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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4) 남는 것은 그리스도뿐입니다. (야고보서 1장 9-11절)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13|조회수19 목록 댓글 0

 

야고보서(4) 남는 것은 그리스도뿐입니다. (야고보서 1장 9-11절)

 

< 거꾸로 사는 교인 >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쓰면서 오랫동안 목회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꼽아보며 썼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첫째 문제는 ‘시험’이고(2-4절), 둘째 문제는 ‘기도’이며(5-8절), 셋째 문제는 ‘가치관’의 문제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시험과 기도에 이어 가치관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본문 9-10절을 보십시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가치관이 변하지 않으면 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습, 세상의 가치관은 어떻습니까? 낮은 형제는 낮다고 상처를 부여잡고 살고, 높은 형제는 부하다고 과시하며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거꾸로 보아야 하고, 거꾸로 살아야 합니다.

 

  분당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처음에 교회 이름을 짓는데 한 성도가 ‘거꾸로 보는 교회’라고 짓자는 얘기를 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기발한 이름을 지어냈는가 라고 물었더니 그분이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목사님의 사상이 그렇지 않나요?”

 

  얼마나 좋은 이름입니까? 거꾸로 보는 교회! 교회 이름으로 너무 특이해서 그렇게 교회 명칭을 붙이지 않았지만 세상과는 달리 거꾸로 보는 교회, 거꾸로 사는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즉, 없어도 낙심하지 않고, 있어도 교만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이와 같은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바른 모습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옛날의 세상적인 것이 좋다고 하면 그것은 온전한 믿음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 성경이 말하는 참된 가치관 >

 

  좋은 환경에서만 ‘좋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차원 높은 신앙생활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우리는 나쁜 환경에서도 '좋다'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참된 가치관은 무엇일까요?

 

  첫째,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적으로 산다는 말은 “예수라는 어떻게 하실까?”라는 거룩한 질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정신적이고 영적인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중요한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셋째, 순간적인 것보다는 영원한 것을 보는 미래지향적 가치관입니다. 넷째, 자기중심적인 것보다는 이타적이고 봉사하는 것에 가치를 둡니다.

 

  우리가 그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런데 왜 이런 가치관의 변화가 있어야 할까요? 10절 후반부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인생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적인 세계관입니다. 이것만 알아도 훌륭한 철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철학이 별것 아닙니다. 인생의 허무와 허망을 아는 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철학을 인간의 학문 중에서 왜 최고의 학문으로 여깁니까? 교만한 인간에게 자기 자신의 허무함을 알게 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철학보다 한 차원 더 높은 학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학입니다.

 

  참다운 신학을 무엇을 가르칩니까? 인생은 허무하지만 하나님 안에 있는 인생은 허무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인생은 허망하지만 하나님은 희망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신학을 잘 배우면 보람과 행복이 넘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 교만과 긍지는 다른 것입니다 >

 

  오늘 본문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똑같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설령 다른 것이 있다고 해도 아주 작은 것으로 알고 그 정도 차이는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가는 과정은 조금 달라도 마지막 가는 길이 같지 않습니까? 그 사실을 극대화하여 늘 잊지 않고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허무주의인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마지막 가는 길을 같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하나님 중심적인 세계관에서 나오는 진리입니다. 그러한 세계관을 가질 때 얻어지는 플러스알파가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엄청난 가치관의 변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다시 한번 본문 9-10절을 음미하면서 보십시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 구절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구절에서 두 번 나오는 단어 바로 ‘자랑’입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자랑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삶 자체를 쓸데없다고 하면서 살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내가 정말 소중히 여기는 것, 즉 나의 진정한 자랑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자랑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교만이 아닙니다. 교만과 긍지는 별개의 것입니다. 교만은 없어야 하지만 긍지는 있어야 합니다. 부해도 교만이 없어야 하고, 가난해도 긍지가 있어야 합니다.

 

  가끔 물질은 많은데 마음이 거지와 다름없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는 일은 가장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반면에 물질은 없어도 마음이 넉넉하고, 부해도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회하면서 그런 분을 보는 일은 가장 감동적인 일입니다.

 

  예를 들어, 목회하다 보면 인간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는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부하지만 낮아지는 원리를 아는 참으로 자랑스러운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런 자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자기 자신의 기본적인 모습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즉 물질이나 지식은 생각지 않고 자신의 근본적인 모습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인간의 근본적인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본문 10-11절을 보십시오.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꽃과 같습니다. 다 떨어져 없어지고 맙니다. 이 사실을 진지하게 아는 것에서 바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가치관이 나옵니다. 그런 가치관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넉넉한 마음으로 안달하지 않고 아주 초연하게 살아갈 수 있고 대수롭지 않은 일에 “죽네! 사네!” 하지 않게 됩니다.

 

  가끔 대학입시 때가 되면 합격했다고 하늘에 올라갈듯 좋아하고 떨어졌다고 자살할 듯 절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먼 훗날이 되어야 과연 어느 쪽이 잘되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두고 봐야 압니다.

 

  부한 자는 낮아짐을, 낮은 자는 높아짐을 자랑하는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가치관, 같은 자랑, 같은 종말론적 신앙, 같은 기쁨을 향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남는 것은 그리스도뿐이요,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은혜뿐입니다. 여기에 새로운 세계관이 있고 새로운 가치관이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사는 사람은 늘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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