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역사서

입다 7 (삿 11:34-40)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10|조회수7 목록 댓글 0

 

입다 7 (삿 11:34-40)

 

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37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복음 실은 구약강해 오늘은 “입다를 통해서 본 통회의 사람”에 관한 말씀입니다. 마5:4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애통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애통이든지 사람 앞에서 애통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애통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받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애통은 죄를 슬퍼하며 회개하는 애통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것을 가슴을 찢는 것처럼 마음 아파하는 그런 애통을 드릴 수 있다면 그는 하나님이 온전히 함께 하실 사람입니다. 그래서 시34:18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했습니다.

 

사57:15에도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했습니다.

 

어떻게 진실로 통회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1.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묵상할 때 가능합니다.

 

34-35에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30-31절에서 입다가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했는데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오니 누가 먼저 맞이합니까?

 

입다의 무남독녀 외딸이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그 사랑하는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딸이었습니다. 무남독녀라는 표현은 입다의 슬픈 감정을 고조시키고 서원에 따르는 소녀의 애처로움과 장렬함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이 딸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야 하다니 꿈이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35절에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참담함에 빠졌습니다.

 

바로 그 심정이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입다의 서원과 같습니다. 이 약속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독생자를 보내실 때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그걸 알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번제로 드리라 하셨습니다.

 

이 아버지의 심정을 늘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 그 밝던 햇빛도 빛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를 사랑하시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롬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그 큰 사랑을 외면하면 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히2:2-3에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했습니다. 이처럼 나의 잘못 때문에, 내 실수 때문에, 내 허물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의 순종과 희생을 묵상할 때 가능합니다.

 

36절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훌륭한 딸입니다. 경솔한 아버지의 서원으로 희생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도망하지 않고 아주 담담하게 아버지께 순종의 자세를 보였습니다. 사적인 모습이 아니라 공적인 모습입니다. 아버지가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시기 위하여 하신 서원인데, 작은 일도 아니고 나라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 일인데 제가 어찌 피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이처럼 오고가는 온 세대의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순종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빌2:5-8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했습니다.

 

히12:2-3에도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했습니다.

 

사53:5-6에도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묵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실체도 없는 이방종교의 명상 그런 것 아닙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를 사랑하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것이 구원이고 영생이고 능력이고 거룩이고 평안입니다.

 

3. 자신의 죄악된 삶을 돌아볼 때 가능합니다.

 

37-38절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입다의 딸은 자기가 희생제물이 되는 대신 두 달간의 유예기간을 구했습니다. 그것은 친구들과 처녀로 죽음을 애곡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룸을 행복으로 여겼는데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결혼도 해보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죽게 된 것을 애석하게 여겼습니다. 입다의 딸은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도 처녀로 죽는 슬픔을 이겨내기 힘들었습니다.

 

나이 들어 믿음이 무엇이고 인생이 무언지나 안다면 쉽게 포기하거나 감사할 수 있지만 한창 희망에 부풀어 있을 어린 처녀가 무엇을 압니까? 죽는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못했을 텐데 얼마나 청천벽력 같은 일입니까?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부모보다 친구가 더 좋은 나이입니다. 이 친구들과 헤어질 것을 생각해도 눈물이 나오고 이것을 봐도 눈물이 나오고 저것을 봐도 눈물이 나오고 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회개의 감정이 이와 비슷합니다. 베드로가 닭이 울 때마다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 생각나서 울었다고 한 것처럼 삶을 돌이켜 보면서 철이 없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한 것이 생각나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부모님 마음 서운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실망을 준 것 생각하면 펑펑펑 눈물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 나와서 예배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사람들만 없으면 소리내어 울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자기가 잘못한 것이 생각이 납니다. 특히 시어머니에게 함부로 했던 것이 생각나면서 그렇게 시어머니가 불쌍하고 애처롭게 느껴지더랍니다. 이것이 회개의 영입니다.

 

그래서 계1:7에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재림만이 아니라 지금도 회개의 영으로 임하시는 우리 주님을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4. 그 은혜를 잊지 않을 때 가능합니다.

 

39-40절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입다는 서원의 절대적 성격에 의하여 그 딸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39절에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처녀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제물 측면에서 볼 때 부인이 아니고 처녀였으니 다행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가 처녀이길 원하십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만 사랑하면 처녀로 보십니다. 그 때 우리를 예수님의 신부 삼고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신랑 삼고 남은 생애 예수님만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롬12:1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딸들이 매년 입다의 딸을 생각하며 4일씩 애곡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유관순 누나를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라를 구하는 일에 희생제물이 필요한데 입다의 딸이 내 대신 희생했다는 심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매년 4일씩이나 애곡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겔9:4을 보면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이마에 표 있는 자만 빼고 모두 죽이라고 하셨습니다.그러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교회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나의 죄와 남의 죄를 위해 슬퍼하며 애통하는 사람을 특별히 인치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보실 때 통회하는 자녀는 참으로 귀한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묵상하고, 나를 위한 예수님의 그 고난을 묵상하고, 주님의 마음에 못을 박은 우리의 죄악된 삶을 뉘우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말고, 세상 사랑하지 말고, 영원히 예수님만 사랑하는 복된 신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국강해설교연구원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