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CAAUtkTvpmM?si=4xutC-3Gjq3qLm5c
* 찬송 326장
<말라기 2:17-3:5> 17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이 나옵니다. 2:17 중간 부분을 보면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이 세상에 악한 자들이 더 잘나가고 더 풍요롭고 더 권세를 가지며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서 비꼬는 투로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고 여호와께 기쁨이 된다고 말하고,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그런 하나님은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며 다니고 있지요. 말라기 선지자는 이런 말들은 여호와를 괴롭히는 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이런 불평은 사실 우리도 하게 될 때가 있지요. 악하고 불의한 자들에게 억울하고 원통할 일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은 왜 저런 놈들을 당장에 처벌하고 심판하지 않으시는지 불만스럽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런 악한 자들이 판을 치는 현실에 대해 우리 입맛에 딱 맞는 대답을 주지는 않지요. 하지만 분명히 말하는 것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불의와 죄악을 일일이 다 기억하시고 반드시 정의롭게 심판하신다는 거죠. 그 심판의 때는 하나님께서 정하십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적합한 때가 있지 않습니까? 봄에 씨를 뿌렸으면 가을까지 기다려야 하고, 아침에는 저녁을 기다려야 하고, 저녁에는 아침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씨를 뿌리자마자 열매가 맺는 게 아니고,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이 새벽이 갑자기 저녁이 되는 것도 아니지요. 우리의 삶은 어떤 면에서 기다림의 삶입니다. 기다리면서 준비해 나가는 게 우리의 인생이지요. 어릴 때는 어른의 때를 기다리면서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고, 어른의 때는 이제 죽음을 기다리고 천국을 기다리면서 아름답게 내 삶을 정리해 가는 때이지요. 악한 자들의 심판을 우리는 기다리면서 더 정직하고 진실하고 하나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하는 겁니다. 성경은 분명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있고, 무엇보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심으로 인한 최후의 완전하고 완벽한 심판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지요.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합니다. 3:1절에 여호와께서 심판을 위한 사자를 보내신다는 말씀과 함께 2절을 보면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 같을 것이라.’ 아무도 당해낼 수 없고 능히 설 수 없는 참된 심판의 때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심판에는 두 기능이 있음을 말하지요. 먼저 2절 후반부에 금을 연단하고 표백하는 잿물의 기능을 말합니다. 3절에서 설명이 이어지지요.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신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레위인들이 더 진실한 레위인이 되게 하려고 은을 연단하듯, 옷감을 표백하듯 그런 연단의 심판이 있다는 거죠. 이 심판은 채찍과 형벌을 위한 심판이 아니라 더 거룩하고 더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려는 심판인 거죠. 우리도 최후의 심판의 자리에 나아가게 될텐데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형벌의 심판이 아니라 이처럼 하나님 나라에 더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는 연단의 심판, 훈련의 심판이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소망을 가지게 하는 심판인 거죠.
반면 5절과 같은 심판도 있습니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 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이처럼 악하고 거짓되고 남을 괴롭히고 특히 약자들을 억압하며 억울하게 만드는 자들에 대해 엄한 정의의 심판이 있을 것이고, 이들에게는 그들의 죄악에 상응하는 형벌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털끝 하나까지라도 들춰내셔서 완벽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악한 자들에게는 두렵고 떨리는 공포의 심판이고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소망이 있고, 혹시 심판의 고통이 있을지라도 우리를 참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연단의 고통이기 때문에 기꺼이 믿음과 확신으로 감수할 수 있고 견뎌낼 수 있는 거죠.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심판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죄악과 욕망과 불의함으로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과 뜻에 따라서 진실하고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아가기를 힘쓰게 되는 거죠. 오늘도 믿음 안에서 참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