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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3: 10 장막에서 섬기는 자 - 히 13: 13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06|조회수20 목록 댓글 0

 

히 13: 10 장막에서 섬기는 자 - 히 13: 13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히 13: 10 장막에서 섬기는 자 -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

 

율법에 규정되어 있다.

 

속죄제물 중에 그 피를 제사장이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지 않은 경우는 그 고기를 제사장이 회막 뜰에서 먹을 것이지만, 성소에 들어간 경우는 그 고기를 먹지 못하고 그것 전체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살라야 했다.

 

레 4: 5-12 - ⑤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⑥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⑦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들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 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⑧ 또 그 속죄제물이 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떼어낼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⑨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내되 ⑩ 화목제 제물의 소에게서 떼어냄 같이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번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⑪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것의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과 ⑫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서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사를지니라.

 

레 6: 26,30 - (26)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 (30) 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죄하게 한 속죄제 제물의 고기는 먹지 못할지니 불사를지니라.

 

 

1]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제단'(뒤시아스테리온)을 문자적인 희생 제단 자체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Hewitt)

 

그것은 '희생 제사'에 대한 환유(換喩)로(Bruce, Lane)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인 사역에 대해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8: 1-59: 11-14,24-2610: 11,12).

 

이것은 은유적으로 영문 밖에서 당하신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암시한다(12 12: 2, Spicq, Montefiore, W. Manson, Andriessen).

 

제단(祭壇, Altar)은 제사 등을 올리던 단으로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바치거나 향을 태우던 장소를 말한다.

 

처음으로 제단을 쌓았던 사람은 노아이다. 홍수 후에 방주에서 나온 뒤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창 8: 20).

 

아브라함은 여러 제단에서 예배를 드렸고(창 12: 7. 13: 4. 22: 9), 이삭 (창 26: 25)과 야곱(창 33: 20. 35: 1-3), 모세(출 17: 15, 출 24: 3-8) 등도 제단을 쌓았다.

 

초기의 제단은 자연석으로 만들어졌는데(삿 6: 19-23. 삼상 14: 31-35), 이는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출 20: 25-26)는 말씀에 근거한 것이었다.

 

(1) 구약의 제단

 

번제단은 성막 입구의 바로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사람들은 모두 이 제단에서 속죄의 피 제사를 드려야 했다.

 

피 제사는 드리는 사람들의 생명을 속죄하기 위해 드리도록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었다.

 

레 17: 11 -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이는 제단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수단이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방 신을 섬기는 제단의 경우 제물이 이방 신을 위한 음식 정도로 생각되는 것과 확연하게 구별된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제물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상징적으로 일치되어(히 7: 27),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임을 상기하게 한다.

 

요 14: 6 - 예수께서 이르시되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2) 신약의 제단

 

신약에서 예수님은 때때로 제단을 언급하셨다.

 

제단에 예물을 가져오려는 사람이 그의 형제와 불화한 관계에 있다면 먼저 화목한 후에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다(마 5: 23-24).

 

또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것과, 제단 위의 예물을 두고 맹세하는 것을 구별하던 사람들의 외식적인 행동을 꾸짖으셨다(마 23: 18-20).

 

(3) 히브리서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을 구약의 제단과 연관시켜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히 13: 10)라고 표현했다.

 

(4) 요한계시록

 

요한은 계시록에서 성도들의 기도가 향과 함께 드려지고 천사가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향을 받는 모습을 묘사했다(계 8: 3).

 

 

2]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십자가상에서의 예수의 죽음은 구원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은혜를 유지하는 원천이 된다(Bruce).

 

그러기에 새 언약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음식이나 그에 따른 규례에 의해서 거룩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희생 제사에 의해서 거룩해지며(12 9: 1410: 10, 14) 그 제단은 레위기에 규정된 법을 따르는 제사장들이나 유대인들은 전혀 참여할 수 없으며 맛볼 수 없는 것이었다(6: 5. Kuss).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희생 제사는 구약에서 규정한 제사 규례나 정결 규례보다 훨씬 우월한 것이며 온전케 하는 것이다.

 

혹자는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를 문자적으로 신약 시대의 성만찬과 연결 지어 제단을 성만찬 식탁으로 해석한다(Schroger).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본 절 내에 성만찬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볼 때 타당하지 않다.

 

(5) 우리가 가진 제단

 

이 말은 십자가 제단을 말한다. 이 제단은 모세의 율법에 따른 옛 제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따른 새 제단, 즉 새 언약의 제단이다.

 

이 제단의 대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스라엘의 속죄일 규례는 대 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셔서 이 제단 위에서 피를 흘리신 후, 그 피를 지성소로 가지고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살랐다(11 ).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 밖의 골고다 언덕에서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고, 그 피로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셨다(12 ).

 

 

히 13: 11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하나님의 모든 택한 백성들을 위한 속죄 제사이었다.

 

대제사장이신 그는 그의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으므로 그의 육체는 진 밖에서 불살라지셔야 했고 그래서 예루살렘의 성 밖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이다.

