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 미승인 국가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도 티라스폴
여성조선 2024.09.15
몰도바 공화국에는 또 다른 나라가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나라다. 그들은 ‘국가’라고 주장하지만 미승인 국가다. 이 나라는 몰도바 공화국에서 따로 떨어져 나가 새 나라를 만들었는데 아직 국가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 국경도 있고 화폐도 다르고 정치 제도도 다르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도는 바로 티라스폴이다. 1991년에 트란스니스트리아 공화국의 수도로 선포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키시너우에서 약 70km 떨어져 있다. 몰도바 키시너우까지 가서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안 갈 수는 없다. 어떤 곳일까?
성문과 성채.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과 합류해 티라스폴로
트란스니스트리아(Transnistria)의 수도 티라스폴(Tiraspol)은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만난 변호사를 통해 처음 알았다. 그는 티라스폴을 중국과 대만과 같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몰도바도 우크라이나에서 독립해서 나왔는데 몰도바에서 또 독립해 떨어진 나라가 트란스니스트리아라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트란스니스트리아를 갈 생각은 안 했다. 그런데 숙소 지기가 한국인이 머물고 있다면서 소개를 해준다. 그 한국인은 미대 교수로 7개월간 홀로 여행 중이라고 했다. 여행 중에 만난 한국인들에게 오히려 상처를 받아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된다. 또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서 만난 한국인 노부부 꼴 날까 봐 걱정은 있다. 그래도 내심 기대는 하게 된다. 한국어로 말해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한국 밥상을 차려 같이 먹자고도 하고 성격이 괜찮은 듯하다. 그래서 티라스폴을 함께 가자고 제안하는 한국인을 따라나선 것이다.
키시너우에서 티라스폴로
티라스폴 성.
길눈이 밝은 그 분은 키시너우 시내 중심가에 있는 터미널(Chisinau 58 Metropolit Varlaam Street)을 잘 찾았다. 티라스폴까지 가는 버스는 역시나 작다. 버스에 올라 동선을 살펴보니 오데사에서 키시너우 올 때 거쳐온 곳이다. 그러니까 오데사-트란스니스트리아-키시너우인 것이다.
국경에 서니 제복 입은 군인이 버스에 올라타 여권 검사를 한다. 티라스폴에 들어섰지만 이곳 역시 생판 처음이니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일단 버스 종점에 내려 큰 건물에서 환전을 한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니 볼 게 하나도 없다.
차라리 차를 타고 오면서 봤던, ‘티히나(벤데르) 요새’를 보는 게 낫겠다. 버스 정류장에는 길 물어볼 사람도 거의 없다. 마침 의대를 다닌다는 젊은 커플에게 길을 물었더니 다시 시내로 나가서 요새가 있는 곳까지는 또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요새를 거쳐서 들어왔는데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니 도통 이해가 안 된다.
그때 한 중년 아저씨가 '일번 타'라는 한국말을 한다. 긴가민가했다. 이 낯선 나라에서 설마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잘 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는 한국에서 2년간 알루미늄 공장에서 일을 했단다. 양재도 알고, 지하철 공사도 했다고 한다. 이 세상은 참 좁다.
러시아의 대원수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수보로프 기념비.
1번 버스를 타고 하차한 곳은 동상과 공원이 있는 곳이다. 티히나 요새를 가기 전에 있는 공원으로 티라스폴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이 공원에는 러시아의 대원수 알렉산드르 수보로프(1730~1800) 장군의 기마상이 있다. 1792년, 수보로프가 이 도시를 만들었다고 하니 만든 기념비일 것이다.
사실 이 공원에는 캐서린 여왕 공원(Catherine the Great Park)도 함께 있다. 캐서린 여왕의 동상이 있다. 그 외에도 정교회, 관공서, 박물관 등이 흩어져 있는 곳이다. 또 티라스폴의 첫 번째 건축가인 프란츠 드 월란트(Franz Pavlovich De Wollant, 1752~1818)의 이름을 딴 드 월란트 공원이 드니에스터 강 제방에 있다.
