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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

삼손 9 (삿 14:10-14)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15|조회수13 목록 댓글 0

 

삼손 9 (삿 14:10-14)

 

10 삼손의 아버지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베풀었으니 청년들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 11 무리가 삼손을 보고 삼십 명을 데려와서 친구를 삼아 그와 함께 하게 한지라 12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내리니 잔치하는 이레 동안에 너희가 그것을 풀어 내게 말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13 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말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줄지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네가 수수께끼를 내면 우리가 그것을 들으리라 하매 14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오늘은 삼손을 통해서 구원의 원리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본문은 삼손이 블레셋에 가서 혼인 잔치하는 내용입니다. 블레셋의 결혼 풍습은 신랑이 신부의 집에 지참금을 주고 또 신랑이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고 그 후에야 신부를 데리고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신부보다 신랑의 부담이 많은 풍습입니다.

 

비록 이방 풍습이지만 이 배경이 담고 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를 신부 삼으시는 예수님의 혼인잔치와 같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예수님이라면 블레셋 여자는 우리들입니다. 블레셋 여자와 같이 불신앙과 세상 풍속으로 가득한 죄인을 불러 신부 삼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믿음밖에는 없고 나머지는 모두 신랑되신 예수님이 준비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의 원리를 봅니다.

 

1. 구원의 원리는 사랑입니다.

 

10절 "삼손의 아비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배설하였으니 소년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 여기 삼손의 아버지가 함께 함이 나옵니다. 당시의 결혼의 결정은 당사자보다 그 부모의 결정이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여기 아비와 함께 내렸다는 말씀이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구원은 내 공로가 아닙니다. 어떤 동기로 예수를 믿었든지 간에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 가운데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6:37-40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요6:44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그랬고, 또 요6:65에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셨습니다. 요3:16에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품는 것입니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한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부모의 사랑 없이 태어날 수 없음과 같이 영혼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한 영혼이 거듭나기까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 믿도록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사랑은 전도인데, 이 말씀을 거꾸로 최고의 전도는 사랑이기도 합니다. 최고의 사랑은 전도, 최고의 전도는 사랑 둘 다 맞는 말입니다.

 

탈북민 출신 조바울 목사의 간증입니다. 본 이름은 조영호인데 1994년 31세 청진의 김책제철연합기업소에서 퇴근하다 몰래 탄 화물차에 큼지막한 자루가 실려 있는 것을 보고 밖으로 던지고 뛰어내렸는데 열어보니 꿩 18마리가 있었습니다. 웬 꿩이냐 하고 집마다 돌아다니며 팔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꿩은 김정일이 사냥해 함경북도 도당 간부 18명에게 보내는 선물이었습니다.

 

큰일났습니다. 김정일의 자존심이 담겨 있는 물건입니다. 아무리 실수였지만 손대서는 안 될 것에 손을 댔으니 잡히면 총살입니다. 살길은 도망치는 길밖에는 없었습니다.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무작정 청진을 떠나 밤에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방랑하다가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나 한국에 들어오는데 하나하나가 기적이었습니다. 중국 톈진에서 인천 가는 여객선을 타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하나님께 두 번 기도하고 로프를 이용해 불법 승선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이 도둑이 한국에 와서 예수를 믿게 되고 목사까지 되었습니다. 국정원에서도 신자를 만났습니다. 국정원조사관이 장로였는데 그에게 전도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잘못해도 용납해주고 도와주는데 알고 보니 그들이 다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문을 열고 믿음 갖게 되고 너무 많은 빚을 졌으니 목사가 되어 조금이라도 갚으려고 신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사랑의 힘이 이렇게 큽니다.

 

이 분의 간증을 보고 깨달은 것 또 한 가지는 그의 외할아버지가 김익두 목사라는 것입니다. 북한에 살면서 하나님이라는 소리는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의인의 자손은 언제 돌아오든지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내신 예수님을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습니다.

 

2. 구원의 원리는 은혜입니다.

 

10절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배설하였으니" 그랬고, 12절에 "잔치하는 이레 동안"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마련하신 천국잔치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을 잔치에 비유합니다. 눅13:29-30에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잔치를 베설해 놓으셨어요. 잔치란 초청만 받으면 남녀노소 빈부귀천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거지라도 따끈한 들리기만 한다면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잔치에 참여하는 자는 모든 것이 무료입니다. 와서 마음껏 먹고 마시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잔치는 기간이 있습니다. 이 기간을 놓치고 문이 닫히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천국잔치가 무엇일까요? 교회가 천국잔치집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생활을 잘하면서 신앙을 잘 배워야 합니다. 교회는 떡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떡입니다. 교회는 포도주도 줍니다. 성령의 은혜가 포도주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교회 귀히 여겨야 합니다.

 

천국 가는 기차역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삭막한 세상에 엘림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교회가 없다면 하나님을 알겠습니까? 소망을 알겠습니까? 기쁨을 알겠습니까? 얼마나 절망스럽겠습니까? 교회는 우리가 천국 갈 때까지 하나님께서 영혼을 맡아서 보호하고 기르고 준비하라고 예비해 놓으신 천국의 기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생활 잘하시고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은혜 받아야 구원을 누립니다.

 

3. 구원의 원리는 훈련입니다.

 

11절 "무리가 삼손을 보고 삼십 명을 데려와서 친구를 삼아 그와 함께 하게 한지라" 무리들이 삼손을 위해 삼십 명의 블레셋 청년들을 함께 하게 했습니다. 우리나라 재래의 풍습과 같이 놀아주고 또 신부를 뺏어가는 신랑을 짓궂게 다루기도 합니다. 지역의 자존심을 걸고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친구이면서도 우리 편은 아닙니다. 삼손을 혼내주자고 블레셋의 짓궂은 청년 30명이나 모였으니 보통 상대가 아닙니다.

 

삼십 명의 30은 10곱하기 3인데 10은 전체를 가리키는 수입니다. 그리고 3은 완전수입니다. 그러니까 보통 강한 상대가 아닙니다. 뜻을 이루지 않고는 뒤로 물러서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힘이면 힘, 재주면 재주, 지식이면 지식,,, 삼손과 맞장을 뜰 상대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상대가 있습니다. 바로 연단의 상대입니다. 연단은 하나님 앞에 완전히 굴복시키기까지 뒤로 물러설지 모릅니다. 이처럼 신앙생활도 열심히 배우고 그 말씀대로 열심히 훈련해야 합니다. 잘 안 되면 되기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움도 기도하라는 사인입니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해야하겠습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창28:15에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20년이나 연단시키셨습니다. 수많은 실패와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야곱을 참 신앙의 길로 들어가도록 훈련하고 계셨습니다.

 

돌아오면서도 훈련은 계속되었습니다. 돌아와 맨 먼저 해야 할 일이 벧엘에서 제단 쌓는 일인데 세겜에 머물러 양을 치다가 딸 디나가 추행을 당하고 시므온과 레위가 복수한다고 할례 받은 세겜 사람들을 다 죽여서 주변 사람들이 복수하려고 합니다. 문제가 커지고 또 커졌습니다. 그 때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그것도 훈련이지만 스스로 자발적으로 경건에 이르도록 신앙훈련하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구원 완성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2:3에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고 온전히 이루어나갑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처럼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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