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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계 11 : 17 - 19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23|조회수18 목록 댓글 0

 

계 11 : 17 - 19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계 11 : 17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 이르되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 )

 

24장로들은 하나님을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하나님을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이다. 24장로들이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가 나타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큰 권능을 가지시고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활동하던 사탄과 악령들의 일들이 끝나고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하게 드러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공의 통치하심은 우리의 감사와 찬송의 이유요 내용이다.

 


17) 장로의 찬양 - 이르되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4) 찬양을 받으시는 분 -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감사 찬송을 드렸습니다. 땅에서는 하나님의 종들이 사명을 마치고 부활해서 올라가고,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가 마감됩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라고 했는데, 미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석가들은 이제 재림하시니까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5) 찬양의 내용 -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계 11 : 18 주의 진노가 내려 - 이방들이 분노하매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하더라. (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

 

18도 계속 감사의 이유를 말한다.

 

24장로들은 하나님의 통치 내용에 대해 좀 더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관한 것이다.

 

그 내용은, 이방인들이 분노했을 때 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죽은 자들까지도 주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 심판은 철저하고 공정한 심판일 것이다. 그 심판의 결과는 보상 혹은 멸망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지만, 세상을 멸망시키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24장로들의 감사의 내용과 이유이었다.

 

18) 장로의 찬양 - 이방들이 분노하매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하더라.

 

(1) 감사의 이유 - 이방들이 분노하매주의 진노가 내려

 

① 이방들의 분노

 

② 주의 분노

 

롬 2: 6-8 –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2) 심판의 내용 -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하더라.

 

① 심판

 

시 98: 9 -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 죽은 자를

 

⒝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

 

② 상 주심

 

⒜ 선지자들

 

⒝ 성도들

 

⒞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

 

 

계 11 : 19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

 

 

사도 요한은 하늘의 성전이 열리는 광경을 보았다.

 

하나님의 성전은 천국 자체를 상징한 듯하다. 요한계시록 21: 22에 보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 곧 천국에는 성전이 없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라고 말했다.

 

계 21: 22 -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러나 히브리서 9: 23-24에는 하늘 성소에 대해 말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성전 혹은 성소는 천국 자체, 특히 그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상징했다고 본다.

 

히 9: 23-24 –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사도 요한은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도 보았고,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을 보았다.

 

사도 요한이 성전 안에 있는 언약궤를 본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언약 곧 십계명에 의거한 것임을 보인다.

 

하나님의 심판은 구약성경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공의의 율법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운 심판이다.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은 하나님의 심판의 엄위함을 나타낸다.

 


19) 찬양의 결과 -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1) 하나님의 성전 -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이 열렸다는 것은 천국이 열렸다는 의미이다. 이 성전은 구약의 예루살렘 성전의 원형이요, 신약교회의 원형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니까 닫혔던 하늘이, 닫혔던 천국이 활짝 열리는 것이다. 이제 부활한 자들이 하늘 성전에 올라가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언약궤 -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언약궤는 예수 그리스도로 맺은 언약의 실현이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구원받을 것이요, 예수 안에서 일한 자는 그대로 갚아 줄 것이라는 이 모든 언약이 이뤄지는 것이다.

구약은 이 언약궤가 약속이기 때문에 언약궤만 잘 보관하면 하나님이 지키주신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국보 1호가 언약궤이다. 지금은 구약적 언약궤는 없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하늘의 언약궤를 맺었다는 것은 예수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와 맺은 모든 것들이 이뤄진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 시시한 것 두고 우리 믿음을 팔지 맙시다. 우리가 일부러 구차한 생활을 찾아 나설 것까지는 없지만, 우리의 삶에 어떤 아픔이 있을지라도 언약궤를 붙잡았기 때문에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3) 다섯가지 특징

 

① 번개

번개는 신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신속한 심판을 말합니다.

 음성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권위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③ 우레

우레의 뇌성은 공의성, 하나님의 정확한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④ 지진

지진은 그 심판의 규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큰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⑤ 우박

큰 우박은 재앙성입니다. 땅에 있는 자들에게 이 모든 것은 재앙입니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다.

 

17,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창세기 1: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출애굽기 3: 14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의 뜻이라고 본다.

 

시편 90: 1-2, “주여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산이 생기기 전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17,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자이시다.

 

창세기 18: 14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욥은 욥기 42: 2에서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無所不能),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라고 고백하였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다(렘 32: 17).