나름 볼거리가 있는 티라스폴의 주요한 공원이지만 시간 관계상 꼼꼼히 살피진 못한다. 티라스폴은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막차 시간에는 이 도시를 떠나야 하니까 말이다. 애꿎은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요새’도 제대로 못 보고 가면 안 될 일이다. 드니에스터 강변을 보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지만 실제로 걸어가기에는 먼 거리다. 이곳에서 동행한 한국인과도 잠시 헤어지기로 한다. 그분은 한 곳에서 그림을 그려야 하기에 기다릴 수가 없었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15세기의 티히나 요새
넵스키 정교회.
공원에서 티히나 요새(Tighina Fortress, 혹은 벤데르 요새)까지는 12.2km 떨어져 있다. 공원에서 버스에 올라 요새 앞에서 하차한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요새가 한 눈에 보이기에 찾기는 쉽다. 티히나 요새 앞에는 구세주 정교회가 있고 그 앞쪽으로 성벽과 성문이 둘러져 있다. 예사롭지 않은 성채다.
교회 내부.
자료에 의하면, 드니에스터 강 우안에 위치하고 있는 티히나 요새는 1408년, 몰도바 주지사인 알렉산더 1세(Alexander I, 1375년경~1432)가 리비우(Lviv)의 상인들의 중요한 관세청으로 언급되었다. 제노바인, 선원 및 상인은 자신과 물품,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기존 교차점을 보호하기 위해 강 오른쪽 높은 둑에 교역소를 건설한 것이 시초였던 것. 슈테판 3세 때는 타타르 습격으로부터의 정착촌을 방어하기 위해 작은 목조 요새를 지었다.
성벽 무기.
이후 오스만 투르크가 정복(1538년)해 대대적으로 개발을 했다. '강 항구, 정박지'를 의미하는 벤데르(Bender)로 요새 이름을 바꾸었다. 술레이만 1세(Süleyman I, 1494~1566)는 건축가 미마르 시난(Mimar Sinan)에게 설계를 맡겨 돌로 재건하고 확장해 1541년에 요새를 완공했다. 오스만 제국 때, 이 요새는 확고한 전투 전초 기지 역할을 했다. 16세기 말까지 몰다비아 파견군은 벤데르 요새를 여러 차례 공격했지만 아무런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
이후 러시아 제국은 튀르키예와 세 번의 전투로 요새를 정복하고 장군들은 군사 막사(1812~1828)로 이용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요새는 점차 이전의 전략적 중요성을 잃기 시작했다. 루마니아(1918-1940;1941-1944)에 속했다. 1991년부터 이 요새는 트란스니스트리아 분리주의 정권의 통제를 받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복원되었다. 현재까지도 새로운 것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요새 안의 역사박물관
고문 박물관.
요새 안에는 16세기~19세기의 건축물과 기념물들이 있다. 역사박물관과 고문 박물관 두 곳이 있다. 그 외에도 기념물(흉상)이 있는 ‘기념 구역’, ‘쇼군’, ‘군사 묘역’이 있다. 역사박물관에는 다양한 전시품들을 볼 수 있다.
튀르키예 박물관 전시품.
10세기의 가마솥과 몰도바 공국 시대의 날카로운 무기를 볼 수 있다. 또 스웨덴의 찰스 12세의 개인 경호원의 마네킹, 1709년, 벤더리에 도착해 이곳에서 사망한 헤트만 이반 마제파의 흉상이 있다. 벤데리 요새 성벽 아래에 스웨덴 왕의 찰스 12세가 체류하는 그림이 있다.
역사박물관-이반 마제파 동상.
스웨덴 왕 찰스 12세와 우크라이나 헤트만 이반 마제파는 오랫동안 이 요새에 피신했다. 전설에 따르면 순금으로 만든 마제파의 수레는 여전히 요새에 숨겨져 있으며 지하 감옥 중 하나에는 찰스 12세의 왕관이 보관되어 있다고 전한다.
