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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권세! (막2:1~12) / 박상훈 목사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09|조회수10 목록 댓글 0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권세!

(막2:1~12)

 

 

막2: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막2: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막2: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막2: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막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2: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막2: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막2: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막2: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막2: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막2: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막2: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한 중풍병자가 침상에 누운 채, 네 사람에게 들려서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일어나서 그가 누웠던 침상을 들고서, 자기 발로 걸어 그의 집으로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 본문의 중심 내용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초점은 다른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여주심으로, 예수님에게는 죄 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느9:17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시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사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네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분명하게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하며, 예수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며 힘있게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1~2절).

 

막2: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누가복음 4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예수님은 그의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전하시는 도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쫓아내고, 산 낭떠러지에서 예수님을 밀쳐서 떨어뜨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마4:13에 의하면, 예수님은 나사렛을 떠나서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습니다.

또한 마9:1에 의하면, 그 때부터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본 동네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가버나움은 예수님이 사시는 동네로서, 예수님이 사역하시는 근거지가 된 것입니다.

 

막1:39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 동안 예수님은 여러 날을 가버나움에서 떠나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면서, 각 마을에 있는 회당에서 전도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들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를 깨끗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깨끗함을 받은 사람은 나가서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했습니다.

 

막1:45 말씀과 같이, 그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서, 계속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예수님은 오랜만에 다시금 예수님의 본 동네인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습니다. 아마도 이 때는 예수님에게 몰려오던 사람들도 다소 주춤해졌을 것입니다. 한 동안 예수님은 바깥 한적한 곳에만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버나움의 집에 계신다는 소문은 금방 퍼져나갔습니다.

이 집은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 만큼 컸습니다. 또한 눅5:19 말씀처럼, 이 집의 지붕에는 기와가 얹혀 있었습니다. 꽤나 부유한 집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집은 아마도 시몬, 곧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의 집이었을 것입니다.

일전에 예수님은 열병으로 누워있던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때 예수님은 겸사겸사 해서 시몬의 집에 계셨을 것입니다.    

 

막2: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든지,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문의 안쪽은 말할 것도 없고, 문의 바깥쪽까지도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왔다고 해서, 예수님의 사역이 그만큼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들 대부분이 영적인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바랐습니다.

또는 요한복음 6장에 있는 말씀대로, 그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먹고 배부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사역에 지장을 줄 때가 많았습니다.

 

예수님이 바닷가에 계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 밀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은 배를 띄우시고, 그 위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셔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중풍병자의 돌발적인 등장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그만큼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지장을 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무리가 떠나가고 제자들만 남았을 때, 예수님은 비로소 깊은 영적 진리를 전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에게로 모여든 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수님은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의 “도”는 헬라어로 로고스입니다. 이는 “말씀”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바로 구원의 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때 가버나움의 집에서도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눅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는 구약성경 이사야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읽으시고, 이 말씀을 따라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도를 받으려 들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을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로 간주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을 죄인처럼 취급을 하시니까, 그들은 몹시도 화가 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쫓아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예수님을 낭떠러지에서 밀쳐 떨어뜨려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이적을 행하셔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빠져 나오셨습니다. 이 때부터 예수님은 가버나움으로 와서 사셨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들에게 전하시며 가르치셨던 똑같은 말씀을

가버나움 사람들에게도 전하시며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가버나움 사람들은 나사렛 사람들처럼 끔찍하고도 무지막지한 반응을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어떠한 동기로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까? 행여 우리도 영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고, 육적인 일에만 관심을 쏟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에,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오히려 지장이 될 것입니다. 

 

또한 지금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까?

나사렛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귀를 막을 만큼 스스로 우리 자신을 높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받지 못하며, 구원을 얻을 기회도 놓쳐버리고 말 것입니다. 

 

언제나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합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영적인 일에 힘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하게 누리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죄 사함을 받은 중풍병자입니다(3~5절).

 

막2: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중풍병자는 남들의 부축을 받아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온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중한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가 누워 있는 채, 네 사람이 그의 침상을 들고서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막2: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이미 그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 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애원해보았을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길을 조금만 내주실 수 없을까요?” 그러나 아무도 그들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불쌍한 사람을 보면서도 동정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중풍병자와 그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온 네 사람은 포기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 당시의 집들은 단층이었습니다.

그리고 집밖에 계단이 있어서, 그 계단을 통하여 지붕 위로 올라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중풍병자가 누운 침상을 들고서, 조심조심 계단을 걸어서 힘들게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 당시 집들의 지붕은 평평했습니다. 지붕을 만드는 방법은 이와 같았습니다.