 

 

셋째, 하나님께서는 장차 왕노릇하실 것이다.

 

15,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17,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통치하심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

 

시편 99: 1-2,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도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세세토록 통치하실 것이다.

 

시편 93: 1-2,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하더라

 

의인들과 악인들,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다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는 영생의 상을 주시고 악인들에게는 지옥의 벌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약 곧 율법에 따라 공의롭게 이루어질 것이다.

 

시편 98: 9,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로마서 2: 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으로 하시리라.

 

 

성전 측량과 두 증인 ( 박 조준 목사 ) - 저자와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본문 요한계시록 11장은 10장에 이어서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 삽화격으로 나와 있는 장면입니다. 11장 첫 부분에 성전 측량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먼저 유대 나라 성전에 대한 역사를 잠깐 생각하고 지나가는 것이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팔레스틴 지방에 이스라엘이 건설된 후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었던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서 훌륭한 성전을 건축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많은 전쟁을 하는 동안에 그 손으로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전 짓는 일을 다윗에게 맡기시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지게 되어 흔히 “솔로몬의 성전”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여기에 필요한 건축 자재와 건축비는 다윗이 다 마련해 놓았던 것이었습니다.

 

그 성전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에 건축되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거처로 삼으시고 그의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경배할 성읍인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시편 87편 1~3절에 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기지가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도다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시편 132편 13~15절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나타났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손이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해 주신다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착각을 일으켜 저희가 아무리 죄를 범하여 성전이 있는 한 그들의 나라가 든든히 서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론으로 몇 사람이 포로가 되어 잡혀간 후에도 하나님의 종들인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선지자 사무엘 때의 일을 기억합니다. 실로에 하나님의 성막이 있었습니다. 성전을 짓기 전에는 성막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막을 지키며 제사장의 일을 보는 엘리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하나님의 집에서 못할, 해서도 안될 일을 한다는 소문을 들으면서도 한 번도 책망하지 않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을 모르고 성막에서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전황이 불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이 계신 법궤를 가지고 일선에 나가면 블레셋 군대를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실로에 있는 성막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가지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세요. 하나님은 이미 그 법궤를 떠났었습니다. 그러니 법궤가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무슨 도움이 되었습니까? 오히려 블레셋 진에서는 이스라엘 진에 법궤를 가지고 나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더 맹렬한 공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법궤를 블레셋 군대에게 빼앗기고 말았고,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 날에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비극입니다. 하나님이 떠나신 것을 모르고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줄 착각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이었던 성전과 저희의 희망이었던 예루살렘 성읍은 느브갓네살 왕에게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서 70년이란 긴 세월을 포로 생활을 한 후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재건하라는 법령이 포고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이었던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지휘로 성전이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나 먼저 솔로몬 때 지었던 성전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습니다. 포로 생활 70년이 지난 후에 돌아와서 성전이 지어지는데 모든 것이 부족한 형편이니 제대로 될 수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나이 많은 장로들이 새 성전의 기초를 보고서 솔로몬의 성전을 회고하며 울었을 정도였습니다. 이 성전은 헬라와 수리아의 통치를 받았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서 침범 당하기까지 이스라엘의 성전 구실을 했습니다. 이때에 이스라엘 민족이 받은 모욕과 수취는 마지막 때 환난기에 적그리스도로부터 받게 될 모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40년 전에 헤롯 왕은 이 성전을 완전히 헐어버리고 다시 건축하였습니다. 이 성전이 바로 신약 시대의 ‘헤롯의 성전’(요 2:20)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2절에 보면 이 성전이 무너져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을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언은 예루살렘을 점령한 로마군 총사령관인 티투스 시대에 가서 응했습니다. 그는 성전을 허물어서는 안된다는 명령은 내렸지만 유대인들은 그 성전이 이교도들의 수중에 넘어가기보다는 낫다고 해서 자기들의 손으로 불태워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은 이렇게 정확하게 맞았습니다.

