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일반 서신

야고보서(2) 시험을 기뻐하고 환영하십시오. (야고보서 1장 2-4절)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11|조회수19 목록 댓글 0

 

야고보서(2) 시험을 기뻐하고 환영하십시오. (야고보서 1장 2-4절)

 

< 시험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

 

  야고보는 첫 인사를 마치자 첫 주제로 시험을 언급합니다. 성도의 시험! 이 주제는 담임목사를 가장 떨리게 하고 마음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담임목사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부분도 바로 그 부분입니다.

 

  어느 때에는 성도의 기침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덜컹 합니다. 새벽기도 안나오던 성도가 갑자기 새벽기도 나오면 가슴이 덜컹합니다. “무슨 문제가 생겼나?” 반대로 새벽기도 꾸준히 나오던 성도가 갑자기 안나오면 역시 가슴이 덜컹합니다. “무슨 문제가 생겼나?” 그런 상황에서 항상 주님께서 힘주시고 평안을 주시니까 목회를 할 수 있음을 느낍니다.

 

  이처럼 성도의 시험을 보면서 담임목사로서 같이 가슴앓이를 하다 보니까 가끔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부흥사처럼 말씀만 전하고 그냥 가 버리면 얼마나 편할까?” 그러나 담임목사는 말씀만 전하고 가 버리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슴앓이가 심하지만 사실상 그것이 더욱 큰 축복인 줄 믿고 있습니다.

 

  야고보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담임목사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그의 서신에서 시험의 문제를 제일 처음 논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극히 당연한 일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시험이 없을 수 없고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시험은 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도 시험 당하셨다는 사실을 보면 시험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하면 시험 당하지 않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40일 금식기도를 한 후에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사실상 높고 큰 사람, 그리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큰 시험 당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시험을 당하지 않는 시험 면제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해도 시험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시험을 이기고 극복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시험을 당해도 시험에 들지 않는 경지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성도의 참된 능력입니다. 

 

  우리는! ‘시험을 당한다’는 것과 ‘시험에 든다’는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시험을 당합니다. 기도 많이 해도 시험을 당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시험에 들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험이 있어도 시험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성령 충만하면 시험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4장 1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그러므로 성령 받으면 시험이 없다는 말도 틀린 말입니다. 그처럼 누구에게나 시험은 있습니다.

 

< 인내를 온전히 이루십시오 >

 

  시험을 맞이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야고보는 그에 대해 말합니다. 본문 2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서 ‘여기라’는 말의 뜻은 “시험이 힘들어도 참고 기뻐하라!”는 수동적인 말이 아니라, 오히려 “시험을 기뻐하며 환영하라!”는 능동적인 말입니다.

 

  왜 시험을 기뻐하고 환영해야 합니까? 결과가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를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 뻔한 결과란 ‘성도의 최종 승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믿음을 가지고 바르게 기도하면 그 뻔한 결과가 아주 빨리 일어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그 뻔한 결과가 아주 더디게 일어납니다.

 

  믿음은 별 것 아닙니다. 뻔한 결과를 뻔하게 일어나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말씀대로 온전히 기뻐하면 가장 적절한 때에 그 승리의 뻔한 결과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아버지가 이겼는데 왜 아들이 그렇게 걱정이 많습니까?

 

  욥이 시험을 당할 때의 신앙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주님이 아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습니까? 그리고 누가 단련하신다고 합니까? 주님이 단련하신다고 합니다. 마귀가 단련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단련하는 것인데 무슨 걱정이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시련을 만나도 안심하고, 마음을 푹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정금 같이 되어 나오는 축복을 받을 준비만을 하면 됩니다.

 

  오늘 본문은 시련에 대해서 뭐라고 말합니까? 1장 3절을 보십시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 구절은 시련을 ‘믿음의 시련’이라고 말합니다. 즉 믿음은 시련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알아야 합니다. “너희가 앎이라!”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믿음이 시련을 당한다는 것이 신앙의 기초라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느냐는 말입니다.

 

  그처럼 ‘안다’는 구절이 로마서 5장 3절에도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을 알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1장 4절을 보십시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이 구절에서 “인내하라”라 아니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권면을 하는데, 그 말은 인내를 포기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인내는 헬라어로 휘포메노라고 하는데 ‘아래에 머문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내는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내하면 많은 것을 얻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 “인내하는 자는 그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인내하면 본문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전, 구비, 만족’ 라는 여러 가지 가치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인격을 아름답게 빚는 영적 화장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인내입니다. 그리고 그 인내를 만들어내는 원료가 바로 믿음의 시련입니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인내로 영적 화장을 잘 해서 언제나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을 갖추고 축복을 예비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