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1 : 1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1)
제 11 장 : 척량 받은 증인의 역사
1. 개 요
11장은 대환난의 총체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이 결론으로 이루어지는 장이다.(계 11: 15)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로 성취되기 전의 척량(尺量) 받은 증인들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다시 말하면 선지자들의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해 신으로 되는 강권 역사가 나타난다. 모세와 엘리야 같은 초인간적인 역사와 초자연적인 역사가 나타나 척량 받은 증인들을 신과 같이 들어 쓰시는 역사다.
환난을 당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모든 환난의 주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두 증인에게 갈대를 주어 성전을 척량 한다. 그러나 성전 밖은 척량하지 못 한다. 두 증인은 권세를 받아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한다.
두 증인이 순교를 당한다. 땅에 거하는 자들이 즐거워 예물을 보낸다. 세상 사람들이 장사하지 못하게 한다. 삼일 반 후에 부활 · 승천하는 것을 원수들이 구경한다.
그 때 지진이 일어나 성이 무너져 칠천 명이 죽었다. 두 증인의 순교 후에 거룩한 성이 이방인에게 마흔두 달 동안 짓밟힌다. 이때가 짐승의 통치 기간이다.
사도 요한은 둘째 화가 지나갔다고 증거 한다. 대 환난이 지나면 셋째 화인 일곱째 나팔을 불게 된다. 일곱째 나팔을 불면 세상 나라가 우리 주의 나라가 된다.
2. 도 표
승천 적X 재림
----+-----------------+-----전 삼 년 반-----+-----후 삼 년 반-----+---
짐승표
교 회 시 대 두 증 인 시 대 수정통치 시대
3. 두 증인. ( 11: 1 – 14 )
11: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2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13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 도다.
11장은 두 증인에 관한 장이다. 1-2절은 겔 40-48장을 반영한다.
그러면 두 증인은 누구를 말할까? 두 증인의 정체를 '모세와 엘리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죽었던 모세와 엘리야가 다시 살아서 온다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는 하늘을 향하여 비 오지 못하게 한 것은 엘리야이며, 물이 변하여 피가 되게 한 것은 모세이므로 두 사람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두 번째로 교회를 상징한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세 번째 견해는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종말의 종으로 본다. 필자는 이 해석을 따른다. 즉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마지막 대 환란 때 일할 하나님의 종으로 본다.
그러면 왜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하나님의 종으로 보아야 할까? 그 이유는 말라기 4장 5절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말라기서의 특징은 회개가 없다. 회개하라는 말이 없다는 것은 최대의 저주다. 성경을 통해서 회개가 없는 것은 말라기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왔으나 안타깝게도 다시 타락해버렸다. 그래서 크고 두려운 날에 이를 심판할 터인데 그 전에 마지막으로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면 크고 두려운 날은 언제일까? 모든 주석가들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시는 날로 본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초림과 재림으로 두 번 오신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큰 무리들을 다 떠나보내고 열두 제자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었다고 했다. 이렇게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믿는 자가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다.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믿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크고 두려운 날'은 심판의 날이다. 초림 때 예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했다. 과연 크고 두려운 날이었다.
그리고 또 한 번 크고 두려운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스라엘 뿐 만 아니라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 때 모세와 엘리야 같은 종을 다시 보내겠다고 하셨다.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인가? '마지막 때 추수의 종'이냐가 여기서 밝혀진다.
예수님 당시는 엘리야는 세례 요한을 일컬었다. 누가복음 1장 17절에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마태복음 11장 14절은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가복음 9장 13절에도 '엘리야가 왔으되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바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종 세례 요한을 가리켜서 엘리야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도 엘리야가 직접 오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오는 세례 요한과 같은 하나님의 종, 바로 '두 증인'들이다. 그래서 모세와 엘리야가 살아서 온다는 것은 성경적, 신앙적으로 맞지 않는 얘기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어떤 역할을 했나? 그는 예수님이 오시기 6개월 전에 미리 등장해서 오실 예수님을 예비했다. 황폐한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바리새인들 향하여 부르짖으며 예수님을 예비했다.
그는 예수님이 오시도록 길을 닦아 놓았으며 예수님을 널리 알렸다. 이렇게 엘리야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이 세례 요한이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 두 증인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예비하는 종들이다. 하나님의 종들이 재림 예수를 영접할 수 있도록 미리 예비하는 역할을 한다.
왕이 행차하는데 왕이 먼저 가서 '나 왕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먼저 종들을 보내서 준비시킨다.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데 갑자기 오시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미리 준비시키신다.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 비유가 나온다. 이 비유에서는 신랑이 올 때 신랑의 친구가 먼저 가 있었다. 신랑의 친구가 신부에게 가서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의 종들이 나타나서 재림하실 예수, 성도의 영원한 신랑 되실 예수님을 맞이할 재림을 준비시킨다. 이것이 마태복음 24장 45절에 언급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종'이다.
우리가 마지막 때 두 증인과 같은 사명을 감당하길 원한다.
