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일반 서신

야고보서(6) 왜 시험이 찾아올까요? (야고보서 1장 13-15절) : 김정남 목사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15|조회수18 목록 댓글 0

 

야고보서(6) 왜 시험이 찾아올까요? (야고보서 1장 13-15절)

 

< 잘못했을 때 나타나는 6가지 태도 >

 

  죄를 짓거나 잘못을 저지르고 시험을 당할 때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보편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태도가 흔히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남 탓으로 돌립니다.

 

  모든 갈등의 원인은 ‘남 탓'에서 비롯됩니다. 가장 소중한 인간 공동체인 가정조차 ’남 탓‘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가정을 좀 먹는 네 가지 탓’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즉 남편 탓, 아내 탓, 부모 탓, 자식 탓은 가정의 행복을 질식시키는 가시입니다. 가정에서부터 탓하는 버릇이 고착화되면 결국 고약한 인격과 체질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내 탓’은 나의 죄를 끊는 동기부여를 하지만 ‘남 탓’은 나의 죄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2. 환경 탓으로 돌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잘못을 환경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환경은 큰 이유가 아닙니다. 지난 다음에 생각해 보면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을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었습니다. 잘못의 원인은 환경에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습니다. 가난하면 도적질을 해도 됩니까? 누가 화나게 하면 살인을 해도 됩니까? 안 될 일입니다. 환경 탓으로 돌리면 잘못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고 결국 하나님 탓이라는 얘기로 흐르게 됩니다. 얼마나 무책임한 일입니까?

 

3. 마귀 탓으로 돌립니다.

 

  자신의 잘못을 마귀 탓으로 돌리는 태도는 가장 고약한 태도이고, 가장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설사 마귀가 중간에 장난을 했다고 할지라도 내 마음과 의지를 통해 벌어진 일은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4.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나만 그런 죄를 짓는가?”라고 하면서 다 그렇다고 보편화시킵니다. 물론 다른 사람도 똑같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내 죄는 내 죄이고, 자기 잘못은 자기 책임입니다.

 

5. 실수였다고 말합니다.

 

  언젠가 연세대학교 앞 공중전화 박스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통화를 간단히 하라고 하던 아주머니를 전화하던 청년이 발끈하여 칼로 찔러 죽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청년 이야기가 한심합니다. 자기는 자라면서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순간적으로 실수했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자기가 왜 그랬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만 “실수했다”는 것은 변명거리로 삼을 수 없습니다.

 

6.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물론 사람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단단히 결심했다면 그 사건에서 충분히 시험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존재는 아니지만 시험을 충분히 이길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 시험을 이기지 못해 자기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이지 애초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된 것은 아닙니다.

 

  이런 태도들은 자신이 자신을 과보호하려는 태도입니다. 어린아이들을 과보호하면 버릇이 나빠지듯이 자신을 과보호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나쁜 태도가 체질화되고 문제 해결은 더욱 요원해지게 됩니다.

 

  죄를 짓고 실패했을 때는 자신의 부족함을 겸허히 인정하면서 잘못을 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남을 나를 보호해 주는 역사가 생겨나게 됩니다. 모든 죄는 “내 탓이다”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게 되고. 축복된 자리를 향한 위대한 출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시험이라는 문제를 통해 그 사실을 도전해 주고 있습니다.

 

< 왜 시험이 찾아올까요? >

 

  왜 사람에게 시험이 찾아올까요?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시험을 당하는지, 혹은 시험이 어느 길로 오는지를 알아야 시험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혜가 보다 많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야고보는 시험의 근본 원인을 자기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본문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원인은 세상이 아닙니다. 환경도 아닙니다. 원인은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시험은 내 마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정말로 내 책임이 없는 상태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았는데도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부족해서...내가 기도하지 않아서...”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시험을 당할 때 “나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다 보면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원망의 자리’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것을 대단히 큰 죄로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원망이란 기본적으로 마음의 간사함을 나타내는 것이고, 원망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리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망하는 사람을 보면 진실한 삶의 모습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2-3장에 나오는 하와를 대하는 아담의 모습을 보십시오. 일이 잘될 때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더니 일이 잘못되니까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저 여자가’라고 나옵니다. 그렇게 여자 탓을 하다가 나중에는 여자를 주신 하나님에게까지 원망을 돌립니다.

 

  이처럼 원망은 자꾸 거슬러 올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남 탓, 환경을 들먹거리다가 좀더 나아가면 조상 탓까지 하고, 마침내는 하나님 탓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원망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됩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원망하는 죄를 지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와 시험이 있을 때마다 내 책임을 항상 먼저 생각하고 그 상황을 능동적으로 헤쳐 가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