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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026년 6월 12일 (금) 말라기 3:8-9

작성자정승화|작성시간26.06.12|조회수22 목록 댓글 0

https://youtu.be/BXlQJuXrzog?si=5pUqny834hmthMmm

 

* 찬송  50

 

<말라기 3:8-9>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오늘의 말씀은 말라기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러 잘못 중에 십일조 문제에 대해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먼저 전제로 할 것은 구약 시대 때의 십일조와 오늘날의 십일조는 그 의미가 비슷한 면도 있지만 다른 면도 있다는 사실이지요.

먼저 구약 시대 때의 십일조는 율법에 규정되어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 시대 때의 십일조는 지금 시대처럼 헌금이 아니라 우리가 국가에 세금을 내듯이 율법에 규정된 의무적인 것이었지요. 율법에는 이 십일조를 통해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생활비와 성전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비용과 어려운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구제하는 일에 사용할 것을 규정했습니다.

율법의 규정이기 때문에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율법을 어기는 죄가 되는 것이었고, 그래서 8절 말씀을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이렇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죄라고 표현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9절에서는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라는 말씀까지 하게 되시는 겁니다.

반면 지금의 시대는 율법의 시대가 아니지요. 율법의 시대는 율법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지만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의 시대 아닙니까? 복음이라는 것은 율법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는 법으로 다스려지지요. 그래서 법을 잘 지켜야 하고, 법을 어겼을 때에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 사회생활은 법만 지키면 문제될 게 없지요. 그 이상의 짐을 떠안지 않아도 됩니다. 예를 들어 정해진 세금만 내면 그 이상 국가와 사회를 위해 더 돈을 내야 할 필요가 없는 거죠.

반면 가정은 법이 아니라 관계공동체 아닙니까? 법보다도 서로간의 관계, 즉 사랑의 관계, 돌봄의 관계, 인격적 관계로 맺어진 게 가정입니다. 서로 간에 정해진 책임을 뛰어넘어 무한책임을 져야 할 때도 있지요. 잘못했다고 해서 무조건 처벌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으로 더 품어야 하기도 하지요. 돈을 벌면 국가에 내는 세금보다도 가정을 위해 돈을 써야 하는 부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과 사랑과 믿음의 관계로 살아가는 복음의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율법에 더 이상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과 사랑의 관계 속에서 나의 역할과 책임을 생각해야 하는 거죠. 예를 들어 헌금 문제만 해도 구약 시대 때에는 본문의 말씀처럼 십일조와 봉헌물을 정해진대로만 드리면 되었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 자신을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위해 무한책임을 감당해 주신 그 은총을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 사실을 우리가 알고 믿는다면 우리도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찌보면 무한한 역할과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거죠. 마치 가족을 위해서 무한책임을 감당해야 하듯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과 신뢰이지요. 가족끼리 서로 진실하게 사랑하고 신뢰하면 어떤 무한책임을 감당해도 아깝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고 신뢰하지 못하면 아무리 가족이어도 기본적인 책임 외에는 감당하기 쉽지 않지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와 은혜의 손길로 이렇게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주님의 이 무한한 은혜와 사랑을 믿고 신뢰한다면 우리 또한 주님을 향한 무한한 사랑과 책임과 그 책임에 따른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는 지금의 시대는 십일조가 율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사랑 앞에서 내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내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렇다면 모든 수입을 다 헌금해야 할까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구약에서부터 있어왔던 십일조를 지금도 어찌보면 임시로 기준을 삼는 겁니다. 기준이기 때문에 내 수입이 최저생계비도 미치지 못한다면 십일조를 못할 수도 있는 것이고, 내 수입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다면 십일조 이상으로도 할 수 있는 거죠.

지금의 시대는 십일조를 강요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닙니다. 단지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과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인식하는만큼, 그리고 주님의 뜻을 이 땅 위에 펼쳐가고,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책임져야 하는 차원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해야 할 신앙적인 책임은 있는 거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처럼 우리의 믿음만큼 헌금도 하게 될 것이고, 그런 헌신만큼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더 따라가는 참된 믿음이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구약시대에 십일조는 율법이었지만 지금은 율법이 아니라 자발적인 헌금입니다. 헌금 안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구원받지 못하는 건 아니지요. 하지만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구원받고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내가 받은 사랑과 은총 앞에서 내가 어디까지 헌금에 동참할지는 내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교회는 편의상 구약시대의 십일조를 지금도 준용하고 있는 것일 뿐이지요.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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