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13: 8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참 인도자이시다.
마태복음 23: 8-10은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하나이니 곧 그리스도시요](전통본문) 너희는 다 형제니라. ...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1]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참 인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2천년이 지난 지금도, 또 세상 종말까지, 영원한 천국에서도 동일하시다. 우리는 그를 본받아야 한다.
본문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 본문이 이 세상의 지도자들은 죽고 사라질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변함이 없으심을 나타낸다(Bruce, Morris).
이 견해에 따르면 본문은 예수께서 '어제' 하나님께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5:7),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변호하시며, '영원토록'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간구하시고 계심을 나타낸다.
Ⓑ 본 절이 7절과 9절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Hewitt, Lane).
이 견해에 따르면 본 절은 '어제' 과거의 지도자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그를 전파하였으며 '오늘' 수신자 공동체가 '어제' 전함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상한 가르침과(9 절) 바꾸려고 하는 상태에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주어진 구속이 '영원한' 것임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두 해석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히 13: 9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
저자는 본문에서 수신자들에게 다른 교훈에 빠지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
다양하고 이상한 교훈들이란 세상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어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부패시키고 변질시키는 사이비 목사들의 교훈들을 가리킨다.
그것들의 근원은 사탄과 악령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불변하심은 그에 관한 교리의 불변성을 보인다. 기독교 진리는 가감할 수 없이 명확한 내용을 가지고 있고 시대마다 변할 수 없다.
* 계 22: 18-19 -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 사도는 계시의 말씀을 맺으면서 성도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없는 것을 더하지도 말고, 있는 것을 제하지도 말라고 하셨다. 계시하신 대로 전하고, 듣고, 지켜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계는 매우 혼란스럽다. 다양하고 이상한 교훈들이 교회들 안팎에 많이 있다.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 비성경적 교회연합운동, 성경 계시를 넘어서는 이단적인 은사주의, 종교다원주의, 열린 예배, CCM 등의 풍조가 교회 안에 가득하다.
그러나 참된 성도들은 오늘날 유행하는 다양하고 이상한 교훈들에 이끌리지 말고 바른 교훈, 즉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에 굳게 서야 한다. 우리는 그 옛길, 그 건전한 길을 붙들어야 한다. 그것이 보수신앙이 추구하는 바이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가감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서부터 강조되었다. 신명기 4: 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선지자들이 쓴 역사서들과 선지서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지 않은 죄와 그 결과를 지적하고 하나님의 징벌과 심판을 증언하였다. 시편을 비롯한 시가서들도 하나님의 율법대로 사는 것이 복됨을 증언하였다.
* 시 1: 2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 전 12: 13 -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구약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 무엇을 첨가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었다. 이제 예수께서는 구약 성경에 예언된 그 메시아로 오셨다(마 1: 1). 신약 성경은 구약 성경의 예언의 성취이며 구약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다.
계 22: 18 더하면 -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끝에 가감치 말라는 강조와 경고가 다시 기록되어 있다. 이 경고는 매우 엄숙히 받아들여져야 한다.
만일 누구든지 주 예수께서 기록케 하신 이 책의 내용에 무엇을 더하면 하나님의 재앙이 그에게 더하여질 것이다.
더하면 -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요한은 본서를 마무리하면서 본서의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요한은 경고를 통해서 본서의 내용이 자신의 상상이나 꿈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인 예언임을 밝힐 뿐만 아니라 예언의 말씀의 권위를 확증하고 있다. 이러한 경고는 신 4: 2의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 신 4: 2 -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스도께서 천사를 통해 요한 자신에게 전하여 준 계시의 말씀의 권위에 대한 확증을 강조하는 진술 방법이다.
1) 더하는 자
'듣는 각인에게'는 계 1: 3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본서가 수신자들 공동체 내에서 크게 읽혀져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들려질 것을 시사한다.
* 계 1: 3 -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은 본문에서 예언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본서 이외에 어떠한 것이라도 첨가할 경우에 대해 진술한다.
더하면
(1) 광신자
(2) 신비주의자
(3) 이단들.
2)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음. '기록된'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그람메나스'(*)는 완료 시제로 이미 완전히 기록된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본서의 예언의 말씀이 더 이상 가감할 것이 없는 완전한 것임을 시사한다.
요한은 말씀에 '더한 자들'에게 모든 재앙이 '더하여질 것'이라는 수사학적인 비교를 통해 완전한 본서의 예언을 변절시키기 위해 더하는 자들에게 내릴 심판의 엄중함을 경고한다.
계 22 : 19 제하면 -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누구든지 무엇을 빼면 천국에 들어가는 복을 잃어버릴 것이다. 이 경고는 이 책의 절대적 권위를 증언하며 이 책이 종말 예언에 있어서 충족한 계시의 책임을 증언한다.
