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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11) 말하기를 더디 하십시오 (야고보서 1장 19-21절) : 김정남 목사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20|조회수24 목록 댓글 0

 

야고보서(11) 말하기를 더디 하십시오 (야고보서 1장 19-21절)

 

< 사람들이 성을 내는 이유 >

 

  본문 19절 말씀에 나오는 야고보의 권면을 들어보십시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면 성내기도 더디 하라.” 이 구절에서 야고보는 ‘말의 절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생활을 하면서 3치 혀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생겨납니까? 저는 목회를 하면서 이런 말을 가끔 듣습니다. “어떻게 교인이 교회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그 문제에 대해서 냉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죄성과 연약함을 생각해 볼 때 무슨 말인들 못하겠습니까? 우리가 교인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해야 하겠지만, 지나친 기대를 통해 실망으로 빠져드는 일도 없도록 해야 합니다.

 

  교인들을 가장 실망스럽게 만드는 일이 무엇일까요?  말하는 태도, 성내는 태도가 가장 실망스럽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말을 더디 하고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권면합니다.

 

  지난 시간에 성내는 것의 심리적 원인을 간단히 몇 가지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그 문제를 보다 심도 있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사람들이 성을 내게 될까요?

 

1. 끝까지 다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정을 끝까지 들으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누구나 그 상황이 되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상 이해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비판부터 하려 들기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정생활을 돌아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녀에게 어떻게 합니까?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고 자녀에게 함부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들은 자식이 공부 못한다고 화를 내지만 자녀의 입장에서는 기막힐 일입니다. 누구는 공부를 못하고 싶어서 못합니까? 하고 싶은 동기부여가 생기지 않고, 해도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학교에 가면 선생님은 구박하고, 친구들도 따돌리는 마당에 집에 오면 부모까지 “공부 못하면 나가 죽으라!”고 하니까 우리 아이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정말 갈 곳이 없습니다.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구 몰아치면 그것이 죽으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배우자에게는 또 어떻게 합니까? 나의 영원한 배우자이지만 교양과 겸양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해야 하는데 자기중심적으로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화를 내서는 안 되는 상황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들어보려 하고, 이해해보려 하는 모습을 갖춰야 합니다.

 

2. 듣고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로 인해 생기는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겠다는 각오를 하고 상처를 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무엇인가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상처가 대부분입니다. 말로 인한 상처의 대부분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한번만 더 생각해 보면 온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자기가 모든 사정을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며 판단하는 말을 통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모르는 부분이 훨씬 많습니다.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 말의 결과를 너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감정 내키는 대로 말을 해 버립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나중에는 그 말의 잘못을 깨닫고 자기가 오히려 신음하며 괴로워합니다. 왜 그런 일이 생깁니까? 그 결과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말의 잘못을 깨닫고 신음하는 사람은 오히려 낫습니다. 어떤 분은 자기 말의 잘못에 대해 괴로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상처를 주고 뒤끝이 없는 것을 자랑합니다.

  

  뒤끝이 없는 사람임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그런 자랑을 하는 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개 남에게 상처를 잘 주는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로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지 상처를 주고 난 다음에 자기 혼자 뒤끝이 없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4. 지식과 논리의 부족 때문입니다.

 

  지식과 논리가 부족하면 억지를 부리는 방편으로 성을 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식의 증대를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하되, 특별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말씀에 대한 지식의 증대를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위 네 가지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르치려고 하고, 훈계하는 스타일의 말을 하며, 듣기보다는 말하고 주장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말하기를 더디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즉 입술을 잘 다스리라는 말입니다.

 

< 축복은 언어생활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

 

  축복은 “입술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와 상당히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 이삭이, 야곱, 모세가 다 입의 고백으로 축복 받았습니다. 다윗이 입의 고백으로 축복 받았고, 신약성경의 성도들도 다 입의 고백으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백부장이 입의 고백으로 은혜 받았고, 죄 많은 여인도 입의 고백으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도 입의 고백으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잠언서 6장 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입을 잘못 놀리면 입이 우리의 축복을 얽어매고 우리의 행복을 잡아간다는 말입니다.

 

  살아가면서 좋은 분위기를 무엇이 깹니까? 밥상을 진수성찬으로 차려도 말 한마디 잘못 나가면 그곳의 분위기는 깨집니다. 아무리 행복한 집을 만들려고 해도 입이 잘못하면 그 행복은 날아갑니다. 요즘은 정치인들이 망하는 이유를 보십시오. 거의 대부분 입 때문에 망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입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물론 우리가 행동하는 것도 잘 행동해야 됩니다. 그러나 입을 고치지 않으면 아무리 행동을 잘해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반대로 입을 잘 관리하면 부족한 행동을 상당 부분 커버할 수 있습니다. 다른 행동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입이 제대로 관리가 안 되면 지혜롭게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입이 팔자를 고치게 하는 도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숨겨주면서 신앙심을 가진 사람처럼 말을 잘해서 그 가족이 살아났고, 결국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이 나오게 되는 놀라운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입이 팔자를 고친 것입니다.

 

  국가가 발전하려고 해도 무엇보다 언어문화가 발전해야 됩니다. 언어가 부드러우면 민족 정서도 부드럽고, 언어가 발전하면 민족도 발전합니다. 미개한 나라를 보십시오. 언어가 있긴 하지만 단어가 몇 마디 없습니다.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의 영혼도 성숙하고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언어문화를 성숙시켜야 합니다. 항상 온유한 말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가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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