먼저 들보와 서까래를 놓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작은 나무 가지나 짚을 깝니다.

그 사이를 진흙으로 채워서 단단하게 합니다. 그런 후에 형편이 괜찮은 집은 그 위에 기와를 놓았습니다.

 

먼저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의 위치를 찾아야 했습니다.

만일 엉뚱한 데로 중풍병자를 달아 내리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먼저 그들은 정확한 자리를 정한 후에, 그 곳의 기와를 벗겼습니다. 그리고는 지붕을 뜯어, 그 곳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지붕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그들 위로 먼지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고개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지붕에 자그마한 구멍 하나가 뚫리는 것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러더니 그 구멍은 점차로 커졌습니다.

저러다가는 지붕 전체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까라는 우려가 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잠시 후에 큰 구멍을 통하여, 한 중풍병자가 누워 있는 상이 예수님이 계신 곳 바로 앞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니 그 분위기가 얼마나 산만했겠습니까?

자연히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그 중풍병자를 향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의 관심은 예수님이 그 중풍병자를 어떻게 하실 것인가에 쏠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가르치심을 중단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막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사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풍병자는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중풍에 걸리면 말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붕 위에 있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향하여 이와 같이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주여, 말씀 도중에 죄송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께서 그를 고쳐주실 줄을 믿고서, 그를 주께로 데리고 왔나이다.”

그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행동을 통하여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 중풍병자의 병을 낫게 해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졌음이 분명합니다.

아니면 그들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요한복음 9장 말씀처럼, 그 당시에는 죄 때문에 병에 걸린다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중풍병자는 그의 병든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가 싫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수님에게 온 것은 예수님이 반드시 그의 병을 고쳐주시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를 데리고 왔던 네 사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일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그들은 힘들게 지붕 위로 올라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지붕 값을 물어낼 생각을 하고서라도 지붕을 뜯었던 이유는 예수님이 반드시 그를 고쳐주시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그들 모두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는, 오로지 중풍병자 한 사람에게만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른 네 명에게는 볼 수 없는 특별한 믿음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풍병자는 예수님이 자기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자기의 병을 고쳐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그가 마음으로 더 절실하게 바라던 것이 따로 있었습니다.

 

요2:25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다 아십니다.

예수님은 그 중풍병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아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기의 죄를 사함 받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가 바라는 바를 그대로 들어주신 것입니다.  

 

네 명의 사람들은 건강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영적 비참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중풍병자는 그의 외적 비참함을 통하여, 그의 내적 비참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애통하는 심정으로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다. 

 

말하자면 네 명의 사람들은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능력만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중풍병자는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능력뿐만 아니라,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권세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그에게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는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는 거듭났습니다. 그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멸망에서 영생으로 옮겨졌습니다.

이제 그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완전히 옮겨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작은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말은 “아이,” 또는 “아들”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그를 무시해서 부르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멸망의 자식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아이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막2:17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습니다. 의사는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고 평안하다고 해서,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바리새인처럼 스스로 의롭다고 믿지 맙시다.

같은 비유에 나오는 세리처럼,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하면서 예수님의 긍휼을 구합시다.

그리해서 예수님의 위로로 늘 충만한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을 비난하는 서기관들입니다(6~7절).

 

막2: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는 크게 네 파로 나누어졌습니다.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 열심당파였습니다. 그리고 각 파마다 그 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면, 서기관들은 각 교단의 신학교 교수들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눅5:16에 의하면, 그 자리에는 서기관들 이외에 바리새인들이 함께 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서기관들은 주로 바리새파에 속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 곳에 온 이유는 순전히 예수님을 책잡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드디어 자기들이 예수님에게서 결정적인 잘못을 찾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막2: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유대교에서 가장 큰 죄로 간주되는 것이 바로 신성 모독이었습니다.

신성 모독에는 세 종류가 있었습니다. 첫째, 율법을 비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을 보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에게 바로 이 죄목을 덮어씌우려고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저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을 모독하거나 저주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율법을 비방하는 것보다 더 나쁜 신성 모독입니다. 여기에 대한 실례가 레위기 24장에 등장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아예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악의 신성 모독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서기관들은 바로 이 죄목을 예수님에게 덮어씌우고자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예수님을 최악의 신성 모독으로 책잡았던 근거는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물론 그들의 주장은 사실입니다.

