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F54L7ZCMfAM?si=hPZgPKdjaRv4t-tl
본문 로마서 5:1-4 제목 :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 보다도 누구와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여행한다면 힘들고 고생스러운 여행도 즐겁게 할 수 있지만 마음이 잘 맞지 않는 사람이나 서로 싫어하는 사람과 여행한다면 아무리 최고급 크루즈를 타고 먼 나라를 여행해도 그 여정은 힘들고 불편할 수 밖에 없지요.
우리의 한평생을 하나의 긴 여행이라고 한다면 이 여행 역시 어디로 가느냐보다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사람은 혼자 살 수는 없는 사회적인 존재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관계를 맺고 누구와 함께 살아가느냐가 내가 내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영역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때로는 그 비중이 훨씬 더 클 수도 있지요.
그렇다면 누가 나의 좋은 동반자일까요? 당연히 언제나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 그러면서도 나를 완벽하게 바른 길로 좋은 길로 이끌어 주는 사람이겠지요. 그런데 과연 세상에서 나를 위해 자기의 삶을 포기하고 나만을 위한 완벽한 동반자가 되어 줄 사람이 있을까요?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동반자는 있겠지만 완벽한 동반자는 사실 없습니다. 나의 배우자도, 내 부모나 자식도, 그리고 친한 친구도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동반자이지 영원하고 완전한 동반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만을 의지하며 사는 것은 한계가 있고, 그 인간관계만으로는 우리의 인생과 생명이 완성될 수도 없는 거죠. 그래서 성경은 우리와 영원히 동행하시면서 우리를 참된 생명과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선한 목자이시고,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인 로마서 5:1절은 이렇게 시작되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먼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의 은총을 통해서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의 권세에서 건져주셨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하지만 오염물 구덩이에서 내가 건짐을 받았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당장 깨끗해 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았지만 아직도 죄악의 오물들이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먼저 선언해 주신 것이지요. 그리고 그 선언이 완전히 성취될 수 있도록 사랑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거룩한 존재로 성화시켜 가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이미 받은 그리스도의 의를 따라 점점 거룩하게 변화되어 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셨다는 것이고, 시편 118:6절에서의 노래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내 편이심을 또한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면서도 우리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었다는 이 사실의 중요성과 그 깊은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내 뜻대로 세상을 사는 것과 또한 세상에서 인정받으려는 본능이 강하게 있지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삶의 의미로 여기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마치 내 인생이 구원받는 것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면에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세상은 우리 뜻대로 마음껏 펼쳐갈 수 있을 때가 많지는 않지요. 오히려 내 뜻이 아니어도 어쩔 수 없이 떠안아야 하는 일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인정받기는커녕 열심히 최선을 다해도 인정받지 못하거나, 앞길이 열리지 않기도 하고, 심지어 오히려 내가 잘못된 것으로 억울하게 판단을 받을 때도 있지요. 또는 하나의 부족함 때문에 내 인생 전체가 부족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 욕심과 기대대로 마음껏 살면 내 인생이 완성될까요? 내가 예수님처럼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면 모를까 내 소원과 욕망과 기대는 진리가 아닙니다. 아무리 마음껏 살아도 내 인생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미완성이지요. 그리고 남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내 삶이 의미가 있다면 내 인생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인정해 주면 내 인생이 있는 것이고, 남들이 인정 안해주면 내 인생은 없는 것이라면 그런 인생을 어떻게 나의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좀 극단적인 얘기겠습니다만 기독교 역사 속에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지요. 그분들은 당시 세상을 지배하던 세력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외면당했고 억울한 죄를 덮어쓰면서 결국 죽임까지 당했지요. 세상적으로는 참 불행했습니다만 적어도 그분들은 세상이 인정해 주는 것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나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신 예수님, 그리고 십자가의 은총을 통해 나를 의롭다 여겨주셔서 나의 생명과 삶을 온전케 하시고 완성해 가시는 구원과 생명과 사랑의 손길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내 생명과 인생은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이 완성해 주시는 것이지 세상이 완성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분들은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버리라고 세상이 강요해도 내 목숨은 버릴지언정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예수님을 버릴 수는 없었던 거죠. 그분들은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꿋꿋이 살아갔던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면서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사실은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이며 부족한 자를 의로운 자로 선언해 주셨다는 것이지요. 세상에서는 내가 버림당하고 외면당하고 무시당해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인정해 주셨고,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고, 나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해서 귀하게 사용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제대로 가지는 것은 가장 먼저 이 은혜의 사실을 바르게 깨닫고 인식하는 데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 주시는 은총은 세상의 일시적인 것들과는 달리 영원한 은총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멸되거나 변질되는 게 아니지요. 세상은 자기 이득에 따라서 나를 받아들여주거나 냉정하게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를 의롭다 여겨주시는 은총은 영원하고 본질적인 은총이지요. 그래서 그 은총이 우리에게는 우리의 생명을 완성케 하는 구원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는 은총은 1절 후반부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명예와 권세와 인정받고 주목 받는 것과는 비교될 수 없이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해주시고 받아주시고 함께 해 주시는 은총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는 은총이지요. 이렇게 하나님과 화평의 은혜를 누리면 세상에서의 그 어떤 조건에 얽매이거나 연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만큼 어떤 환경에서도 내 삶이 자유로울 수 있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삶은 2절에 의하면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은혜에 들어간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데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소망의 삶이지요.
그리고 3절에 의하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절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 말씀에처럼 환난, 인내, 연단 같은 다소 무거운 삶의 현실의 상황도 4절 마지막에서처럼 소망을 이루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이 말씀에서 환난, 인내, 연단, 소망의 과정을 말하고 있는데 왜 환난은 인내를 만들까요? 환난은 우리의 한계를 느끼고 깨닫게 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때와 도우심을 기다리게 하면서 인내를 배우게 합니다. 그렇다면 인내는 왜 연단을 만들까요? 인내는 그냥 참기만 하는 게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붙잡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더 단단하게 연단되어가고 순전하게 되어 가는 거죠. 그리고 연단은 왜 소망으로 이어질까요? 연단은 고통의 과정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굳게 붙들어 주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경험들이 쌓여가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끝까지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흔들림 없이 가지게 되는 거죠.
설교 첫 부분으로 돌아가서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 보다도 누구와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여행의 여정 속에서 무엇을 성취하고 이룰 것인가에 집착하기보다도 우리를 의롭게 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함께 화평을 누리면서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그 삶 자체에 집중하지요. 본문의 3절과 4절에서 언급되는 환난과 인내와 연단의 고통이 있다 해도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그 끝은 하나님의 영원하고 온전하신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의 손길, 그리고 참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분명한 소망이 있기에 내 삶의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거죠. 지금 여기에서부터 본문 1절에서처럼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말이지요.
설교 후 부르게 될 찬송 288장 3절 가사를 결론으로 대신합니다. ‘주 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에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 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아멘’