또 페르시아어에 새겨진 오스만 대리석 슬래브 조각, 러시아 시대, 십자가, 견장 등을 볼 수 있으며 대리석 터번도 볼거리다. 무슬림 묘비 조각도 있다. 그 외에도 1770년 러시아 제2군 부대의 벤더리 요새 공격에 관한 그림, 요새 작업 중 발견된 도자기와 높은 부조 조각이 있다. 전시관 한쪽에는 몰도바 주재 터키대사관이 선물한 전시품이 한데 모여 있다.
박물관의 그림.
박물관의 그림.
그리고 벤더리 요새의 북동쪽 모퉁이 타워는 중세 유럽 고문 도구 박물관이 있다. 2012년에 성채 북동쪽(팔각형) 탑에 세워졌다.
트란스니스트리아 나라
이제 다시 키시너우로 돌아간다.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생각해본다. 1918년 이래 드네스트르 강 서안의 몰도바와 동안의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1918년 이전에는 모두가 러시아 제국 영토였던 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몰도바가 포함된 베사라비아 지방은 루마니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으나, 트란스니스트리아 지방은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 1924년에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한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29년, 티라스폴이 수도가 되었다.
1980년대 말, 탈냉전 분위기에 따라 몰도바에서는 소련으로부터의 독립과 민족주의가 대두했으나, 1990년 5월 5일 티라스폴과 벤데르에서 새로운 몰도바의 국기를 내거는 것을 거부했으며, 같은 해 9월 2일 '트란스니스트리아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PMSSR)'을 선언해 몰도바로부터의 독립(그러나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은 아님)을 선언했으나, 소련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개별적인 독립을 선언했다. 1992년 3월부터 몰도바와 전쟁을 벌이다가 그해 7월에 정전(停戰)에 합의한다. 이에 따르면 3자(러시아, 몰도바, 트란스니스트리아)는 공동 조정 위원회를 두어 강 양안의 20개 지역을 양보한 비무장 지대의 안보 협정을 감독하도록 했다. 정전 협정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정치적 지위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몰도바 공화국은 공식적으로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아직 국제적으로도 널리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001년, 블라디미르 보로닌 몰도바 공산당 서기는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을 공약으로 내걸어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는 러시아 정부가 트란스니스트리아 분쟁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해 러시아에게 몇 가지(몰도바어를 루마니아어와 '다른' 언어로 천명, 러시아어에 특별 지위 부여, 몰도바 영사 수정, 러시아 자본에 몰도바 대기업 양도)를 양보했고, 이로 인해 트란스니스트리아는 국내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2003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절이었던 드미트리 코자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코자크 플랜은 독립국가연합을 제외하고 준비되었으며, 두 개의 자치 지역(가가우지아 자치 지역과 트란스니스트리아)을 포함한 비대칭적인 연방을 구상했다. 그러나 러시아에 양보한 사안들(연방 의회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 의원들의 거부권 행사, 2002년부터 철수하기로 되어 있던 러시아 제14군의 주둔 기간 20년 연장 등)은 야당의 분노를 샀다.
여론과 독립국가연합의 압력에 밀린 블라디미르 보로닌 대통령은 코자크 플랜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 정부와의 관계에는 골이 깊어졌고 대신 유럽 연합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분쟁에 대한 해결의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간략하게 말하면 몰도바는 루마니아를, 트란스니스트리아는 구 소련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제3자의 눈으로 보면, 그 좁고 힘 약한 나라에서 또 분리되어 또 다른 나라를 만드는 게 참 어이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인생인 것을.
다음 회부터는 루마니아 ‘이아시’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아시는 화려한 유서 깊은 도시다. (계속)
Travel Data
티라스폴 버스 정류장(Chisinau 58 Metropolit Varlaam Street) 주소 Strada Mitropolit Varlaam 58, 키시너우 / 전화 +37367307305 / 웹사이트 https://autogara.md/
티라스폴 수보로프 기념비 주소 Strada 25 Octombrie, MD-3300, 티라스폴 / 전화 +37353321599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국기와 문장(Flags and Coat of arms of Transnistria) 주소 Strada 25 Octombrie 47, 티라스폴
티히나 요새(Tighina Fortress) 혹은 벤데르 요새(Bender Fortress) 전화 +37377908728 / 웹사이트 https://bendery-fortress.co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