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길 위에서
바람과 빛과 고요를 건너며
노르웨이를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풍경이 어느 한 장면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빛이 움직이면 산이 달라지고
구름이 스치면 강의 결이 바뀌고
한 시간의 바람이 지나가면
내 마음에도 또 다른 모습이 생겨난다.
가울라피옐렛의 고원에 섰던 그 새벽.
바람은 거의 소리가 없었고
물결은 바위 사이에서 아주 천천히 미끄러졌다.
아무도 없는 그 넓은 땅에서
나는 마치 오래전의 최초의 대지와 마주한 듯했다.
세상 어디에도 얽히지 않은 순수한 풍경 한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는 기분이었다.
송네피옐렛 55번 국도는
노르웨이의 ‘등줄기’를 따라가는 길이다.
아득한 빙설이 도로 옆을 스치고
호수는 얼음과 물의 경계를 품고 있었다.
그 길을 달릴 때면
내가 더 이상 ‘여행객’이 아니라
이 북쪽 대지의 일부가 된 듯한
묘한 안도감이 찾아온다.
트롬쇠 성당의 단정한 자태는
차갑고 긴 겨울의 시간 속에서도
사람들이 의지해 온 작은 등불 같은 존재다.
창문을 통해 스며드는 희미한 빛은
희망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조용하게 시작되는지
깨닫게 해준다.
프레케스톨렌의 절벽에 올랐던 날.
깊은 피요르드 아래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마치 무한한 시간의 골짜기 같았다.
인간이란 얼마나 작은가.
그 작은 존재가 이 벼랑 끝에서
자기 삶을 돌아보는 순간,
내려다보는 풍경보다 더 넓은 것이
바로 마음 안에서 열린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브릭스달빙하는 거대한 숨결이었다.
빙하가 흘러내린 깊은 파란빛이
마치 지구의 오래된 기억을 품고 있는 듯했다.
빙하 앞에 서면
모든 소음이 뒤로 사라지고
세상의 아주 큰 호흡만이 들려온다.
내뢰이피요르드의 물빛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색이었다.
짙으면서도 부드럽고
습하면서도 투명하다.
수직으로 솟은 산봉우리들 사이로
작은 배가 지나가면
물결은 오래도록 흔적을 남기지 않고
여전히 고요의 품을 지켜냈다.
헬레렌과 뫼레오그롬스달의 풍경은
인간이 건드릴 수 없는 세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절벽은 차갑고 단단했지만
그 사이사이에 핀 작은 이끼와 풀들은
잠시 머물다 가라는 듯
따뜻한 초록의 메시지를 전했다.
먼 북쪽 알타 박물관에서 만난 암각화들은
수천 년 전에 이곳을 지나간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느끼며 살았는지를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었다.
북쪽의 고요를 배경으로 남겨진 인간의 흔적은
현재의 나를 아주 조용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또 다른 7장의 장면들.
구드란유벳의 좁은 계곡 틈에서 느껴지는 습한 냄새.
람페스트레켄 전망대에서 마주한 빛의 각도.
본후스바트넷 호수의 잔잔한 거울 같은 표면.
로엔 스카이레스토랑에서 내려다본
초현실적인 초록빛 물결.
베르겐의 오래된 목조 건물이 지닌
짙은 색의 역사.
이 모든 장면을 한데 묶으면
그것은 풍경의 기록이 아니라
‘느림의 시간’에 대한 하나의 대서사시가 된다.
노르웨이는 누군가에게는
추운 지역의 여행지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마음을 정리하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다.
이 나라의 길 위에서
나는 자꾸만
잊고 지냈던 자신에게 돌아가게 된다.
어떤 풍경은 위로가 되고
어떤 풍경은 거울이 되고
어떤 풍경은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의 방향을
조금 더 또렷하게 가리켜 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북쪽의 바람이 스친 길을 떠올리며
나의 다음 계절을 기다린다.
노르웨이는 여행지가 아니라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한 권의 두꺼운 시집 같은 곳이다.
그 시집의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바람은 더 투명해지고
빛은 더 부드러워지고
내 마음은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아래 5장은 가울라피옐렛
송네피옐렛 55번 국도
트롬쇠 성당
프레케스톨렌
브릭스달빙하
내뢰이피요르드
헬레렌
뫼레오그롬스달
뫼레오그롬스달
먼 북쪽 알타 박물관
아래 7장은 구드란유벳
람페스트레켄
본후스바트넷
로엔 스카이레스토랑
베르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