더 이상 이 책에 무엇을 첨가할 내용이 없다. 요한계시록은 종말 예언에 있어서 최종적 권위를 가진 책이다. 본문의 경고의 말씀은, 요한계시록에만 적용될 것이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와 구약성경 전체에도 적용될 말씀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성경 맨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성경의 권위와 충족성에 대한 증거와 교훈이 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제하는 자 -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1) 제하여 버리면
본문은 앞 절과는 대조적으로 완전한 예언의 말씀을 제하여 버리는 경우에 대한 묘사이다.
본문 역시 완전한 예언의 말씀을 '제하는 자'에게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하는 축복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수사학적인 비교를 사용하고 있다.
(1) 급진적인 자유주의자,
(2) 혼합주의자,
(3) 종교 다원주의자.
2) 생명나무, 거룩한 성에 참예함
천국에 들어가지 못함.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함'은 구속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영생의 축복을 가리킨다.
요한은 본서에 언급된 예언의 말씀을 제하는 자들에게 영생의 축복에서 제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유황 불못에 던져져 둘째 사망에 참여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3) 더하는 자와 제하는 자(정리)
(1) 여러 견해.
① 필사자들에게 주는 경고이다.
계시록을 복사하는 미래의 서기관이나 필사자들에게 주는 경고를 말한다.
얼[Ralph Earle] : 이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기록하는 원서를 말한다. 가능한 한 가장 정확한 본문에 도달할 수 있도록 현존하는 사본들의 어휘를 비교하는 성경학자들의 활동을 제한하지 않는다. [얼, 요한계시록, p.736]
② 구전자들에게 주는 경고이다.
성경이 기록되기 전에 유대인들에게는 구전으로 말씀이 전파되었다. 이러한 구전으로 부정확성을 경고한 것이다.
③ 고의로 위조하는 자들에게 주는 경고이다.
계시록이 공개된 지역에서 전달하는 과정에 고의로 변경하는 관행에 대한 경고이다.
핸드릭슨[W. Hendriksen] : 계시록은 이것을 읽는 자나 듣는 자가 한 마디라도 더하거나 감하여서는 안 된다. 가짜라고 해도 안 된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음을 부인해도 안 된다. 공부할 가치가 없다고 하여도 안 된다. … 이 모든 경고를 무시하면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재앙이 그에게 가해질 것이다. [핸드릭슨, 성경주석 요한계시록, pp.261,262]
존슨[A. F. Johnson] : 이 두 절은 성경에 어떠한 것도 덧붙여서는 안 된다는 경고로 받아드려서는 안 된다. 초기의 해석자들은 계시록의 뜻을 변경시키는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경고로 이해하였다. [존슨, 성서연구주석 요한계시록, p.546]
(2) 저자의 견해.
'더하는 자'는 개인의 사상과 신비를 첨가하는 신비주의자들이며, '제하는 자'는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을 제거하는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경고이다.
① 더하는 자의 의미.
광신적인 자들이 개인의 꿈이나 환상을 성경의 권위와 같게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재림의 날짜를 알 수 없는 데 거부하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을 말한다.
* 마 24: 36 -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슥 14: 7 -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 행 1: 7 –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② 제하는 자의 의미.
신신학자나 자유주의자들처럼 이성으로 용납되지 않는 이적과 기사와 표적을 제하여 버리거나 도덕적인 예수로 축소시키는 자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주님의 말씀을 기롱하고 재림을 거부하는 자들로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을 망각하는 자들이다.
* 벧후 3: 3-5 –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③ 주의해야 할 점.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데서 멈추어야 한다.
우리들의 지혜가 부족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을 바라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기도하는 가운데 말씀을 묵상하고, 저자의 의도를 찾도록 해야 한다.
1]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 음식으로써(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식물'(로마신)은 9: 10에서 사용된 '먹는 것'과 동일한 단어로 이상한 교훈을 전하는 자들은 이러한 식물을 통한 의식이나 규례에 의해서 온전하여지고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거짓된 여러 가지 다른 교훈은 엣세네파(Essenes)나 그와 비슷한 종파와 연관된 혼합주의적인 영지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Bruce, Hughes).
그러나 '식물'은 육체에 제한된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온전한 것을 이루실 때까지 허락된 예법에 불과한 것이었다(9: 10).
그러므로 식물과 의식을 통해서는 전혀 어떠한 유익도 가져다 줄 수 없으며 온전히 깨끗케 할 수 없고 단지 외적인 것만을 정결케 할뿐 양심을 정결케 할 수 없다(9: 13,14).
2]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유익과 풍성함은 식물과 그에 따른 의식을 지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의 효능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2: 9)과 기도를 통해서(4: 16)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은혜에 의해서만 온전하여질 수 있으며 거짓 가르침이 말하는 것처럼 식물이나 그 의식에 의해서 온전해질 수 없으니 그 식물과 그에 따른 규례는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도래할 때까지로 제한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성경 진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소식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이며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진리이다.
하나님의 은혜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음식을 먹는 것은 우리의 육신에 관계되는 것뿐이지 우리의 영혼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의 교제는 단지 음식을 먹는 교제가 아니고 성경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라고 강건케 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