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D1QJ6ESSEOg
* 찬송 362장
<민수기 20:6-9> 6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 40년을 지낸 모습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불평과 원망의 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출애굽 후 광야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불평도 같이 시작되었고, 지금 읽어가고 있는 광야생활 마지막 해인 40년째에도 여전히 불평과 원망은 계속되고 있지요.
마찬가지로 모세와 아론의 광야생활 40년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이 없다고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는 백성들의 현실 앞에서 6절 첫 부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엎드리매’ 모세와 아론의 광야생활 40년은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요. 지금까지 민수기를 읽어오면서 여러 차례 어려움이 있고 불평과 원망의 소리가 있을 때에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기도 하고 하소연도 하고 간절히 간구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아왔습니다. 40년이 지난 오늘 본문에 이르기까지 모세와 아론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뜻이 펼쳐져가기를 간구하고 있지요.
6절 첫 부분을 다시 보면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 전에 회중 앞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떠난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요. 불평하는 회중들과 같이 감정을 곤두세우면서 다투지 않기 위해서일 겁니다. 아직도 우리는 다투어서 문제를 해결해 가려는 습관을 벗어버리지 못합니다. 다툼은 힘의 대결이고 힘의 대결은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내지요. 상대방을 패자가 되게 하는 것은 나로서는 내가 승자가 되는 멋진 해결책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과연 패자에게도 해결책이 될까요? 아닙니다. 깊은 패배의 상처만 남고, 특히 공평하지 못한 힘의 대결일 때에는 억울함과 분노만 남습니다. 사실은 해결된 게 아니지요. 모세는 백성의 지도자이면서도 독재자처럼 권력자의 힘으로 백성들을 내리 누른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먼저 엎드렸고, 대부분 모세의 뜻은 아니었지만 백성들이 원하는대로 해주었지요. 그리고 백성들을 말씀과 교훈으로 온유하게 가르쳤습니다. 물론 이로 인해 백성들이 변화되었느냐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이지요.
성숙한 공동체는 어떤 사안이 있을 때 대화를 통해 공감하거나 설득하고 성숙치 못한 공동체는 어떤 사안이 있을 때마다 대립하고 다투고 싸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숙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겸손하게 모세와 대화하거나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도 먼저 감정적으로 불평하고 원망부터 합니다. 어제 읽었던 3절 말씀도 이렇게 말하지요.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먼저 다투기부터 합니다.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가 더 성숙하게 되려면 다툼이 아니라 겸손한 대화를 통해 공감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앞서야 하고, 그보다 먼저 본문의 모세와 아론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겸손하고 진실하게 기도하는 것이 먼저 앞서야 합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났던 것은 깊은 기도를 위해서이지요. 기도할 때에 눈 앞의 현실에 매달리기보다도 하나님의 손길에 더 집중하고 의지하기 위해서 여호와의 회막으로 가려 했고, 그래서 회중을 떠났던 겁니다. 기도는 어디에서 해도 상관없고 어디에서 해도 좋지요. 그런데 깊은 기도를 위해서 예수께서는 골방에 가서 기도하라고 하셨고, 현실적으로는 교회라는 공간이 깊은 기도를 위해 가장 적합할 것이고, 교회의 모든 시간 중에서 이 새벽기도회 시간이 가장 깊은 기도의 시간일 겁니다. 가정과 삶의 터전을 떠나야 교회에 올 수 있고, 또 이 새벽이라는 시간이 우리의 복잡한 일상의 시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시간 아닙니까? 이 새벽시간을 모세와 아론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시간으로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 앞에 엎드렸지요. 40년이나 백성을 이끌어왔어도 여전히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특히 광야에서 물이 없는 상황은 여전히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족하고 나의 힘으로는 안된다는 겸손함의 표현이 하나님 앞에 엎드린 모습인 거죠. 우리에게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없을 때가 있을까요? 신앙생활에 졸업이라는 게 있을까요? 당연히 없어야 하는데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의 필요성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신앙생활을 졸업해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다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신앙으로 돌아오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8절에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지시하십니다. 모든 최종적인 해답과 해결책은 하나님께 있지요.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나오게 했다면 내가 물을 만들어 낸 겁니까? 물은 이미 땅 속에 있었습니다. 내가 없던 물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만들어 두신 물을 내가 퍼 올린 것일 뿐이지요. 중동의 많은 산유국가들이 마치 자신들이 석유를 만들어낸 것처럼 행세하고, 많은 자원을 가진 나라들이 그 자원들을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처럼 행세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만들어 놓으신 것을 꺼내 파는 수준인 겁니다. 인간이 학문을 통해 뭔가를 만들어내고 과학기술을 통해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낸 것처럼 행세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으신 것들이고 과학기술은 그것을 조합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명해낸 것일 뿐이지요. 모든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세와 아론처럼 언제나 엎드려야 하고, 주님의 생명의 말씀과 진리의 교훈과 선하신 인도하심과 돌보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도기석 작성시간 23.04.24 모세와 아론처럼 여전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뜻이 펼쳐져가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처럼
저 역시도 형통한일 있어도 힘든 일이 있어도 늘 겸손하게 하나님께 엎드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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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난영 작성시간 23.04.24 하나님 앞에 엎드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8절에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지시하십니다. 모든 최종적인 해답과 해결책은 하나님께 있지요
인간이 학문을 통해 뭔가를 만들어내고 과학기술을 통해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낸 것처럼 행세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으신 것들이고 과학기술은 그것을 조합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명해낸 것일 뿐이지요. 모든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세와 아론처럼 언제나 엎드려야 하고, 주님의 생명의 말씀과 진리의 교훈과 선하신 인도하심과 돌보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아멘 -
답댓글 작성자정승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4.25 잘 돌아가셨나요? 23년만에 얼굴을 대해서
반갑고 또 놀랬습니다.
오늘의 묵상에 함께 하신 게 2016년부터이던데
벌써 7년째 함께 해주고 계시네요.
늘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과 평안과
자녀들의 참된 믿음의 삶을 응원합니다.(^^) -
작성자유난영 작성시간 23.04.25 예^^속초갈릴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오는게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습니다
집 TV에서 유튜브영상을 통해보던
목사님을 실제로 뵈었더니 신기하다는
딸과 함께 예배를 드릴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시선과
딸의 시선이 같았습니다, 목사님 인상이
너무좋으시다고 ㅎㅎ 그리고 목양실이
신선했습니다~ 다음 뵈었을땐 목사님과
인증샷도 찍으려구요^^
오는내내 목사님과 사진 찍을껄!!^^
되뇌이며 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