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다 4 (삿 11:4-10)
4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하니라 5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6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8 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9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10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복음 실은 구약강해 오늘은 “입다를 통해서 본 자아처리”에 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자아란 한문으로 나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자아처리란 나를 처리하는 것입니다. 즉 이제까지 내 중심으로 살아왔던 것을 회개하고 예수를 주로 모셨으니 이제는 온전히 주님과 그 말씀 중심으로 사는 것이 자아처리입니다. 그러니까 자아처리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주님 중심으로 사는 것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그동안 입다가 기생에 아들로 태어나 배 다른 형제들과 길르앗 관리들에게 배척당해 돕 땅에서 유리방황했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내일을 바라보며 착실히 병법과 무술을 익히고 모여오는 자들을 훈련시키며 지도자로서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말씀까지 드렸습니다.
그러한 입다에게 때가 왔습니다.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침략합니다. 그러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달려옵니다. 길르앗은 좁게는 므낫새 지파의 한 지역이지만, 넓게는 2지파 반의 요단 동편을 대표하는 이름이요,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의 최전선에서 적을 막았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을 대신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입다 앞에 무릎을 꿇는 기적 같은 일에서 자아처리의 비밀이 나타납니다.
자아처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1. 말씀 속에서 됩니다.
4절 “얼마 후에” 여기 “얼마 후”란 입다가 형제들에게 쫓겨 난지 상당한 시일이 지났을 때입니다. 또한 이 시기는 사사 돌라와 야일이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나라의 신들을 섬기고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아직 평화로운 때입니다. 아직 징계하지 않으시고 말씀으로만 하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던 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가 말씀 안에서 순종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살전1:6의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신사적이라 했습니다.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시19:7-8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했습니다. 시 1편의 말씀처럼 성경을 묵상하는 것이 자아처리의 비밀입니다.
벧전1:14에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했습니다. 순종하는 자녀, 이것이 바로 자아처리의 모습입니다.
2. 고난 속에서 됩니다.
4-6절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하니라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이스라엘이 평안했던 좋은 기회 다 보내고 하나님의 징계로 암몬 자손이 쳐들어왔습니다. 암몬은 롯의 작은 딸이 그의 아버지를 통해서 낳은 벤암미의 자손입니다. 민 21장을 보면 이 암몬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진로를 막았는데, 이번에는 이스라엘를 침략했습니다. 이스라엘에 고난이 다가왔습니다. 다급해진 길르앗 장로들이 태도를 바꾸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까지 가서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요청했습니다.
이처럼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완악한 인간은 고난이 와야 복종합니다. 예수 믿어라. 기도해라. 찬송해라. 충성하라 해도 고난 닥치기 전에는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고난이 다가오면 달라집니다. 그래서 시119:67에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했습니다. 시32:9에도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히12:8-13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언약을 맺은 다음에 바로 가나안에 들이시려고 했지만 그들이 믿지도 않고 순종하지 않았기에 40년의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히4:6에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그랬습니다.
7-8절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이처럼 환난을 당해야 잘못했다고 하면서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3. 다짐 속에서 합니다.
9-10절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여기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이 문구는 히브리인들이 하나님 앞에 맹세할 때 쓰던 문장입니다. 입다가 이렇게 맹세를 시킨 이유는 길르앗의 머리가 되게 하겠다고 해놓고 평안해지면 또 다시 배신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일을 언급하면서 맹세하게 합니다.
자아처리도 꼭 그와 같이 하십니다. 우리가 잠시 복종하는 것 같아도 평안해지면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으시고 고난을 주셨다 가져가셨다는 반복하시며 우리의 마음과 뼈골 속에 깊이깊이 새기도록 훈련하십니다. 훈련은 반복입니다. 반복 속에서 더욱 온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히5:8-9에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는데 우리야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계7:13-14에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이처럼 큰 환난 가운데 흰옷 입은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4. 은혜 받음으로 됩니다.
11절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그리하여 길르앗 백성들은 입다를 최고 통치자로 세우고 군사지휘권과 행정권을 모두 위임하게 됩니다. 그러자 입다가 하나님을 앙망하면서 이 일을 수행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처럼 헌신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은혜로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깨달을 때입니다. 갈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 받아야 주님의 뜻대로 삽니다. 빌1:20-21에 바울처럼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피 값을 주시고 사신 하나님의 것입니다(고전6:19-20). 그러므로 이제는 내 뜻대로 살거나 나를 위해서 살 권리가 없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평안한 가운데 말씀 안에서 자발적으로 순종하지 않으면 고난 속에서 우리의 자아를 처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말씀과 성령의 은혜 안에서 늘 은혜를 받아 온전히 주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가장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국강해설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