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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

삼손 12 (삿 14:18-20)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17|조회수13 목록 댓글 0

 

삼손 12 (삿 14:18-20)

 

18 일곱째 날 해 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19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갔고 20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

 

오늘은 삼손을 통해서 “성령이 임하시면”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여러 역사가 있지만 즈 중에 중요한 하나가 거룩한 심판이 우리 마음에서부터 일어납니다. 요16:8-11에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뭔가 책망을 받고 느끼고 깨닫고 정신이 온전해져 통회하고 자복하고 세상을 몰아내고 새롭게 변화 받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삼손 말씀에서 드릴 말씀입니다. 복음 실은 삼손 이야기 시작합니다. 본문을 보면 여호와의 영이 임하시며 삼손의 분노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다름 아니라 너와 네 집을 불태우겠다고 협박으로 삼손의 아내에게 수수께끼의 정답을 알아낸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혜로 알아낸 것처럼 시적 대구로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18절)하고 대답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이 모든 것이 협박하여 된 것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할 때 삼손의 감정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잠자는 사자를 건드린 것처럼 거대한 분노가 삼손을 사로잡았습니다. 분노만 아닙니다. 힘도 생겨났습니다. 천하무적입니다. 누가 삼손을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 이리하여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삼손의 분노가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 속에 악에 대한 놀라운 심판이 시작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1. 세상과 멀어지게 됩니다.

 

18절 “일곱째 날 해 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블레셋 사람들도 나쁘지만 남편을 배반한 아내도 나쁩니다. 그래서 삼손이 암송아지라는 표현을 통하여 블레셋은 물론 아내도 함께 경멸하고 있습니다. 믿을 사람 없습니다. 목숨 바쳐 남편을 지켜야 할 아내가 남편을 눈물로 꿰어 정답을 알아내 누설했으니 그 죄가 큽니다. 남편은 죽어도 우리는 살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이 일로 그토록 사랑하던 정이 삼천리나 떨어졌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그토록 흠모하고 사랑하던 세상이 결국 우리를 죽이고 망하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분별의 눈이 생기고 시각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죄를 죄로 알고 의를 의로 알게 됩니다. 그리고 죄를  경멸하고 멀리합니다. 약4:4에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하셨듯 세상 사랑을 원수로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광란의 도가니가 되지만 성도에게는 시험일 뿐입니다. 그래서 소돔성에 살던 롯이 날마다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했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장애물입니다. 막4:19에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라 하셨습니다. 세상 때문에 하나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일1:15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사19:18에 장망성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계18:4에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셨고, 베드로는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출애굽한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서 나와야 합니다. 성령이 임해야 출애굽이 일어납니다. 마음에 세상을 경멸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삼손에게 임했던 엄청난 의분이 세상에 대한 우리에게도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2. 육신적인 것을 죽이게 됩니다.

 

19절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갔고” 딤나에서 남서쪽 40km(백 리) 거리에 있는 아스글론까지 내려가 일을 저지른 것을 보면 블레셋 민족에 대한 악감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우리 말 속담에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서도 절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사건으로 좋았던 블레셋에 대한 이미지는 달라졌습니다. 아내도 밉고 처갓집도 밉고 블레셋 사람들도 미워졌습니다. 블레셋이 뭡니까? 다섯 방백이 있었는데 영적으로 육신입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세상과 짝하려는 우리 육신이 미워집니다. 육신 자체가 밉다기보다 육신적으로 살려는 마음이 밉습니다. 그래서 오순절에 말씀 듣던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회개했습니다. 육을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육을 따라 살면 영적으로 죽은 자입니다. 롬8:13-14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고, 딤전5:6에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했습니다.

 

유다도 유1:10-16에서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이들은 육을 따라 살다 홍수로 모두 멸망을 받았습니다.

 

육을 따라 살면 불행합니다. 그래서 롬8:5-8에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육적이냐? 영적이냐?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잠자던 사자가 일어난 것처럼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모합니다. 육신의 생각과 싸웁니다. 고후10:4-5에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복종시키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은혜가 거룩하게 합니다. 갈5:16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했고, 19-21에는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했고, 24절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습니다. 우리 속의 블레셋이 완전히 척결되기를 바랍니다.

 

3. 나도 세상도 서로 관심이 없습니다.

 

20절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 삼손은 그 아내를 얻기 위해 온 집과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사람입니다. 그 만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배신을 당한 삼손은 약속대로 블레셋의 아스글론 사람들을 쳐서 옷을 벗겨 그들에게 주고 그들을 떠납니다. 그러자 장인은 마침 잘되었다 하고 자기 딸을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냅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삼손과 대결을 벌였던 친구에게 보냅니다. 삼손을 경멸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삼손은 그들에게 철저히 배척 당합니다.

 

15장에 나중에 삼손이 아내를 찾아가지만 거절당합니다. 너는 너, 나는 나 확실히 구별됩니다. '너는 이제 사위가 아니다. 인척도 아니고 친척도 친구도 아니다. 자네와 무슨 볼 일이 있는가? 아스글론 사람까지 죽였으니 자네와 상대하다가는 우리가 죽는다. 가라.' 이 식입니다. 삼손도 이제는 남의 여자가 되었으니 미련 갖지 않아야 합니다. 끊고 맺음이 확실해야 합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면 우리도 세상을 배척하고 세상도 우리를 배척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관심 없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미워하고 우리도 미워합니다. 관심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15:18-19에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세상은 경건한 사람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유흥가에 예수님 성화를 걸어봐 보세요. 장사가 되겠습니까? 성경말씀을 붙여놓으면 좋아하겠습니까? 찬송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갈6:14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도는 세상에 볼 일이 없고 세상도 우리에게 볼 일이 없습니다. 이제는 세상에 대해 미련도 관심도 없고 하나님의 영광만 위해 살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심판의 역사가 우리에게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삼손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듯이 성령이 임하셔서 왜 내가 이렇게 살았는고 우리 속의 거룩한 분노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늘 말씀보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혜를 크게 받아 세상을 경멸하고 육신적인 삶을 미워하고 세상에 대해서 온전히 정리되어 하나님만 사랑하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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