 것이다. 둘째, 성령의 은사가 그에게 하등

 의 유익도 주지 못한다. 아무리 성령의 은사가 있을지라도 또 아무리 목회의

 열심히 있을지라도 아무리 성취해 놓은 일이 많을지라도 그것들로써 인격적 성

 결의 결함을 보충할 수 없는 것이다. (히12:14).

 

  (c)  교리적 시험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의 속죄 사업과 관련되어 있는 진리의 영역

 안에서 역사하는 것이다.

  성령게서 그리스도가 이미 그의 제자들에게 계시하신 진리와 모순된 행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가령 예를 들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

 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예언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성령으

 로 말미암아 예언하는 것이 아니다 (요1서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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