 

 

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은 희생 제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갔다.

 

레 16: 14-15 - ⑭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⑮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2]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희생 제물의 시체는 영문 밖에서 불살라 버렸다.

 

레 16: 27 - 속죄제 수송아지와 속죄제 염소의 피를 성소로 들여다가 속죄하였은즉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을 밖으로 내다가 불사를 것이요.

 

'영문 밖에서'라 함은 다음 절에서 언급될 그리스도의 고난의 장소를 암시한다.

 

구약의 성소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예시하는 제단에서 먹을 권리를 갖고 있지 못하며, 여전히 구약의 제의에 따라 사는 자들은 골고다에서 예수의 죽음을 통해서 성취된 속죄 사역의 결과인 그리스도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없다(Lane).

 

 

히 13: 12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

 

저자는 본 절에서 '영문 밖에서' 희생 제물을 불살라 버린 것과(11 ) 성문 밖에서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의 고난을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다.

 

 

1]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아사셀 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심으로 이를 믿는 자들에게 죄 사함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게 하셨다.

 

사 53: 3-6 - ③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④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⑥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2]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Lane).

 

Ⓐ 성문 밖에서의 예수의 죽음은 속죄일의 속죄제를 나타내는 것으로(J. Jeremias) 예수의 고난이 대제사장적인 속죄 사역을 성취하기 위한 새로운 조건임을 의미한다(10: 12).

 

Ⓑ 예수께서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신 것은 거룩한 영역으로부터 배제당하는 수치를 나타낸다.

 

그것은 산헤드린에 의해서 예수께서 정죄 받으심은 물론 백성들에 의해 배척(排斥) 당하심과 급기야 처형당하심을 시사한다.

 

'거룩케 하려고'(하기아세)는 '하나님을 위해 구별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에 의해서 드려진 제사가 제시하지 못했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직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만 거룩해질 수 있음을 나타낸다.

 

 

히 13: 13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

 

그 능욕(치욕)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당하는 비난과 불명예와 모욕을 가리킨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비난과 불명예와 모욕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그의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야 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제국의 핍박을 피해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에서 생활해야 했었다. 오늘날 우리는 주님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1] 그런즉 우리도 ...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영문 밖'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 그것이 지상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천상적인 영역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Thompson).

 

Ⓑ 그것이 유대교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Hewitt, Morris, Bruce, Hughes, Westcott, Filson).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유대인들은 '영문'을 거룩한 것으로, '영문 밖'을 더럽고 부정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께서 영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은(12 ) 거룩한 영역에서 제외 되었으며 부정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이해되었다.

 

레 13: 46 -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민 5: 2-4 - ②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 ③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어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내가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느니라하시매 ④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그들을 진영 밖으로 내보냈으니 곧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행하였더라.

 

신 23: 11 - 해 질 때에 목욕하고 해 진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요.

 

눅 6: 22 -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러나 전에 거룩하던 영문은 부정하여졌고, 전에 부정하던 영문 밖은 거룩하여졌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영문에서 쫓겨나 영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이다(Bruce).

 

따라서 저자는 아직도 옛 언약과 유대교의 범주인 영문 안에 머물러 있지 말고 이제 새 언약과 그리스도가 계신 영문 밖으로 나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다.

 

 

2]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그 능욕을 지고)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영문 밖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조건을 나타낸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능욕을 지는 일' 즉 유대교를 떠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스도와 동일한 고난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 곧 십자가상의 죽음은 이방인들에게 수치스러운 일이었으며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Hewitt, Morris).

 

신 21: 22-23 - (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갈 3: 13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게 나아가기 위해서 그와 동일하게 수치와 치욕으로 이해된 십자가를 짐으로 그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제자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는 복음서의 제자도와 동일하다.

 

마 10: 37-38 -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막 8: 34-38 -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성도는 형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 오실 때까지 또 우리의 목숨이 끝날 때까지 거룩하고 진실한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또 우리는 타지에서 온 형제를 영접하고 감옥에 갇힌 형제나 학대받는 형제를 돌아보아야 한다.

 

둘째, 성도는 결혼과 부부관계를 귀하게 여기며 결혼의 순결성을 지켜야 한다.

 

성도는 부부의 의무를 다해야 하고 정조를 지켜야 한다.

 

우리는 결코 간음하거나 음행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심판받을 죄이다.

 

셋째, 성도는 돈을 사랑하지 말고 가진 것을 족한 줄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부하려 하는 자들이 시험과 멸망에 빠지며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고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고 말했다.

 

딤전 6: 9-10 -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넷째, 성도는 경건하고 진실한 인도자들을 본받아야 한다.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은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하며 신앙생활의 본을 보여야 하며 교인들은 그들을 주목하고 그 믿음과 행위를 본받아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 다양하고 이상한 교훈들에 끌리지 말고 옛길, 바른 길을 붙들고 주를 위해 고난과 죽음까지 각오하며 그를 따르는 자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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