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12) 말씀을 들을 때 피해야 할 태도 (야고보서 1장 22-25절)
< 듣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는 들음과 행함의 문제를 논하면서 무엇이 말씀을 올바로 듣는 자세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는 햇수가 늘다가 보니까 성도의 신앙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듣는 자세’를 통해 어느 정도 신앙상태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듣는 자세로 벌써 성적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듣는 자세가 좋으면 점수를 더 주게 됩니다. 물론 시험 점수를 채점할 때에는 최대한 공정하게 합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평가는 시험 점수만 가지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듣는 자세가 좋은 학생은 학점을 잘 줍니다. 왜냐하면 그 학점에는 자세 점수와 태도 점수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원리는 영적인 경우에서도 같이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를 보시지만 우리의 듣는 태도를 특히 주목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내용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듣는 태도와 자세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말씀을 집중적으로 들어보십시오. 그러한 자세 가운데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 10:17)고 했습니다.
위 로마서 10장 17절 말씀을 잘 분석해 보십시오. 우리가 믿음이 중요한 것은 압니다. 그리고 말씀이 중요한 것도 압니다. 그런데 위 구절을 보면 믿음 및 말씀과 ‘들음’이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듣는 자세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 말씀을 들을 때 피해야 할 태도 >
오늘날 신앙의 부족한 단면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듣는 바른 자세의 결핍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떤 태도를 피해야 할까요?
1. 들을 준비를 하지 않고 듣는 태도
어떤 분은 말씀을 들으면서 이런 자세를 가지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말씀을 잘 전하나 보자! 틀린 부분은 없나 보자!” 그렇게 판단하는 자세로 있으면 어느 말씀이 은혜가 되겠습니까? 그런 자세라면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말씀도 은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요새 담임목회자가 공석이 된 어떤 교회 사이트에 들어 가보니까 젊은 부목사의 설교를 우습게 아는 글들이 많이 올라온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목사의 설교가 부족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내용을 인터넷에 올려놓는 것을 보면 듣는 사람들의 자세가 더 큰 문제입니다.
요새 왜 말씀의 기갈 현상이 생기게 되었습니까? 강단에서 전하는 말씀의 내용이 과거보다 못합니까? 아닙니다. 말씀을 듣는 자세가 과거보다 못하기 때문입니다.
젊은 목사의 말이라고 우습게 들어서는 안 됩니다. 인생을 많이 겪지 않았다고 유치하다고 넘겨짚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서른에 목회를 시작하시고 서른셋에 마치셨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 보고 젊어서 어떻다는 말을 누가 감히 할 수 있겠습니까? 젊은 목사의 말씀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저는 가끔 1988년 전도사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는 생각해 봅니다. 그때는 나이도 어렸고, 경험도 없었고, 지식도 별로 없었습니다. 정말 여러 모로 부족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있었습니다. 너무 부족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말씀 준비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것! 그것 한 가지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씀 한편을 준비하면서 일주일을 씨름했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은 젊은 전도사의 설교에 최선의 심령으로 귀를 기울여 주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때의 심정으로 말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5년간 신학교 강의도 했고, 1992년부터 교회를 개척했으니까 경험도 꽤 있습니다. 사실상 준비가 덜 해도 강단에서 자유롭게 설교할 수 있는 정도는 됩니다. 그래도 저는 말씀 준비에 매일 혼신의 힘을 기울입니다.
매일 새벽 말씀을 전한다고 대충 준비하지 않습니다. 제가 언어의 표현력이 남보다 조금 낫다고 해서 준비를 덜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개 교회 담임목사는 매일 신선한 꼴을 준비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저는 신선한 영의 양식을 위해서 매일 땀을 흘립니다.
제가 아직 40대이기에 아직도 젊은 목사인 편입니다. 그러나 젊은 목사이기에 최선의 기도와 최선의 땀을 더 흘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젊은 목사의 말이라고 우습게 듣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는 귀로만 대충 듣지 말고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2. 듣는 것 자체만 즐기려는 태도
어떤 분은 말씀을 듣는 것만 좋아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그런 사람을 ‘부흥회꾼’이라고 지칭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누가 말씀을 잘 전한다고 하면 보따리 싸들고 달려갑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은혜 받았다,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씀을 재미로 들으면 진짜 참 은혜가 없습니다.
말씀을 진정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면 믿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믿음이 생겨나면 자연히 행함이 뒤따르게 되고 그렇게 믿음과 행함이 겸비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귀를 간질이지 않고 심령을 울리도록 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진지해 보이지만 아주 위험한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학문적으로 듣는 태도입니다.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말씀에 관한 다양한 공부에는 잘 참여합니다. 벧엘공부, 크로스웨이공부, 주제별공부 등 말씀 공부는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공부만 하는 사람들은 한없이 공부하고 한없이 탐구할 뿐, 별로 열매가 없는 경우를 봅니다. 그것도 말씀을 듣기만 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듣는 것 자체를 예배로 여기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것이 공로가 되기도 합니다. “나는 한 시간도 안 빠졌다”고 하는 것이 자랑입니다. 그러나 듣고 받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결국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단지 “안 빠졌다”는 사실만 있습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소화하여 양식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3. 듣고 나서 실천하지 않는 태도
어떤 분은 설교를 들을 때 “아멘!” 소리를 크게 합니다. 목회자가 제일 좋아하는 성도는 “아멘!”을 잘하는 성도입니다. 설교할 때 “아멘!” 소리로 화답해주면 얼마나 힘이 나는지 모릅니다. 목회자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부조입니다. 성도는 말씀을 들으면 은혜를 받지만 목회자는 아멘 소리를 들으면 은혜 받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할 때 아멘으로 반응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아멘!” 소리를 크게 하면서 마음도 최고의 ‘아멘의 마음’이 되고, 생활도 최고의 ‘아멘의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멘은 “그렇습니다!”라는 뜻을 포함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입의 아멘이 손의 아멘으로 실천되어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21장 28절을 보면 한 아버지가 두 아들 중에 맏아들에게 말합니다.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그러자 맏아들은 “가겠습니다.”라고 대답은 잘했지만 안 갔습니다. 요즘 교인 중에 이 맏아들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아멘은 열심히 해놓고 아멘의 삶을 향해서는 가지 않는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개념에서는 ‘듣는다는 것’과 ‘순종한다는 것’이 같은 개념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듣기만 하는 것이 체질화되면 스스로 속는 자가 됩니다. 자기를 고의적으로 속이지는 않지만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시험을 당하고 보니 아는 것이 없습니다. 능력이 있는 줄 알았는데 시험을 당하고 보니 능력이 없습니다. 심지어 중생한 줄 알았는데 시험을 당하고 보니 중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이 생겨나는 이유는 아멘의 삶을 살지 못하고 스스로 속아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동화해야 진정한 은혜가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할 때에도 그렇습니다. 교회에 참여해서 봉사하는 자만이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반면에 헌신과 봉사가 없으면 은혜의 깊은 뜻을 모르게 됩니다. 봉사하고 바쳐본 사람만이 은혜의 신비한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아멘에 내포된 두 가지 삶이 겸비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이라고 동의했으면 그 아멘의 삶을 행하십시오. 믿음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신행일치의 삶은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놀라운 원천이 됩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