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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5) 사랑하기에 주는 시련입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14|조회수18 목록 댓글 0

 

야고보서(5) 사랑하기에 주는 시련입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

 

< 누가 복 있는 사람일까요? >

 

  누가 복 있는 사람일까요? 대개 사람의 불행은 재물을 복으로 이해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성경적 복은 물질적인 복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삶의 지경이 넓혀지고, 시야가 넓혀지는 것이 성경적 복이며,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는 것과 사람을 주시는 것도 성경적 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구절에서처럼 새로운 개념의 복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누가 복 있는 사람이라고 적고 있습니까?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복에 대한 혁명적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복 있는 사람에게도 시험은 온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험을 복의 바로미터로 본다면 야고보는 냉철하게 시험이 없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험이 있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시험이 없는 것이 꼭 복은 아닌 것을 자주 체험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성도의 시험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험이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성도들이 어려운 시험을 당하면 가슴이 덜컹 합니다. 저도 우리 교회 성도들이 시험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시험이 있어도 승리하기를 더욱 기도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시험이 없는 사람보다 시험이 있는 사람에게 더 관심과 애정이 갑니다. 새벽기도에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할 때 당연히 그들을 위해 먼저 기도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은 그 순간에 우리에게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그 시험을 잘 치루기를 사랑과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성원하실 것입니다.

 

  그처럼 성원하시는 하나님께 원망하는 모습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모습입니다. 시험과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과 성원을 신뢰하고 여전히 감사하며 살면 그 시험은 복으로 통하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 시험이 있는 자가 복 있는 이유 >

 

  그렇다면 시험이 없는 자보다 시험이 있는 자가 복 있는 이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저는 3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시험이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의미합니다.

 

  시험이 있다는 것은 내가 영적으로 살아있고, 영적으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의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영적으로 죽은 자에게는 마귀가 시험을 걸지 않습니다. 가망이 없는 자에게도 마귀가 대들지 않습니다. 싸움도 서로 상대가 되어야 싸움이 되듯이 시험도 시험 걸만한 인생이라야 겁니다. 끝난 인생, 다된 인생한테 무슨 시험을 걸겠습니까?

 

  마귀도 죽은 인생, 패잔병처럼 사는 인생은 별로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만히 놔두면 되는데 괜히 자극하면 오히려 삶의 투지만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마귀의 시험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있다는 간접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있음은 우리가 복된 존재임을 확인해 주는 표시입니다.

 

2. 성도는 시험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참는’으로 번역된 헬라 말은 ‘휘포메노’라고 합니다. ‘휘포’는 ‘밑에’라는 뜻이고, ‘메노’는 ‘머문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참는다는 말은 “밑에 머문다!”는 말로 능동성을 내포합니다. 즉 ‘시험을 당한다’라는 수동적인 자세보다는 ‘시험을 참는다’라는 능동적인 자세를 말합니다.

 

  시험이 있을 때 “아이고 망했구나!” 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당하는 순간에 그 의미를 깨닫고 맞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반응하면 믿음, 사랑, 소망, 지혜, 용기와 같은 소중한 덕목들을 얻게 됩니다. 시험을 소극적으로 무작정 당하면 슬픈 일이지만 적극적으로 참는 것이라면 성숙한 삶의 지혜가 생깁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시험이 없는 것보다 시험이 있는 것이 복이 있는 셈이 됩니다.

 

3. 시험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뚜렷한 증거입니다.

 

  자녀들은 대개 부모들의 잔소리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사랑에서 오는 잔소리라고 생각할 때 싫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말이 소중한 훈계로 들리느냐 아니면 귀찮은 잔소리로 들리느냐의 여부는 그 말에 사랑이 개입되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자기의 기분 나쁜 것을 자녀들에게 잔소리로 푸는 것이나 자기의 야망을 자녀들을 통해서 달성하려고 잔소리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런 느낌이 자녀에게 들면 부모의 잔소리 및 징계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억울하게 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순수한 사랑으로 훈계하는 사실을 알면 대부분의 자녀들은 기쁘게 그 훈계를 수용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진실한 성도에게 시련을 주시는 이유는 대개 그 성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주시는 시련입니다. 시련은 하나님의 잔소리가 아닌 ‘참 소리’로 그 안에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저는 상담을 오는 사람에게 결론적으로 항상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에 주는 시련일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시련이 가벼워집니다. 시련을 지나치게 죄와 연관시켜 저주와 심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반응하면 시련은 더욱 무거워집니다. 시련은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손안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편하게 사랑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사랑 받을 수도 있지만 시련으로 사랑 받는 순간도 있습니다.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시험을 쳐야 학생들에게 발전이 있듯이 하나님의 사랑은 시험을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억지로 골탕 먹이려고 자주 시험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시험에서 우리가 좋은 점수를 맞으면 시험치는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면 또 시험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살면서 시험이 없을 수 없기에 시험이 전혀 없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시험을 줄일 수 있기에 이미 주어진 시험을 잘 쳐서 시험을 줄이려고 애써야 합니다.

 

  시험을 줄이는 데에는 시험을 대하는 나의 신앙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시험은 교훈적인 의미의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에 내가 그 시험을 통해 잘 교훈 받으면 그 시험은 다음에 면제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잘 치루는 지혜와 능력을 구하는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입니다.

 

< 하나님이 내미시는 사랑의 시험지 >

 

  그러면 어떤 사람이 시험을 잘 치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을 믿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성숙한 사람이라야 시험을 복으로 소화할 수 있습니다. 유치한 사람은 그저 돈 보따리나 굴러 와야 복인 줄 알입니다. 또 그런 사람은 손해를 입으면 그것이 저주인 줄 압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시야와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만 시험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이 축복과 은사가 있음을 믿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여기에서 ‘인정받는다’는 말의 헬라어는 ‘도키모스’입니다. 그 말은 훈련을 통해 순도가 높아졌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시험에는 두 가지 종류의 시험이 있습니다. 하나는 ‘페이라조’의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본인의 죄와 허물로 당하는 시험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도키마조’의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단련을 위한 시험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본문에서 나오는 시험은 바로 ‘도키마조’의 시험입니다. 즉 우리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우리의 신앙 순도를 높이기 위한 시험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통하여 우리를 정화시켜 나갑니다. 그래서 때때로 시험을 허락하여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을 버리게 하십니다. 잘못인 것을 알고 미적거릴 때 하나님은 기어이 시험을 통해 끊게 하십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시험과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우리의 영적 수준을 높이시고 우리의 인격을 격상시키십니다. 그리고 어느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마침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때로 시험을 당할 때 지나친 죄책감에 빠지고 너무 낙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큰 죄를 지었고 내가 아주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만 시험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셨고, 특히 40일 금식기도를 한 후에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이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더 축복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고 우리의 영적 수준 높이려고 하나님이 인생 교실에서 내미시는 사랑의 시험지와 같습니다. 시험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기쁨으로 잘 견딤으로 신앙이 자라고, 인격이 자라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이 되어 마침내 천국의 면류관을 얻는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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