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다 5 (삿 11:12-28)
12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니 13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 하니라 14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들을 보내 15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28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가 사람을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복음 실은 구약강해 오늘은 “입다를 통해서 본 생각의 변화”에 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 그것은 바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합니다. 좋은 생각을 가지면 좋은 사람, 나쁜 생각을 가지면 나쁜 사람, 믿음의 생각을 가지면 믿음의 사람, 불신의 생각을 가지면 불신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잠23:7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사기꾼들이 어떤 속셈으로 호의를 베풀지라도 그 행위보다 그 행위의 저변에 감춰진 생각을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곧 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평안의 생각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롬8:6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이 아니라 영의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잘못된 생각을 가진 암몬 왕과 담판을 벌이는 입다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입다는 암몬과 싸우기 전에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암몬 왕에게 사자를 보내 침략의 부당성을 지적합니다. 그러자 암몬 왕은 요단 동편이 본래 자신들의 땅임을 주장하며 평화롭게 돌려달라고 위협합니다. 두 사람이 평화를 말하지만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은 잘못된 지식이 암몬 왕에게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화롭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1. 용납하신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14-17절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들을 보내 15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6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광야로 행하여 홍해에 이르고 가데스에 이르러서는 17 이스라엘이 사자들을 에돔 왕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청하건대 나를 네 땅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 하였으나 에돔 왕이 이를 듣지 아니하였고 또 그와 같이 사람을 모압 왕에게도 보냈으나 그도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머물렀더니”
여기 좋으신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민수기 20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에돔 왕에게 약속의 땅을 가기 위해 지름길인 왕의 대로를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물값도 다 내고 평화롭게 통과하겠다. 그러나 에돔 왕은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모압 역시 통과를 허락지 않아 할 수 없이 가데스로 돌아서 가게 되었습니다. 암몬은 어떻게 했을까요?
신23:3-4에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예들이니 반갑게 환영하고 격려하며 통과시켜야 함에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그들과 싸우지 않은 것은 신2:9에 “모압 광야 길로 지날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한 대로 좋으신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버리지 않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혀갔을 때 불안하고 원망스럽기도 할 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렘29:11-13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유학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 뿐입니까? 눅21:17-18에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마24:21-22에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이런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딤전2:2에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엡6:12에도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정치가들의 배후에 사탄이 조종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심 가지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평안이 옵니다.
2. 악은 미워하셔도 나를 미워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18-22절 “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돌아서 모압 땅의 해 뜨는 쪽으로 들어가 아르논 저쪽에 진 쳤고 아르논은 모압의 경계이므로 모압 지역 안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 19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당신의 땅으로 지나 우리의 곳에 이르게 하라 하였으나 20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의 지역으로 지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 치고 이스라엘을 치므로 21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의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시매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서 그 땅 주민 아모리 족속의 온 땅을 점령하되 22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족속의 온 지역을 점령하였느니라”
앞에서 말씀드렸듯 모세는 에돔이든 모압이든 암몬이든 그들이 길 통과를 원치 않자 그들과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충돌한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가 헤스본 왕 시혼입니다. 당시 시혼은 강한 나라로 모압이나 암몬 같은 나라들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시혼에게 가나안 땅에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시혼이 거절했을 뿐 아니라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치러 나와 예상치 않는 전쟁이 시작되었고 요단 동편을 빼앗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모세가 모압과 암몬의 원수를 갚아주었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모압과 암몬은 계속하여 헤스본 왕 시혼에게 지배당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암몬이 잊은 것입니다.
헤스본 왕 시혼이 악이라면 모압과 암몬은 우리 육신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악을 미워하시지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징계하셔도 우리를 노예 삼는 죄가 미워서 치신 것이지 우리가 미워서가 아닙니다. 잠22:15에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그러므로 진실로 회개하고 하나님 경외하고 살면서 불안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3.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믿음입니다.
23-24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족속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옳으냐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한 것을 네가 차지하지 아니하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것을 우리가 차지하리라”
입다는 영토권 논쟁을 일소시키기 위해 이제 하나님을 내세웁니다. 고대에는 자기의 섬기는 신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한다는 사상이 있었는데 입다는 그 사상을 이용해 암몬의 주장을 일축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셔서 얻은 땅인데 차지한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 만약 너희 신 그모스가 땅을 차지하게 했다면 너희들이 거절하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믿음을 가지면 불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삼상2:6-8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했습니다.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민간까지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중위 나자르 형제의 간증인데 소대를 이끌고 적의 동태를 파악해 정보를 제공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급한 마음이 들어 병사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기도했는데 ‘너희 병사들을 데리고 당장 이 자리를 떠나라’는 음성을 듣고 자리를 피했답니다. 그런데 곧바로 그 자리에 거대한 폭탄이 떨어져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면 어떤 순간에도 불안할 필요가 없습니다.
4.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되돌아보면 불안이 사라집니다.
25-28절 “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마을들과 아르논 강 가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주한 지 삼백 년이거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였으나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가 사람을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소유권 논쟁을 일소시키기 위해 입다는 또 다시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요단강 동편을 차지할 때도 모압과 다투지도 않았고 싸운 일도 없는데 30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이 무슨 짓이냐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었으면 진즉 있었을 텐데 없었습니다. 호소력 있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하신 일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말씀의 부재입니다. 무엇을 마실까? 먹을까? 입을까? 이런 걱정은 아직 성경을 모르고 하나님을 몰라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지막까지 멋지게 책임져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 예수님을 알 때 성경을 알 때 인간의 생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불안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용납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악을 미워하시지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하신 일은 우리에게 믿음을 줍니다. 그러므로 세상 바라보지 말고 좋으신 하나님과 그 말씀에 서서 하나님 더 잘 경외함으로 모든 불안을 벗고 참된 평안과 기쁨 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국강해설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