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14) 경건의 척도 3가지 (야고보서 1장 26-27절)
< 경건은 내면에서 나옵니다 >
지난번에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율법은 우리의 속박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온전하지 못한 것이지 율법이 온전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율법은 실현 가능합니다. 사실상 율법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율법은 마지막에 가서 실천해야 합니다.
경건이란 실천에서 나오는 것이지 전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알기만 하는 율법은 심판자가 되어서 도리어 번민에 빠지게 만듭니다. 머리와 손의 불균형! 그것이 정신건강을 심각하게 해칩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고통만 많아지고 번민만 무성해집니다. 율법은 최종적으로 실천의 단계로 나아가야 그것이 율법의 의미를 이해한 경건한 삶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를 명쾌하게 잘 알려주는 본문입니다. 경건이란 하나님 앞에서 내면적 인식을 말합니다. 즉 “지금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 지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실천적인 삶을 사는 것이 경건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외면적인 모습으로 경건을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실한 경건이 아닌, 형식적인 경건! 그러면 속고 속이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경건이 광고의 수단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내면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경건이 사람 앞에서의 외면적 인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한 경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 자랑은 하나도 없습니다. 순전히 자기 자랑에서 시작해서 자기 자랑으로 끝납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아무개야! 그렇게 높아지고 싶으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거리가 많아야 하지만 사람 앞에서는 자랑을 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자랑을 많이 늘어놓으면 천국에서는 자랑거리가 없게 될 것이고, 이 땅에서 자랑을 힘써 감추면 천국에서는 자랑거리가 많아질 것입니다.
80대 초 서울에 살 때 동네에 H 교회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걸핏하면 그 교회의 전단지가 저희 집으로 배달되었습니다. 그 전단지의 큰 제목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벌써 40일 금식기도 3번!” 그러면서 사진이 여러 장 실려 있었고 그 밑에 이런 기록이 있었습니다. “40일 금식기도 하신 목사님의 모습! 목사님이 40일 금식기도 했던 기도굴!”
교회를 깊이 알지 못했던 당시에도 저는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분이다! 왜 그런 식으로 광고를 꼭 해야 할까?” 결국 그분은 그렇게 원하던 교회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교주처럼 행세한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렸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다 보면 이상한 일을 많이 겪습니다. 어떤 분은 심지어 명함에까지 “40일 금식기도 3번!”을 적고 돌립니다. 제가 신학교 강의를 할 때 그 얘기를 했더니 안 웃는 학생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학생들에게 “지금은 웃지만, 나중에 정말 그런 행동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충고의 말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신앙인들을 가끔 외적인 모습으로 자기의 경건을 높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나는 몇 시간 새벽기도 한다”는 것이 자랑거리입니다. 어떤 분은 “나는 일주일에 몇 번 예배를 본다.”는 것이 자랑거리입니다. 어떤 분은 “나는 하루에 성경을 몇 장 읽는다.”는 것이 자랑거리입니다.
물론 그런 모습들은 자랑거리입니다. 그러나 그런 신앙행위를 한다고 사람 앞에서 자기가 자랑하고 광고하는 모습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참된 경건은 희미해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내면적인 경건입니다. 내면적인 경건이 없으면 외면적인 경건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경건이 외면적인 자랑거리가 되면 틀림없이 내면적 경건은 사라집니다.
< 경건의 참된 3가지 의미 >
우리가 정말 새겨보아야 할 참된 경건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는 세 가지로 실제적인 경건의 척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1. 혀를 조심하는 것
본문 26절 말씀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을 헛것이라.” 이 말은 혀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경건한 삶을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혀를 잘 쓰는 것은 경건의 척도입니다. 하나님은 혀를 쓰는 것을 보고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니...” 이 말씀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하면 정말 원망스런 하나님으로 너희에게 나타나겠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말을 하면 그 말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더욱 많은 감사거리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말조심해야 합니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리 대단한 종교행위가 있어도 경건이 없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의 가장 큰 약점으로 무엇을 지적합니까? 입으로는 경건, 경건을 말하지만 말조심을 하지 못하는 것을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참된 경건은 말조심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조심한다고 해서 말을 아예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축복의 말, 격려하는 말, 사랑하는 말은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 말을 주고받으면 그 말을 듣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실 것이고, 그 말을 하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2. 힘없는 자를 돌보는 것
본문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 경건의 척도라는 말입니다.
그 말은 고아와 과부 아닌 사람은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고아와 과부는 옛날에는 무방비로 노출된 약자입니다. 까딱 잘못하면 노예로 끌려갑니다. 그래서 그들을 돌보라는 말은 가장 힘이 없는 사람, 가장 연약한 사람을 돌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돈보고 사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지위보고 사람 보지 말고, 건강보고 사람 보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음을 보고 그 사람을 소중한 한 영혼으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는 것이 바로 참된 경건입니다.
돈이 없다고 무시하고 능력이 없다고 무시하고 머리가 나쁘다고 무시한다면 그것은 참된 경건이 아닙니다. 참된 경건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은 절대로 경건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무시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연약한 사람을 사랑할수록 하나님의 축복은 더해질 것입니다.
3. 자기를 지키는 것
본문 27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 경건의 척도라는 말입니다. 이 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도 끊임없이 자기를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서 사도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 우리 자신의 몸을 생각해 보십시오. 가만히 내버려두면 어느새 죄로 향하고, 세상으로 향하고, 별 짓을 다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처럼 단호히 자기 몸을 말씀 안에서 복종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말을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살라!”는 말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 말은 오히려 “세상 속에 들어가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명령입니다. 세상 속에 들어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원리로 세상을 빛깔 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경건입니다.
이제 경건에 대해 분명한 시각을 가지십시오. 경건은 지식이 아닙니다. 감상도 아니고, 의식도 아닙니다. 그리고 40일 금식기도나 하루 8시간 새벽기도를 한다는 사람과 같은 모험적 신앙행위와 외적인 신앙 활동도 경건의 절대기준은 아닙니다.
경건이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겸손하게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특별히 혀를 조심하시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고 기도하며,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고, 오히려 세속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물들이는 것이 참된 경건입니다. 그런 경건의 복을 소유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