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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026년 6월 19일 (금) 말라기 3:13-15

작성자정승화|작성시간26.06.19|조회수19 목록 댓글 0

https://youtu.be/vnaQc0JqGbc?si=_GwQX6cIWiSVuzRB

 

* 찬송  254

 

<말라기 3:13-15>  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하나님께 반항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어제는 첫 번째 이유로 현실의 삶이 자신들의 기대대로 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실망하고 불만을 가지게 된 것이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왔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고 있지만 광야에서의 삶이 자신들의 기대보다 더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만을 터트리면서 반항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것과 비슷한 거죠.

두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항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은 믿음과 경건의 기준을 하나님,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에게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특히 오래 믿고 봉사와 헌신을 많이 한 사람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실수이지요. 믿음생활도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교만함이 생깁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는데 사람도 당연히 신앙의 오랜 경력이 쌓이면 그만큼 더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을 지녀야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교만한 마음이 들어가면서 모든 것을 자기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는 거죠.

오늘도 우리가 이렇게 새벽기도회에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 오지 않은 성도보다 더 훌륭하고 믿음이 좋은가요? 기도한다는 차원에서는 다른 성도보다 조금 더 앞설 수는 있지만 모든 신앙의 차원에서 다 앞서지는 않습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게 어느 하나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는 거죠. 예배 생활, 헌금 생활, 봉사와 헌신 생활, 전도와 선교에 힘쓰는 생활 다 마찬가집니다. 그 한두 영역에서는 내가 남보다 앞선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곧 내 믿음 전체가 다른 사람보다 더 훌륭하고 앞섰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지요. 또 앞섰다는 것도 내 중심의 생각에서 앞선 것일 뿐이지 하나님 보시기에도 앞섰는지는 잘 모릅니다.

말라기 뿐만 아니라 예언서 여러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과 타락을 지적하는 말씀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는 날마다 때마다 정해진 제사도 드리고 절기도 지키고 금식도 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따지는 모습들이 있지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 가인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가인은 자신의 제사에 무엇이 문제가 있어서 열납이 되지 않았는지를 깊이 반성하거나 하나님께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께 분노했지요. 내가 이렇게 내 소산을 가지고 정성껏 제물을 드렸는데 왜 안받으시는지 분노한 겁니다. 자기 기준에 빠져서 하나님이 잘못되었다는 거죠.

어제 말씀에서 말라기 전체에서 하나님의 지적하심에 대해 우리가 언제 그랬습니까?’ 이렇게 대들 듯이 반항하는 모습을 1장에서부터 계속 되는 것을 살펴보았었는데 우리가 언제 그랬습니까? 왜 우리가 그렇게 했다고 말씀하십니까?’ 이 말투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태도이지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동과 모습을 돌아보는 겸손함이 아니라 우리가 올바르고, 그래서 하나님도 우리를 따라야 한다는 교만함인 겁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와는 함께하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많은 예배와 헌금과 봉사와 헌신이 있더라도 교만한 사람과는 어떤 일도 함께 하지 않으시지요. 오직 하나님 중심의,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겸손하고 온유한 자들과 항상 함께 하십니다.

이스라엘에 반항적인 태도를 가지는 세 번째 이유는 죄를 오래 반복하면 무뎌지기 때문이지요. 죄라는 것은 희안해서 자신의 죄를 처음 인식할 때에는 진지하게 회개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 죄가 계속 반복되다보면 거기에 무뎌지고 무감각해져서 더 이상 죄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죄를 지적 받아도 그게 뭐 그리 큰 죄라고 이러십니까?’ 이런 식의 태도를 지니게 되는 거죠. 말라기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항의 태도에는 분명 이렇게 죄에 대해 무감각해진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에도 무감각해진다는 거죠.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으로 여겨지지도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이 선하심으로 여겨지지도 않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진실함과 진지함은 사라지고 단지 껍질만 남게 되는 거죠.

오늘 본문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이상 믿음과 신뢰와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이름만 부르고 나머지는 하나님과 아무 관계 없는 현실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13절 후반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14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5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함이라.’ 이런 식의 태도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진실로 의지하고 따르려는 신앙의 모습이 보여지시나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권태기에 빠지지 않기를 힘쓰시고, 이를 위해 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은 언제나 겸손하게, 온유하고, 그러면서도 진실하게 살아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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