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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지혜서

시편 109 저주의 노래-이천우 목사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09|조회수17 목록 댓글 0

 

시편 109편 : 저주의 노래

 

 

시편의 저주시에 대한 이해

 

시편에 등장하는 저주의 노래들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약성경의 정의 개념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은 개인적인 보복을 금지합니다. 왜냐하면 보복은 여호와이신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테두리에서 본다면, 시편의 저주들은 단순히 개인적인 무죄 주장의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죄 입증을 향한 호소로서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로스(Ross)는 다음과 같이 추론합니다. “시인들은 하나님과 그의 언약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공언함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다. 의를 이루기 위한 열정적인 노력 속에서 그들의 말은 자주 저주나 악담을 포함하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팔을 부숴 뜨려 주시고(시 10:15), 그들의 이를 꺾어 주시고(시 58:6), 그들에게 그의 진노를 쏟아달라고(시 69:22-28) 기도한다. 우리는 시인들이 하나님의 신정 통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음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저주의 표현들은 개인적인 복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구약성경에는 죽음 이후에 있을 마지막 심판에 대한 분명한 계시가 없습니다. 따라서 악인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승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통치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하나님께 악한 원수들을 심판해 달라고 청함으로써 정의의 저울이 현세 안에서 균형을 잡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언약(창 12:1-3) 및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신 27-28장)은 복과 저주를 특징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원수들은 단순히 시인들을 적대하는 자들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Harman). 이 때문에 저주의 노래들은 단순히 복수의 감정이나 보복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기보다는, 도리어 ‘의로운’ 자들과 하나님 자신이 공격을 당하고 있기에 그처럼 가증스런 범죄 행위에 걸 맞는 심판이 요구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Shepherd). 그러한 상황에서는 시인들 자신의 관심보다는 하나님 자신의 관심이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시인들은 원수들에 대한 보복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맡기려는 태도를 보입니다. 언약에 기초하여 악인들을 심판하려는 하나님의 열심에 비추어 볼 때, 시편의 많은 저주들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예견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저주의 노래들은 또한 악과 불의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의 모델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악행자를 처벌하고 학대받은 자의 분노를 처리하는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김으로써 의로운 분노가 단순히 사악함으로 타락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저주의 노래들은 최종적인 해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불의의 문제는 십자가의 빛에 비추어 해석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수들을 저주하는 분노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에 의하여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4)로 드려집니다. 아처(Archer)의 다음과 같은 말은 매우 적절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함으로써 죄에 대한 자신의 혐오감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주신 후에야 비로소 성도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악인들로 하여금 잠시 동안 형통함을 누리게 하였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시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저주시로 불리는 시편 109편의 내용 파악

 

1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2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3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4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5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6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

7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

8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9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10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11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 게 하시며

12그에게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며 그의 고아에게 은혜를 베풀 자도 없게 하시며

13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

14여호와는 그의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의 어머니의 죄를 지워 버리지 마시고

15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그들의 기억을 땅에서 끊으소서

16그가 인자를 베풀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 하여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니이다

17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 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18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 속으로 들어갔나이다

19저주가 그에게는 입는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

20이는 나의 대적들이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들이 여호와께 받는 보응이니이다

21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 니 나를 건지소서

22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23나는 석양 그림자 같이 지나가고 또 메뚜기 같이 불려 가오며

24금식하므로 내 무릎이 흔들리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25나는 또 그들의 비방 거리라 그들이 나를 보면 머리를 흔드나이다

26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27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28그들은 내게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들은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

29나의 대적들이 욕을 옷 입듯 하게 하시며 자기 수치를 겉옷 같이 입게 하소서

30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많은 사람 중에서 찬송하리니

31그가 궁핍한 자의 오른쪽에 서사 그의 영혼을 심판하려 하는 자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 로다

 

저주시의 하나로 불리는 시편 109편은 무죄한 자(시인-다윗)가 목숨이 걸린 재판에 직면한 채로 고발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 이 노래의 1절은 하나님께 호소하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행된 죄악들을 보복하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신 32:35-36). 따라서 그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실 것임을 굳게 믿으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2) 2-5절은 시인이 자신을 배신하고서 거짓으로 자신을 고발한 악인들의 부당한 법적인 공격으로 고통을 격고 있음을 늘어놓습니다. 그런 그는 6-19절에서 저주를 퍼 붓는데 남 저주하기를 좋아한 그대로 그들에게로 돌아갈 저주를 표현합니다.

 

(3) 그리고 시인은 20-25절에서 자기를 비방하던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실 것을 청하며, 그들로 인해서 자신이 처한 비참한 모습을 토로합니다.

 

(4) 끝으로 30-31절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강하게 소망하는 시인은 찬양의 맹세를 통하여 자신의 노래를 끝맺습니다. 하나님은 “궁핍한 자가 오른쪽에 서사 그의 영혼을 심판하려는 자들에게 구원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오른편에 있는 자는 고발자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에 그는 확고한 구원을 보고 있습니다.

 

 

시편 109편의 해설

 

시편에는 탄식시를 비롯하여서 저주시, 감사시, 찬양시, 제왕시 등 다양한 시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저주시는 시인의 원수나 하나님의 원수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를 기원하는 언어를 특징으로 갖습니다. 저주시는 거의 항상 탄식의 노래들에서 발견됩니다. 이는 하나님께 자기들을 괴롭힌 자들에게 재앙을 쏟아 부으심으로써 원수들에게서 자기들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저주시를 보면서 의아해하며 의문을 갖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주를 선언하시는가? 이웃을 사랑하며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대적하지 말 것을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러실 수 있는가? 하는 것이죠. 더욱이 저주시에 나타나고 있는 복수(보복)의 정신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명령과 도무지 맞지 않다고 봅니다.

 

저주시는 과연 시인의 원수이든 하나님의 원수이든 그 원수 된 자들을 ‘저주’하여 보복하시는 것에 있는 것일까요?

 

저주시의 하나인 시편 109편은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이 시에는 다윗이 자신을 까닭 없이 공격하며 비방하는 자인 원수에 대하여 하나님께 저주를 구합니다. 그 내용에는 그들을 벌하여 그 누구도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말고 돌보지 말 것을, 그들의 후손마저 끊음으로써 그들에 대해서는 아예 기억조차 못하게 만들며, 급살 맞게 하고, 뼈 속 깊이 스며드는 기름처럼 철저한 저주가 말해지고 있기도 합니다.

 

다윗은 이러한 저주를 구하는 것에서 자신이 섬기는 주이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말합니다. 원수들은 자신을 보고 비웃으며 비방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여상하시니 한결같으셔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자신을 구해주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러한 분이심을 원수들이 알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원수들이 자신에게 저주를 퍼부을 지라도 그 저주는 다윗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그들에게로 되돌아갈 저주가 될 것이니, 하나님을 인하여 한없이 기뻐하며, 자신이 주의 종인 사실을 인하여 흐뭇해하며 한없이 소리 내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의 오른편에 계셔서 힘이 되시어 그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자들로부터 도리어 생명을 건져 주실 분이심을 신뢰하며 그 의존에 있기 때문입니다.

 

훗날 사도 바울은 자신이 부요한데 있을 때나 가난한데 있을 때나 즐겁게 사는 법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그가 자신이 처한 어떤 환경에서도, 곧 배부름에 있거나 배고픔에 있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만족하여 사는 법을 몸에 익혔다고 말합니다. 그 법은 자신이 누구로 말미암아 사는지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이 그리스도께서 저주시에서 시인이 의지할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원수로부터 생명의 구원에 있게 하실 분의 예언이었으며,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으므로 예언이 성취된 복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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