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2x1bq7ePD1I?si=S3I_f3WsJxPchafv
* 찬송 447장
<말라기 3:13-15> 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말라기서에서 매 장마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좋지 못한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지적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끈하며 따지고 드는 장면이지요. 지금까지 언급되었던 이런 장면들을 살펴보면 먼저 1: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1:6절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2:13-14절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까 하는도다.’ 2:17절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3:7절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이 부분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묻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의 분위기는 ‘그래서 날더러 뭘 어쩌라는 거요?’라는 식으로 따지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3:13절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만일 여러분의 자녀나 아랫 사람이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이렇게 대들면서 반항적으로 따지고 든다면 여러분들의 마음이 편하시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그런 사람과 함께 있고 싶으시겠습니까?
특히 오늘 본문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버릇이 없는 차원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향해 반역적인 자세까지도 보입니다. 14절을 보면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한마디로 하나님은 잘못된 분이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헛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지키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도 다 소용 없다는 거죠. 15절에서는 이런 말까지 덧붙입니다.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우리의 현실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고 겸손한 자세를 지니는 것보다 오히려 교만하게 행동하고, 악을 행하는 게 더 잘사는 방법이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내 멋대로 행동하며 살아도 오히려 화를 당하지 않고 더 잘산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이런 백성들을 나의 백성, 나의 자녀로 삼고 싶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쩌다가 이렇게 반항적이고 불신앙적인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요? 우리도 오늘의 말씀 앞에서 나는 이렇게 되지 않을 거야. 난 이 정도까지는 아니야 하면서 이 말씀이 나와 상관없다고 하실지 모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 처음부터 이렇게 반항적이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이렇게 된 연유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는 게 필요하지요.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면 첫 번째로 자신들의 기대대로 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사는 형편과 여건이 변한 게 별로 없었지요.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다윗 왕 시대와 같은 영광된 모습으로 회복되리라고 예언한 말씀이 있었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나라의 주권은 다시 되찾지 못하고 계속 강대국의 속국이 되어 있고, 세상은 여전히 모순되어서 악한 자들이 활개치고 거짓된 자들이 부자가 되고 높은 관직을 얻고, 진실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는 그 악한 세상 속에서 늘 이용만 당하고, 힘든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이 계속 되면서 백성들의 마음 속에는 이제 하나님께 기대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힘든 내용 중 하나이지만 반드시 적응해야 하는 문제가 때와 시기의 문제이지요. 베드로후서에서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오늘 당장 이루어졌으면 좋겠는데 하나님께는 천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결과에 집착하는 신앙이 아니라 결과는 천년이 걸리던 이천년이 걸리던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그 결과를 향해 가는 과정에 충실해야 하는 신앙입니다. 그 과정에 하나님의 뜻을 담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대로 살아가려 하고, 예수께서 보여주신 삶의 아름다움을 지니며 실천하는 내용을 충실하게 담으려 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결과보다도 그 모든 과정에 최선을 다하려는 신앙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삶을 보여주셨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과정 앞에서 예수님은 결과를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지요. 오직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 예수님은 예수님의 삶에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원대로, 뜻대로 살겠다는 그 과정에 최선을 다하셨지요. 그래서 십자가의 처참한 고난과 죽음이라는 그 모든 과정도 피하지 않고 몸소 다 겪어내셨던 겁니다.
지금 당장 내 욕심이나 내 어설픈 판단에서 나오는 결과에 집착하면 기독교 신앙을 바르게 가지기 어렵지요.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우리는 모든 과정 속에 주님의 뜻과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오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반항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이유 첫 번째를 생각해 보았고 다른 몇가지 이유들은 내일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