 

오늘날 그 옛날 유대 성전이 서 있던 바로 그 자리를 회교도들이 점령해서 “로크원형사원”이라고 불리는 회교 사원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 사원은 전혀 다른 재료로 세워졌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헤롯의 성전을 이루고 있던 돌들을 하나도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이스라엘에 대한 회교도들의 증오는 극에 달해서 돌 위에 돌 하나도 겹쳐 놓을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여러 곳에는 말세에 이 성전이 재건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15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하고 말씀하신 것은 말세의 환난 시대 중반에 다니엘이 예언한 대로 적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의 성전이 모독을 받게 될 것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우선 성전이 재건되어야만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절 이하에 보면 사도 바울은 환난기 중반에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스스로 하나님인 것처럼 온 세상에 나타내 보임으로써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예언했습니다. 더구나 유대인들의 관심이 깊어진 것은 지금 회교도의 원형 사원이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의 제물로 그 아들 이삭을 드리던 모리아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성전을 건축하라는 가르침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은 손으로 만든 성전에 계신 분이 아니라 사람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전임을 배웠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스라엘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그들이 메시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환난기가 시작되는 행위는 적그리스도와의 동맹을 체결하는 것으로, 이것은 악과 결탁하는 불경스러운 일이고 환난기 초반에는 이스라엘 중에는 그리스도인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그리고 나면 14만 4천의 주의 종들이 나아가 복음을 전하므로 이방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데 사람들이 능히 셀 수 없을 만큼 크게 늘어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대인 다수가 아닌 일부 남은 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을 측량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는 것은 사실은 그 성전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지어졌던 솔로몬의 전과 비교해 볼 때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측량”이란 말은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해온 것과 앞으로 하게 될 행동으로 보아 그가 얼마나 메시야를 배척했는지 그 정도에 따라 극심한 심판에 처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 다른 한편 영적인 면으로 말하면 “측량”은 소유의 회복과 확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확보하는 복음 운동을 뜻하기도 합니다. 측량 부분에 드는 것은 주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고 제외되는 것은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측량에 든 자들은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의 반열에 끼이게 됩니다.

 

측량에서 제외된 것은 성전 바깥 마당입니다. “바깥 마당”은 말하자면 이방인의 마당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영적으로 볼 때 양이 아니라 염소입니다. 믿는다고는 하지만 참도리에 바로 서지 못하고 말씀 위에 서지 못하면 결국은 복음 운동에서 제외됩니다. 교회는 다녔지만 바깥 마당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방인의 마당은 이방인에게 주었으므로 측량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우리 자신을 믿음에 서 있는가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수십 년 다녀서 교회에 대한 것, 성경에 대한 것, 하나님께 대한 것, 예수님과 성령에 대한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완전히 하나님께 들어서지 못했으면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는 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마귀들도 잘 압니다.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믿고 순종하는 사람만이 구원의 반열에 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는다고 했습니다. ‘1260일’이나 ‘삼일 반’이나 ‘한 때 두 때 반 때’라고 한 것이나 같은 뜻인데 3년 반을 의미합니다. 3년 반은 7년 완전수의 반이므로 불완전수로서 한정이 있는 기간을 가리킵니다.

거짓 선지자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당할 것이지만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그 기간이 지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천하를 흔들 듯이 날뛰어도 측량 부분에서 성소 안에 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 저기 보고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들을 것 없이 하나님 말씀 따라 신앙 생활 잘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제 본문 3절을 봅시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화려하고 힘이 넘치는 두 사람이 하나님의 증인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 입에서는 불을 내어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하늘 문을 닫아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하여 온 땅을 가물게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온 땅의 물을 피로 변하게 할 수도 있고, 모든 재앙을 동원하여 땅에 있는 것들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이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하여 쓰여지는 것으로 적그리스도가 행하는 능력과는 아주 다릅니다.

 

