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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이델베르크에..

작성자카페지기나인™|작성시간26.06.19|조회수0 목록 댓글 0

하이델베르크에 머문다는 것은
시간과 화해하는 일이다.



네카어 강은 서두르지 않고 흐르고
오래된 다리는 수백 번의 만남과 이별을
아무 말 없이 견뎌온 얼굴로 서 있다.
하이델베르크의 아침은
조용하다.

구시가지의 창문이 하나둘 열리고
돌바닥 위로 햇빛이 내려앉는다.
이 도시는 늘 말한다.
천천히 와도 괜찮다고.
이곳에 서면
무엇을 이루었는지보다
누구와 함께 걸어왔는지가 먼저 떠오른다.

젊은 날의 야심도
중년의 분주함도
성 위의 폐허처럼
이미 지나간 장면이 된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완전하지 않아서 더 아름답다.
무너진 벽과 남아 있는 기둥 사이로
삶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
인생도 그렇다.

다 채우지 못했기에
오히려 숨 쉴 공간이 남아 있다.
철학자의 길을 걷다 보면
생각은 자연스럽게 단순해진다.

말이 많은 관계보다
말없이 함께 걷는 시간이 더 소중해진다.
옆에 있는 사람의 호흡을 느끼며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살아오며 친구는 많았다.
웃음도 술자리도 넘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남는 얼굴은 정해져 있었다.

잘나갈 때가 아니라
힘이 빠질 때 함께해 준 사람들.
알테 브뤼케 위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인연이란 건
붙잡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이라는 것을.
하이델베르크의 저녁은
조용히 내려온다.
하루를 함께 걸은 사람과
따뜻한 식탁을 마주한다.
대단한 말은 필요 없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은 충분히 채워진다.
이 도시를 떠나며
나는 다짐한다.
앞으로의 삶에서는
속도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고
필요할 때 곁에 서 있는
하이델베르크 같은 벗으로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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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배낭길잡이 카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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