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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9)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야고보서 1장 16-18절)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18|조회수18 목록 댓글 0

 

야고보서(9)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야고보서 1장 16-18절)

 

< 하나님의 3가지 속성 >

 

  야고보서 1장 16-18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바른 신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했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요? 17-18절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세 가지 속성이 나와 있습니다. 그 세 가지에 대해서 같이 살펴보기로 할까요?

 

1.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17절을 보십시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하나님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은 결국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이 확신이 없다면 수시로 다가오는 중압감과 불안감을 어떻게 견디어 내겠습니까?

 

  가끔 성도들의 기도제목을 들을 때마다 목사의 중압감은 정말 큽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어려움이 목회자의 가슴을 누를 때가 많습니다. “원하는 것이 안 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이 가슴을 누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믿기에, 하나님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으로 믿기에 기도가 되고 마음이 평안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선물을 주실 뿐만 아니라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의 필요한 것을 나보다 더 잘 아시고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가난이든, 질병이든, 실패든 하나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그 길을 허락하셨을까요? 어차피 그것이 자신에게 있어야 하기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있어야만 그 다음이 있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뿐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삶을 보십시오. 우리는 부모님께 받은 것이 많습니다. 효를 아는 사람은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철이 듭니다. 그러나 못된 사람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오직 상처만 받았다고 생각하고 부모님에 대해 원망을 합니다. 그래서 기억 저편에 있는 무수한 진자리, 마른자리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남에게는 받은 것만 있고 남에게 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겸손이 체질화된 사람은 남에게 해 준 것은 별로 기억하지 않고 받은 것은 오래 기억합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남에게 준 것만 있고 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만이 체질화된 사람은 받은 사실은 금방 잊어 먹고 준 사실만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왜 이렇게 주지 않느냐?”라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어 생각합니다. 그래서 섭섭한 것도 많고 상처도 많이 받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신세를 많이 진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로부터 땅으로부터 다 받은 것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고백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십니까? ‘각양 좋은 은사’를 주십니다. 즉 똑같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원리입니다. 그러나 이 평범한 원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남과 똑같은 것을 받지 못했을 때는 불만을 품게 됩니다. 그 불만과 불평이 자기가 받은 것을 잊어먹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는 각양각색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억력이 비상합니다. 수백 개의 전화번호를 외웁니다. 사람 얼굴을 봤다 하면 잊어먹지 않습니다. 대단한 기억력입니다. 그런데 기억력 좋은 사람 치고 창의력이 좋은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발명가들은 대개 기억력이 나쁩니다. 에디슨, 뉴톤 같은 사람을 보십시오. 그들에게는 유명한 건망증 일화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창의력이 없습니다. 반대로 창의력이 좋은 사람은 기억력이 없습니다. 머리만 보아도 하나님이 이렇게 다르게 주셨습니다. 공부해서 성공할 사람이 있고 장사해서 성공할 사람이 있습니다. 은사는 각양이기에 남의 은사를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못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남과 다른 것을 받은 것입니다. 내가 남과 다른 것을 받았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 비로소 내가 가진 것의 의미와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러운 것이 많다면 이러한 은사의 원리를 잘 깨닫지 못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리고 은사의 원리를 잘 모르면 은사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갖게 됩니다.

  

  어떤 부흥회의 낮 집회에서 유명한 부흥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성령의 9가지 은사를 다 받게 해 주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많이 오십시오.” 말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그 말은 진실한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상반되는 말입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은사를 다 받고 아주 특별한 존재가 꼭 되어야 할까요? 9가지 은사를 다 받고 그에 합당한 일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 자기에게 있는 한 가지 은사만 잘 개발해도 그 사람은 누구보다 행복한 존재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일생 내내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 변함없으신 하나님

 

  17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어제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주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29절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그 말씀은 그리스도를 버린 이스라엘의 회복과 관련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버린 이스라엘 백성일지라도 때가 되면 한번 선택했기에 하나님은 언젠가는 꼭 회복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물며 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약속을 저버리시겠습니까?

 

3.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신 하나님

 

  흔히 야고보서는 은혜는 없고 행위만 얘기하는 서신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오해입니다. 본문 18절 말씀 하반부를 보십시오.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강력히 피력한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왜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습니까?  본문은 말합니다.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라고 말입니다. 첫 열매가 무엇입니까? 구약을 보면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놀라운 복음이 그 말씀 안에 담겨 있습니다. 첫 열매가 왜 중요합니까? 먼저 믿는 사람이 나중 믿는 사람의 표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목회해 보니까 자주 느끼는 사실은 “처음 믿는 사람은 그를 인도한 사람만큼 밖에 못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물은 수위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인도한 사람이 낮 예배만 나오면 인도 받은 사람도 낮 예배만 나옵니다.

 

  인도한 사람이 새벽기도회에 나오면 인도 받은 사람도 새벽을 지킵니다. 인도한 사람이 교회에 한 달에 한번 나오는 사람이면 인도 받은 그 사람도 한 달에 한번 정도 나오는 경우를 자주 목격합니다. 그 사실을 안다면 소중한 첫 열매가 되기를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거듭 말씀드리지만 바른 신관을 가져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시험에 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모자라서도 아니고, 인간관계가 잘못되어서 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넘어지는 사람을 자세히 보면 대개 신관이 잘못되어서 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관을 통해 여러분 자신을 소중하게 지켜 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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