그러면 이 두 증인은 누구입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성경에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추측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은 의견이 이 두 증인은 엘리야와 에녹, 그렇지 않으면 엘리야와 세례 요한, 혹은 엘리야와 모세로 생각합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 시대에 갈멜산에서 바알신 선지자와 대결하여 제단에 불이 내려와 사르기를 기도하였더니 그대로 이루어져 여호와가 참신인 것을 증거한 선지자입니다(왕하 18:20~40). 뿐만 아니라 죄악이 만연한 이스라엘 땅에 3년 반 동안이나 비를 내리지 않게 했고, 그가 다시 기도할 때 그 땅에 비를 내리게 한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증인 중에 한 사람이 엘리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타당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 증인은 모세라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입니다. 마태복음 17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인 증인 베드로와 야곱,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구약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 두 사람을 보이셨습니다. 이 두 사람이 엘리야와 모세였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그리스도와 함께 임박한 그분의 죽음에 대하여 토의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이 땅에 재앙을 내리는 권세를 받았으며 바로 시대에 애굽에서 물을 피로 변하게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하고,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고, 또 비를 내리는 권세를 가졌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이야말로 그들이 이미 땅에 내렸던 것과 같은 놀라운 능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유대 사람의 대표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두 증인 중에 포함된다는 생각은 이치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모세와 엘리야를 합쳐서 유대인 앞에 구약 시대의 대표자라고 내세워도 조금도 손색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자기 다섯 형제들을 회개시켜 이 고통스러운 장소에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아브라함이 대답한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가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라”는 말씀에는 구약에 대한 유대인들의 관념이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구약성경의 첫 다섯 권, 즉 모세오경을 대표하며,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가장 뛰어난 선지자로 모든 예언서를 대표합니다. “모세와 선지자”라는 것은 구약성경을 기록한 모든 인물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대언자는 유대 역사 전부를 통해 보더라도 역시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이 두 증인의 업적은 무엇입니까? 이 두 증인의 사명에 대하여는 본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하나님의 증인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스가랴서에 나온 두 촛대와 두 감람나무 같다는 표현으로 미루어 알 수가 있습니다. 이 구약의 상징은 이 두 사람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외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세와 엘리야가 이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환난기 중반에 거짓 그리스도에 대한 거짓 기사에 대항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예언을 하게 될 것인데,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들은 계시록의 내용을 토대로 사람들 앞으로 될 일을 해석하여 보여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속여 아비로 그 자식을 대적하게 하고 그 아이들로 아비를 대적하게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이 두 증인들은 사람들이 주 앞으로 돌아와 정상적인 생각을 갖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그 증거를 마칠 때”라고 기록한 본문 7절의 말씀대로 그들이 증거를 하리란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복음을 전하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참된 증거는 교회 시대나, 환난 때나, 천년왕국 때이거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세요. 본문 7절에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했습니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란 계시록 13장 1절 이하에 기록된 짐승입니다. “짐승”이란 표현은 여기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표현으로, 그가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다는 사실은 적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말하며, 거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13장에서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적그리스도라는 짐승은 죄악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두 증인을 미워하며 그들을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그들을 죽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증거를 마치기까지는” 그 짐승이 능력을 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증인이 그들의 사명을 다 하기까지 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종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환난기에 사는 사람들의 부패하고 비인간적인 생활의 특징은 앞으로 생각할 계시록 18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두 증인의 시체가 예루살렘 거리에 버려진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거룩한 성읍은 영적으로 부패되어 소돔과 애굽이라고 불리게 되는데 소돔은 부도덕의 상징이고, 애굽은 물질주의의 상징입니다. 거룩한 요소라고는 전혀 없고 안식일에 회당에 모이는 일조차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9절에 “백성들과 족속들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죽임을 당하여 버려져서 장사하지 못하게 할 것인데 세상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이나 보게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이것을 해석하면서 요사이 텔레비전을 통해서 위성중계를 하면 이 말씀이 성취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이유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말세가 가까워 오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가 되는데, 그것은 바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짧은 기간에 온 세상 사람이 동시에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그들은 보는 것만 가지고는 만족하지 않고, 온 세계가 이 의와 거룩함을 선포하던 자의 죽음을 보고 마치 성탄절과 같이 기쁨에 들떠서 선물까지 주고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11~12절을 보세요.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셨던 것처럼, 이 사람들도 죽어 온 세상 사람들의 눈앞에 구경거리가 된 다음 그들을 부활시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구름이 그들을 가려 그 원수들 앞에서 그들을 데려갈 것입니다.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이 사람들의 부활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확실한 증거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또 하나의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하나님의 충성된 두 증인에게 보인 예루살렘 성읍 주민들의 태도 때문에 주님께서는 큰 지진을 보내시고 그 성읍의 십분의 일과 칠천 명을 멸망시키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읍에 내리시는 이 대대적인 심판은 환난기 후반부에 이스라엘 전역을 휩쓸게 될 부흥운동을 시작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남은 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칠천 사람과 성읍의 십분의 일이 멸망되는 것을 목격한 이 성읍에 사는 유대인들이 곧 부활한 이 두 증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건은 14절에 나타난 셋째 재앙 전에 나타나는 것으로 여기서는 복음을 전하다가 죽고 다시 부활했던 환난기 초반의 두 증인들의 존재를 밝혀 두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 측량을 하는데, 우리는 안에 있습니까? 바깥 마당에 있습니까? 두 증인처럼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생활을 할 각오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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