계 11 : 1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
지팡이 같은 갈대는 길이를 재는 자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은 구약적 표현이다. 구약시대의 성전은 일차적으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지만, 또한 그의 몸된 교회인 참된 성도들도 가리켰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 고전 3: 16 -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성전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참된 성도들을 가리키며 ‘척량한다’는 말은 소유물의 확인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아신다. 그는 대 환난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보존하신다.
1-1) 요한이 받은 것 -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갈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칼라모스'는 물건이나 건물 같은 것을 재는 도구로 '길고 곧은 장대'를 가리킨다.
에스겔도 갈대로 성전을 척량 하였다.
* 겔 40: 3-4 – 3 나를 데리시고 거기에 이르시니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 있더니 4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할지어다. 하더라.
요한이 사역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은 지팡이 같은 갈대였다. 이처럼 두 증인도 사역을 할 때 받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작은 책 두루마리 계시록이다.
'지팡이 같은 갈대'란 표준(標準)치의 법규(canon)를 말한다. 성경을 지팡이 같은 갈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계시록 10: 10에 요한이 '작은 책을 먹어버리니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배에서 쓰게 되더라.'고 했다. 그런데 11장에서는 두 증인이 '지팡이 같은 갈대'를 들고 나타났다.
갈대는 재는 도구인데, 지팡이 같은 갈대라고 했다. 이것은 말씀을 상징하며 성경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갈대는 지팡이 역할을 의미한다.
양을 지팡이로 인도한다. 목자는 지팡이만 가지고 있으면 맹수도 이길 수 있다. 지팡이만 가지면 두려울 필요가 없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는 밤에 맹수가 자주 나타나 위험한데, 남자아이들이 막대기 하나만 있으면 맹수와 싸워 이긴다고 한다.
이처럼 두 증인도 지팡이 같은 갈대 하나를 가지고 짐승들과 싸운다. 모세에게도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주셨다.
지팡이는 두 가지 의미다. 먼저 지팡이는 인도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또 하나는 뱀이 됐다. 목동이 지팡이로 양들을 인도하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인도하신 것을 의미한다.
요한이 작은 책을 먹었다는 것과 두 증인들이 이 작은 책을 먹고 전한다는 것 사이에 연결이 잘 안 된다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성경 구조를 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요한은 95세에 계시록을 쓰고 죽었다. 요한이 여러 백성과 나라와 방백에게 이 작은 두루마리 책을 전한 것이 아니다.
한 번도 이것을 전하기 위해 이방 나라를 간 적이 없다. 요한을 통한 일할 두 증인을 말한다. 이것이 '예언적 원근 통시법'이다.
마태복음 10장 23절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모든 동네를 돌면서 전도하라 하셨는데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은 모순인 것 같다. 이것은 당시의 제자들을 통하여 미래에 이스라엘을 전도할 선교사들을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요한에게 작은 두루마리 책을 먹고 전하라고 하신 것은 종말의 두 증인들, 즉 요한과 같은 하나님의 종들이 작은 두루마리 책을 먹고 전 세계 여러 나라와 백성과 방백과 모든 민족에게 계시록을 전하라는 것이다. 할렐루야!
이제 우리는 작은 두루마리 책을 먹어버리자. 적어도 요한계시록만큼은 확실히 먹어버리자.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자!
계시록을 몇 번 강의 들었다고 해서 먹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자기가 읽고 완전히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서 계시록이 내 의식구조 속에 들어가는 순간에 세상이 확 달라져 보인다.
세상이 열린다. 말씀으로 마지막 때를 조명하며 확실한 분별력이 생기게 된다. 마지막 때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계시록이 내 살이 되고 뼈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분별력이 생겨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할렐루야!
* 엡 2: 14-22 –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새 예루살렘 성전도 금(金) 갈대로 척량(尺量)되었다.
* 계 21: 15 -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1) 구약에서 '척량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 재건이나 보존을 의미한다.
* 렘 31: 39-40 – 39 측량줄이 곧게 가렙 언덕 밑에 이르고, 고아로 돌아 40 시체와 재의 모든 골짜기와 기드론 시내에 이르는 모든 고지. 곧 동쪽 마문의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거룩한 곳이니라. 영원히 다시는 뽑거나 전복하지 못할 것이니라.
* 슥 1: 16 -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슥 2: 1-5 – 1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측량줄을 그의 손에 잡았기로 2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그가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를 보고자 하노라. 하고 말할 때에 3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나가고 다른 천사가 나와서 그를 맞으며 4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 5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 파괴를 의미한다.
* 삼하 8: 2 -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저희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들이 다윗의 종들이 되어 조공을 드리니라.
* 왕하 21: 13 –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 사 28: 17 -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 애 2: 8 - 여호와께서 딸 시온의 성벽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무너뜨리는 일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벽과 성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그들이 함께 쇠하였도다.