제사장도, 선지자도 죄를 사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능히 죄를 사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결론은 정해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 하는 자로 결론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레위기 24장은 신성 모독하는 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사탄을 힘입어서 이적을 행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한 그들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문제는 그들이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그들은 마치 예수님이 로마에 반역하는 것처럼 꾸며서, 로마인들의 손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신성 모독 하는 자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까?

만일 예수님에게 죄 사함의 권세가 없는데도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면, 이는 분명히 신성 모독에 해당할 것입니다.

 

반면에 만일 예수님에게 죄 사함의 권세가 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이 분명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능히 죄를 사하실 수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자는 죄 사함을 받을 수도 없고, 구원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에게 죄 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 보이셨습니다.

그리함으로써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확고하게 가지며,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키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권세입니다(8~12절).

 

막2: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속에 있는 생각들을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물으셨습니다.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여기서의 “이것”은 헬라어로 복수형입니다. 말하자면 서기관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그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 하는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율법이 명한 바에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을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전혀 입밖에 내지를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의 마음속으로만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다 아셨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삼상16:7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왕상8:39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대상28:9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이와 같이 하나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십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마음에 있는 소원을 다 아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속으로 생각하는 바도 다 아셨습니다. 따라서 이것만 보더라도,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여기서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려는 서기관들의 생각에 어떤 식으로 대응하시겠습니까? “너희가 내 말을 오해하였구나. 내 말의 뜻은 내가 그의 죄를 사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죄를 사하여주셨다는 뜻이니라.”

 

아마도 이와 같은 식으로 변명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권세로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여주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곧이어 서기관들을 향하여 이와 같이 물으셨습니다.  

   

막2: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엇입니까? 지금 예수님은 두 가지 가운데서 더 쉬운 일을 묻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 죄를 사하는 일이나 이적으로 병을 고치는 일이나 사람에게는 똑같이 어렵고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똑같이 쉬운 일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두 가지 가운데서 말하기 쉬운 것을 묻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서기관들의 입장에서는 어떠한 말이 더 쉽겠습니까? 당연히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말이 더 쉬울 것입니다. 이는 신성 모독 하는 자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하는 말은 어떻습니까?

이는 금방 진위가 가려질 수 있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누구라도 함부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이 말은 그만큼 하기가 어려운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이제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생각에 말하기 어렵다고 여기는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리함으로써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에 말하기가 쉽다고 여겨지는 일도 역시 행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막2: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여기의 “인자”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여기의 “너희”는 서기관들을 가리킵니다.

이제 바야흐로 예수님은 자신에게 죄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음을 서기관들에게 보이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막2: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예수님은 세 가지를 명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그가 누웠던 침상은 간편했을 것입니다.

“집으로 가라.”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았을 때, 그는 먼저 제사장에게 가서 그의 몸을 보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중풍병자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중풍을 앓아왔는지는 모릅니다.

그는 남들이 부축한다고 해서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침상에 누운 채, 전혀 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오랫동안 중풍을 앓아왔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팔과 다리는 마비된 지 이미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피부는 쪼그라들었을 것입니다. 힘줄도 퇴화했을 것입니다. 혈관도 오그라들었을 것입니다. 뼈도 많이 약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몸을 움직이도록 지시하는 뇌의 기능도 많이 손상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에게 일어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의 힘으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에게 그의 손으로 상을 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의 집이 얼마나 먼지는 모르지만, 그의 집까지 그의 두 발로 걸어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중풍병자의 몸에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그의 피부를 비롯해서, 힘줄, 혈관, 뼈, 그리고 뇌 세포까지 다 새롭게 창조되어야만 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창조의 역사는 우리의 몸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막2: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중풍병자는 완전히 중풍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명하신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는 일어났습니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의 상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집을 향하여 자기 발로 걸어갔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몸에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창조의 역사는 우리 몸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이 때 예수님은 그 중풍병자에게 창조의 이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밝히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게는 분명 죄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그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마지막에는 그 곳에 모인 무리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그들은 다 놀랐습니다.

그들은 그제야 나음을 입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과거에 볼 수 없던 기이한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인 반응은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마9: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참으로 놀라울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예수님은 사람일뿐이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창조의 역사를 행할 수 있고, 아니 어떻게 사람이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질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받아들이지를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하여, 또한 이적을 통하여 이 사실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 모두는 중풍병자와 같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저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예수님의 긍휼을 바랄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에게 나아와서, 애통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합시다.

 

그리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도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풍성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늘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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