* 암 7: 7-9 – 7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8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9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본문의 '척량'은 두 의미 중 전자에 해당된다. (Johnson, Beasley-Murry, Hendriksen, Ladd).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 척량되지 않은 것이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힘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척량은 척량 대상이 설사 고난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속에 있음을 시사한다.
* 계 21: 15-17, 24, 27 –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2) 지팡이 같은 갈대
① 때에 따른 양식
* 창 49: 10 –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 출 4: 17 -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 출 9: 23 -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우렛소리와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우박을 애굽 땅에 내리시매
* 민 17: 2-4 –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 중에서 각 조상의 가문을 따라 지팡이 하나씩을 취하되,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대로 그 모든 지휘관에게서 지팡이 열둘을 취하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그 지팡이에 쓰되 3 레위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라. 이는 그들의 조상의 가문의 각 수령이 지팡이 하나씩 있어야 할 것임이니라. 4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 겔 29: 6 - 애굽의 모든 주민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 마 24: 45 -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② 지팡이
* 시 23: 4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③ 갈대(華) : [영] Reed [히](qaneh) [그](Kalamos)
포아풀과에 속하는 다년초. 습지나 물가에 저절로 난다. 줄기는 곧고 단단하며, 잎은 긴 피침 형이다. 가을에 옅은 자주색 띤 회백색의 많은 잔 꽃이 피고, 줄기는 발, 삿갓, 자리 등에 쓰인다. 갈 또는 갈대로 번역.
⒜ 아그몬(agmon)
아감('agam, 늪)에서 파생된 말. 습지에서 나는 식물(사 9: 14). 머리를 숙이다(사 58: 5). 밧줄을 엮는데 썼다(욥 41: 2).
⒝ 아후('achu)
습지대, 물가에 나는 가는 갈, 또는 사초류(莎草類)등 수생식물의 총칭.(창 41: 2. 욥 8: 11. 호 13: 15). 가축의 사료(창 41: 2,18. reed, grass).
⒞ 고메(gome')
이것은 가마(gama' 마신다)에 관련되는 말.
물가에서 자라나는데서 이름 붙여진 것. 학명 파피루스(Cyperus papyrus). 사초과(莎草科)의 다년생 초본.
지하(地下)에 근경(根莖 root-stock)이 있고, 줄기는 둔한 삼릉(세모서리)이다. 높이 2m, 꽃자루는 기다란 원주형, 다수가 산형(散形)으로 길이 15-45cm에 달한다. 끝에 소수화서(小水花序)와 실모양의 화포(花苞)를 맺는다.
고대 애굽 델타지방에서 많이 재배되고, 용도가 다양하였다. 특히 그 줄기의 심(芯)은 파피루스 종이로 만들었다. 줄기는 엮어 상자(출 2: 3)나 배(사 8: 2) 등을 만들었다.
⒟ 수프(suph)
나일 강변에 무성히 자라는 풀(출 2: 3,5 reed, 사 19: 6 rush), 염수(鹽水)에서도 자란다(욘 2: 5, weeds, 바다풀).
해초, 담수 중에 나는 갈대 및 사초류 등의 수생식물을 가리키는 말. 홍해로 번역된 얌수프(yam-suph)는 이 말에서 나왔다. 자의(字義)는 갈대의 바다이다.
⒠ 카네
유브라데 하류, 나일 상류, 요단 강에서 자라는 키 큰[6m], 넓은 잎 갈대. [히] 카네는 아라비아어 카나[qana]에 해당되는 말.
화본과의 식물. 아룬도 도낙스(Arundo donax)는 아라비아인이 페르시아 갈대[qasab farisi]라 부른다. 늪이나 강가에 나고(욥 40: 21, 사 35: 7), 풀숲에 짐승이 산다(시 68: 30, 하마나 악어를 가리키는 듯하고, 이집트를 상징한다).
줄기는 지팡이로 사용하나 꺾어지기 쉬워 믿지 못할 애굽의 상징으로 인용되었다(왕하 18: 21. 사 36: 6. 겔 29: 6).
꺾인 갈대는 상한 심령의 사람을 표상한다.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자애가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곧은 줄기는 척량하는 장대(measuring reed)로 쓰였다(겔 40: 3,5. 계 11: 1).
⒡ 칼라모스[kalamos]
구약 카네(qaneh)에 해당되는 명사. 가는 갈대(Arundodonax).
예수께서 세례 요한을 말씀 하실 때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마 11: 7. 눅 7: 24)'라고 하신 것은 이 갈대를 말한다.
로마 병사가 예수께 들리고, 때리는데 쓴 것도 이 갈대의 줄기로 만든 막대기였다(마 27: 29-30. 막 15: 19).
또 해융을 가지고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려 했다(마 27: 48. 막 15: 36). 줄기로 척량대(measuring reed, 계 11: 1. 21: 15-16)나 펜(pen, 요 1: 13, 붓)을 만들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는(마 12: 29) 자비하신 메시아의 성격을 나타내는 예언(사 42: 3)은 깊은 감동을 준다.
* 사 42: 3 -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